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때 ‘한 끗 차’로 낙선해 아쉽지 않았나요”라는 질문에 이 변호사는 “더 잘된 일이죠. 그때 의원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의 승계에 대해 ‘접어주는’ 분위기”라며 웃음을 지었다.
이 변호사는 경북 의성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 89학번이다. 1993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법무법인 광장 등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다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후보의 인권특보를 역임했다.
“1990년대 후반, 3년 정도 국선 변호인으로 뛰었어요. 자청해서 맡아 가난한 피의자들을 위해 열성적으로 일했죠. 개인적으로 ‘흉악범의 얼굴 공개엔 찬성! 사형 집행엔 반대!’예요. 왜냐면 인권국가의 품격을 지켜나가는 일이 중요하잖아요. 난 북한 인권운동도 꾸준히 해왔어요. 지금은 한나라당 북한인권개선소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고 탈북 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인 여명학교, 한겨레중고교를 찾아 공부를 지도해주고 있어요.”
이 변호사는 “법사위를 맡겨주면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법사위는 입법기관의 중추 상임위이지만, 변호사 출신 의원은 법사위에 배정되면 변호사 영업을 중단해야 하기에 기피한다는데…”라고 하자, 그는 “중간에 들어온 사람이 그런 데 맡아야죠”라고 말한다.
중간에 국회로 들어오게 된 이 여성 변호사는 ‘솔직하고 씩씩한 F4세대’ 스타일로 보였다. “결혼요? 하고 싶죠.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