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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를 버려야 미래가 있다

수교 50년 한일관계 해법

  • 심규선 | 동아일보 대기자 ksshim@donga.com

‘향수’를 버려야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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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83% ‘일본 못 믿겠다’

한국도 많이 바뀌었다. 한국은 그동안 일본의 역사 인식에는 비판적이었지만, 일본은 한국보다 선진국이며 경제발전에 도움을 준 나라, 아직도 배울 것이 있는 나라라는 인식을 가졌다. 그런데 한국의 국력이 신장되고, 국제적 위상이 올라가면서 일본을 무시하는 태도가 생겨났다.

더불어 일본의 역사인식에 대해서도 국제적 추세와 인류보편적 인권 개념의 프리즘을 통해 더욱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국민 정서에서 일본을 무시하는 재팬 패싱(Japan passing)과, 역사 문제에서 일본을 제재하자는 재팬 배싱(Japan bashsing)이 동시에 일어난 것이다. 2014년 5월 한국일보와 요미우리신문 조사(6월 7일 보도)에 따르면 한국인 중 32%가 ‘일본을 전혀 신뢰할 수 없다’고, 51%는 ‘별로 신뢰할 수 없다’고 답했다. 83%가 일본을 못 믿겠다는 것이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 말고도 최근 2년여 동안 한일관계는 크고 작은 갈등으로 더욱 냉랭해졌다. 요즘 한일 갈등의 양상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예전에 없던 현상이다.

첫째, 문제가 한꺼번에 발생한다. 여러 문제가 동시에 일어나는 바람에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정도다.



둘째, 작은 문제가 큰 문제로 부각돼 독립화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일제 징용자 문제가 대표적이다. 2011년 12월 이명박 대통령과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의 교토회담이 이 문제 때문에 최악의 회담으로 끝나고, 박근혜 대통령도 이 문제를 강조하면서 위안부 문제는 양국의 최대 현안이 됐다. 2012년 5월 일제 징용자에게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우리 대법원 판결도 대형 시한폭탄이다.

셋째, 사법(司法)의 문제가 갈등의 요인으로 부상했다.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도 한일협정에서 규정한 절차에 따라 이를 해결하고자 노력하지 않는 정부의 부작위(不作爲)는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단(2011년 8월), 야스쿠니신사 방화범을 일본이 아니라 중국으로 보내도록 한 서울고법 판결(2013년 1월), 쓰시마에서 훔쳐온 불상을 안 돌려줘도 된다고 한 대전지법 판결(2013년 2월), 앞서 언급한 일제 징용자에 대한 대법원 판결(2012년 5월) 등이 일본에서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들 판결에 대해 일본은 “한국은 경기 도중 골대를 옮기는 나라”라는 불만을 표시했다. 2014년 11월 쓰시마에서 또다시 불상을 훔친 혐의로 한국인 5명이 체포된 것도 악재다.

갈등의 국제화

넷째, 갈등의 무대가 국제화한다. 미국에서 벌어진 위안부 소녀상(像) 건립을 둘러싼 갈등이 대표적이다. 한국은 주로 재미동포들이 활동하는 데 비해 일본은 정부까지 뛰어들어 뉴스를 키운다. 2014년 1월 프랑스 앙굴렘 만화페스티벌에서는 위안부 만화 전시를 둘러싸고 양국이 갈등을 빚었다. 일본이 메이지 시대의 산업혁명 유산을 유네스코에 등록하려는 시도에 대해 한국이 한국인 징용자가 그곳에서 강제 노역을 당한 사실을 들어 공개적, 집단적으로 반대한 것이다.

다섯째, 갈등의 최전선에 양국 지도자가 있다. 매우 안 좋은 구도다. 한국은 아베 총리를 대표적인 초강경 우익, 또는 역사 수정자로 보면서 강력히 비판하고, 그가 자리에서 물러나면 갈등이 완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일본 정부, 언론, 일반인 사이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확산된다. 취임 초기의 기대감은 사라졌다. 박 대통령이 해외에 나가 예외 없이 일본을 비판하는 데 대해 ‘고자질 외교’라는 말로 불쾌감을 표시한다. 양국 지도자가 전면에 나서는 바람에 타협을 이끌어내야 할 공무원들마저 설 땅을 잃어버렸다는 것이 큰 문제다.

여섯째, 최근에는 양국 언론의 보도태도도 도마에 올랐다. 양국 언론이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자국의 내셔널리즘을 부추긴다는 비판이다. 냉정한 심판이 되어야 하는데 선수로 뛰려는 유혹을 느낀다는 것이다.

비공식 라인도 막혀

문제 해결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예전에는 양국 간에 문제가 생기면 공식, 비공식 라인이 모두 움직여서 어떻게든 풀려고 애썼다. 그러나 지금은 양쪽 모두 작동 불능 상태다. 공식 라인이라고 하면 역시 고위관리의 정기 회담과 궁극적으로는 정상회담을 의미한다. 그러나 2011년 12월 이명박 대통령과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의 교토 회담 이후 정상회담은 끊겼다. 2014년 3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주선으로 한미일 3자 정상이 만난 적이 있으나 효과는 없었다. 2012년 12월 아베 정권, 2013년 2월 박근혜 정권이 출범한 이래 정상회담이 없었다. 박 대통령이 2014년 11월 미얀마 네피도에서 열린 동남아시아국가연합+3회의에서 한중일 정상회담을 제안했지만, 언제 실현될지는 불투명하다. 일본에서는 일중 갈등은 풀려고 하는 사람이 많은데, 일한 갈등에는 열의를 갖고 해결에 나서는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비공식 라인은 원로들의 막후 조정을 뜻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김종필 씨가 정계에서 은퇴하고 박태준, 김윤환 씨 등이 별세하면서 막후 라인이 힘을 잃었다. 일본에도 후쿠다 야스오, 모리 요시히로 전 총리 정도가 남아 있으나 일본의 악화한 대한(對韓) 정서와 한국의 파트너 소멸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동안 그 나름대로 역할을 했던 한일의원연맹이나 한일협력위원회 등도 힘이 많이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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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선 | 동아일보 대기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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