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호

상속자들의 미래

이재용<삼성 부회장>, 정의선<현대차 부회장>은 1/100만×1/100만×1/100만을 뚫어낼까?

  • 허태균 |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입력2015-03-19 14: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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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모가 엄청나게 잘났는데, 그보다 더 잘난 자녀가 등장할까.
    • 평균으로의 회귀, 절감효과, 증폭효과로 살펴본 재벌 3세 심리학.
    상속자들의 미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2월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 준비 및 문화체육 활성화를 위한 대통령과 기업인의 오찬 모임이 화제가 됐다. 재벌 3세들이 각 그룹을 대표해 대거 참석해서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병상에 누운 터라 아들 이재용 부회장이 참석했고, 현대자동차그룹을 대표해 정의선 부회장이 청와대 행사에 처음으로 참석했다. 또한 효성그룹을 대표해 조현상 부사장이 참석하는 등 재벌 3세가 경영 전면에 본격적으로 나선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들을 인식해서인지 가족 승계 모범 사례로 널리 알려진 메디치 가문을 대화 주제로 삼았다. 일부 언론은 재벌 3세에게 화려한 데뷔 기회를 제공한 행사라고 평가했다.

    재벌 2, 3세는 행복할까?

    부의 세습, 경영권 세습, 재벌 2·3세 같은 말은 한국에서 뜨거운 감자다. 여론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부유층, 재벌이 때로는 불법으로, 때로는 법률의 맹점을 이용해 증여나 상속을 하면서 납세라는 국민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을 자주 봐온 터다. 물론 탈세와 절세의 경계가 모호한 측면이 있고, 세법의 맹점을 찾는 변호사가 사방에 널린 현실에서 가능하면 세금을 덜 내려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상속자들은 세율을 1%만 낮춰도 덜 낼 금액이 어마어마하므로 불법을 저지르거나 맹점을 이용하려는 유혹이 더 클 수 있다.

    그러나 상속세를 내고도 국민 대부분이 대대로 구경도 못 해볼 재산을 얻었으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더 갖겠다며 아등바등하는 모습은 분명히 탐욕적이다. 어떤 사람에게 식탐이 있다고 말할 때, 그것은 먹을 게 부족해 배고픈 사람이 음식을 허겁지겁 먹는 것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배가 부른데도 음식만 보면 환장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비슷한 의미에서 평생 다 쓰지도 못할 돈을 소유하고도 더 많은 걸 가지려고 눈에 불을 켜는 사람은 탐욕적인 게 맞다.

    하지만 이들이 탐욕적이고, 국민이 이들을 부정적으로 평가해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와 경영권의 승계를 막을 수는 없다. 막아야 할 근거 또한 명확하지 않다. 한국만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에서 부의 세습이 이뤄진다. ‘포춘’이 선정한 기업 500곳 중 3분의 1가량이 경영권을 가족 승계한 기업으로 분류된다. 심지어 개인 자산이나 경영권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부의 세습은 늘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어찌 보면 그들은 국가 전체의 경영권을 세습한다고 볼 수도 있다.



    가치 있는 자원을 후대에 물려주려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후손이 더 잘 되기를 바라는 인간의 양육 본능은 다른 동물보다 훨씬 더 강하다. 이러한 본능은 인류가 발전한 원동력일 수 있다. 자손이 있는 사람에 비해 없는 사람이 세속적 성공이나 축재에 상대적으로 초연하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그래서 불교나 천주교와 같은 종교가 성직자의 결혼을 금지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종교 신념도 자식을 잘살게 하겠다는 욕심을 이기기 어렵다는 것을 안 선지자들의 지혜가 담긴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재벌의 세습을 이해하려면 더욱 근본적이고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세습한 재화와 경영권이 창업자의 자손을 더 행복하게 해줄까? 미래의 일을 정확히 예언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재벌 2, 3세가 처한 상황이 제가끔 다르기에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경영권을 물려받은 재벌 2, 3세가 행복할 것 같으냐 그렇지 않으냐, 성공할 것이냐 실패할 것이냐 하는 내기에 돈을 걸라면 심리학자로서 나는 ‘불행할 것이다’와 ‘실패할 것이다’에 베팅하겠다. 그들이 실패하거나 불행해졌으면 하는 질투나 저주가 아니다. 심리학으로 보면 그렇게 될 확률이 높다는 얘기다.  

