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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가 얼마나 당해야 대책 세워줄 건가요?”

학교폭력 그 후 100일, 한 엄마의 외침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우리 아이가 얼마나 당해야 대책 세워줄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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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이와 친하다는 이유로 인철이까지 당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김 씨는 가슴이 무너졌다. 처음 지훈이가 다쳤을 때 제대로 해결했다면 인철이의 피해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5월 3일 학교 도서관에서 인철이 엄마의 요청으로 폭대위가 열렸을 때 김 씨도 참석했다. 인철이를 때린 아이들과 지훈이를 때린 아이 2명, 모두 7명이 조사를 받았다. 폭대위가 진행될수록 피해 학부모들은 답답함만 느꼈다. 인철이 엄마에 따르면 폭대위원장은 “인철이가 폭력을 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인철이의 정신과 치료를 권했다. 가해 학생들은 “우리도 억울해요”라고 말했다. 인철이 엄마와 김 씨는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라 가해학생들을 전학시켜달라고 요청했지만 “가해자 부모들의 반발이 클 것”이라며 묵살당했다.

‘서면조사, 접촉 및 협박 금지, 특별교육 3~5일.’

가해자에게 내려진 조치다. 그나마 인철이를 때린 아이들은 다른 반으로 옮겼지만, 지훈이를 때린 A와 B는 같은 반에 남게 됐다. 김 씨는 인철이 사건을 계기로 열린 폭대위인 만큼 지훈이 사건이 소홀히 다뤄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학교 측은 학부모가 신청할 경우 피해 아이들에게 심리적 상담 및 조언과 치료, 학급 교체, 일시보호 등을 해주겠다고 서면 통보했다. 김 씨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아들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식으로 지훈이 사건에 대한 폭대위를 다시 열어달라고 요청했다. 개정된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르면 학교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피해학생 측에서 요청을 하면 폭대위를 무조건 열어야 한다. 하지만 김 씨는 폭대위에 대해 안내받은 적도 없었다. 학교 측은 “인철이 관련 폭대위에서 지훈이 사건에 대해서도 이미 논의했다”며 별도 폭대위 구성을 거절했다.

김 씨는 5월 1일부터 시행된 학교폭력예방법 개정안에 따라 폭대위의 조치에 이의가 있을 때 도에서 운영하는 학교폭력대책지역위원회(이하 지역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할 수 있음을 알았다. 김 씨는 경기도청에 재심청구서를 보내고 경기도교육청, 국민권익위원회, 교육과학기술부 등에 관련 사항 내용증명과 탄원서를 보냈다. 경기도청 아동청소년과에서는 “법이 바뀐 지 얼마 안 돼 준비가 안 됐다”며 당황했다. 법은 시행됐지만 재심 청구 방법조차 정해지지 않았고 재심청구 공문서식조차 없었던 것. 결국 김 씨는 혼자 A4 용지에 피해자 이름, 사건 정황, 요구 사항 등 5개 항목에 대한 재심청구서를 스스로 만들었다. 재심을 청구한 지 한 달 가까이 지난 6월 12일 경기도청 측은 “아직 지역위원회 일정이 잡히지 않았다. 법이 시행된 지 얼마 안 돼서 다른 시도도 상황은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변명하기에 급급했다.



경기교육청에서도 연락이 왔지만 역시 학교 내 폭대위 결정사항에 불만이 있다면 경기도청에 재심을 청구하라는 이야기뿐이었다. 교육청 장학사가 학교를 방문한 날, 집에 온 지훈이에게 “오늘 장학사 선생님 만났느냐?”고 물었지만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김 씨는 “장학사는 사건 당사자는 만나지도 않고 학교 측 이야기만 듣고 갔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장학사가 학교를 방문한 날, 교감과 담임, 인성부장이 집 앞으로 찾아왔다. 과자와 음료수를 사온 교감은 “저희가 잘하겠습니다. 지금 조치를 취하고 있으니 좀 봐주세요”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대안은 아무 것도 없었다.

다른 기관 역시 마찬가지였다. 권익위에서는 “마음은 상하시겠지만 저희 권한이 아니다”라는 공문을 보냈다. 교과부에서는 이마저 없었다. 기다리다 못한 김 씨가 직접 전화를 해보니 “이미 저희 일이 아니라 경기교육청으로 넘어갔네요”라는 안내만 받았다.

그리고 갑자기 지훈이네 반 담임교사가 바뀌었다. ‘건강상의 이유’라고만 했다. 새로운 담임은 경험이 많지 않은 20대 여교사였다. 전화로 물었더니 담임은 두 달 전 지훈이 사건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그동안 과정을 모두 설명했더니 그제야 “아, 그랬나요? 제가 잘 알아보고 지도할게요”라고 답했다.

학교, 교과부, 교육청…돌고 도는 변명

폭대위에서는 학교 측이 등하굣길에 아이를 보호해주겠다고 했다. 이에 학교 측에서 “아이의 신변을 보호해주겠다”며 서류 하나를 보냈다. 한 보안업체가 아이의 등하굣길에 동행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안 그래도 직장 때문에 지훈이를 직접 등하교시키지 못해 걱정하던 차였다. 김 씨는 아이가 초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등하교를 도와달라고 신청서를 썼다. 하지만 보안업체에서는 “저희 서비스는 사회 공익 차원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것으로 1주일만 제공된다”고 말했다. 교과부는 “학교폭력예방법 16조에 따라 학교가 결정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학교 측에서는 “아, 1주일밖에 안 됩니까?”라며 알아보겠다고 했다. 김 씨는 “학교 폭대위에서는 ‘아이 신변 보호해줄 테니 걱정하지 마라’고 해놓고 고작 1주일이라니,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하루는 학교에서 심리상담을 받고 온 아이가 “엄마, 우울증이 뭐야? 내가 우울증이야?”라고 물었다. 선생님이 준 설문조사 가장 윗부분에 ‘우울증 진단’이란 말이 있었단다. 김 씨는 치를 떨었다. 꼭 세상 모두가 그를 놀리는 기분이었다.

결국 김 씨는 지훈이를 때린 아이 5명을 경찰서에 고소했다. 지훈이 역시 고소인 자격으로 3시간 조사를 받았다. 아이들의 처벌을 바라서가 아니다. 단, 이렇게 해서라도 아이들이 자기들이 한 행동의 문제점을 깨닫고 반성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지훈이 폭행 장면을 카메라로 찍으려다 지훈이의 코를 두 번째로 강타한 B가 지훈이를 맞고소했다. 카메라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는 과정에서 지훈이가 B를 밀었다는 혐의였다. 김 씨는 한숨을 푹 쉬었다.

“아마 ‘너도 당해봐’ 하는 거겠죠. 이 아이들이 이번 기회에라도 진짜 반성하길 바랐던 제가 너무 순진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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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림 기자│ r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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