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호

과학

참치·햄 등 캔 통조림은 전쟁의 산물

양철, 알루미늄, 레토르트…저장식품 용기 발전史

  • | 강양구 지식큐레이터 imtyio@gmail.com

    입력2018-04-08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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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만 빼놓고 다들 지루해하는 군대 이야기부터 하자. 20년 전 강원도의 한 육군 부대에서 2년 2개월간 복무했다. 군 생활 가운데 어느 하나 지겹지 않은 게 없었지만, 가장 지겨운 일은 야외 훈련이었다. 특히 얼굴에 위장 크림을 바르고, 모의 전투를 하는 게 제일 싫었다. 잠도 제대로 못 잘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먹는 게 부실했다. 

    훈련 때마다 몇 끼니를 먹어야 하는 ‘전투 식량’이 문제였다. 그때는 말라비틀어진 밥알을 물에 불려서 먹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그 전투 식량 맛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지금은 사병 월급이 오른 만큼이나 전투 식량 맛도 나아졌을까? 아무튼 맛없는 전투 식량을 먹으면서 궁금했다. 왜 차라리 통조림을 하나씩 넣어주지 않는 걸까? 

    놀랍게도 최초의 전투 식량은 통조림이었다.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전쟁 영웅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769~1821)가 등장한다. 나폴레옹은 타고난 군인이었다. “군인은 위장(胃臟)으로 전진한다.” 그는 군인을 먹이는 일이야말로 전쟁의 승패를 가른다고 보았다. 그런데 전시에 군인을 잘 먹이는 일은 불가능하다.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 통조림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통조림의 아버지, 나폴레옹

    1795년, 나폴레옹은 군대를 먹이는 데 도움이 되는 먹을거리 저장 기술을 개발하는 사람에게 사비를 털어 상금을 준다고 선언했다. 상금으로 건 1만2000프랑은 당시 왕의 몸값에 해당하는 큰돈이었다. 당연히 한몫 잡아볼 생각에 여럿이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바로 이때 파리 동쪽의 작은 마을에서 제과점을 운영하는 니콜라 아페르가 나섰다. 

    1804년, 연구를 거듭한 끝에 아페르는 고기나 채소를 오랫동안 보관할 방법을 개발했다. 유리병에 음식을 담고 나서 캔버스 천을 덮고 삶은 뒤 코르크 마개로 밀봉하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하면 식품이 상하지 않아서 저장 기간을 크게 늘릴 수 있었다. 고온 세균 살균 덕분이었지만 아페르도 나폴레옹도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에는 관심이 없었다. 



    단 이렇게 아페르가 개발한 ‘병조림’에는 심각한 단점이 있었다. 유리가 작은 충격에도 쉽게 깨졌다. 당시 나폴레옹의 프랑스군과 전쟁을 치르던 영국은 철판에 주석을 입힌 양철을 개발한 터였다. 1810년, 영국 피터 듀랜드는 양철 용기에 식품을 넣고 밀봉한 다음 삶으면 유리병보다 값도 싸고 내구성 면에서 훨씬 낫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바로 이때 말 그대로 ‘통조림’이 세상에 등장했다. 통조림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can’이나 ‘tin’은 모두 양철통을 뜻하는 ‘tin canister’에서 온 말이다. 이렇게 최초의 통조림을 개발한 사람은 영국의 듀랜드다. 하지만 통조림의 기원을 말하는 자리에서는 항상 듀랜드보다 병조림을 개발한 아페르와 그의 후원자 나폴레옹이 등장한다. 

    이렇게 전쟁 중에 세상에 등장한 통조림은 20세기 초반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더 발전했다. 이 시점에 등장한 통조림 음식의 대명사 가운데 하나가 ‘스팸’이다. 통조림이 전투 식량을 넘어 세계 곳곳 보통 사람의 식탁을 차지하게 된 데는 스팸의 역할이 컸다. 

    미국에서 정육업체를 경영하던 제이 호멜은 제1차 세계대전 때 의복과 식량 공급을 맡은 병참 장교로 프랑스에서 복무했다. 이때 호멜은 군인에게 먹을 만한 고기를 공급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았다. 당시 미군은 대서양을 가로질러 군인에게 고기를 대량 공급하는 일 때문에 골치를 썩이고 있었다. 

    이 경험을 염두에 두고 호멜은 전쟁이 끝난 뒤 여러 형태의 고기 통조림 개발을 시도했다. 가장 성공작은 1936년에 나왔다. 그는 잘 팔리지 않는 돼지고기 어깨 살을 활용할 방법을 찾았다. 일단 뼈를 발라낸 조각난 어깨 살에다 햄을 만드는 돼지고기 뒤쪽 넓적다리 살을 섞어서 갈았다. 여기에 물과 소금을 넣으니 분홍색 반죽이 나왔다.

