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호

“‘재밌게 치자’ 생각하면 우승이 따라와요”

2014년 KLPGA 신인왕 백규정

  • 구자홍 기자 | jhkoo@donga.com

    입력2014-12-23 10: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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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LPGA 3승, LPGA 1승 루키 ‘여전사’
    • “잘 안될 때가 기회, 한발 더 나아간다”
    • “어려운 홀일수록 더 자신 있게 샷해야”
    “‘재밌게 치자’ 생각하면 우승이 따라와요”
    2014년 KLPGA 투어에서 가장 눈부신 활약을 펼친 ‘루키’는 단연 백규정(19)이었다. 4월 넥센 세인트나인 마스터즈 우승을 시작으로 6월에는 롯데 칸타타 여자오픈에서 우승했고, 9월엔 메이저대회인 메트라이프 한국경제 KLPGA 챔피언십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프로 데뷔 1년차 무서운 신인 백규정의 맹활약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0월 국내에서 열린 LPGA투어 하나외환 챔피언십에서 우승함으로써 LPGA 투어 직행 티켓까지 거머쥐었다. 평생 한 번밖에 못 오르는 신인왕에 등극하며 KLPGA 투어를 평정한 백규정은 2015년 시즌에는 LPGA 투어에 진출, LPGA 신인왕에 도전한다. 12월 10일, 그를 만났다.

    “아휴, 졸려요…어제도 두 시간밖에 못 잤어요.”

    2014년 투어를 화려하게 마감한 백규정은 대회가 없는 요즘 ‘밀린 학업’에 전념하느라 시즌 때보다 밤잠을 설치는 날이 더 많다고 했다.

    “(12월 6, 7일) 한일전 마치고 돌아와서 밤새 리포트를 썼는데, 너무 에세이 식으로 썼다고 지적받았어요. 어제도 ‘글쓰기’ 수업 리포트를 쓰느라 두 시간밖에 못 잤어요.”



    백규정은 2014년 연세대 체육교육과에 입학한 새내기다. 대회에 참가할 때는 리포트로 대체하기도 하지만, 대회가 없는 날엔 어김없이 수업에 출석해야 한단다.

    “우리 학교는 학사 관리가 무척 타이트해요. 전공과목은 좀 나은 편인데, 교양과목은 교수님들이 무척 철저해요. ‘수업에 출석할 자신이 없으면 아예 듣지 말라’는 교수님도 계세요.”

    노력하면 생존본능 발휘

    백규정은 2014년 2학기에 전공과목 3개와 ‘논문 글쓰기’ ‘정보화 사회의 이해’ ‘영화의 이해’ 등 교양과목 3개를 수강했다.

    “리포트 제출과 수업으로 힘들긴 한데, 대학 친구들을 자주 볼 수 있어 좋아요.”

    힘들다면서도 학교 다니는 재미를 해맑게 얘기하는 백규정의 모습은 영락없는 대학 새내기였다.

    ▼ 같이 수업 듣는 학생 중에 백 프로를 알아보는 친구들이 있나요.

    “제 또래 학생들이 골프를 즐겨 보는 것 같지는 않고요. 부모님이 TV로 골프 경기 보는 것을 함께 본 친구들이 알은체를 해요. TV에서 봤다고, 신기하다며.”

    ▼ 학교 다니느라 골프 연습할 시간이 부족하진 않나요.

    “학교 다닐 때는 연습을 거의 못 해요. 시즌 끝난 뒤 학교 가고 리포트 쓰느라 클럽 잡아본 지 오래됐어요. 1학기 때는 7시간을 연속해서 수업 듣느라 점심을 거른 적도 많아요. 선배 언니들도 마찬가지더라고요. 수연 언니(장수연 프로)는 새벽 4시에 일어나 1~2시간 연습하고 학교 다녔다고 해요.”

    ▼ 또래 친구들과 다른 삶을 살고 있는데, 아쉬움 같은 것은 없는지.

    “처음엔 많이 아쉬웠죠. 그래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어요. 대신 저는 좀 더 일찍 사회생활을 한 덕에 보상도 받았죠. 지금은 학교 친구들이 저를 부러워해요.”

    ▼ 골프는 언제 처음 시작했어요?

    “7살 때. 유치원 때부터요. 아버지가 아들을 낳으면 야구를 시키고, 딸을 낳으면 골프를 시키겠다고 일찍부터 마음먹었대요. 제 남동생은 야구를 하고 있어요(웃음).”

