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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공시 잘하려면 소비자 마음 읽어야

‘긍정적 뉴스는 숫자로, 부정적 뉴스는 %로 알려라’

  • 최종학│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acchoi@snu.ac.kr

기업 공시 잘하려면 소비자 마음 읽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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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공시 잘하려면 소비자 마음 읽어야

5만 달러 컴퓨터 등 잡스가 애플에서 엄청난 돈을 투입해 개발한 첨단 제품 다수는 소비자에게 외면당했다.

그러나 반대로 주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공시라면 되도록 (1)의 형태를 선택한다. 동시에 공시되는 다른 정보도 별로 없다. 공시를 본 사람이 이익 예측치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또는 다른 정보를 함께 공시하더라도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든지 새로운 혁신을 통해 원가 절감이 예상된다는 식의 이익 예측치가 높은 이유를 설명하는 정보를 공시한다. 부정적인 뉴스를 공시할 때와는 반대로 이익 예측치 뉴스를 뒷받침하는 방향의 소식을 덧붙이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종합해보면 기업들이 공시를 할 때 프레이밍 효과를 활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공시를 접한 투자자들이 의도한 방향대로 반응하도록 공시에 포함되는 정보의 내용을 조정하는 것이다.

이런 내용의 지식은 더 넓은 범위의 기업 활동에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홍보부서나 협상부서에 있는 사람들은 꼭 알아야 할 내용이다. 광고부서에 있는 사람들도 “70%의 소비자가 우리 회사의 제품을 최고로 뽑았다”라고 하기보다 “열 명 중 일곱 명이 우리 회사의 제품을 최고로 뽑았다”라고 광고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반대로 “임상실험 결과, 불과 1% 정도의 소비자만 우리 약품을 사용하고 부작용을 겪었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부정적인 뉴스 효과를 약화시키는 데 더 효과적이다.

“90억 번 중의 1번? 내가 되면 어떡해?”

프레이밍 효과를 이해하지 못하고 공시를 잘못해서 낭패를 당한 사례가 있다. 1994년 세계 최대 컴퓨터용 반도체 제조업체인 인텔(Intel)은 펜티엄칩이라는, 당시 기술로는 혁명적인 제품을 내놓았다. 이 칩을 장착한 IBM 호환기종의 컴퓨터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그런데 그 직후 토머스 나이슬리(Thomas Nicely)라는 수학 전공 전문대학 교수가 이 칩에서 작은 연산 오류를 발견했다. 이 내용이 알려졌을 때 인텔의 최고경영자인 앤드루 그로브(Andrew Grove)는 별것 아니라고 무시했다. 인텔 내부의 공학자들이 개발 초기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별일 아니라고 상부에 보고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화가 난 나이슬리 교수는 이 사실을 언론에 적극 알렸다. 언론이 보도하기 시작하면서 이 사실이 소비자에게 널리 알려졌다.

논리적으로 설득하면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에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한 그로브 회장은 언론에 열심히 모습을 보이며 여론 수습에 나섰다. 그때 그가 사용한 표현이 “발견된 오류는 90억 번을 연산할 때 불과 한 번 일어나며 일반 사용자는 2만7000년에 한 번 정도 경험할 수 있는 사소한 오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수학자나 물리학자처럼 중요한 수학 연산을 반복해서 사용하는 사람들’이 컴퓨터를 가져오면 펜티엄칩을 새것으로 교환해주겠다”고 발표했다. 그로브 회장이 계속해서 이런 식의 표현을 쓰자 역효과가 일기 시작했다. 논쟁에 전혀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인텔을 맹비난하고 나섰다.