    재벌 2, 3세가 성공하기 어렵다는 예측은 ‘평균으로의 회귀’라는 자연법칙에서 비롯한다. 평균으로의 회귀는 ‘극단적인 사건 이후에는 일반적으로 덜 극단적인 사건이 뒤따른다’는 단순한 원리다. 예컨대 평균 키가 170cm가량인 집단에서 무작위로 한 명을 뽑았는데 그의 키가 180cm라면 또 한 사람을 뽑았을 때 180cm보다 클 확률보다 180cm보다 작아 평균인 170cm에 가까운 사람이 나올 확률이 더 높다는 얘기다. 같은 논리로 부모가 평균보다 키가 크면 자녀는 부모보다 키가 작아 평균에 가까워질 확률이 높고, 부모가 평균보다 키가 작다면 자녀는 키가 부모보다 더 클 확률이 높다.

    세상은 공평하다?!

    이렇듯 예외적으로 극단적 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평균으로 회귀할 공산이 더 크다. 극단적 사건은 극단적 요인의 조합에 의해 일어난다. 한 요인이 극단적이기도 힘든데, 수많은 요인이 동시에 극단적이고 또한 그것들이 연합해 굉장히 극단적인 사건을 일으키기가 얼마나 어렵겠나. 따라서 굉장히 극단적인 일이 발생한 후에는 좀 더 일어나기 쉬운 평범한 사건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아인슈타인의 자손 가운데 머리가 좋은 사람은 있겠지만 아인슈타인급 두뇌를 가진 후손은 없다. 잘생기고 아름다운 사람의 자녀를 보면, 여전히 평균보다는 잘생기고 아름답지만 부모와 비교하면 실망스러울 때가 많다. 타이거 우즈의 아들이 골프를 어느 정도 잘할 수는 있어도 타이거 우즈급은 못 될 것이다. 아인슈타인급 천재, 김태희급 미인, 타이거 우즈급 골퍼는 대부분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부모가 엄청나게 잘났는데 그보다 더 잘난 자식이 등장해 주변에서 배 아파 할 일을 줄여주는 ‘평균으로의 회귀’다. 세상이 참으로 공평하지 않은가. 

    상당수 창업자가 빈손으로 시작해 대기업을 키워냈다. 아무나 이뤄낼 일이 아니다. 보통 사람은 ‘나도 정부 특혜만 받으면 재벌이 될 수 있다’고 자위할지 모르지만, 특혜도 아무나 받는 게 아니다. 받기를 원하는 수많은 사람 중 가장 준비된 자가 가져간다. 대부분의 창업자는 원래 가진 게 없었으며(그래서 ‘창업’자라고 한다), 특혜를 받기 전 준비가 돼 있던 극소수다. 운이 억세게 좋았다고도 얘기할 수 있지만 운 덕분이라고 단순화하면 대부분의 국민은 재수 없는 사람이 돼버린다. 재벌이 된 것이 예외적일 수 있지만, 예외적이어서 재벌이 된 것도 사실이다. 좋은 쪽이건 나쁜 쪽이건, 한 가지 측면이건 여러 가지 측면을 종합한 결과이건 그들은 재벌이 아닌 사람들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건희·정몽구는 이례적 사례

    문제는 한 세기에 몇 명 나오기도 힘든 예외적인 사람의 자녀가 아버지만큼 예외적인 사람이 될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냐는 것이다.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 회장이나 현대그룹 창업자 정주영 회장과 같은 사람은 1000만 명 중에 1명, 좀 더 관대하게 잡아도 100만 명 중 1명 나올까 말까 할 것이다. 두 사람은 삼성과 현대라는 굴지의 재벌기업을 창업했다.

