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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환 전 인권위원장 회고록

인권위의 국제적 리더십 모색과 좌절

‘이카루스의 날개로 날다’ ④

  • 안경환│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ahnkw@snu.ac.kr

인권위의 국제적 리더십 모색과 좌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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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의 국제적 리더십 모색과 좌절

2006년 11월 열린 국가인권위원회 5주년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인권에 대한 생각을 적은 종이를 들어 올리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임채정 당시 국회의장, 김대중 전 대통령, 이희호 여사, 안경환 당시 인권위원장.

다른 예도 있다. 2004년 10월의 일이다. 중국 주재 한국영사관에 진입을 시도했던 북한 주민 8명이 중국 공안에 체포됐다. 이어서 베이징 근교에서 한국 입국을 준비하던 북한 주민들이 체포됐다. 그해 10월 한 달 동안 중국 정부에 체포돼 송환 대기 중이거나 송환된 북한 난민이 80명에 달했다. 배후에 조직적으로 탈북을 추진한 단체가 있었다고 한다. 얼마 후 인권위에 진정이 접수됐다. 피진정인은 외교부 장관이었다. 북한으로 강제 송환된 사람들의 생사여부를 확인하고 그들이 인도적인 처우를 받도록 노력하라는 주문이었다. 인권위는 이 진정을 각하했다. 조사대상이 아니거나, 조사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이었다. 설사 권한이 있다 해도 조사할 능력이 없었다. 단 한 명의 담당직원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굳이 성의를 보이자면 외교부에 대고 권고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외교부인들 무슨 뾰족한 수단이 있겠는가? 할 수 없는 일을 권고하는 것은 책임 회피일 뿐이다. 나의 재임 중인 2008년 8월 인권위는 ‘재중 탈북자의 강제송환 중단을 촉구하는 권고’를 하며 보다 적극적으로 나섰다.

정직하게 말해 인권위는 나름대로 북한 인권에 관해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많은 자료를 보면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 해마다 탈북자와 새터민 실태조사보고서를 냈고 국제심포지엄을 열었다. 영문 자료집도 외국인에게 중요한 참고자료가 됐다. 여러 경로를 통해 중국, 몽골, 태국, 라오스 등의 탈북자 수용소에도 접근했다. 발간 자료는 부지런히 국회의원과 관계기관에 제공했다. 정부에 대해서도 여러 차례 정책권고와 의견표명을 했다. 다만 한 가지, 직접 또는 간접으로 북한 주민의 진정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이다. 그것은 인권위에 법적권한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의 국정조사나 업무보고에서는 판에 박은 듯한 정치공세가 이어졌다. 양식과 균형감각은 국회의원의 미덕이 아닌 듯했다. 언론도 정치적 입장에 따라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언론의 반응은 예상보다 더욱 격렬했다. 전형적인 기사 제목은 “북한인권, 인권위 소관사항 아니다”였다.

어쨌든 나는 기존 활동을 체계화할 필요를 절감했다. 그리하여 인권위는 북한 인권 문제를 2007년의 10대 중점업무과제로 채택했고 2008년에는 6대 중점과제의 하나로 격상했다. 첫째 정부 내에 상시 업무협조 체제를 만드는 것. 통일부, 외교부, 인권위가 최소한 자료라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봤다. 국가정보원에도 공유할 수 있는 자료가 있으면 제공해 달라고 요청했다. 민간도 마찬가지다. 이해관계와 관심의 초점이 다른 여러 북한 인권 관련 단체를 한자리에 모아 북한인권포럼을 출범시켰다. 포럼에는 보수, 진보 인사는 물론 종교계 학계 대표자가 대거 참석했다. 2008년부터 유남영 상임위원이 성의와 인내로 포럼을 이끌어주었다. 매우 힘든 일이었음을 알고도 남음이 있다.

둘째, 국제적 협력 체제를 강화하는 것. 우선 북한 인권에 관련된 영문자료를 집적해 영문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국제전문가들과 상시 소통할 수 있는 채널도 만들었다.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등 북유럽의 북한 전문가들과 위원회를 방문한 유럽의회 대표단이 내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유엔총회는 북한인권결의안을 통과시켰고, 인권이사회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을 선임했다. 보고관에 선임된 태국의 비티트 문타본 교수와는 해묵은 인연이 있다. 왕립 출라롱코른대의 국제법 교수인 그는 명석하기로 국제사회에 정평이 나있다. 명문가 태생의 옥스퍼드대 박사로 여러 국제어에 통달한 그는 대학 사회의 스타이자 국제인권법의 총아다. 그는 북한 인권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했지만 한 번도 직접 북한을 방문하지는 못했다. 따라서 그의 보고서도 내실은 별로 없었다. 그는 나를 보고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자신의 고국에서 쿠데타가 날 때마다 객쩍어하던 바로 그 표정이었다. 한마디로 북한 인권의 개선에 대해서는 유엔도 무력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9년 7월, 필자의 후임으로 현병철 인권위원장을 임명하면서 북한 인권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주문에 따라 예산을 증액하고 인원을 보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으로 과거보다 더 나은 성과를 얻었는지는 알 수 없다. 지난해 3월, 인권위 내에 북한인권침해센터와 북한인권기록관을 설치했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들린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인권위 업무에서 ‘북한 인권’은 실체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인권위가 북한 인권을 다루어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는 논쟁이 그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표가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의 번영이라면 북한 인권의 어떤 측면에 비중을 두어야 할 것인가? 무엇보다도 긴장완화와 신뢰회복이 절실한 과제 아닌가? 경색된 적대논리로 한반도가 얻은 것이 무엇인가? 인권 중에 가장 기본적인 인권이 ‘살아남을 권리’ 아닌가? 그렇다면 북한 인권의 핵심은 인도적 지원의 문제가 아닌가? 2008년 9월 30일 인권위는 ‘인도주의적 대북식량지원’을 권고했다. 이것이야말로 정치를 초월한 인권위 본연의 자세가 아닐까?



북한 인권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기 3주 전인 2006년 11월 24일,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인권위 창립 5주년 기념식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축사를 했다. 임채정 당시 국회의장도 별도의 축사를 했다. 내가 취임하기 전 이미 주선돼 있던 일이다. 인권위에 대한 김 전 대통령의 애정은 각별했다. 그해 10월 초의 일이다. 서울대에서 김 전 대통령을 초청했다. 공식 일정이 끝난 후 총장공관에서 열린 만찬에 나도 참석했다. 이장무 당시 총장의 배려로 나는 김 전 대통령 내외의 바로 옆자리에 앉았다. 내가 김 전 대통령의 치적 중 대표적인 것이 인권위 설립이라고 하자 그는 크게 반색했다. 그러나 정작 기념식장에서는 주최자로 영접한 나를 기억하는 것 같지 않았다. 2개월도 채 안된 일인데도. 내가 그 일을 상기시켜드렸지만 그저 덤덤한 표정이었다. 김 전 대통령의 기념사는 솔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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