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자리엔 대변인과 정책보좌관, 각 국실 실무 책임자들이 배석했다. 배석자가 많으면 실무적 차원에선 도움이 되겠지만 장관이 소신발언을 하거나 자유롭고 편한 대화를 하는 데는 방해가 될 수 있다. 경험에 비춰 속 깊은 얘기를 나누기도 쉽지 않다. 그렇지만 다들 이렇게 한다. 그간 장관급 고위직을 여러 차례 인터뷰해봤는데 배석자를 단 한 명도 두지 않았던 사람은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뿐이었다.
“장관이 되니 뭐가 좋으냐”는 첫 질문에 최 장관은 그야말로 실무적인 답변을 했다.
“고려대박물관장 시절 몇 가지 하고 싶은 일이 있었는데 예산 부족으로 못했어요. 그걸 국립중앙박물관장이 돼서 해냈어요. 국립중앙박물관장과 문화재청장을 하면서도 예산 부족으로 사업이 중단되는 게 아쉬웠는데 장관이 된 후 다시 추진하게 됐습니다. 대표적인 게 북한 개성에 있는 만월대를 발굴하는 일입니다. 류우익 통일부 장관과 함께 추진하고 있습니다.”
▼ 힘이 커졌다는 뜻인가요?
“예산이나 조직이 크고 직위가 높아졌으니 영향력이 커지고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내가 그간 해온 일이 한국문화의 대중화, 정보화, 국제화입니다. 관장 할 때나 청장 할 때나 장관이 돼서나 마찬가지예요. 다만 영역이 좀 더 넓어진 거죠.”
▼ 일부에선 대통령과의 인연 덕분에 장관이 됐다거나 ‘낙하산 장관’이라는 얘기를 하는데….
“글쎄 뭐 대통령과 인연 있는 분이 저뿐이겠어요? 인연 있다고 다 장관 하는 건 아닐 것 같고요. 그리고 낙하산은 위에서 내려오는 건데, 저는 국립중앙박물관장, 문화재청장을 거쳐 장관이 됐으니 밑에서 위로 올라온 거지요.”
이명박 시장의 전화
▼ 모처럼 실력을 갖춘 정통 학자가 문화부 장관에 부임한 것 같습니다. 그간 정치인이나 언론인, 대중 예술인이 많았지요.
“인문학자 출신으로는 이어령 전 장관(노태우 정부) 이후 제가 처음인 것 같습니다. 그분은 문학 전공이고.”
▼ 교수직은 휴직 상태인가요?
“예.”
▼ 몇 년째인가요?
“4년입니다.”
2008년 국립중앙박물관장에 부임한 이래 죽 휴직 중이라는 얘기다. 그는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니냐”는 질문에 약간 얼굴이 상기되긴 했지만 침착하게 대답했다.
“제가 고대사 전공인데요. 다행히 (고려대 사학과에) 고대사 전문 교수가 둘 있어요. 국립박물관장 할 때만 해도 가끔 주말에 학생들을 만나 세미나를 열곤 했어요. 그런데 (문화재)청장 하면서는 쉽지 않더라고요. 대전에 사무실이 있으니 (서울) 왔다갔다 하는 게 힘들죠. 장관은 워낙 일이 많고.”
그는 2007년 고려대박물관장 시절 ‘문화예술최고위과정’을 개설했다. 각계 저명인사가 많이 수강했는데 그중엔 이명박 대통령 부부도 끼여 있었다. 당시 최 장관은 이명박대선캠프 정책자문위원이기도 했다. 이를 두고 장관 청문회 때 민주당 김재윤 의원은 “대통령의 은사로서 장관직을 받은 보은·낙하산 인사의 종결자”라고 비판했다.
최 장관에 따르면 이 대통령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9년 전이다.
“2003년에 제가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대책위원회 대표를 맡았어요. 그때 한 일간지와 인터뷰하면서 몇 가지 방안을 얘기했습니다. 첫째, 국제심포지엄을 해야 한다. 둘째, 북한 유물을 포함해 고구려 유물 전시회를 열어야 한다. 셋째, 고구려 박물관을 만들어야 한다. 다음 날 이 인터뷰 기사를 보고 처음 전화한 분이 코리아파운데이션 권이혁 이사장이었습니다. 국제심포지엄을 도와주겠다면서. 두 번째로 전화한 분이 이명박 서울시장이었어요. 서울시 차원에서 심포지엄 예산과 전시회 개최를 지원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알고 지내게 된 겁니다. 그분의 요청으로 서울시 시정자문위원도 맡았죠. 실제로 서울시에서 많이 지원해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