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델 교수는 “여러분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가정해보자”며 질문을 했다. “100억 원의 예산을 집행할 수 있다면 이를 노령연금 확충에 쓰는 것이 옳을까요, 대학등록금을 반값으로 줄이는 데 쓰는 것이 옳을까요? 결정하기 좀 어렵지만 각각 손 들어주시겠어요?” 방청객과 시민들의 의견은 반반으로 갈렸다. 한 방청객은 “대학생은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돈을 벌 수 있지만 퇴직자나 고령자가 되면 사회적으로 돈을 벌기 어려운 구조다”라며 노인을 부양하는 데 예산을 써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때 창밖에서 녹화를 지켜보던 한 청소년이 마이크를 잡았다. 이 여학생은 수줍은 표정으로 자신을 “중학교 3학년 열여섯 살 오예슬”이라고 소개한 뒤 “노년층을 부양할 젊은 층이 점점 줄어들고 있으니 대학등록금을 줄여 젊은이들에게 더 큰 교육 혜택을 주면 나중에 이들이 사회활동을 활발히 하게 되어 노년층을 부양할 수 있다”고 똑 부러지게 말했다. 이 여학생에게 샌델 교수는 “정말 열여섯 살이 맞느냐”며 놀라워했고 녹화장 분위기는 한층 편안해졌다.
특히 샌델 교수가 “모든 대학생의 등록금을 반으로 줄이는 방안과 빈곤층 대학생에게만 전액 장학금을 지원하는 것 중 어떤 것을 지지하느냐”고 물으면서 젊은 방청객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놨다. “빈곤층 대학생에게 전액 장학금을 준다면 걱정 없이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게 돼 최상의 성과를 낼 것이다.” “장학금 혜택이 일부에게만 돌아가면 연대감이 저하돼 사회적 의무 이행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모두에게 혜택을 주기엔 예산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빈곤층에게만 장학금을 지원함으로써 격차를 줄이고 기회의 평등을 유도하는 게 낫지 않을까. 복지는 모두가 가져가는 선물 보따리가 아니다.”
최근 대기업슈퍼마켓(SSM)의 구멍가게 잠식, 재벌 2,3세들의 빵집 경영으로 인한 영세상인의 피해 등 대기업과 중소기업 및 영세상인의 상생에 대한 쟁점이 불거지는 가운데 이와 관련한 토론도 이어졌다. 샌델 교수가 두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세계화된 무한경쟁의 시대에 대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춰 살아남으려면 협력업체인 중소기업들로부터 최대한 유리한 납품 가격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반면 대기업일수록 사회적 책임을 발휘해 납품업체와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주장도 있어요. 어떤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보시나요?”
홍권희 논설위원은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어느 혼자만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과정에 있다. 이들의 상생과 관련한 미해결 문제를 사회적으로 함께 고쳐 나가보자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만흠 원장은 “우리 헌법에는 경제 주체들의 조화를 위해 정부가 개입해서 규제하고 조정할 수 있다고 써 있다. 현 정부가 대기업 위주의 정책을 펼치는 상황에서 이들의 상생 문제를 시장경제에만 맡기기보다는 정부가 적극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반면 강석훈 교수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납품 단가를 낮추라고 하는 것은 아주 정당하다. 납품단가를 낮춰 발생하는 경쟁력을 바탕으로 대기업이 발전하면 그 발전의 여력으로 중소기업들도 발전할 수 있게 된다”고 밝혔다.
정의를 기반으로 논의해야
이후 토론은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을 정부가 규제하는 문제로까지 번졌다. 샌델 교수는 모든 의견을 청취한 뒤 “엄청난 시장지배력을 가진 대기업도 있고 그렇지 못한 회사도 있다. 이는 시장경제체제 아래서는 당연한 결과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토론을 활발히 벌일 수 있었던 건 우리 모두 시장만이 정의를 규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벌어진 결과에 대해 정의의 원칙을 기반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러한 공론은 당장 보편적인 합의나 해결책을 도출하진 못한다. 하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모두 함께 상호존중하면서 서로 의견을 경청하고 합리적으로 생각해보고 의견을 조율해나가는 과정”이라고 강조하며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오픈 스튜디오가 이끈 ‘살아 있는 아테네 학당’

샌델 교수가 방청객에게 질문하고 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스튜디오 밖에서 녹화를 지켜본 청중도 꽤 만족스러운 모습이었다. 김원상(23·대학생) 씨는 “샌델 교수의 하버드대 강의 동영상을 보고 직접 강의를 들어보고 싶었는데 밖에서도 방청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며 “교수 혼자 일방적으로 말하는 강의가 아니라 패널 및 방청객과 소통하며 다양한 의견을 듣는 모습이 신선했다”고 말했다. 신재섭(26·대학원생) 씨는 “지나가다 우연히 토론을 구경했는데 오픈 스튜디오로 누구나 강의를 듣게 하고 밖의 시민들에게도 발언권을 주는 형식은 지금까지 국내 방송에선 보기 힘들었던 신선한 시도”라고 말했다.
이날 채널A의 오픈 스튜디오와 주변 청계광장 일대는 남녀노소가 정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살아 있는 아테네 학당’이었다. 채널A는 이날 녹화된 공개 특강을 1월 20일 오후 8시 50분부터 방송했다. 이날 방송은 채널A 홈페이지(http://tv.ichannela.com/culture/justice)를 통해 다시보기가 가능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