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게 말이죠…, 전혀 그렇지가 않았어요. 학창생활 내내 부모님과 선생님이 시키는 것만 하고 말도 별로 없고, 친구들과 나가 놀지도 않고, 조용한 아이였지요. 틈나면 책이나 읽고. 연기를 한다는 건 주변에서나 저 스스로나 생각도 못해봤어요.”
▼ 끼를 늦게 발견했군요.
“아, 생각난다. 다섯 살, 여섯 살 땐가 찍은 사진이 있어요. 제 여동생과 둘이 찍은 사진인데 멋진 소파에 제 동생이 선글라스를 끼고 앉아 있고 저는 옆에 서서 울고 있어요. 엄마한테 ‘이게 무슨 사진이야?’ 물었더니 서로 의자에 앉겠다고 싸웠는데 제가 동생한테 얻어맞고 졌대요. 여동생에게도 지는 순진한 애였어요.(웃음)”
▼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에서 연기를 전공했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진학하게 된 건가요?
“고등학교 때 전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데 부모님께서 결사반대를 하셨어요. 평범한 거 하라고, 그래서 국문학과를 갈까도 생각하다가 고3 때 본능적으로 예체능반에 갔죠. 대학 지원 때까지 진로에 대한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담임선생님도 아닌 생물선생님이 불러서 한예종이란 대학이 있는데 원서를 내보라고 알려주셨죠. 그래서 내봤는데 덜컥 합격한 거죠.”
▼ 그렇다면 나중에 ‘TV는 사랑을 싣고’에 출연하게 되면 생물선생님을?
“당연하죠!”
▼ 지원은 그렇게 했다 치고 어떻게 합격을 했나요? 경쟁률도 엄청났을 텐데….
“우연의 연속이죠. 제가 그때 머리도 노랗게 염색하고 날티나게 입었어요.(웃음) 다 선발하고 저와 미모의 한 여학생이 남았는데 교수님들이 한예종에 날라리도 하나 있어야 한다고, 저를 뽑았대요. 그런데 알고 보니 날라리는커녕 숫기 없는 아이였던 거죠. 어찌됐건 한예종의 창립 정신과 잘 맞아떨어지는 합격생이었던 셈이에요.”
“김혜나의 변신은 무죄”
▼ 그런 아이가 어쩌다 이렇게(?) 됐나요?
“대학 첫 학기도 고등학생처럼 생활했어요. 시키는 것 얌전하게 하고, 친구나 선배가 도와달라면 도와주고. 그런데 스스로도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착한 아이로 고마워하기보다는 이용하기 좋은 아이? 그런데 한 학기 지켜본 교수님이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죠. ‘너 잘해야 돼. 네가 잘못되면 널 선택한 내가 잘려’, 그래서 첫 여름방학이 지나고 가을 개강하자 전 강의실 앞에 나가 선언했어요. ‘나 이제부터 싸가지 없어질 테다!’(웃음)”
▼ 반응은?
“친구들은 피식 웃었죠. 하지만 졸업할 때 다들 ‘너 그때 못되지겠다고 하더니 진짜 못되졌다’고요, 저는 인정했죠.(웃음)”
▼ 이젠 성격이 완전히 바뀌었나요?
“아뇨. 전 천성이 내성적이고 차분한가 봐요. 하지만 연기자로선 다른 자아를 발견하고 개발하는 거죠. 독립영화 배역들이 아시겠지만 뭐 낙태한 젊은 여성, 열악한 환경에서 몸부림치는 터프한 역에 독한 인물, 이런 거잖아요? 배우가 극중에서만 그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촬영 내내 그 캐릭터를 가슴속에 담고 생활해야 해요. 처음엔 역할을 소화해내기 힘들어 진짜 많이 울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