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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독(愼獨) 혼자서 견뎌내는 방법

맹씨행단의 대청마루

  • 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신독(愼獨) 혼자서 견뎌내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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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독(愼獨) 혼자서 견뎌내는 방법
돌담장에 내려앉은 빛

아마도 독자 여러분이 이 글을 읽게 될 무렵에는 산하가 봄볕에 들떠서 봄꽃들 피고 나무들은 서서히 유록색으로 옷을 갈아입고 새들도 이 산에서 또 저 산으로 짖어대며 날아가는, 그런 초봄일 터인데, 지금은 모든 사물이 겨울의 마지막 압력에 눌려 있는 2월이다. 그러니 오히려 쌀쌀한 고택에 은일자의 기풍이 흐르는 듯하다.

조선 후기 화원으로 장득만이 있다. 그의 그림 중에 ‘송하문동자도(松下問童子圖)’가 있다. ‘소나무 아래에서 동자에게 물어보다’라는 뜻이다. 무엇을 물었는가. 장득만은, 당나라 시인 가도의 시 ‘심은자불우(尋隱者不遇)’를 화폭으로 옮긴 것이다. 그렇다면 가도의 시를 읽어보자.

松下問童子(송하문동자) 소나무 아래에서 동자에게 물었더니

言師採藥去(언사채약거) 스승께서는 약초 캐러 가셨다고 한다.



只在此山中(지재차산중) 다만 이 산중에 계실 것인데,

雲深不知處(운심부지처) 구름이 자욱하여 있는 곳을 알 수 없구나

신독(愼獨) 혼자서 견뎌내는 방법

맹씨행단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명재상 맹사성이 살았던 집이다.

예부터 이런 물러섬의 세계를 존경할 만한 은일자의 삶으로 여겨왔다. 이렇게 소슬한 고택에 빛이 드리워졌다. 잿빛 하늘, 구름 사이로, 햇살이 잠깐 비친 것이다. 조금씩 서산으로 이울어진 늦겨울 오후의 햇살이 다행히 뒤란으로 넘어와 작은 방으로 스며들고 용케 대청마루까지 번졌다. 나는 그 빛을 보았다. 너무 귀해 손으로 쓸어보기도 했다.

고택의 방은 크기가 저마다 달랐고 마당과 마루와 뒤란의 문도 저마다 달랐으므로 빛들은 섬세한 조형 감각을 가진 이가 일부러 공들여 빚은 듯 각양의 모양으로 고택 안에 기하학을 남겼다. 대청마루에 앉아 마당을 넌지시 내려다보고 다시 몸을 돌리면 뒤란과 돌담장이 조성돼 있는데, 그 전후와 좌우를 희미한 빛들이 어루만지고 있었다. 나는 그 빛을 한참이나 보고, 다시 그 빛을 따라, 조금 더 소요했다. 문태준의 시 중 ‘빈집’이 있는데, 21세기의 ‘심은자불우’라고 할 만하다.

주인도

내객(來客)도 없다

겨울아침

오늘의 첫 햇살이

흘러오는

찬 마루

쪽창 낸 듯

볕 드는 한쪽

몸을 둥글게 말아

웅크린

들고양이

여객(旅客)처럼

지나가고

지나가는



우리는 점점 더 혼자 있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혼자 있을 만한 공간 자체가 없고, 그런 시간도 부족하다. 마을은 사라지고 이웃은 소멸했는데 소음은 더 심해졌다. 우리가 살고 있는 대도시의 아파트 군락지를 마을이나 동네라고 부르기도 어렵고 위아래로 한 건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이웃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마을도 없고 이웃도 없는데, 수많은 사람이 소음과 매연과 음식 쓰레기를 내다버리면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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