소비자의 반발이 커진 이유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필자는 소비자들이 90억 번에 한 번이라는 숫자에 주목하면서 그 한 번이 꼭 자기 자신일 것이라고 믿게 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바로 프레이밍 효과다.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은 통하지 않는다지만 만약 그로브 회장이 같은 내용을 0.00000000001% 정도의 확률로 오류가 일어날 것이라고 표현했다면 실제와 같은 주의 집중 효과가 없었을 수도 있다. 그 정도 확률이면 일반 소비자는 0이 몇 개 있는지 기억도 못할 것이며 오류의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로브 회장이 수학자나 물리학자에게만 컴퓨터 칩을 교체해주겠다고 한 것도 상당한 반발을 불러왔을 가능성이 높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에게 별로 필요 없는 것이라도 남에게만 새것으로 교환해준다는 데 불쾌해 한다.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고 하지 않는가?

그로브 회장의 언론 출연 이후 인텔에 대한 소비자 불만은 오히려 급속도로 높아졌다. IBM은 펜티엄칩을 장착한 컴퓨터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판매를 중단하겠다는 발표를 하기에 이르렀다. 한발 더 나아가 1994년 12월 19일 인텔은 문제가 시작된 지 불과 한 달 만에 모든 펜티엄칩을 교체해주겠다고 발표했다. 이 사건으로 인텔은 무려 5억 달러의 교체 비용을 소모해야 했고 이후로도 오랫동안 소비자를 무시하는 기업이라는 오명을 썼다.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할까. 인텔은 이 위기 상황을 겪으면서 중요한 교훈을 깨닫게 된다. ‘소비자는 왕’이라는 사실이다. 이 사건을 두고 일부에서는 컴퓨터 하드웨어를 생산하는 기술 중심의 완고한 기업이 소비자와 이해관계자들로 시야를 넓히는 계기가 됐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전에는 기술만 중시하고 기술자를 우선시했지만 이후로는 보다 종합적인 관점에서 사물을 보게 된 것이다. 기술자는 논리와 숫자에 강하다. 하지만 소비자는 논리적이지 않고 감정적이며 변덕이 심하다. 기분 나쁜 것은 참지 못한다. 이것이 1987년 세계 반도체 생산업계에서 10위권 정도였던 인텔이 오늘날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로브 회장도 이 사건 이후로 소비자 반응에 대한 예측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됐다고 회고한 바 있다.

소비자나 고객의 눈높이를 맞춰야

이와 비슷한 예로 애플과 2011년 말 사망한 고(故) 스티브 잡스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애플의 창립 멤버였던 스티브 잡스는 독선적인 경영과 아집으로 1985년 회사에서 쫓겨난 바 있다. 당시 스티브 잡스는 ‘최고의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신념 외에 고객이나 다른 동료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최신기술 개발만 추구했다. 하지만 엄청난 돈을 투입해 개발해낸 첨단 제품들이 연이어 시장에서 외면당하면서 애플은 망할 위기에 처했다. 1980년대에 나와 거의 팔리지 않은 5만 달러(5500만 원)짜리 PC 등이 그런 예다. 이를 문제 삼은 이사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CEO 잡스는 쫓겨나고 말았다.

그러나 그 이후 잡스는 픽사(Pixar)를 경영하면서 ‘소비자 눈높이’를 배우게 된다. 만화영화를 만드는 픽사는 주 고객인 어린이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 컴퓨터 그래픽을 완성도 높게 구사할 수 있는 첨단 기술도 필요하지만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재미있는 시나리오를 골라 그 눈높이에 맞는 영화로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런 경험을 거친 후 2000년 다시 애플의 CEO로 복귀한 잡스는 첨단 기술이 아니라 기존 기술을 결합해 간단한 제품이지만 소비자 눈높이에 맞는 여러 신제품을 개발했다. 그리고 오늘날 애플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다.

물론 기술도 중요하다. 그러나 기술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소비자나 투자자의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다. 만약 스티브 잡스가 픽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다면 오늘날 애플의 성공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내 기준이 아니라 듣는 사람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자세는 공시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꼭 필요하다.

신동아 2012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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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학│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acchoi@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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