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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600 년 특별연재 /책으로 본 한국 현대인물사②

‘전환시대의 논리’와 리영희

냉전시대의 우상에 맞서 싸운 이성의 역정

  • 윤무한 언론인, 현대사연구가 ymh6874@naver.com

‘전환시대의 논리’와 리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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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언급된 인물들은 모두 지적 작업에 종사하는 전문적 교양인이었거니와, 이들보다 훨씬 많은 청년 대학생 샐러리맨 노동자 등에게 리영희가 준 충격은 더욱 컸고 심층적이었다. 한국사회의 기득권적 또는 상투적 의식세계의 덫에 갇혀 있던 신념체계가 일제히 붕괴되면서 그들은 모두 아찔한 현기증에 사로잡혔다.

‘의식화의 원흉’으로 몰리기도

광복 후 30여 년, 오로지 반공 냉전 극우논리가 휩쓸고 있던 우리의 정신풍토에서 리영희는 광기 어린 국가권력과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날카로운 비판의 면도날을 들이댄 것이다. 1974년 유신의 한복판에서 리영희는 ‘전논’을 통해 인간해방, 사상과 언론의 자유, 권위에 대한 저항, 이성의 승리 등 일관된 신념을 보여주었다. 그는 대부분의 지식인이 체념에 빠졌을 때 중국의 부상, 베트남전쟁, 한미·한일관계 등 당시 가장 민감한 주제들에서 비켜서지 않고 당당하게 맞섰다.

리영희는 베트남전쟁이 최고조에 이른 상황에서 냉전시대의 신화·우상의 실체를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전쟁과 국가의 기만성을 비판했다. 한국 국민이 닉슨의 중국 방문에 대해 하늘이 무너질 듯 놀라는 것을 보고 그는 탄식했다. 그는 ‘전논’을 통해 남한적 가치관 및 이데올로기의 허구성과 진실을 위장했던 굳고 딱딱한 ‘가면’을 벗기려고 했다. 가치의식의 총체적 해체를 의도한 것이다. 극우 반공정권이 그 책과 저자를 ‘의식화의 원흉’으로 단정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전논’은 중국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지식을 담고 있다. 저자 자신은 중국 문제에 관한 한 ‘해설자’ 이상을 자처한 일이 없다고 했지만, 이 책은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중국 종합보고서였다. 중국은 우리의 영원한 적(敵)일 수밖에 없다고 확신하던 1970년대에 이 책은 정치 외교 역사 등 거의 모든 부분에 걸쳐 중국의 전혀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당시 중국은 4000년에 이르는 전통적 정신문화의 토양에 서구적 전통과 사상을 접목시키는 거대한 실험을 전개하고 있었다. 중국의 지도자들은 자본주의의 물질적 요소들에 과감하게 문을 열어젖히고 있었다. 리영희는 이 책을 통해 중국 화교의 역할, 무역·군사대국화, 동북아시아 국제정치에서의 위상 등을 내다보았다. 30여 년이 지난 오늘의 시점에서도 이 중국 종합보고서는 사실관계의 현실성에서 뿐만 아니라 전망에서도 전반적으로 일치하는 분석이었다.

‘전논’에서 그는 1970년대 동북아 국제정치의 격변기에 일본 재등장의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했으며, 그 정치대국화 군사대국화의 본질을 정확하게 투시하고 있다. 미국의 대리자로서 중국을 견제하는 역할을 떠맡은 일본이 과거 역사를 되풀이할 수 있음을 리영희는 일찌감치 경계했다. 일본 자위대의 역할이 방위력에서 공격력으로 변질되고 일본산업의 군사화와 평화헌법의 개헌 가능성 속에 아시아를 위협할 일본의 미래를 리영희는 그 시절 이미 구체적으로 예측한 것이다.

‘전환시대의 논리’와  리영희

옛 국가안전기획부 남산 청사의 지하 취조실.

베트남전쟁에 대해서도 리영희는 베트남 인민의 80년에 걸친 반외세 투쟁, 반민중적 권력에 대한 민중항쟁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해야 한다고 보았다. 리영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72년까지 베트남전쟁의 배경과 전개 과정, 성격 등을 날카롭게 분석했다. 한마디로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은 제3세계 국가와 그 국민들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없이 거대한 국가권력으로 개입했음을 해부했다. 미국의 베트남전쟁 개입 논리는 30여 년이 지난 오늘 크게 보아 아프가니스탄전쟁과 이라크전쟁 개입의 논리로 연장되고 있다.

우상에 대한 이성의 도전

1975년 4월30일 베트남이 패망하자 한국사회는 완전히 병영(兵營)체계로 돌변했다. 1972년부터 한양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있던 리영희는 1976년 제1차 교수재임용법에 의해 교수직에서 강제 해임되어 실업자가 되었다. 리영희는 해직 6개월 만인 1977년 9월 창작과비평사에서 ‘8억인과의 대화 : 현지에서 본 중국대륙’을 펴냈다. 리영희는 서문에 이렇게 썼다.

“여러 가지 이유로 하여 우리 정부도 중공을 ‘비적성국가’로 규정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공식 명칭도 사용하며, 종래의 제한조치의 일부를 해제하는 등 이해성 있는 정책으로 전환한 지도 몇 해가 되었다. …체제가 다르고 살아온 배경이 다르다 하더라도, 거기도 사람이 사는 곳이다.” (리영희, ‘8억인과의 대화 : 현지에서 본 중국대륙’, 창작과 비평사, 1977)

중국 하면 우리와 역사적으로 가장 관계가 오래고 깊은 나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프랑스 영국 같은, 중국 땅에서 가장 먼 곳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사실들을 정작 바로 이웃인 우리는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알면 재미없다”는 음험한 편견이 그때까지 우리를 겹겹이 에워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산 중국의 이데올로기와 정치 경제 사회체제, 문화정책이나 홍위병이 어떻고 하는 얘기는 숱하게 들어왔지만, 대개는 관념적인 것이어서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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