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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글 쓰지 않으면 짐승 한 마리가 내 생살을 뚫고 나오거든”

등단 40년, 40번째 소설 준비하는 박범신

  • 이소리│ 시인·문학in 대표 lsr@naver.com

“글 쓰지 않으면 짐승 한 마리가 내 생살을 뚫고 나오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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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지 않으면 짐승 한 마리가 내 생살을 뚫고 나오거든”

작가 박범신은 “글을 안쓰면 손이 말굽으로 변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 아니, 올해 구상 중인….

“아, 그렇죠. 고향얘기만 했네요. 사실, 지금도 뭘 쓸지는 모르겠어요. 작가로서 이런 아픈 역사를 지닌 논산으로 귀향한 게 우연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뭘 써야 하나’하고 고민할 때마다 특히 어둠 속에서 이상한 말소리가 많이 들려요. 제가 새로운 글을 쓴다면 아마 그런 것들을 쓰게 되지 않을까요? 역사이야기만 쓸 생각은 없어요. 역사는 명분에 따라 기록되지만, 소설은 명분 너머 이면에 있는 오욕칠정(五慾七情)을 코드에 따라 쓰는 것이니까요.”

▼ 생활은 불편하지 않으세요?

“논산문화원에서 논산 이야기를 담아 만든 아주 작은 책인 ‘논산의 어제 이야기’를 읽고 있어요. 고향에 관한 책도 여러 권 보고 있고요. 지난해 11월 끝자락에 고향으로 내려갔지만 생활하기가 힘들어요. 보통 오전 10시에 일어나는데, 보일러가 작동되지 않아 몹시 춥고, 부엌에서 음식 챙겨 먹는 것도 불편해요. 식사를 대충 챙겨 먹고는 차를 몰고 계룡산 등 논산 곳곳으로 떠돌아다니지요. 마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죽은 이들을 찾아다니는 것처럼. 저녁에는 주로 책을 읽는데 책이 잘 안 읽혀요. 캄캄한 어둠이 감싸고 있는 외딴집에 혼자 있자니 너무 적적하고, 글쓰기 또한 과도기에 있으니까 마음이 산란해요. 밤 10시 이후 혼자 술을 마셔요. 너무 외로우니까. 그리고 새벽 1, 2시에 술에 취해서 잠을 잔답니다. 사실, 내 손은 글을 안 쓰면 손에 가시가 돋는 느낌이 들면서 말굽으로 변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아직은 어쩔 수 없지요.”

▼ 논산으로 내려간 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글을 올리고 있죠?



“네 .‘페이스북’에 ‘논산일기’라는, 일종의 단상집을 올려요. 안 쓰면 병이 되니까. ‘페북 일기’는 서울에서도 쓰고 있어요. 몇 달 그렇게 쓰다 보니 출판사에서 책을 내자고 그래요. 그래서 ‘논산일기’를 올해 한 권 내고, 그걸 시작 삼아 해마다 한 권씩 내려고 합니다.”

▼ 그렇군요. SNS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실 인터넷이나 SNS에 익숙하지 않아요.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연재한 ‘촐라체’가 처음 인터넷을 활용한 소설이었죠. 저는 SNS를 건강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작가는 자기 작품과 타협할 수 없지만 독자에게는 늘 열려 있어야 해요. SNS는 바로 그런 점에서 새로운 문명이지요.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등은 그동안 목소리 센 놈이 제 입맛대로 이끌고 왔다고 생각합니다. SNS는 그런 점에서 발언의 균형을 맞출 수 있어요. 우리 사회도 이제 스스로 정화하고, 스스로 그 어떤 것을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해 있다고 봅니다.”

“목소리 센 놈이 제 입맛대로 이끌어왔다”

▼ SNS는 자본에서 비교적 자유로운데요, 자본주의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장단점은 무엇이라고 보나요?

