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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

섬은 남아서 외롭게 견뎌낸다

‘실미도’, 그 지옥의 묵시록

  • 글·오동진 | 영화평론가 사진·김성룡 | 포토그래퍼

섬은 남아서 외롭게 견뎌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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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립무원의 섬. 그곳엔 사형수와 무기수 등으로 구성된 ‘죽음의 부대’가 있었다.
  • 김일성 암살을 위해 조국에 목숨을 바쳤다. 하지만 그들은 버려졌다. 그리고 지워졌다. 하룻밤 악몽처럼, 휙~!
섬은 남아서 외롭게 견뎌낸다
이때쯤이면 강우석이 나와야 한다. 그건 곧 실미도가 등장해야 한다는 얘기와 같다. 한국 영화사상 처음으로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의 배경이 된 섬, 실미도는 영화 ‘실미도’가 나온 2003년까지 32년간 감춰진 섬이었다. 아니, 금기(禁忌)의 섬이었다. 30년 넘게 거기에는 섬이 아예 없어야 했다. 사람들은 그 섬을 기억하지 말아야 했다.

그 긴 역사의 아우성과 영화를 만들던 소음을 생각하면 실미도는 꽤나 요란한 장소일 듯싶다. 영종대교에서 차로 1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는 잠진항. 실미도행 소형 페리에 차를 싣자 왠지 가슴이 설렌다. 마치 멀리 떨어진 미지의 섬으로 여행을 가는 느낌이다. 섬은 늘 정서상 거리가 느껴지는 존재다. 코앞에 있어도 저 멀리, 뚝 떨어져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곳엔 왠지 아름다운 여인들이 살고 있을 것 같은 착각도 든다. 미인도(美人島)이길 바라는 욕망이 부글거린다.

배에 차 한번 싣는 게 이처럼 색다른 기분을 느끼게 한다면 ‘가격 대비’ 훌륭한 위안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복잡하면서도 때론 참 단순하다. 육지는 지금 미국 대사가 괴한에게 습격당하는 등 난리북새통이다. 괴한은 한때 독립영화인이었다. 민중 소재의 영화를 기획하곤 했다. 그러나 성사된 작품은 한 편도 없다. 독립영화인들 사이에서도 그는 늘 외따로 떨어져 있던 사람이다. 그 울분이 저런 극단적인 행동을 만들어냈을까. 어쨌든 나는 지금 그 아수라장에서 벗어나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조금 상쾌해진다.

섬은 남아서 외롭게 견뎌낸다

영화 ‘실미도’의 한 장면.

‘설마’가 1000만 잡았다

섬은 남아서 외롭게 견뎌낸다

영화 ‘실미도’ 포스터

실미도에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무의도에 내린 뒤부터는 마음이 다시 차분해진다. 행락객들이 재잘거리는 소리를 뒷전으로 두고 해변을 따라 실미도로 들어가는 길. 모래사장에 찍히는 발자국만큼이나 마음속은 자꾸 ‘말없음’ ‘이만 총총’이 돼간다. 터벅터벅 같이 걷던 포토그래퍼 김성룡이 자꾸 뒤로 처진다. 그는 그대로, 나는 나대로 상념에 젖어 섬을 걷는다.



모래사장을 끊임없이 물었다 놨다 하는 파도는 아직 차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1968년 684 북파(北派)용 침투부대를 만들 당시, 이곳 실미도를 생각해낸 자가 과연 누구였을까. 그게 누구든 진실로 기가 막힌 곳이 아니었겠나. 지금처럼 물길과 뱃길이 자유롭지 않던 당시에 고립무원의 용병부대를 훈련시키기에 여기만한 곳이 또 어디 있었겠나. 사형수를 비롯해 모두들 어두운 과거를 지닌 자들로만 구성된 죽음의 부대. 일명 ‘주석궁 폭파부대’는 결코 어디에도 그 흔적을 남겨서는 안 될 존재들이었을 것이다.

2003년 개봉 당시 사람들은 왜 그토록 ‘실미도’에 열광했을까. 뭔가 빗장이 풀린 듯, 봇물이 터진 듯 사람들은 너도나도 극장으로 몰려들었다. 기억이 난다. 당시 이 영화의 제작과 배급을 맡은 ㈜시네마서비스의 김인수 대표와 지방에서 올라오는 차 안에서 얘기를 나누던 중 그가 말했다. “관객 수가 얼마까지 갈지 지금으로선 전혀 짐작이 안 갈 정도야. 이런 적이 없었어.”

그때만 해도 관객 1000만 명을 넘길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으니까. 설마 1000만이라는 숫자가 현실화할 것이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그건 ‘가능한’ 수치가 아니었다. 그런데 영화는 결국 그걸 넘어섰다. 2003년 말 개봉한 ‘실미도’는 이듬해 2월까지 상영이 이어지면서 최종적으로 1108만여 명의 관객을 모았다. 관객들의 ‘입소문’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진부하고 촌스러운 표현이지만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말이 얼마나 실화에 근거한 것인지를 보여준 사례였다.

벽장 뒤 현대사

영화 ‘실미도’의 주축이 된 일명 ‘실미도 사건’을 여기서 굳이 복기할 필요가 있을까만, 신세대 독자들을 위해 잠시 시간을 갖자면 내용인즉 이렇다.

1968년 북한은 남한을 무력 적화통일하겠다는 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기회를 엿보던 북한은 김신조를 포함한 21명의 무장공비를 침투시키는 도발을 감행했다. 특수작전 부대로 철저하게 훈련된 이들은 허술하던 남한 수비망을 뚫고 대통령의 거처인 청와대 뒷산까지 공격해 들어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도발은 실패로 끝나고, 당시 유일하게 체포된 김신조에 의해 ‘박정희의 목을 따러 왔다’는 그들의 목적이 세상에 드러났다.

실미도 특수부대는 이런 상황에서 북한 김일성 정권이 했던 것과 똑같이 북파 공작원을 훈련시키기 위해 창설됐다. 사형수나 무기수로 구성된 실미도 특수부대는 지옥 같은 훈련을 받고 북한 침투를 기다리지만 한반도를 둘러싸고 급변하던 국제정세는 이 같은 강경보수 일변도의 대북 군사정책을 수면 아래로 가라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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