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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와 미술관

포장지 공장에서 초현대미술 인큐베이터로

디아비콘 미술관

  • 최정표 |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jpchoi@konkuk.ac.kr

포장지 공장에서 초현대미술 인큐베이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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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찾고 만드는’ 미술관

여타 미국 미술관처럼 디아비콘 미술관도 재벌의 돈이 없다면 세계적 미술관이 만들어지기 어렵다는 가설을 입증하는 셈이어서 서민에겐 다소 씁쓸하게 들린다. 그러나 디아비콘 미술관은 불과 10여 년 만에 세계적인 지명도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물론 ‘돈의 힘’이 없었다면 불가한 일이겠지만, 디아비콘만의 독특한 경영전략도 간과할 수 없다.

디아재단은 후원할 작가 그룹을 먼저 선정하고, 이들 작품을 집중적으로 구매한다. 이 재단이 선정한 작가 중에는 오늘날 미국을 대표하는 현대 작가가 다수 포함돼 있다. 실제 미국 화단에선 디아재단이 후원하는 작가라는 사실 자체가 성공을 의미하는 것으로 통한다. 디아재단의 후원을 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다른 미술품 수집가들이 해당 작가를 가만둘 리 없기 때문이다.

디아재단이 선정한 작가가 100년 후에도 최고의 작가로 인정받을지, 아니면 신기루처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요즘 작가 중에서도 고흐나 밀레처럼 미술사에 영원히 남을 작가가 있을 것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디아비콘은 그런 작가를 ‘찾고 만드는’ 미술관이다. 즉, 현대 작가의 인큐베이터라 할 수 있는데, 그간의 ‘성적’도 좋아서 지금 미국 화단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현대 작가 중 디아재단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작가가 별로 없을 정도다.

그 증거 중 하나는 1979년 디아재단이 앤디 워홀의 기념비적인 작품 ‘그림자(Shadows)’를 일괄 구입한 일이다. 모두 102점의 시리즈로 구성된 이 작품은 아마도 디아재단 소장품 중 최고의 걸작일 것이다. 앤디 워홀 생전에 이 그림을 구입함으로써 디아재단은 뛰어난 안목을 입증했다.



이 시리즈는 개별 작품 하나하나가 매우 크기 때문에 102점을 한자리에 전시할 수 있는 미술관은 그리 많지 않다. 필자는 2011년 가을 워싱턴DC의 허시혼 미술관(Hirshhorn Museum and Sculpture Garden)에서 이 시리즈가 모두 전시된 것을 관람하는 행운을 누렸다. 허시혼 미술관은 원통형으로 지어진 대규모 미술관인데, 원통형 벽을 한 바퀴 빙 돌아가며 이 시리즈를 전시했다.

디아재단은 1997년 디아비콘에 전시할 첫 작품을 구입했다.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 ·1939~ )의 조각 작품이었다. 이를 구입하기 위해 리지오 회장과 그의 가족은 200만 달러를 내놓았다. 세라는 두꺼운 철판을 조각 소재로 활용해 조각예술의 신기원을 연 주인공이다. 디아비콘은 세라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미술관 중 하나다.

포장지 공장에서 초현대미술 인큐베이터로

102점으로 구성된 앤디 워홀의 'Shadows' 시리즈.

대형 작품 위한 ‘맞춤형’ 전시실

포장지 공장에서 초현대미술 인큐베이터로

리처드 세라, 'Double Torqued Ellipse'.

미술관을 돌아다니다보면 깜짝 놀랄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조각 작품이 너무 커서 놀라고, 그다음엔 왜 조각 작품을 이런 식으로 만드는지 궁금함이 밀려온다. 그중 하나가 세라의 작품이다. 유조선 건조에 사용하는 두꺼운 철판을 둥그렇게 말아 세워놓은 대규모 타원형 작품인 ‘Double Torqued Ellipse’를 만나면 기겁할 수밖에 없다. 유조선 철판을 종이 말 듯 말았다는 것뿐만 아니라, 그 엄청난 크기에도 압도당한다.

이 작품은 너무 커서 가까이에서는 작품 전체를 감상할 수 없다. 또 실내라서 아주 멀리 떨어져 관람할 수도 없기 때문에 적당한 거리에서 목이 아플 정도로 고개를 뒤로 젖혀야 한다. 철판을 여러 겹으로 둥그렇게 말아 세워놨기 때문에 빙빙 돌면서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볼 수 있다. 철판은 빨갛게 녹이 슬어 말라버린 핏빛과도 같다. 왜 이런 식으로 작품을 만들었을까, 이것을 예술작품이라 할 수 있을까 싶다.

이 작품을 감상하면서 번뜩 떠오른 생각이 있다. 미국 말고 과연 어떤 나라에서 이런 작품 활동이 가능할까 하는 점이다. 두꺼운 철판으로 대형 작품을 만들려면 엄청난 비용이 들 것이다. 이런 작품 활동을 재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나라, 또한 이런 작품의 시장이 성립될 수 있는 나라가 몇 개나 될까. 예술 트렌드가 이런 식이라면, 세계 예술계도 결국 미국이 지배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그렇게 돼가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세라는 미국의 미니멀리스트 조각가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스페인계 아버지와 러시아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대학 졸업 후 한때 제철소에서 일했는데, 그 경험이 그를 철판 조각가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아버지도 샌프란시스코 조선소에서 철관공으로 일했다고 한다. 세라는 1961년부터 1964년까지 예일대 예술건축대학에서 수학한 뒤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공부를 계속했다. 이후 뉴욕으로 건너가 예술 활동을 이어갔다. 2008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선 그의 1983년 작품 한 점이 165만 달러에 팔린 바 있다. 세라의 작품은 주로 야외에 설치돼 있다. 디아비콘과 같은 곳이 아니라면 실내 전시는 불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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