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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비자금 신고 ‘불처벌’이 ‘증세 없는 복지’ 묘책?

국세청 vs 검찰청 조세전쟁

  • 이정훈 편집위원 | hoon@donga.com

해외 비자금 신고 ‘불처벌’이 ‘증세 없는 복지’ 묘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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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모델, 싱가포르 모델

택스 헤이븐으로 큰 성공을 거둔 곳으로는 싱가포르와 홍콩이 꼽힌다. 말레이시아는 영국의 식민지였는데, 그때 말레이시아의 중심이 싱가포르였다. 당시 장사를 잘하는 중국인들이 싱가포르로 몰려왔기에, 싱가포르는 ‘화교(華僑)의 천국’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영국은 대부분의 식민지에서 철수했다.

1957년 말레이시아도 독립했다. 그리고 2년 뒤 ‘말레이시아의 눈’인 싱가포르가 자치를 주장했다. 화교들은 ‘못사는’ 말레이인(人)들이 권력을 잡으면, 부(富)를 가진 그들을 탄압할 것으로 보고 ‘갈라서기’를 결심한 것. 말레이시아는 싱가포르를 주저앉히려 했다. 그러자 인구와 무력이 절대적으로 약한 화교들이 영국의 보호령으로 되돌아간다는 결정을 했다.

당시 화교 세력의 중심 인물이 리콴유(李光耀) 총리다. 리 총리는 싱가포르에서는 누구든 회사(법인)를 세울 수 있게 하고, 그 회사에 초저율의 세금을 부과했다. 일종의 박리다매(薄利多賣) 전술을 구사한 것인데, 이것이 대성공을 거둬 싱가포르를 발전시킬 재원을 확보하게 된다. 그리하여 말레이시아의 공격에 맞설 수 있다는 자신이 생기자 1965년 영국보호령에서 벗어나 다시 독립했다.

싱가포르는 천혜의 항구를 갖고 있어 무역거래 자금이 몰려올 수밖에 없었다. 차츰 싱가포르는 금융의 중심지가 돼갔다. 물류와 자금이 늘어나면 유동인구도 많아진다. 싱가포르의 창이 공항은 곧 동남아의 허브 공항이 됐다. 그러한 물류가 서비스업을 발전시켜 또 다른 부를 창출했다.



리콴유 정부는 그 자금으로 복지정책을 펼쳤다. 어느 나라든 서민이 가장 아쉬워하는 것은 ‘살 만한 집’ 마련이다. 돈 많은 싱가포르 정부는 82~99㎡(25~30평)대 아파트(HDB)를 많이 지어, 거의 모든 서민에게 영구 임대하는 형식으로 제공했다. 학교 시설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고 무상에 가깝게 교육받을 수 있게 했다. 교육의 질도 높였다.

그리고 강력한 치안제도를 구축해 범죄를 막았다. 그러하니 싱가포르에서는 소요가 일어날 일이 없다. 사회가 안정되고 세율이 낮으면 외국 기업이 많이 들어오게 마련이다. 자연히 싱가포르는 번영을 이어갔다. 싱가포르는 영국이 만들어준 택스 헤이븐 체제 덕분에 독립을 유지하고 발전했으니 이 체제의 신봉자를 자처한다.

9·11테러와 反 택스 헤이븐

이러한 싱가포르를 미국이 못마땅해 했다. 국제범죄와 관련된 돈이 ‘자유로운’ 싱가포르에 들어가 세탁 과정을 거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2001년 9월 11일 미국은 가장 지독한 국제범죄인 테러를 당했다. 미국 정부는 바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테러와 관련된 자금 유통을 막기 위한 노력을 펼쳤다. 택스 헤이븐 제도를 운영하는 나라들을 쪼아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하여 일어난 것이 우리에게도 익숙한 ‘방코델타아시아(BDA)’ 사건이다(2005). 마카오도 택스 헤이븐 중 하나인데, 그곳의 은행인 BDA가 북한이 만든 위조달러를 유통해주다가 미국 재무부에 발각됐다. 마카오는 힘이 약한 데다 BDA의 불법 행위가 명백하게 드러났으니 미국의 압력에 금방 손을 들어버렸다. BDA는 폐쇄되고 이 은행이 갖고 있던 북한 자금에 관한 자료는 모두 미국으로 넘어갔다.

미국은 원조 택스 헤이븐인 스위스도 압박했다. 스위스는 저항했지만, 소련 붕괴 후 절대 강자가 된 미국을 당해낼 수 없었다. 택스 헤이븐에 들어간 돈은 세금을 내지 않는다. 미국은 스위스의 최대 은행인 UBS를 상대로 ‘탈세를 방조한다’는 혐의로 형사소송을 걸었다.

패소 가능성이 높아지자 UBS는 이 소송 철회를 조건으로 자기 은행에 계좌를 만든 미국인 명단을 미국 국세청에 넘겼다(2009). 이후 스위스는 스위스 은행에 계좌를 만들려는 모든 이의 신분을 확인해 미국인이 있으면, 미 국세청에 그 이름을 통보하기로 미국과 약속했다. 이어 다른 나라와도 유사한 협정을 맺었다. 스위스 비밀계좌제도가 무너지게 된 것이다.

스위스와 미국이 맺은 이 협정이 바로‘조세정보교환협정’이다. 미국은 많은 나라들이 서로 협정을 맺게 했다. 이 협정을 맺은 나라들은, 상대국 국민이 자국 은행에 계좌를 만들면 바로 그 사실을 상대국에 통보한다. 한국도 많은 나라와 이 협정을 맺었다. 그러자 택스 헤이븐에 국가 경제를 다 걸어놓은 소국들이 위기를 맞게 되었다.

싱가포르와 홍콩 스위스는 치안이 좋고 미국에 협조하기에, 괜찮은 택스 헤이븐에 속한다. 그러나 영국령 소국에 만들어진 택스 헤이븐들은 부실했다. 더 못한 곳도 있다. 앵귈라 앤티가 바부다 아루바 등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제3세계 소국과 다른 식민지에 뒤늦게 만들어진 택스 헤이븐이 그것들이다.

조세피난처 와해 공작

지금 중동에서는 테러 세력인 IS(이슬람국가)가 대단한 힘을 발휘한다. 이들의 위협 앞에 놓인 중동국가들과 미국이 품은 의문은 ‘IS가 어떤 자금으로무기를 마련했을까’이다. 이는 아직도 검은 돈이 유통되는 경로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 경로는 택스 헤이븐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국은 CIA 등 정보기관을 동원해 그곳에 어떤 자금이 들어오는지 추적했다. 이를 위해 CIA는 그곳에 서류상 회사와 비밀계좌를 만들었다. 그리고 파악한 사실을 교묘한 방법으로 밝혔다. 2013년 4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는 ‘CIA도 조세피난처를 이용한다’고 폭로하며, 조세피난처에 비밀계좌를 개설한 세계 각국 사람의 명단을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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