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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조·중’ 기자들 VS ‘M·한·경’ 기자들

“처음엔 같았다, 우릴 갈라 세운 건 조직과 ‘야마 뻥튀기’…”

  • 이혜민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behappy@donga.com

‘동·조·중’ 기자들 VS ‘M·한·경’ 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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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조·중’ 기자들 VS ‘M·한·경’ 기자들

촛불집회에는 평화적으로 시위하는 시민이 대다수였지만 그렇지 않은 시민도 있었다.

“동·조·중을 폐간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 회사 기자들이 하나같이 소속사의 논조와 같은 성향을 갖고 있다고 여긴다. 언론사의 보도 논조와 소속 기자 성향을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자들이 모두 같은 논조의 기사를 생산하는 게 과연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 대부분의 기자들이 동의하겠지만 이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한 이불 덮고 자는 부부 사이에도 의견차가 있게 마련인데, ‘말 많고’ ‘똑똑한’ 기자들 사이의 ‘논조 동맹’은 처음부터 불성립 명제다. ‘동·조·중’ 세 회사의 기자가 동맹을 맺는 건 더더욱 불가능하다.

실제 촛불집회에서 이 세 회사가 내놓은 기사를 분석하면 큰 맥락의 스탠스는 비슷하지만 세부적 논조에는 차이가 나타난다. 하지만 진보 진영은 의도적으로 이 세 언론을 하나로 묶으려고 한다. 공격하기에 편하기 때문이다. 동·조·중 기자들의 인터뷰를 거부하고, 동·조·중 기자들을 폭행한 사례를 보면 더욱 그렇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보도 내용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충실히 대변해주는 MBC,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등을 선호한다. ‘동·조·중’에 대비해 ‘M·한·경’이란 신조어가 나오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큰 틀에서 보면 ‘동·조·중’ 소속이건 ‘M·한·경’ 소속이건 취재 현장을 지키는 기자들이긴 매 한가지다. 자신이 보고 듣고 확인한 것을 그대로 쓴다는 보도 원칙도 같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양대 매체의 논조가 갈리는 것일까. 혹, 일부 독자들은 양측 기자들은 입사할 때부터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전혀 그렇지 않다. 보수매체의 한 기자는 “내 정치적 지향은 오히려 진보적이지만, 보수매체에 왔다. 취업 자체가 어려운데 뽑아준 데 가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라고 되물은 뒤 “회사와 입장이 다른 기자도 많다. 그래서 ‘이건 아니지 않나’하면서 혼자서 고민하는 기자들도 있다”고 전했다.

진보매체 기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K기자는 “기자가 개인 신념에 따라 선택하기에는 언론사 입사 환경이 좋지 않다. 초년 기자들끼리는 ‘운 좋으면 거기 가고, 아니면 다른 데 갈 수도 있고’라는 말이 우스개처럼 돌아다닌다”고 했다.



또 다른 보수매체 P기자는 이렇게 정리했다.

“꼭 여기 아니면 안 된다는 사람이 10%나 될까 싶다. 기자는 조직원이기 이전에 개체라는 생각이 있어서 그 조직에 들어가면서도 희망을 갖는다. 어찌됐든 자기 이름을 걸고 취재하고 기사 쓰는 게 기자이니까.”

한국언론재단 교육팀의 한 관계자는“언론사에 들어가기가 힘들어 현실적으로 자신의 성향에 맞춰가기 힘든 게 사실이다”고 했다. 진보매체의 한 기자는 “예전에는 특정 언론사에 들어가기 위해 재수, 삼수하고는 했는데, 요즘은 입사시험 합격한 곳에 입사하는 경우가 많다”며 “거기 안 가면 다른 곳 간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에 특정 언론사만 고집하는 경우는 극소수”라고 했다. 그는 “재수, 삼수할 때에는 언론사 가리지 않고 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김승수 교수도 “조선에 극우파가 합격하고, 한겨레에 학생운동가가 합격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기자들은 시험 쳐서 걸리는 곳에 간다. 단지 걸리는 곳에 가서 변할 뿐이다”고 했다.

“너 참 많이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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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매체는 시위대에게 폭행당하는 경찰을 강조했다.

