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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

여성의 인간 됨을 선언한 페미니즘 정전

  • 김학순│언론인·북칼럼니스트 soon3417@naver.com

여성의 인간 됨을 선언한 페미니즘 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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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나선 이렇게 다그친다.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여, 그처럼 편협한 편견을 뛰어넘도록 하자! … 우리의 생각을 일상의 사소한 사건에만 국한하거나, 우리의 지식을 연인이나 남편의 마음을 알아내는 데 한정하지 말자. 우리의 지성을 증진하게 하고 지금보다 고귀한 상태를 위해 우리의 마음을 다잡게 하는 위대한 목적 아래, 삶의 모든 의무를 다하자.”

“사회에는 보다 많은 평등이 자리 잡아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도덕성은 결코 사회적 기반을 다지지 못할 것이다. 만일 인류의 절반인 여성이 숙명적으로 바위 아래에 묶여 있다면 실질적인 평등이 바위 위에 세워질지라도 결코 굳건하게 서 있지 못할 것이다.”

울스턴크래프트는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의 참정권도 요구한다. 물론 투표권까지는 바라지 않았다. 이 같은 주장이 얼마나 급진적이고 혁명적이었는지는 영국이 남성의 보통선거권을 수용한 게 1918년이며, 여성에게 투표권이 돌아간 것이 1928년이라는 사실만 떠올려봐도 알 만하다.

인류 최초의 페미니스트



이 책은 첫 출간 직후 프랑스어와 독일어 등으로 번역됐다. 18세기 프랑스사 전문가인 미국의 문화사가 린 헌트는 “울스턴크래프트의 ‘여성의 권리옹호’가, 미국 혁명기의 베스트셀러로서 혁명 발발을 가능케 한 것으로 평가받는 토머스 페인의 ‘인간의 권리’보다 공화국 초기 미국 시립 도서관들에서 더 많이 발견된다”고 말한다. 울스턴크래프트는 2년 앞선 저작인 ‘인간의 권리옹호’에서 국민은 나쁜 군주를 제거할 권리가 있으며 당대의 노예제도와 빈민들에 대한 시각이 비도덕적이라고 신랄하게 질타해 필명을 떨치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울스턴크래프트가 제대로 인정받기까지는 무려 1세기가 넘게 걸렸다.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이성을 가진 존재이며, 남성과 같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울스턴크래프트의 주장은 당시로선 받아들일 수 없는 불온사상이었다. ‘여성의 권리옹호’는 혁명의 시대에 여성을 정치적 평등에서 제외시킬 것을 주장한 자유주의자들에겐 엄청난 충격이었다. 예상대로 여론은 급진주의자인 그에게 극도로 적대적이었다. 같은 여성인 한 어머니는 잡지에 보낸 기고문에서 “이 책 때문에 네 명의 내 딸이 타락했다”고 헐뜯었다.

‘여성의 욕망을 인정해야 한다’며 성적 자유를 주장했던 대목은 그를 한층 더 곤경에 빠뜨렸다. 당시 신문은 그를 ‘철학적 바람둥이’라고 매도했다. 어떤 사회평론가는 이 책이 나오자마자 그를 ‘페티코트를 입은 하이에나’라고 조롱했다. 그 뒤 세상은 오랫동안 그를 판타지 소설의 효시가 된 ‘프랑켄슈타인’의 작가 메리 셸리의 어머니로만 기억할 뿐이었다. 그의 삶이 워낙 짧았던 데다 순탄치 못한 결혼생활로 말미암아 그의 가치가 왜곡된 탓도 컸다.

울스턴크래프트는 자신이 쓴 책의 신념을 그대로 실천하며, 파란만장하면서도 열정적으로 살았다. 여성이 독립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경제력과 교육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당시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직업 활동을 하며 직접 생계를 꾸렸다. 여성 교육을 위해 학교를 운영하는 모범도 보였다. “나는 새로운 종(種)의 시조가 될 것이다”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오늘날의 관점이라면 울스턴크래프트는 온건한 여성운동가에 불과하다. 여성의 지위 개선을 위한 구체적 방안이 미흡하고, 종속·불평등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으로까지 확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계를 안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고 몇 가지 아쉬운 점을 들어 이 책의 역사적 비중을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19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여성 참정권론자인 밀리센트 포세트가 ‘여성의 권리옹호’ 출간 100주년 기념본에서 평가한 한마디가 이 책의 위상을 명징하게 대변한다.

“근대 정치경제학이 (자본주의의 비조) 애덤 스미스에게 기대고 있는 것처럼 모든 여성은 울스턴크래프트에게 빚을 지고 있다.”

‘여성의 권리옹호’는 오늘날 ‘페미니스트의 성서’ ‘페미니스트 선언문’으로 불리는 저작이다. 이제 이 책은 여성운동뿐만 아니라 정치·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까지 파급력을 미치기에 이르렀다.

신동아 2012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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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순│언론인·북칼럼니스트 soon34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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