    ▼ 어린 나이에 운동을 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어릴 때는 연습장 가서 언니들이랑 숨바꼭질하고 눈싸움도 하면서 노느라 힘든지 몰랐어요.”

    “‘재밌게 치자’ 생각하면 우승이 따라와요”

    백규정 프로의 첫 번째 승리 요인은 자신감이다.

    ▼ 놀기만 해서는 지금처럼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없었을 텐데.

    “물론 연습도 열심히 했죠. 연습장에서 하루 종일 살다시피 했는걸요. 투어를 뛰면서는 오히려 연습을 더 못 하는 것 같아요.”

    ▼ 운동하기 싫을 때는 없었나요.

    “굉장히 많았죠. 골프를 하다보면 좋을 때도 있지만 하기 싫을 때도 많아요. 국가대표 때 해외 경기 선발전을 앞두고 공이 너무 안 맞을 때가 있었어요. 초등학교 3학년 이후로 그때 처음 80대 후반~90대 초반을 쳤어요. 공이 너무 안 맞아서 울고불고하기도 했는데,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력했더니 생존본능이 발휘됐어요. 잘 안 되던 숏게임이 좋아졌고, 샷이 제 페이스를 찾으니까 훨씬 좋은 스코어를 낼 수 있었어요. 막상 선발전에서는 11타차로 우승했거든요. 그때 깨달았죠. 잘 안 될 때를 기회라 생각하고 안 되는 부분을 더 집중해서 연습하면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다는 걸.”

    ▼ 연습할 때 순서가 따로 있나요.

    “따로 정해서 하는 건 없고요. 그때그때 마음 내키는 대로 해요. 쇼트게임에 비중을 많이 둬요. 웨지나 퍼터가 조금 약한 것 같아서. 어프로치가 좋아진 게 (2014년 투어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요인이 아닌가 싶어요.”

    비결? 후회하지 않는 것

    “‘재밌게 치자’ 생각하면 우승이 따라와요”

    LPGA 투어 하나외환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백규정 프로.

    ▼ 아마추어 골퍼 가운데에는 드라이버 샷을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은데, 백 프로가 원 포인트 팁을 준다면.

    “페어웨이가 좁아 위험하게 느껴지는 홀에서는 긴장하기 마련인데요. 그럴수록 저는 더 과감하게 샷을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긴장하면 몸이 위축되고, 그러면 미스 샷이 더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자신 있게 샷을 해야 미스도 적게 나고, 혹 미스 샷을 하더라도 덜 후회할 것 같고. 좁은 홀, 까다로운 홀일수록 더 자신감을 갖고 샷을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에게 ‘여전사’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를 짐작게 하는 원 포인트 팁이다. 백규정은 마지막 라운드나 연장 승부와 같은 극도로 긴장된 상황에서 자신 있는 샷으로 승리를 일궈낸 경험이 여러 번 있다. 브리타니 린시컴, 전인지 선수와 함께 연장 승부를 벌인 LPGA 하나외환 챔피언십 때도 그랬고, 마지막 날 7타차 열세를 극복하고 홍란 선수와 연장 승부 끝에 우승한 메트라이프 한국경제 KLPGA 챔피언십 때도 그랬다. 자신감은 그의 첫 번째 승리 요인이었다.

    ▼ 백 프로는 연장 승부에서 유독 강한 면모를 보였는데.

    “상대 선수를 이기려 하면 더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냥 ‘평소 하던 대로 재밌게 치고 오자’고 생각하면 우승이 따라오는 것 같아요. 욕심내지 않고 제 플레이에 집중한 것이 승리의 비결?(웃음)”

    ▼ 그래도 경기를 하다보면 상대 선수의 샷을 의식하기 마련일 텐데요.

    “동반자의 플레이에 신경 쓰지 않는 게 가장 힘든 일이죠. 마음을 비우고 제 샷에 집중해야 결과가 좋아져요.”

    ▼ 골프를 잘하는 백 프로만의 비결이 있다면.

    “후회하지 않는 것? 긴가민가 고민하면 마음먹은 대로 샷이 안 돼요. 골프는 한 샷 한 샷 매 순간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잖아요. 어떤 클럽을 잡을지, 어느 방향으로 공을 보낼지. 그런데 스스로 선택해서 한번 결정을 내리면 그대로 샷을 해요. 결과가 좋지 않을 때도 있지만 지나간 것에는 후회하지 않아요. 빨리 잊어야 다음 샷에 집중할 수 있거든요.”