대학 때 시국 관련 집회에 많이 참석했던 보수매체의 K기자는 얼마 전 술자리에서 친구들과 촛불집회 얘기를 하다 다툴 뻔했다. 친구들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에 대해 무조건 재협상을 요구하는데 그 혼자만 재협상이 아닌 검역 강화와 같은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는 “친구들이 대학원생, 고시생들이고 나는 직장인이라 생각의 차이가 있는 것 같았다”며 “(보수매체) 기자이기에 앞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대안을 찾는 직장인이기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고 했다.

보수매체의 N기자는 대학 때 한겨레신문를 읽었고, 스스로도 자신을 진보 좌파라고 생각했다. 그랬던 그가 기자가 된 뒤 일부러 자극적인 말과 팩트를 즐겨 쓰는 언론의 제작과정을 보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만이 옳은 건 아니구나’라고 느꼈다고 한다. 친구들은 그런 그를 변절자로 취급했다. 취재 중 만난 대부분의 기자들은 진보, 보수에 관계없이 “생각이 변했다는 이유로 변절자로 취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한다. 한 진보매체의 기자는 “하나의 이슈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질 수 있고, 사회인으로 생활하면서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느냐”고 했다.

보수매체 D기자는 오히려 “촛불정국 와중에 자신이 보수매체 기자라는 정체성을 처음으로 느꼈다”고 말한다.

“이전에는 기자라는 정체성이 있었을 뿐이었죠. 정치, 경제 관련 기사나 사설이 자신의 가치관과 다르더라도 내 기사가 아니라서 그러려니 했습니다. 몇몇 정치적 사회단체가 적대적이었지만 자신의 진정성을 내세우면 문제없었습니다. 그러다 촛불집회 과정에 경찰의 폭행으로 피해를 본 학생을 취재하기 위해 몇 차례 전화를 걸고 문자를 남기고 어렵사리 통화가 성사됐는데 이야기도 하지 않고 ‘00일보는 안 되겠습니다’라고 하더라고요. ‘우리 신문사 논조에서 공권력을 비판하는 게 쉽지 않지만, 저는 이런 기사를 실어 우리 논조를 정화시키고 싶습니다’라고까지 하며 진심으로 호소했는데 답은 같았습니다. ‘그래도 00일보는 안 되겠습니다.’…”

진보매체의 Y 기자는 이런 촛불 민심에 대해 두려움까지 느꼈다고 한다.

“촛불집회 관련 취재를 할 때 우리는(진보 언론 기자들) 항상 사원증을 목에 걸고 다녔죠. 기자증을 까 보이라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죠. 그들은 항상 만나면 어디 기자인가를 묻고는 기자증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기자증을 보이면 뒤집어 보고, 위조한 게 아니냐고 묻고 명함도 달라고 해요. 기자증을 확인할 때면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빙 둘러 서 있고, 동·조·중 기자가 아니면 가버렸습니다. 기자증을 요구하는 건 시민의 정당한 권리죠. 저도 예전에 취재당하는 입장이었을 땐 기자의 소속이 궁금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궁금증 해소 차원이 아니라 낙인찍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보수매체 ‘낙인찍기’는 광우병국민대책회의(이하 대책회의)의 동·조·중 취재 거부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대책회의는 기자회견장에 동·조·중 기자의 출입을 금지했을 뿐만 아니라 취재거부 성명서도 냈다. 동·조·중 기자들은 대책회의에 대해 누구나 비판적이었다.

“대책위 주축이 참여연대인데, 보수 언론들과도 다양한 활동을 했으면서 이번에 인터뷰 거부라는 액션을 취해 치졸해 보였습니다. (대책회의가) 잘한 선택은 아니죠. 취재원이 선을 그으면 그 선은 더 명확해지기 쉽거든요. 취재 자유 보장을 제1의 가치로 삼아야 하는 기자단이 몇몇 다른 기자들이 소외되는 데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은 것도 문제입니다. 기자증 검사에 순순히 응하는 모습이 한심해 보였습니다.”(보수매체 K,P,L기자)

진보매체의 한 기자는 “애초부터 악의적으로 보도한 언론사의 책임 탓”이라고 했다. 그러나 한 진보매체 기자는 “현장 기자들은 다양한 현장의 목소리를 담게 되는데 (대책회의가 취재 거부를 하는 것은) 스스로 한계를 정해놓은 거나 다름없다”며 “대책회의가 현명하지 못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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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민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behapp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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