    하지만 그런 굴지의 창업 재벌 2세 역시 100만 명 중 1명 정도의 예외적인 사람이면서, 손자대(代)에도 예외적인 인물이 등장할 가능성은 거칠게 말해 100만분의 1 곱하기 100만분의 1 곱하기 100만분의 1쯤 된다. 물려받은 자원, 최고의 교육, 물심양면의 지원이라는 변수를 고려하더라도 초극단적으로 낮은 확률이다. 다수 기업이 2세, 3세를 거치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거나 다른 기업에 인수되는 일이 다반사 아닌가.

    그런데 삼성과 현대에서는 극히 예외적인 일이 벌어졌다. 창업자의 2세인 이건희 회장과 정몽구 회장은 경영능력 면에서 그들의 아버지에 버금가거나 오히려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두 재벌기업은 2세 때에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거듭났다. 이건희, 정몽구 회장 본인뿐만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도 엄청난 행운이었다. 삼성과 현대는 100만분의 1 곱하기 100만분의 1의 확률을 뚫은 셈이다.  

    이런 행운이 3대에도 일어날 수 있을까. 100만분의 1 곱하기 100만분의 1에다 다시 100만분의 1을 곱한 숫자는 지면에 표기하기도 어렵다. 삼성그룹을 사실상 물려받은 이재용 부회장과 현대자동차 그룹을 물려받을 정의선 부회장이 할아버지와 아버지처럼 예외적으로 뛰어나다면 20년쯤 후에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우주 1위’ 자리를 놓고 경쟁할지도 모를 일이다.

    요컨대 국내 및 세계 최고 수준의 경영자가 생물학적 3대를 거쳐 탄생하기를 바라는 것이 합리적일까. 선대 회장들처럼 기업을 키워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유지하는 일만 하는데도 엄청난 능력이 요구된다. 재벌의 상속자들은 너무나 힘든 과제를 입에 물고 태어난 것이다.          

    한국 재벌의 가업 승계를 걱정하는 또 다른 이유 또한 심리학과 관련한 것이다. 앞서 얘기했듯 뛰어난 자질을 가진 후계자가 나올 확률이 워낙 낮기 때문에 그나마 경영 자질이 나은 자녀를 선택해 경영권을 승계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런 면에서 과거에 비해 선택지가 현저히 줄었다.

    장남, 차남은 어떻게 다를까

    상속자들의 미래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이병철 회장은 슬하에 3남5녀, 정주영 회장은 8남1녀를 뒀다. 두 창업자는 최고 수준의 교육과 실제 경영 경험 등 다양한 기회를 통해 이들에게 경영능력을 가르치고 검증했으며 그중 최고를 뽑아 후계자로 삼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자식들 간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자가 경영권을 물려받았다고도 볼 수 있다. 이건희 회장은 셋째, 정몽구 회장은 둘째다. 장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예외적이라 할 수 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재용, 정의선 부회장에게는 남자 형제가 없다. 물론 아들만 후계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삼성그룹, 현대차그룹에서 이들의 후계자 지위가 위협받는다는 소식이 알려진 적은 없다. 확률적으로만 보면 경영능력을 가진 사람을 선발하는 과정이 생략된 것이다.

    아들이 하나여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요인보다 장남이자 외아들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생긴 심리적 특성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심리학자 알프레드 애들러는 탄생 순서에 따라 형성되는 성격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형제 중 첫째는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세상이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마음의 평화를 누린다. 동생이 태어나 부모의 관심이나 사랑을 조금 잃을 수는 있지만 동생이라는 존재를 통해 우월감을 느낀다. 성격이 형성되는 아동기까지 동생에 비해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어서 자신이 유능하다고 느끼며, 동생보다 더 강한 발언권을 부여받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첫째는 세상은 원래부터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인식을 가질 확률이 높고, 사회적 체계와 규범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며, 그것을 유지하려는 경향성을 띠기 쉽다. 그래서 대부분의 첫째는 부모와 사회의 기대를 저버리지 못한다. 때로는 답답할 정도로 바른 생활을 추구한다.