    백규정은 거침이 없었다. 어떤 물음에도 고민하지 않고 즉각 자기 생각을 또박또박 들려줬다. 그가 골프를 잘하는 비결이 자신감인 것처럼, 인터뷰에서도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신데렐라는 없다

    “‘재밌게 치자’ 생각하면 우승이 따라와요”

    백규정 프로가 기자에게 원포인트 레슨을 하고 있다.

    ▼ 올해 네 차례 우승했는데, 어떤 대회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까.

    “첫 우승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 LPGA 대회인 하나외환 챔피언십에서도 우승했는데.

    “우승해서 좋긴 했는데,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더니 여느 때와 똑같은 일상이던걸요. 바뀐 것도 없고.”

    LPGA 대회 우승으로 미국 무대에 진출하게 된 백규정을 언론에서는 ‘신데렐라’라고 일컬었다. 그런데 정작 그는 “자정이면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처럼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여느 때와 똑같은 일상이었다”며 당시를 담담하게 회고했다.

    ▼ 하나외환 챔피언십 우승으로 미국 진출 계획이 앞당겨졌는데, 준비는 어떻게 하나요.

    “영어 공부를 많이 해요. 전화 영어도 하고, 과외선생님한테도 배우고. 예전에도 영어를 조금씩 하기는 했는데, 하다 말다 해서 금방 까먹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미국 투어에서 뛰려면 체력관리가 중요할 것 같아요. 미국 무대에 먼저 진출한 언니들한테 많이 배워야죠. 시차 적응도 그렇고, 서양 선수들과 신체 조건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에 그만큼 더 노력해야 할 것 같아요.”

    ▼ 백 프로는 체격이 서양 선수에 뒤지지 않을 것 같은데.

    “제가 한국에선 큰 편(173cm)이지만, 미국 가서 보니까 그렇지 않더라고요. 키가 190cm쯤 되는 선수도 있어요. 그런 선수들 사이에서 잘하려면 체력을 더 키워야 할 것 같아요.”

    ▼ 미국 투어에서 뛸 2015년 목표는.

    “세계 1등이 되는 거예요. 목표를 높고 크게 잡아야 그 목표에 가까이 갈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인비 언니(현 세계랭킹 1위 박인비)도 있지만, 노력하면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효주는 라이벌 아닌 절친

    ▼ 프로 선수들 사이에는 ‘2년차 징크스’라는 게 있죠.

    “그런 것도 있어요? 징크스는 되도록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요. (징크스가) 있으면 좋을 것 같지 않아요.”

    겉으로 화려할수록 그림자는 더 짙게 드리워지는 법. 2014년 최고의 한 해를 보낸 백규정은 좋은 성적을 거둬 스포트라이트도 많이 받았지만, 스코어카드 오기(誤記) 등으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 스코어카드 오기 사건으로 오해를 많이 받았는데.

    “당시에 저는 하나(장하나 프로) 언니가 실격당한지도 몰랐어요. 집에 가던 중에 연락을 받았는데, 처음엔 시스템 오류인 줄 알았어요. 스코어카드를 제출하기 전에 언니와도 확인하고, 협회에서도 확인했거든요. 경기가 잘 안 풀리거나 경기에 너무 집중하다보면 제때 스코어를 기록하지 않아 잘못 쓰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 일 이후 스코어카드 확인에 더 신경을 써요.”

    ▼ 라이벌 김효주 선수와 함께 LPGA 투어에 진출하는데.

    “효주는 어릴 적부터 가족보다 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친구예요. 국가대표 때 합숙하면 같은 방을 썼고.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아는 친구예요.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노래를 좋아하고,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다 알 만큼 가까운 사이예요. 그런데도 언론에서는 자꾸 ‘라이벌’이라고 몰아가는 것 같아요. 효주도 제게 ‘신경 쓰지 말자. 스트레스 받지 말자’고 했어요. 그렇게 얘기해줘서 참 고맙더라고요. 앞으로도 계속 라이벌 소리를 듣겠지만, 효주가 잘하고 있으니까 본받아서 서로 잘하면 더 좋지 않을까 싶어요.”

    ▼ LPGA 투어에 함께 진출하게 돼 불가피하게 신인왕 경쟁을 벌여야 할 텐데.

    “골프는 테니스처럼 누구를 이겨야 올라가는 경기가 아니잖아요. 제 경기를 잘하면 그 결과로 평가받는 건데, 누구를 이겨야겠다는 생각은 의미가 없어요. 낯선 땅에 친구(김효주)와 함께 가게 돼서 좋은 점이 더 많을 것 같아요. 힘들 때 의지도 될 것 같고요.”



    Lady Gr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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