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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이 먹도록 뭐했죠?” 인종차별보다 아픈 연령차별

‘2말3초’ 대졸 구직자들의 ‘취업절벽’

  • 유설희 | 자유기고가 zorba8251@naver.com

“이 나이 먹도록 뭐했죠?” 인종차별보다 아픈 연령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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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과정에서 만난 20대 후반 이상 구직자들은 기업들이 구직난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늦어진 취업연령을 감안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또 취업절벽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만큼 정부도 나 몰라라 하는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세대 법학과를 나온 박모(30) 씨는 “대학 졸업 후 3년 동안 고3 수험생처럼 취업 준비에 매달렸는데 아직 직장을 못 구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기업이 생각하는 것처럼 내게 결격사유가 있어서 늦어진 게 아니다. 나이로 인한 차별이 상당히 작용하는 것 같다”고 한다.

유교문화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지적도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나온다. 성균관대 경영학과 출신의 김모(30) 씨는 “고용 사정 악화로 신입사원의 평균나이가 상승하고 있다. 그런데 기업은 어린 구직자만 선호한다. 이 모순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신입사원은 상사보다 나이가 어려야 한다’는 유교적 장유유서(長幼有序) 문화가 기업에 아직 강하게 남아 있다. 이 때문에 20대 후반 이상 취업준비생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이런 문화는 시대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여러 구직자는 “우리 기업들의 ‘연령차별’은 ‘인종차별’보다 더 심각하다”고도 말한다. 이는 해외 사례와 비교할 때 그리 과장된 주장이 아니다.

방송인 타일러 라쉬(미국)는 한 종편 프로그램에서 “한국의 ‘이력서 문화’는 미국에선 고소 감”이라고 꼬집었다.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의 경우 채용 이력서에 나이, 성별, 인종 같은 정보를 기입하지 않는다. 사진도 붙이지 않는다. 미국은 1967년 ‘고용상 연령차별금지법’을 만들었다. 기업이 나이 차별을 하면 무거운 벌금을 물린다.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최모(26) 씨는 “미국과 캐나다에선 성별, 나이, 인종을 묻지 않는 이력서 문화가 당연시된다”면서 “우리나라에도 이런 문화가 자리 잡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채용 때도 불리

“이 나이 먹도록 뭐했죠?” 인종차별보다 아픈 연령차별

취업준비생이 생각에 잠겼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고용노동부는 2007년 나이와 성별을 묻지 않는 개방형 표준이력서를 보급했다. 그러나 ‘권고’ 수준이었고 대부분의 기업은 이 권고를 따르지 않고 있다. 2009년 시행된 연령차별금지법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도 나이를 이유로 채용상 불이익을 주는 행위는 불법이다. 그러나 실제론 차별이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게 인권운동가들의 진단이다. 이들은 이런 관행을 뿌리 뽑으려면 개방형 표준이력서를 법으로 강제해야 한다고 본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기업이 사실상 취업 연령을 제한하는 것은 대학을 4년 만에 졸업하지 못하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나이에 의한 차별은 기업에도 도움이 안 되는 구시대적 관행”이라고 지적했다.

취업절벽에 몰린 청년들은 비정규직인 인턴직원 채용에서도 불이익을 당한다. 인턴 채용은 아예 졸업예정자나 재학생으로 대상을 한정하는 경우가 많다. 성신여대 국문과를 수료한 이모(27) 씨는 “인턴 경력으로 스펙을 쌓으려고 했지만 졸업예정자로 요건을 제한해 지원도 못했다”고 말했다. 서강대 철학과를 졸업한 김모(29) 씨는 “비정규직 사무원 자리는 나이 제한에 걸려 꿈도 꾸지 못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삼성그룹 직원 이모(31) 씨는 “인턴은 사실상 잡무를 담당하는데, 상사보다 나이가 많은 인턴이 들어오면 일을 시키기 곤란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남자 32세, 여자 30세’ 마감 시한에 걸쳐 있는 여러 구직자는 언젠가는 번듯한 직장을 얻겠다는 일념으로 현실을 인내하고 있었다. 부모가 여간 넉넉한 형편이 아니면 이들 대부분은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중앙대 법학과를 졸업한 강모(29) 씨의 일과는 이들의 전형적인 삶을 잘 보여준다.

강씨는 과외로 학자금 대출금과 생활비를 충당한다. 과외로 손에 쥐는 돈은 월 90만 원. 매달 30만 원이 학자금 대출 상환금으로 나가기 때문에 60만 원으로 한 달을 버텨야 한다. 그는 외출을 가급적 하지 않는다. 스펙을 쌓는 데 드는 각종 응시료, 인터넷 강의료 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영화관을 찾는 것도 사치다. 식사도 웬만해선 집에서 해결한다. 좋아하는 반찬은 두부. 싸고 양이 많아서다. 취업 준비를 위한 스터디그룹에는 꼬박꼬박 참석한다. 아는 취업준비생들과 커피전문점에 모여 정보도 교환하고 함께 공부한다.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몇 시간을 보낸다. 그는 “하루하루가 커피 맛처럼 쓰디쓰다”고 말한다.

귀족 취준생 vs 서민 취준생

취업준비생들은 자신들을 ‘귀족 취준생’과 ‘서민 취준생’으로 구분한다. 강씨는 서민 취준생에 해당한다. 귀족 취준생은 억 단위의 돈이 드는 의학전문대학원이나 법학전문대학원 진학을 우선 염두에 둔다. 어학연수에 1000만~3000만 원이 드는 등 4종 스펙(외국어 점수·자격증·공모전·어학연수)를 쌓으려면 상당한 비용이 투입되는데, 귀족 취준생에겐 별문제가 안 된다. 이들은 면접용 정장이나 헤어·메이크업에도 아낌없이 돈을 쓴다. 또한 강씨처럼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아도 돼 공부에 훨씬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있다. 부모의 넓은 인맥은 덤으로 작용한다.

‘신(God)의 백수’라 해서 ‘갓수’로 통한다는 이화여대 사학과 졸업생 이모(여·27) 씨는 “부모님으로부터 월 용돈으로 100만 원을 타 쓴다. 스펙 쌓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별도다. 부모님에게 과감하게 신세 지고 빨리 취업에 성공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연세대 중문과 재학생 서모(26) 씨는 “경제적 여유가 있을수록 외국어 능력이 좋고, 외국어 능력이 좋으면 좋은 직장을 구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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