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벌 2, 3세는 행복할까?
부의 세습, 경영권 세습, 재벌 2·3세 같은 말은 한국에서 뜨거운 감자다. 여론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부유층, 재벌이 때로는 불법으로, 때로는 법률의 맹점을 이용해 증여나 상속을 하면서 납세라는 국민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을 자주 봐온 터다. 물론 탈세와 절세의 경계가 모호한 측면이 있고, 세법의 맹점을 찾는 변호사가 사방에 널린 현실에서 가능하면 세금을 덜 내려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상속자들은 세율을 1%만 낮춰도 덜 낼 금액이 어마어마하므로 불법을 저지르거나 맹점을 이용하려는 유혹이 더 클 수 있다.
그러나 상속세를 내고도 국민 대부분이 대대로 구경도 못 해볼 재산을 얻었으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더 갖겠다며 아등바등하는 모습은 분명히 탐욕적이다. 어떤 사람에게 식탐이 있다고 말할 때, 그것은 먹을 게 부족해 배고픈 사람이 음식을 허겁지겁 먹는 것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배가 부른데도 음식만 보면 환장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비슷한 의미에서 평생 다 쓰지도 못할 돈을 소유하고도 더 많은 걸 가지려고 눈에 불을 켜는 사람은 탐욕적인 게 맞다.
하지만 이들이 탐욕적이고, 국민이 이들을 부정적으로 평가해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와 경영권의 승계를 막을 수는 없다. 막아야 할 근거 또한 명확하지 않다. 한국만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에서 부의 세습이 이뤄진다. ‘포춘’이 선정한 기업 500곳 중 3분의 1가량이 경영권을 가족 승계한 기업으로 분류된다. 심지어 개인 자산이나 경영권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부의 세습은 늘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어찌 보면 그들은 국가 전체의 경영권을 세습한다고 볼 수도 있다.
가치 있는 자원을 후대에 물려주려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후손이 더 잘 되기를 바라는 인간의 양육 본능은 다른 동물보다 훨씬 더 강하다. 이러한 본능은 인류가 발전한 원동력일 수 있다. 자손이 있는 사람에 비해 없는 사람이 세속적 성공이나 축재에 상대적으로 초연하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그래서 불교나 천주교와 같은 종교가 성직자의 결혼을 금지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종교 신념도 자식을 잘살게 하겠다는 욕심을 이기기 어렵다는 것을 안 선지자들의 지혜가 담긴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재벌의 세습을 이해하려면 더욱 근본적이고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세습한 재화와 경영권이 창업자의 자손을 더 행복하게 해줄까? 미래의 일을 정확히 예언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재벌 2, 3세가 처한 상황이 제가끔 다르기에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경영권을 물려받은 재벌 2, 3세가 행복할 것 같으냐 그렇지 않으냐, 성공할 것이냐 실패할 것이냐 하는 내기에 돈을 걸라면 심리학자로서 나는 ‘불행할 것이다’와 ‘실패할 것이다’에 베팅하겠다. 그들이 실패하거나 불행해졌으면 하는 질투나 저주가 아니다. 심리학으로 보면 그렇게 될 확률이 높다는 얘기다.
재벌 2, 3세가 성공하기 어렵다는 예측은 ‘평균으로의 회귀’라는 자연법칙에서 비롯한다. 평균으로의 회귀는 ‘극단적인 사건 이후에는 일반적으로 덜 극단적인 사건이 뒤따른다’는 단순한 원리다. 예컨대 평균 키가 170cm가량인 집단에서 무작위로 한 명을 뽑았는데 그의 키가 180cm라면 또 한 사람을 뽑았을 때 180cm보다 클 확률보다 180cm보다 작아 평균인 170cm에 가까운 사람이 나올 확률이 더 높다는 얘기다. 같은 논리로 부모가 평균보다 키가 크면 자녀는 부모보다 키가 작아 평균에 가까워질 확률이 높고, 부모가 평균보다 키가 작다면 자녀는 키가 부모보다 더 클 확률이 높다.
세상은 공평하다?!
이렇듯 예외적으로 극단적 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평균으로 회귀할 공산이 더 크다. 극단적 사건은 극단적 요인의 조합에 의해 일어난다. 한 요인이 극단적이기도 힘든데, 수많은 요인이 동시에 극단적이고 또한 그것들이 연합해 굉장히 극단적인 사건을 일으키기가 얼마나 어렵겠나. 따라서 굉장히 극단적인 일이 발생한 후에는 좀 더 일어나기 쉬운 평범한 사건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아인슈타인의 자손 가운데 머리가 좋은 사람은 있겠지만 아인슈타인급 두뇌를 가진 후손은 없다. 잘생기고 아름다운 사람의 자녀를 보면, 여전히 평균보다는 잘생기고 아름답지만 부모와 비교하면 실망스러울 때가 많다. 타이거 우즈의 아들이 골프를 어느 정도 잘할 수는 있어도 타이거 우즈급은 못 될 것이다. 아인슈타인급 천재, 김태희급 미인, 타이거 우즈급 골퍼는 대부분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부모가 엄청나게 잘났는데 그보다 더 잘난 자식이 등장해 주변에서 배 아파 할 일을 줄여주는 ‘평균으로의 회귀’다. 세상이 참으로 공평하지 않은가.
상당수 창업자가 빈손으로 시작해 대기업을 키워냈다. 아무나 이뤄낼 일이 아니다. 보통 사람은 ‘나도 정부 특혜만 받으면 재벌이 될 수 있다’고 자위할지 모르지만, 특혜도 아무나 받는 게 아니다. 받기를 원하는 수많은 사람 중 가장 준비된 자가 가져간다. 대부분의 창업자는 원래 가진 게 없었으며(그래서 ‘창업’자라고 한다), 특혜를 받기 전 준비가 돼 있던 극소수다. 운이 억세게 좋았다고도 얘기할 수 있지만 운 덕분이라고 단순화하면 대부분의 국민은 재수 없는 사람이 돼버린다. 재벌이 된 것이 예외적일 수 있지만, 예외적이어서 재벌이 된 것도 사실이다. 좋은 쪽이건 나쁜 쪽이건, 한 가지 측면이건 여러 가지 측면을 종합한 결과이건 그들은 재벌이 아닌 사람들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