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라운드호그 데이 행사를 소재로 한 영화 ‘사랑의 블랙홀’.
순진한 PD 리타는 행사를 무척 재미있게 지켜보지만, 필은 촬영을 대충 마치고 얼른 집으로 돌아갈 궁리를 한다. 하지만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내린 폭설로 인해 도로가 불통되면서 일행은 펑추토니에서 하룻밤을 더 묵을 수밖에 없게 된다. 필은 예정에 없던 체류 연장에 투덜거리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그런데 다음 날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필이 정확하게 아침 6시에 전날과 동일한 음악을 듣고 눈을 뜨자 놀랍게도 어제 그가 맞이했던 그라운드호그 데이가 똑같이 반복된다. 모든 상황이 똑같이 진행되자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셋째 날에도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자 필은 리타에게 이 기막힌 상황을 털어놓는다. 하지만 리타는 “도대체 무슨 정신없는 이야기를 하느냐”고 말했다. 같은 날이 거듭되는 데 지친 필은 결국 정신과의사를 찾아간다. 그러나 “내일 또 오라”는 의사의 말에 ‘내일이 없는’ 필은 절망하고 만다.
유쾌하지 않은 일상의 반복
계속해서 반복되는 그라운드호그 데이를 맞이하며 필의 심경에도 차츰 변화가 생긴다. 처음에는 ‘내일이 없다면 결국 책임질 일도 없다는 뜻이 아닌가?’ 하는 자기변론과 특유의 못된 성격이 어우러져 여자를 유혹하는 등 마음 놓고 온갖 일탈을 일삼는다. 기막힌 현실에 지친 나머지 갖가지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해 보기도 하지만, 다음날 아침이면 다시 똑같은 장소에서 눈을 뜨는 자신을 발견한다.
마침내 현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기로 한 필은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친절한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는다. 먼저 모든 사람에게 정성을 다해 진심으로 대하는 한편, 끝없이 반복되는 하루를 이용해 피아노 연주, 얼음조각 만들기 등을 배워 주위 사람들을 즐겁게 해준다. 그리고 다음날 벌어질 일을 정확하게 예상해 식사 중 틀니를 잘못 삼켜 질식 직전인 남자, 나무에서 떨어지는 아이, 타이어가 펑크나 쩔쩔매는 할머니 등을 ‘슈퍼맨’처럼 도와준다.
결국 자기중심적 사고의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인간애로 가득 찬 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이런 변화와 더불어 마침내 리타의 사랑도 얻는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날 그가 그토록 기다리던 ‘내일’이 눈앞에 펼쳐지면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이 영화가 개봉된 이후 ‘그라운드호그 데이’는 원래의 의미와 달리 영화팬들 사이에 유쾌하지 않은 일상이 반복되는 경우를 뜻하는 말로 통용됐다.
영화에서 지겹기만한 일상이 반복될 때 필이 리타와 함께 술을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빌이 먼저 짐빔(미국 버번위스키의 대표적 상품명)과 얼음과 물을 주문하자 리타는 ‘스위트 버무스(sweet vermouth on the rocks with a twist)’를 시킨다. 필은 이를 기억해뒀다가 다음날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자 짐짓 모른 체하며 자기가 먼저 스위트 버무스를 주문한다. 이에 리타는 필이 자신과 같은 취향을 가졌다고 생각하고 호감을 갖는다. 필은 리타의 긍정적인 반응에 고무되어 ‘스위트 버무스는 로마의 태양이 오후의 건물을 비출 때를 생각나게 한다’며 애써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려고 너스레를 떤다. 이 장면은 같은 날이 반복되는 와중에 필이 리타에게 애정을 느끼기 시작하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