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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우의 세상읽기

위로받기 위하여

위로받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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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母性)은 돌봄이고 희생이다. 누구는 이를 두고 구시대적 어머니상(像)으로의 회귀(回歸)라고 비판하지만 사람들은 그 ‘엄마’에게서 위로를 받는다. 못된 아들, 못난 딸들이 신경숙의 소설을 읽으며 때로 가슴 아파하고 때로 눈물짓지만 가슴 아픔과 눈물은 오히려 위안이 되고 위로가 된다. 그렇지 않고서는 지금 ‘엄마를 부탁해’가 50만부 이상 팔리는 이유를 찾기 어렵다.

한국 사람들은 지금 위로받기 원한다. 위안을 얻기 바란다.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소식에 추위를 무릅쓰고 모여든 40만의 추모 인파는 그 같은 갈망의 표현이 아니던가. 그것이 한 편의 영화나 소설로 채워질 수는 없다. 대통령이, 정치가 채워줘야 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1년 동안 국민은 위로받지 못했다. 위안을 얻지 못했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악화된 한국사회통합지수는 2003~2007년 나아지는 추세를 보였지만 이후 다시 나빠지고 있다. 사회통합지수란 한 사회의 통합 및 갈등 정도를 지수로 나타낸 것으로 0을 기준으로 플러스는 통합사회, 마이너스는 갈등사회를 나타낸다(1998년=-0.6580, 2003년=-0.4776, 2007년=-0.143, 2009년 추정=-0.45~-0.5).

한마디로 대통령이 약속했던 사회통합은커녕 국민 간 갈등이 심화된 것이다. 그 첫째 원인은 물론 경제위기다. 성장을 통한 통합에서 성장이 안 되니 통합도 어려워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경제가 나쁜 것은 세계 경제위기 탓이고, 국민통합이 어려운 것도 그 때문이라면 정치, 그중에서도 대통령의 리더십은 있으나마나라는 얘기가 된다. 진정한 리더십은 위기에서 빛나는 법이다.

대통령은 올해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겠다고 했다. 권력기관에 내 사람들을 심어 확실하게 국정을 틀어쥐고 경제를 살리겠다고 했다. 다수 국민의 선택을 받은 보수정권이 보수적 가치를 기반으로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것은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다수의 지배가 절대적 선(善)이란 보장도 없다. 일찍이 프랑스의 정치학자 알렉시스 토크빌(1805~1859)은 그의 명저(名著)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다수의 횡포를 우려했다. 수로 밀어붙이는 것은 절차의 민주주의는 몰라도 내용의 민주주의를 채울 수 없다. 한나라당은 과거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일 때 다수의 횡포를 주장했다. 지금은 거꾸로다. 그러니 입장이 바뀌었다고 야당이 반대하면 국회의장에게 쟁점법안을 직권 상정하라 하고 다수결로 하면 된다, 그게 민주주의 아니냐는 소리는 하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도 힘들겠지만 이 점을 가볍게 봐선 안 된다. 행여 비효율적인 정치와 의회는 밀어둔 채 좌고우면하지 않고 속도전을 감행하겠다고 생각한 것이라면 위험하다. 그것은 박정희의 유신체제와 다를 게 없지 않은가. 지금은 37년 전이 아니다.

집권 측은 ‘좌파 타령’을 그만해야 한다. 지금 힘들고 지친 사람들은 ‘좌파’고 뭐고, 관심조차 없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반체제 친북좌파라면 집권 측이 뭐라 하지 않아도 국민이 용납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파의 상대적 개념으로서의 좌파까지 색안경을 끼고 보면 세상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을 것이다. 오늘의 사회갈등 심화에 정권의 이념적 편협성이 작용하고 있음을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전(前) 정권이 저지른 우(愚)를 반동적으로 되풀이해서야 되겠는가. 보수정권이 잘하면 된다. 좌파를 탓하기 전에 우파가 반듯하면 된다. 그러면 누가 뭐래도 국민이 지지한다. 과연 그러한가. 내 탓부터 할 일이다.

위기는 기회이기도 하다. 위기가 아니라면 노사민정(勞使民政) 대타협은 이뤄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자발적으로 임금을 깎고 일자리를 늘리자는 ‘잡 셰어링’은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신입사원의 임금만 깎는 편법으로는 또 다른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 형식적인 인턴 고용으로 실업률 수치나 떨어뜨리는 임기응변으로는 1년을 버티기 어렵다. 자칫 소리만 요란한 이벤트성에 그친다면 정부에 대한 신뢰는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추락할 것이다. 그것은 정권의 실패이자 나라의 위기로 직결될 수 있다.

위로받기 위하여
전진우

1949년 서울 출생

동아방송 기자

월간 신동아 편집장

동아일보 논설실장·대기자

現 경원대·한성대 초빙교수

저서: 작품집 ‘하얀 행렬’ ‘서울의 땀’, 칼럼집 ‘역사에 대한 예의’


이제 정말 대통령이 1년 2개월 전 취임사에서 언명한 대로 이념의 좁은 틀에서 벗어나 상식의 실용으로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다수 국민은 정부를 믿고 따르고 싶어 할 것이다. 대통령에게서, 정부에게서, 집권여당에게서 위로받고 위안을 얻고 싶을 것이다. 당장 경제를 살려내라는 게 아니다. 위로받고 위안을 얻게 해달라는 것이다. 더도 덜도 말고 김권찬 씨 같은 마음이면 된다.

신동아 2009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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