    반면 둘째는 태어나면서 열등감을 가질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자신보다 앞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첫째의 존재가 늘 거슬린다. 우선권과 결정권, 기득권을 첫째에게 ‘근거 없이’(둘째에게는 그렇게 느껴진다) 빼앗긴 사회적 체계는 뭔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더 반항적이고 불만이 많은 사람이 될 소지가 크다. 기존의 규범이나 사회적 제약을 거부하고 그것에 구애되지 않으려고 한다. 그 때문에 사고와 행동이 자유롭고 혁신적이며 모험적인 경향이 있다. 때로는 위태로워 보이고 때로는 무모해 보일 수도 있다.

    상속자들의 미래

    박근혜 대통령이 2월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문화체육 활성화를 위한 기업인 초청 오찬에 참석했다. 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박 대통령, 박용현 두산연강재단 이사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 손경식 CJ회장, 박영주 이건산업회장, 이해진 네이버 의장.

    누가 후계자 맡아야 할까?

    기업이 안정적 궤도에 올라 변화와 혁신보다는 관리가 중요한 상황이라면, 다소 우유부단할지 모르지만 기존의 가치를 중요시하고 조화와 화합을 중시하는 첫째가 후계자로 적합하다. 그래서 사회적 체계와 삶이 빠르게 변하지 않던 오래전 과거나 지속성이 높은 장치 및 굴뚝산업이 주를 이룬 근대 산업화 과정에선 장자 승계가 심리학적으로 보면 나름대로 말이 된다.

    하지만 최근의 세상은 변화의 속도가 상상을 초월한다. 매년 새로운 시장이 창조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급변한다. 극초스피드 환경에서 사업을 지속하는 방법은 역설적이게도 계속 변화와 혁신을 이루는 것이라고 한다. 지금의 삼성과 현대자동차를 일궈낸 이건희, 정몽구도 첫째가 아니었다. ‘마누라만 빼고 다 바꾸라’는 22년 전 이건희 회장의 외침은 심리학으로 보면 첫째에게서는 상대적으로 나오기 힘든 발상이다. 현대사회가 모험적이고 혁신적인 경영자를 필요로 한다고 해서 한국인이 원하는 기업인도 다 그런 사람일까. 대우, 웅진, STX의 사례에서 보듯 창업주의 모험정신으로 일어서 한때 잘나가던 대기업 중 일부가 모험정신 탓에 좌초했다.

    단지 형제가 없거나 형제 중 첫째라고 해서 반드시 혁신적이지 않거나 모험적이지 않을 리도 없다. 공룡처럼 커진 대기업을 선천적으로 모험적인 후계자가 이끄는 것이 과연 맞는지도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혁신을 요구하는 시대라고 해서 재벌기업을 남이 전혀 가지 않은 새로운 영역으로만 이끈다면 해당 기업뿐 아니라 사회에도 큰 혼란을 줄지 모른다. 더구나 모험적인 것은 불확실성이 높고 성공 확률이 낮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같은 회사가 모험적 시도에 나설 경우 성공하면 다행이지만, 실패했을 때의 부작용은 엄청날 수 있다.

    삼성전자가 오늘날과 같은 발전을 이룬 근간은 2000년대 초반 반도체와 LCD(액정표시장치)에서의 커다란 성공이라고 한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할 만큼 한국 경제가 위기에 처했을 때 일본과 대만을 비롯한 아시아권의 다른 나라들도 경제적으로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다. 그래서 일본과 대만은 반도체와 LCD 분야 투자를 줄였다. 위험관리(Risk Management) 차원에서 합리적이고 적절한 판단이었다.