“사람들은 정치를 욕하는데, 핵심은 정치가 아니라고 봐요. 정치가 자본의 지배를 받는 시대니까요. 정치적 독재시절엔 싸워야 할 타깃이 분명히 보였잖아요? 그런데 자본의 독재는 너무 교묘해서 전선조차 뚜렷하지 않아요. 자본이 모든 분야에서 반인간 반문화를 부추겨요. 우리 스스로 굴복당하고 노예가 되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엉뚱한 헛발질만 하고 있어요. 자본의 교묘한 독재를 알면서도, 자본으로부터 자유스러워지는 게 불가능하다는 건 딜레마입니다. 어쩌면 내 자신이 전쟁터라고 봐야지요.”

▼ 전쟁터라.

“자본이 이끄는 욕망으로 가고 싶은 나와 그 욕망을 부정하는 나 사이에 전선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자본이 주는 안락함을 누리고 싶은 것도 사실이고, 그것을 부정하는 것도 우리 자신이니까 전선이 따로 없다고 봐야죠. 오지여행을 하다보면 한창 잘나가던 중에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배낭 하나 메고 떠나온 미국인을 많이 만나요. 자본주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 사람들까지 대체 왜 그러겠습니까? 자본의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고 생명가치 중심의 삶을 실천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도 그렇고, ‘조화로운 삶’의 저자인 스콧 니어링 역시 미국인들이 20세기에 가장 존경하는 사람의 하나예요. 자본주의 욕망의 노예로 살면 근원적으로 자유로운 삶, 의미 있는 인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보다 근원적인 것, 예컨대 사랑, 신성, 충만, 영원성 같은, 자본보다 높은 욕망에 이끌리는 거지요. 자본이 지배하는 문명인의 삶은 부자가 되든, 출세를 하든, 어쨌든 불안해요. 자본주의가 주는 안락함을 일부 희생해서라도 마음의 충만함을 얻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되지 않겠어요? 새로운 패러다임의 삶을 찾아나서는 거라고 봐요, 희망을요. 우리가 역사에 대해, 미래에 대해 그나마 가질 수 있는 희망이 여기 있어요. 사람이죠.”

▼ 요즈음 작가들은 SNS를 이용해 짧은 위트나 풍자 글을 자주 올립니다.

“목소리 큰 사람이 많지만 뭐, 저는 그들 삶의 방식을 따라갈 생각은 없습니다. 내 방식대로 발언하고 싶고, 나의 세계관을 나이에 걸맞게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죠. 목소리 큰 사람이 있으면 가만가만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어야죠. 작가로서 발언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창을 치켜들고 광장으로 나서서 전사처럼 외칠 생각은 없어요. 왜냐? 우리의 토론문화는 중간지대가 없다는 게 문제예요. 풍속과 제도가 충돌할 때, 풍속이 타락했으니 더 엄히 다스리자 하면 보수이고, 풍속이 변했으니 제도를 바꾸자 하면 진보예요. 100% 보수, 100% 진보가 있다면 맹목적인 정파주의자이거나 광신도겠지요. 광신도에게 신이 머물겠습니까? 그런데도 보수적인 진보, 진보적인 보수, 혹은 경계인, 회색인, 중간자의 발언은 무시되거나 억압당해요. 그런 사람이 많지만 대부분 침묵하고 있는 게 우리 사회 문제라고 봐요. 문학은 경계에 놓인 것이니 작가 역시 경계에 서 있는 자라고 할 수 있지요. 저는 그 자리에서 작품을 쓰려고 해요. 작품으로 발언하겠다, 뭐 그런 태도라 할 수 있죠. 일상에서 나이의 권위를 내세울 생각은 없지만요, 작품에서만은 작가다운 품격을 유지하고 싶습니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작가였고, 여전히 작가이며,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여겨요. 평생 뭐랄까요, 소셜미디어는 충분히 의미 있는 새로운 방식의 소통이지만, 적과 아군만 있다는 식의 격앙된 태도는 좋은 결과를 내기 어렵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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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리│ 시인·문학in 대표 ls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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