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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에 손 내뻗은 이 세상 모든 장발장을 위해

“가족 때문에…” “배가 고파서…”

  • 김유림│채널A 사회부 기자 rim@donga.com

어둠에 손 내뻗은 이 세상 모든 장발장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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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에 손 내뻗은 이 세상 모든 장발장을 위해
자베르 경감은 촛대를 훔쳐 도망친 장발장을 20년 넘게 추격한다. 그가 신봉하는 것은 단 두 가지. 정직한 노동과 그에 따른 보상이다. 끝내 자베르 경감은 장발장을 붙잡지만, 그 순간 그는 더 큰 고뇌에 빠진다. 그가 상상해온 장발장과 실제의 장발장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장발장은 자신의 부를 더 가난한 사람과 나누고 있었다. 인생의 목표를 잃어버린 자베르는 끝내 어떤 결론도 내리지 못한 채 강물에 몸을 던진다.

“요즘 같은 때가 없었어.”

서울 노원경찰서 A경감은 크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20년 넘게 강력팀 언저리에서 온갖 ‘나쁜놈’들을 쫓아왔지만 요즘처럼 크고 작은 사건이 끊이지 않은 적이 없었다는 거다. 게다가 ‘이 시대 장발장’들은 첨단 휴대전화로 ‘무장’해 CCTV를 피하는 데는 도사다. 수법은 더욱 정교해지고 대범해졌다.

“모두들 평등하게 보고 느끼고 원한다는 거, 그게 우리를 가장 불행하게 만드는 것 같아. 모두들 휴대전화 갖고 실시간 뉴스 보잖아. 근데 거기서는 누구네 집값이 10억 원에서 12억 원으로 올랐다, 어쨌다 하고 있지만 정작 당장 월세 10만 원도 없는 사람들이 있거든. 그러면 ‘에잇, 이 정도야 죄도 아니다’ ‘막가보자’ 싶어지는 거지.”

지난해 경찰청이 발표한 ‘강·절도 금전소비 용도’에 따르면 2013년 발생한 절도범죄 중 ‘생활비’ 때문에 벌어진 사건은 26.6%. 절도범죄 4건 중 1건이다. 2년 전인 2011년 16.3%보다 10%포인트나 늘어난 수치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사는 게 팍팍하다보니 당장의 생계를 유지하고 필요한 물건을 사려는 ‘장발장형’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장발장형 범죄가 더 많이 일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안쓰러운 마음에, 혹은 금액이 적다보니 피해자들이 실제 사건을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다. 앞서 말한 서울 신림동 마트 피해자 역시 경찰에 사건을 신고하지 않았다. 피해를 본 가게 주인은 “처음에는 괘씸했지만 이내 ‘오죽했으면…’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주여 내 기도 들어주시옵소서.

젊지만 겁먹어 지쳐간 청춘을 집으로.

평화로 환희로 살아갈 아직 어린 청년.

집으로, 집으로, 집으로….

-‘레미제라블’ 수록곡 ‘집으로(Bring him home)’ 중에서

최근 ‘장발장’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상습절도범 등을 징역 3년 이상으로 가중처벌하던 일명 ‘장발장법’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린 것. 이전에는 절도 전력이 있으면 라면 하나를 훔쳐도 징역 3년 이상에 처할 수 있게 한 이 법은, 이제 효력을 잃었다.

이미 처벌받은, 혹은 수감 중인 장발장들이 이 소식을 듣고 술렁인다는 얘기도 들린다. 과거 이 법으로 가중처벌돼 확정판결을 받은 이들이 재심과 형사보상을 청구할 수 있게 됐기 때문. 재심을 받아 형량이 줄어들면 그만큼 보상금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있다.

하지만 법조계 관계자들은 이들의 희망이 현실이 되지는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 만약 재심을 청구하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에서 형법 등으로 공소장 변경은 가능할 테지만 실제로 형이 줄어들게 기존 판결을 바꾸기는 어렵다는 것. 자연히 형사보상을 받을 소지는 높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최근 ‘장발장은행’이라는 구호단체가 문을 열었다. 벌금형을 선고받았는데 돈이 없어 구류로 형을 살아야 하는 이들을 돕겠다는 취지다. 장발장은행은 신청자가 내야 하는 벌금만큼 돈을 무이자로 빌려준다. 혜택을 받는 사람은 교통신호 위반 벌금을 못 낸 일용직 노동자, 압류된 살림살이에 붙은 딱지를 훼손했다가 벌금 150만 원을 내야 하는 기초생활수급권자 등이다. 이들은 1년 넘게 천천히 돈을 갚으면 된다.

처음 이틀 동안 2000만 원이 모였다. 1000원부터 수백만 원까지, 사람들은 장발장에게 은촛대를 건네는 주교의 심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홍세화 장발장은행장은 “장발장은행 덕분에 1명이라도 불행한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10명의 수급자가 돈을 못 갚아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범죄자였으나 평생 선한 행동을 함으로써 자신의 죄를 갚으려 했던 그 사내, 장발장. 훔친 것은 초 하나였지만 그가 켠 촛불은 수많은 이웃에게 빛을 선물했다.

신동아 2015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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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림│채널A 사회부 기자 r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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