    반면 한국은 대규모 투자로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말이 좋아 정면돌파지, 위험관리를 안 했다고 지적할 수도 있다. 당시 LCD 관련 부품 사업을 하던 인사에 따르면 청와대와 삼성, 현대 등이 ‘Go!’ 결정을 내렸을 때(당시 대규모 투자는 정권과 경제계의 공동 노력이 없으면 불가능했다) ‘이제 죽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사실 그때 투자가 잘못됐다면, 여러 대기업이 휘청거렸을 뿐 아니라 청문회가 열리고 검찰이 수사에 나서고 수많은 사람이 감옥에 갔을지도 모른다.



    도약의 리더, 수성의 리더

    상속자들의 미래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으로 재벌 3세와 관련해 부정적 사회 분위기를 확산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창업주는 모험정신이 가득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 모험정신이 있다고 모두 성공하지는 않지만, 모험심 없이는 창업에 성공할 수 없다. 모험에 나선 수많은 사람 중 성공한 사람만 우리 눈에 보인다. 대기업 창업주로 역사에 남은 이들과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실패한 모험가가 도전에 나섰을 때는 모험에 실패해도 국가와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이 지금보다 작았다.

    하지만 지금의 상속 예정자들은 온 국민의 관심을 받는다. 삼성전자와 현대차 주식을 단 한 주도 갖지 않은 이들도 후계자의 사소한 모습까지 뉴스를 통해 지켜본다. 이재용 부회장이 투자한 벤처 비즈니스가 재미를 못 봤다느니, 정의선 부회장이 공을 들인 자동차가 잘 팔린다느니 안 팔린다느니 갑론을박이 오간다. 이런 환경에서 과연 그들이 모험적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인간의 동기를 ‘향상적(promotion) 동기’와 ‘예방적(prevention) 동기’로 나누는 조절초점이론(theory of regulatory focus)의 관점에서 보면, 재벌 후계자들은 예방적 동기를 가질 확률이 높다. 이미 가진 게 많은 터라, 잃을 게 많은 상황을 피하려 할 소지가 크다. 국민이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본다는 부담감, 실패하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예방적 동기를 일으키는 전형적 요인이다.

    예방적 동기를 가진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모험을 회피하는 것이다. 모험은 성공할 것이라는 환상에 빠져 있을 때 시도하는 것으로, 실패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선 나오지 않는다. 첫째나 외아들로 태어난 것도 현상을 유지하려는 예방적 동기를 강화하는 데 한몫한다. 부유하게 태어나, 맏아들로 키워지고, 혼자 감당하기에는 이미 너무 큰 책임감을 안고 살아가는 데다, 온 국민이 도끼눈을 뜨고 쳐다보는 상속자가 창업주와 같은 모험심, 혁신성, 전투력을 두루 가질 수 있을까. 내 생각은 ‘글쎄요’다.

    평생 성공 못하는 삶

    재벌 3세가 경영에서 어느 정도 이뤄내야 성공했다고 인정받을까. 재벌 2세가 이룬 것만큼? 이건희 회장이 삼성전자를 키운 것만큼, 정몽구 회장이 현대자동차를 키운 것만큼 지금의 삼성과 현대자동차를 키워내는 일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그래서 재벌 3세가 성공했다는 평가를 듣기란 매우 어렵다. 강하고 위대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들의 선택지는 크게 둘이다. 더욱더 순종적이고 보수적이 되든지, 아니면 아예 막나가야 한다. 웬만큼 해서는 부모를 뛰어넘을 수 없고 이길 수 없다.

    이건희, 정몽구 회장 정도면 한국에서 가장 강한 아버지로 뽑혀도 손색없을 것이다. 대기업 창업주나 성공한 기업가는 대체로 강하다. 이런 아버지는 대체로 아들을 불행하게 한다. 왜? 극복하기가 어려워서다. 모든 아들은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 한다. 하지만 웬만해서는 창업주나 재벌인 아버지의 마음에 들 리가 없다. 꼭 아들이 아니더라도 그들 눈에 차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있겠나. 

    아버지뿐만이 아니다. 온 사회가 그들을 쳐다보며 비교한다. 그들의 위대한 아버지, 그러니까 100만 명 중 1명 나올까 말까 한 사람과 비교하는 것이다. 더 ‘환장’할 일은, 자수성가한 다른 사업가와 비교하면서 비아냥거리는 것이다. ‘저 사업가는 재벌 자식으로 태어나지 않았는데도 저렇게 성공했다. 그런데 너는 왜…’라고.

