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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와 미술관

미국의 대영박물관 꿈꾼 ‘영국 양반’의 자존심

보스턴 미술관

  • 최정표 |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jpchoi@konkuk.ac.kr

미국의 대영박물관 꿈꾼 ‘영국 양반’의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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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가보지도 않고 기부

미국의 대영박물관 꿈꾼 ‘영국 양반’의 자존심
이보다 더 ‘화끈한’ 부자들도 있다. 역시 보스턴 거부인 카롤릭 부부다. 미국 작품 수집에 집착한 부부는 수집품을 세 차례에 걸쳐 대량으로 미술관에 기증했다. 1939년에는 18세기 미국 작품, 1945년엔 19세기 미국 회화, 그리고 1962년에는 19세기 미국의 수채화와 드로잉을 기증했다.

카롤릭 부부와 보스턴 미술관의 인연은 부부 사이의 묘한 사랑에서 시작됐다. 직업 오페라 가수이면서 미술품 애호가이던 맥심 카롤릭(Maxim Karolik·1893~1963)은 보스턴 최고 부자 가문의 딸 마사(Martha Karolik·1858~1948)와 결혼했다. 마사는 미국 역사상 첫 번째 백만장자로 기록된 보스턴 거상의 증손녀로 그의 취미도 미술품과 골동품 수집이었다.

마사는 맥심보다 35세나 많았다. 1928년 결혼할 때 신랑은 35세, 신부는 70세였다. 요즘 시각으로 봐도 이상한 결혼인데, 하물며 100년 전이야 어땠을까. 세인들의 입방아가 끊이지 않은 가운데 이들의 결혼생활은 마사가 90세로 별세할 때까지 20년 동안 지속됐다. 세인의 시선이야 어쨌건 부부는 서로 사랑했고, 미국 미술에 대한 깊은 애정을 공유했다. 미국 작품을 수집하면서 보스턴 미술관의 자문을 구했고, 이렇게 수집한 작품들을 보스턴 미술관에 기증했다. 미술관 기증을 전제로 작품을 수집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뉴욕의 유명 변호사 포사이드 윅스(Forsyth Wickes)는 800점이 넘는 유럽 명품을 기증했다. 특기할 점은, 그가 한 번도 보스턴 미술관에 가본 적이 없다는 사실. 큐레이터의 설득을 흔쾌히 받아들여 기증을 결심했다고 한다. 보스턴 미술관의 진가를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윅스의 수집품은 미국의 10대 명(名)수집품에 든다. 그의 소장품은 1965년 보스턴 미술관으로 옮겨졌는데, 이를 전시하기 위해 미술관은 40년 만에 대대적인 확장공사를 벌였다.



테오도라 윌보라는 여인도 가본 적 없는 보스턴 미술관에 많은 작품과 70만 달러를 기부했다. 화가이자 하버드대 미술사 교수 덴먼 로스도 무려 1만1000여 점의 수집품을 기증했다. 로스의 기증품은 지역적으로 유럽 및 아시아를 망라할 뿐만 아니라, 회화에서 도자기까지 전 예술 영역을 아우른다. 로스는 보스턴 미술관 이사회 멤버로도 40년 이상 봉사했다.

모네 팔아서 산 남성 누드

미국의 대영박물관 꿈꾼 ‘영국 양반’의 자존심


보스턴 부자들은 유럽 인상파 그림도 열성적으로 수집했다. 이 그림들 역시 보스턴 미술관으로 향했다. 보스턴 미술관이 그런대로 인상파 그림을 많이 소장할 수 있었던 이유다.

보스턴 미술관엔 아시아 작품이 유난히 많다. 중국은 물론 한국 작품도 상당수다. 특히 일본 작품이 아주 많아, 일본 나고야에 보스턴 미술관의 자매 미술관까지 세웠을 정도다. 이런 ‘특수관계’에는 나름의 역사적 배경이 있다. 1800년대 말 보스턴 출신의 세 사람이 일본으로 건너가 근대화 정책을 자문하면서 일본의 다양한 예술품을 수집하기 시작했고 훗날 모두 보스턴 미술관에 기증했다.

동물학자 에드워드 모스는 1877년 해양동물을 조사하러 일본에 갔다가 일본 도자기에 매료돼 6000점이 넘는 도자기를 체계적으로 수집했다. 모스의 추천으로 1879년 일본으로 건너간 어니스트 페놀사도 도쿄대에서 철학과 정치학을 가르치며 일본 그림 2000여 점을 수집했다. 윌리엄 비겔로는 모스의 강의를 들은 인연으로 그와 함께 1882년 일본에 갔다. 비겔로는 일본에서 1만5000여 점의 그림, 조각, 기타 장식물을 수집했고 1만여 점의 우키요에(浮世繪) 판화, 드로잉, 삽화책 등도 사들였다.

보스턴 미술관이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은 1882년, 이 세 사람은 자신들의 수집품이 궁극적으로는 보스턴 미술관으로 가야 한다고 합의했다. 그리고 1890년 미술관에 공간이 마련되자 일본 예술품을 모두 미술관에 기증했다.

인상파 화가들이 그린 여자 누드는 많다. 그러나 남자 누드는 극히 드물다. 당시에는 남성의 육체를 화폭에 담는 것이 일반적인 도덕률에 맞지 않았다. 그러나 구스타프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는 목욕을 마치고 타월로 등을 닦고 있는 근육미 넘치는 남성 누드를 대담하게 그렸다. ‘목욕실 남자(Man at His Bath)’다. 뒷모습이긴 해도 남성 누드의 진가가 한껏 발휘됐다.

1884년 카유보트는 이 그림을 벨기에 브뤼셀에 전시했는데, 남자 누드에 대한 거부감이 거세 철거할 수밖에 없었다. 이 그림은 카유보트가 죽은 뒤 그의 상속자들에게 넘겨졌다가 1967년 스위스의 한 개인 수집가에게 팔렸다. 보스턴 미술관은 이 그림을 빌려와 전시했는데, 소장하고 싶은 욕망이 간절했다. 하지만 살 돈이 없었다. 남자 누드 그림을 사라며 돈을 기부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미술관은 결단을 내렸다. 다른 그림들을 팔기로 한 것. 이런 방식은 다른 미술관들도 가끔씩 구사한다. 대어를 건지고자 ‘송사리’ 몇을 포기하는 것이다. 미술관은 소품 8개를 팔기로 했다. 그런데 그 소품이 모네, 르누아르, 피사로, 시슬리, 고갱 등 인상파 최고 작가의 작품으로 독지가들로부터 기증받은 것들이었다. 당연히 비판이 거셌다. 이들이 카유보트보다 더 유명한 작가들인 데다 기증자에 대한 예의도 아니었기 때문. 그러나 ‘목욕실 남자’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았다.

논란 속에서 미술관은 2011년 11월 소더비 경매에서 8점을 팔아 2200만여 달러를 마련했다. 그리고 1500만 달러 이상을 지불하고 카유보트의 그림을 사들였다. ‘목욕실 남자’는 보스턴 미술관이 확보한 첫 인상파 누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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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표 |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jpchoi@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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