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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한 글자로 본 중국 | 北京

아직도 하나를 꿈꾸는 잉여의 도시

京 베이징을 바꾼 자가 천하를 바꾼다

  • 글·사진 김용한 | 중국연구가 yonghankim789@gmail.com

아직도 하나를 꿈꾸는 잉여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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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하나를 꿈꾸는 잉여의 도시

황제의 정원이었던 북해공원은 오늘날 베이징 사람들의 쉼터가 됐다(왼쪽). 베이징 근교에 만리장성이 있다는 사실은 이 도시가 북방 변경의 군사도시에서 정치의 중심지로 변해왔음을 나타낸다.

주례 고공기의 법도에 맞게 도시를 건설하니 예의가 확립되고, 예의가 확립되니 질서가 바로잡히고, 질서가 바로잡히니 천하가 바로잡힌다…. 계획도시 베이징이 구현한 유교 질서에 연암 박지원은 감탄했으리라.

베이징은 이처럼 인공(人工), 즉 사람이 만들었으며, 인위적인 법도에 따라 움직이는 도시다. 하늘이 내린 게 아니라 사람이 만든 것은 얼마든지 부수고 새로 만들 수 있다. 사람을 움직이는 힘, 바로 황제의 의지만 있다면 말이다. 어차피 사람은 넘쳐나니까.

몽골족의 원나라는 금나라를 정복한 후 베이징을 사흘 동안 불태우고 쿠빌라이의 야심 찬 기획 아래 새로운 베이징을 건설했다. 그 뒤 명나라는 원대 성벽의 기초 위에 명나라의 성벽을 쌓고 원나라의 연춘각이 있던 자리에 인공 토산 ‘진산(鎭山)’을 쌓았다. ‘누를 진(鎭)’은 몽골족과 원나라의 기운을 누른다는 뜻이다. 한편 중화인민공화국은 명나라 때 건설된 자금성만 남기고 베이징성의 내성과 외성을 모조리 파괴했다.

현재 내성 자리엔 지하철 2호선, 외성 자리엔 베이징시 이환도로가 들어섰다. 관광객은 자금성만 보고도 그 엄청난 규모에 감탄하는데, 지금 내성과 외성까지 존재했다면 얼마나 놀랄까.

그러나 중국인은 스스로 세계 최고의 문화유산을 파괴했다. 중국인에게 파괴와 재건설은 구시대를 청산하고 새 시대를 여는 역사적 전통이다. 베이징성의 보존 여부를 둘러싸고 논쟁이 불붙자 마오쩌둥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과거를 경시하고 미래를 맹신한다’라고 비판하는데, 설마 전족을 경시하고 변발을 경시하는 것이 나쁘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과거를 경시하고 미래를 믿지 않는다면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과격한 마오쩌둥이 아니라 온건파 지도자라고 해도 별로 다르지 않다. ‘영원한 인민의 총리’라 칭송받는 저우언라이는 베이징 궁성 보호론자인 량쓰청과 두 시간 대화를 나눴다. 량쓰청은 노을 지는 패루(牌樓)가 먼 산과 어우러지는 풍경을 시로 읊었다. 그에 대해 저우언라이는 고시의 한 구절을 빌려 화답했다. “노을은 더없이 좋지만 황혼에 가깝구나.”

이 말은 당시 공산당의 시대정신을 보여준다. 중화인민공화국은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 사회주의 국가를 지향했다. 따라서 수도 베이징은 황제들의 절대 권력이 아닌, 사회주의의 이상을 표현해야 했다. 더욱이 베이징성 보존 논쟁이 공산당 찬반론으로 변하자 더 이상 합리적인 토론이 어려워졌다. 결국 베이징은 모스크바 방식을 따르기로 한다.

이처럼 베이징은 중국의 수도가 된 이래 시대가 변할 때마다 변신을 반복했다. 베이징의 새 주인은 기존 베이징을 파괴하고 재건해 새로운 세상이 시작됐음을 천하에 알렸다. 베이징을 바꾸는 자가 천하를 바꾼다.

40%가 입과 붓으로 먹고살아

도시는 잉여의 산물이다. 스스로 생산하지 않는다. 다른 지역으로부터 먹을거리 등 온갖 물자가 유입되지 않는다면 도시는 죽어버린다. 그러나 정치·경제·사회·문화를 장악한 도시인들은 거꾸로 도시 밖 세상이 자신들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베이징은 도시의 잉여적 특성이 극대화한 곳이다. 이 천자(天子)의 도시엔 황족, 재력가, 관료, 선비가 모여들었다. 청나라 말기인 1908년 베이징 인구 70만 명 중 28만 명이 직접 생산 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인구의 40%가 공문서를 꾸미고 간언하는 등 입과 붓으로 먹고산 셈이다.

베이징은 생산하지 않으나 군림한다. 일례로 요리를 보자. 베이징만의 요리나 특산물은 없다. 하지만 전국 각지의 요리를 죄다 불러들여 맛이 있네, 없네 품평하며 요리를 발전시켜왔다. 팔자 좋고 입맛 까다로운 나리가 많아서 어지간해서는 합격하기 어려웠다. 그 결과 최고만 살아남았다. 그 유명한 ‘베이징덕’도 산둥성의 오리 요리를 몽골족 궁중 요리사 흘사혜(忽思慧)가 발전시킨 것이다.

요컨대 베이징은 스스로 땀 흘려 일하지 않으면서 생색은 다 내고 특혜는 다 누리며 호의호식하는 대감 같은 도시다. 호의와 특혜가 계속되면 당연한 권리인 줄 아는 법. 천하가 있기에 베이징이 있는 것이지만, 800여 년 동안 이어져온 특혜는 베이징이 천하의 중심이라는 왜곡된 인식을 낳았다.

아직도 하나를 꿈꾸는 잉여의 도시

베이징 뒷골목 후퉁의 인력거꾼과 그의 딸. 베이징의 명동 격인 왕푸징의 포장마차 거리에는 전갈, 해마 꼬치 등 온갖 요리를 판다. 베이징의 이태원이라 할 싼리툰(三里屯)의 살사 바 공연 모습(왼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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