    어떤 일의 원인을 찾는 인간의 귀인과정에 절감효과(Discounting Effect)라는 게 있다. 사건의 원인을 정확히 알 수는 없기 때문에 어떤 사건을 설명할 수 있는 잠재적 원인이 하나일 때보다 잠재적 원인이 두 개일 때 한 원인의 중요성이 자연스럽게 평가절하된다는 원리다. 누군가 나한테 무척 잘하는데 도저히 왜 잘해주는 건지 다른 원인을 찾을 수 없을 때(실제 다른 원인이 있는지와 상관없이)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그 사람이 나를 많이 좋아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사람이 돈을 좀 빌려달라고 말하는 순간, ‘아 나를 좋아한 게 아니라 돈을 빌리려고 그랬구나’하고 그 사람의 마음을 평가절하한다. 사실 실제 마음은 알 수도 없고, 그 사람이 나를 진심으로 좋아해 어렵게 부탁한 것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절감효과는 이렇듯 사람을 종종 억울하게 만든다. 내가 열심히 노력하거나 머리가 좋아서 성공했는데도 부모가 부자라는 이유로 다른 어떤 도움이 있었다는 이유로 나의 노력이나 뛰어남을 인정받지 못할 때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 재벌 후계자처럼 자신의 능력이나 노력을 인정받기 어려운 사람이 얼마나 될까. 성공하면 대부분 ‘나라도 그 정도는 하겠다. 주변에서 다 되게 도와주는데 뭐…’라고 평가한다. 실패하면 ‘아니, 저런 상황에서도 실패해? 얼마나 못났기에…’라고 혹평한다. 다 가진 듯 보여도 평생 성공하지 못하는 삶이 어떨 것 같은가.

    믿을 사람이 없다 

    절감효과는 보통 사람들이 재벌 후계자를 볼 때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재벌 후계자가 타인을 대할 때도 일어난다. 창업자에게는 사업 초기부터 동고동락한 진정한 친구, 동료, 부하 직원이 있다. 창업자가 성공하기 전부터 그들과 함께 있었으며 온갖 어려움을 함께 겪어왔기에 그들 사이의 인간적 신뢰와 유대감은 두터울 수밖에 없다. 가난했을 때부터 함께했으니, 내가 지금 많은 돈을 가졌다고 해서 그게 지인들의 진심에 미치는 절감효과는 제한적이다. 그래서 창업주가 오랫동안 함께해온 멤버들과 가신을 좋아하고 신뢰하는 것이다.

    재벌 2세, 3세는 어떨까.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엄청난 부자였다. 어린 시절부터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에게 매우 친절하게 잘 대해줬을 것이다. 타인이 자신에게 잘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난 것이다. 그러니 ‘이들의 진심은 뭘까? 내가 가난했어도 이들이 나한테 이렇게 해줬을까?’하는 배부른 고민을 하면서 성장할 수밖에 없다. 직원이나 친구뿐 아니라 심지어 친척과 가족을 볼 때도 절감효과가 (무의식적으로라도) 작동한다.

    그래서 이들은 선천적으로 외로울 수밖에 없다. 늘 불안하다. 최근 심심치 않게 2세, 3세의 이혼 소식이 보도되는데, 이들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기 어려운 심리적 요인의 하나가 아마도 절감효과일 것이다. 배우자의 사랑을 100% 믿기에는 너무 많이 가졌다. 그래서 항상 불안하다. 조그만 사건(일반인은 눈치 채지도 못할 만한 작은 일)에도 쉽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의심한다. 그래서 이런 이들은 마음을 주는 데 인색하고 마음을 받을 때도 신중하다. 재벌들이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끼리 어울리려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최소한 나한테 잘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의 행동은 그나마 좀 신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원리로 이들은 타인을 떠나가게 한다. 특히 바른말을 하는 진정한 친구와 동료를 잃기 쉽다.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하는 부정적인 말이나 행동을 과대 지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다. 자신에게 잘해줘야 하는 이유가 명확하고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게 하는데, 부정적인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면 나를 진짜 싫어하거나 악의를 가졌다고 오해하기 쉽다. 버릇이 없거나 매너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소지도 크다. 증폭효과(Augment Effect)가 일어나는 것이다.

