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하수구는 중세에 전설적인 존재였다. (…) 꾸불꾸불하고, 터지고, 포석이 제거되고, 금이 가고, 웅덩이들로 끊기고, 이상한 굴곡부들로 흔들리고, (…) 사방으로 갈라진 하수관들, 구덩이들의 교차, 지관, 오리발 모양의 대호(對壕) 속 같은 방사형 배수관, 맹장, 막다른 골목, 초석(礎石)으로 덮인 홍예 천장, 더러운 웅덩이, 벽 위의 수포진(水疱疹) 같은 유출물 (…) 파리 하수도의 굴착은 작은 일이 아니었다. 지난 10세기 동안에 파리 시를 완성시키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동안에 파리의 하수도도 완성시키지 못했다. 사실, 파리의 하수도는 파리 성장의 모든 여파를 받는다. -제 5부 장 발장 2장 ‘거대한 해수(海獸)의 내장’중에서
소설의 제 5부, ‘장 발장’의 극적인 사건은 부상당한 마리우스를 떠메고 미로 같은 파리의 하수도를 통해 도주하는 장면이다. 위고는 장 발장의 행로를 실감나게 전하기 위해 파리의 명물인 하수도를 파헤치는데, ‘파리 하수구 연구’로 불릴 만큼 분량이 방대하고, 묘사는 정교하고 집요하다. 이러한 공간 탐구는 인물의 역동적이고 불가사의한 행동에 개연성(reality)을 부여한다. 이는 19세기 소설가들의 특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구체적인 공간 창조는 영화의 카메라 워크, 곧 장면(scene) 개념에 속한다. 하수도의 역사와 변천을 숙지하고 머릿속에 훤히 꿰뚫고 있는 독자들은 인물의 활약은 물론, 역동적인 변화에 따른 문장의 참 의미와 묘미를 감상할 수 있다.
장발장이 있었던 것이 파리의 하수도 속이다. 파리와 바다의 유사점은 더 있다. 대양처럼, 잠수부는 거기에서 사라질 수 있다. (…) 도시의 한복판에서, 장 발장은 도시에서 나갔고, 눈 깜박할 사이에, 뚜껑 하나를 들어 올렸다가 그것을 다시 닫는 시간에, 그는 대낮에서 완전한 어둠으로, 정오에서 자정으로, 소란에서 정숙으로, 천둥의 회오리바람에서 무덤의 정체로, 그리고 폴롱소 거리의 급변보다도 훨씬 더 놀라운 급변에 의해, 가장 극심한 위험에서 가장 절대적인 안전으로 이동했다. -제 5부 장 발장 3장 ‘진창, 그러나 넋’ 중에서
천형 짊어진 사내의 성자적 행로
발자크를 비롯해 스탕달, 위고, 플로베르 등 19세기 소설의 세기를 연 프랑스의 소설가들은 거대한 일상 연구를 바탕으로 정치와 역사, 철학과 종교의 몫을 문학(예술)적으로 실천한 작가들이다. ‘레 미제라블’은 굶주린 조카를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친 한 죄수가 19년 감옥살이 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추적하고 있는데, 작가의 관심은 한 인간이 죄를 짓는 과정과 그 죄에 의해 달라지는 삶의 내용, 그리고 그 죄를 관장하는 법과 법의 추동체인 사회 및 국가 권력의 실체에 있다. 어떤 이유로든, 또 얼마만한 경중의 죄이든 죄를 지은 사람의 행로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작가가 의도한 것은 한순간의 죄로 인해 시시포스처럼 속죄의 천형을 짊어진 장 발장이라는 사내의 성자적 행로다.
소설과 달리 영화에서는 다양한 크고 작은 사건이 펼쳐지는 현장에서 낯익은 예술적 장면을 목격하기도 한다. 위에서 언급한 들라크루아의 걸작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배우들이 재현한 장면으로 보는 즐거움이 그것이다. 삼색기가 나부끼는 자유의 여신을 따르는 민중의 메아리가 귓전에 울리는 듯하다. 더 나은 세상으로의 진화를 위해 투신했던 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노시인의 대하소설, ‘레 미제라블’의 마지막 장면, 대미(大尾)가 궁금하다. 페르라세즈 묘지, 이름 없는 묘석에 누군가 연필로 적어놓은, 비와 먼지로 지워질 사행시(四行詩)가 얹혀 있다.
그는 자고 있네. 그의 운명은 아주 기구했건만,
그는 살고 있었네. 그의 천사가 없어지자 그는 죽었네.
그것은 그저 올 것이 저절로 온 것.
마치 해가 지면 밤이 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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