    증폭효과는 절감효과의 반대 현상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진정으로 그들을 아끼는 사람보다는 가식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 득세하고, 후계자는 그들을 보며 더욱더 불안해진다. 이런 악순환에 빠진다면 불행해지지 않을 인간이 있을까.

    ‘참 나쁜 아버지’

    이 글의 모두에서부터 지금까지 재벌 후계자들이 반드시 실패하리라는 얘기를 한 것이 아니다. 다만 성공의 요인만큼이나 실패로 이끌 요인이 많고 강하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재벌 후계자들이 성공의 길을 걷도록 돕는 심리학적 요인도 많다. 좋은 유전자와 좋은 환경을 가졌으며, 다른 사람은 접하거나 상상도 해볼 수 없는 정보와 기회를 제공받고, 세상을 한발 앞서 멀리 보면서 살 수 있다. 또한 다방면에서 뛰어난 사람들과 어울릴 사회적 관계의 기회도 가질 수 있다. 진심과 가식은 사실 종이 한 장 차이라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진심으로 자신을 좋아한다고 느낄 수도 있다.

    문제는 부의 세습보다 경영권 세습에 있다. 성공한 기업인의 자녀가 모두 창업자만큼 경영에 뛰어난 인재일 수는 없다.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더 많다. 그런데 이상한 건 재벌가 자녀 대부분이 경영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성공한 기업인의 자녀는 모두 선천적으로 경영 능력을 가진 걸까. 타고난 경영능력이 없더라도 맡기면 잘하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창업자도 운이 좋거나 상황이 좋았던 것뿐이지, 자신의 능력은 기업을 키우는 데 기여한 바 없다고 인정해야 한다. 창업자 스스로가 자신의 능력이 기업의 성공에 기여했다고 믿는 만큼, 그들의 자녀 역시 성공적인 기업가가 되려면 타고난 자질이 필요하다.

    왜 재벌가 자녀 중에는 역사, 과학, 교육, 체육, 예술 등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울까. 경영자의 피가 흐르는 자식만 낳은 것일까. 물론 경영자의 자질을 갖고 태어났으며 회사 경영이 적성에 맞는 자녀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런 자식이 있다면 그들이 경영권을 물려받는 게 창업주와기업, 국가를 위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능력도 없고 경영이 적성에 안 맞는 자녀는 경영자로서 성공하기도 힘들고, 성공과 실패에 상관없이 불행해질 것이다. 부만 물려주고 자녀가 하고 싶어 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주는 게 자식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는 부모의 현명한 행동일 것이다. 만약 자녀가 원하지 않거나 능력도 없는데 경영권을 물려주는 것은, 자신이 낳은 자식보다 자신이 키운 기업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은 아닐까. 그렇다면 참 나쁜 아버지다.

    상속자들의 미래
    허태균

    1968년 출생

    고려대 심리학과 졸업,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 문학석사(일반심리학)·노스웨스턴대 철학박사(사회심리학)

    저서 : ‘가끔은 제정신’


    사회 또한 경영권 승계를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고 어떻게 해야 더 건설적인 방향으로 바꿀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부와 경영권 세습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불법만 아니라면 그것을 막을 방법도, 명분도 없다. 한국 사회에서 대기업 후계자의 성공과 행복은 사회 전체와 많은 사람의 삶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친다. 그들에게 우리가 무엇을 기대할 것인지, 어떤 후계자가 바람직한 것인지, 또한 모험적이고 혁신적인 후계자를 원한다면 그들의 실패를 어디까지 용인해줄 것인지 등과 관련해 합리적인 기준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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