    영미 군대가 주목한 ‘스팸’

    가볍고 휴대가 간편하며 조리할 필요가 없는 통조림 음식은 세계대전 당시 전장에서 큰 환영을 받았다. [pixabay]

    가볍고 휴대가 간편하며 조리할 필요가 없는 통조림 음식은 세계대전 당시 전장에서 큰 환영을 받았다. [pixabay]

    사람들은 잘게 썬 고기보다 크고 넓적한 것을 좋아했다. 이 분홍색 반죽을 양철통에 넣고 통조림을 만들어 먹어봤더니 햄 비슷한 맛이 나고 조리할 때 크기도 컸다. 호멜은 고기 색깔이 까맣게 변하지 않도록 아질산나트륨을 첨가했다. 몇 년간 보관해도 썩지 않은 이 독특한 햄의 이름은 ‘스파이스드 햄(Spiced Ham)’이었다. 

    처음에 이 새로운 햄은 인기가 없었다. 사람들은 양철통에서 꺼낸 ‘고기인 듯 고기 아닌 고기 같은’ 햄을 의심했다. 이름을 스파이스드 햄을 줄여서 ‘스팸’으로 바꾸고 이런저런 마케팅을 시도해도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그러다 제2차 세계대전이 터졌다. 미국은 일본의 진주만 폭격(1941년 12월 7일)을 계기로 이 전쟁에 뛰어들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서부전선의 참상을 지켜봤던 호멜은 참전을 반대하는 반전주의자였다. 하지만 일개 정육업자가 전쟁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 전쟁은 그의 회사와 스팸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호멜은 미국이 참전하기 전부터 영국군에 고기를 공급하기 시작했는데, 군대가 주목한 전투 식량용 고기가 바로 스팸이었다. 

    스팸의 장점은 한둘이 아니었다. 가벼워서 휴대가 쉬웠다. 통조림이니 상할 염려가 없었다. 군인은 굳이 조리하지 않고도 단백질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 이 모든 장점을 압도하는 한 가지 장점이 또 있었다. 값이 쌌다! 언제나 군대는 싼 걸 좋아하고, 애초 안 팔리는 부위(돼지 어깨 살)가 원료인 스팸은 그 조건을 딱 만족시켰다. 

    1939년부터 1944년까지 스팸 생산량의 90%가 군대로 향했다. 이 기간에 약 1억1300만 개의 스팸이 군인과 함께 전쟁터를 누볐다. 그럼 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어땠을까. 군대에서 스팸을 지겹도록 먹은 다수의 군인은 전쟁이 끝나고도 이 통조림 고기를 끊지 못했다. 하와이와 태평양의 섬 등 미군이 주둔하던 곳에서 스팸은 일반인도 찾는 통조림이 되었다. 

    이제 스팸은 세계 100개국 이상에서 구할 수 있는 통조림 음식의 대명사다. ‘스팸 초밥(스팸을 얹고 김을 두른 초밥)’부터 부대찌개까지 스팸을 이용한 지역 맞춤 요리도 곳곳에서 등장했다. 한국에서도 스팸은 뒤늦게 등장한 참치와 함께 통조림의 대명사가 되었다. 명절 전날이면 버스나 지하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팸 선물 상자를 보라! 

    사실 스팸은 건강에 좋지 않다. 스팸 작은 통에 성인 한 명이 하루에 섭취해야 할 지방과 나트륨 총 권장량의 3분의 1이 들어 있다. 스팸을 많이 먹으면 혈압이 높아지고 비만 위험도 커진다. 심지어 미군이 주둔했던 태평양 섬나라의 비만도가 세계 평균보다 높은 이유를 스팸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안타깝게도 군대는 열량만 신경을 썼지 건강은 안중에 없었다.

    미군과 NASA의 합작품, 레토르트 식품

    19세기 유럽 군대는 통조림을 전투식량으로 사용했다. [pixabay]

    19세기 유럽 군대는 통조림을 전투식량으로 사용했다. [pixabay]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통조림 덕을 톡톡히 본 미군은 휴대용 전투 식량 개발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그러면서 통조림보다 훨씬 더 효과적인 전투 식량은 없을지 고민했다. 통조림은 단단해서 안전하고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지만, 부피가 크고 무거웠다. 전투병이 휴대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미군에 이어서 미 항공우주국(NASA)도 휴대용 식량 개발에 가세한다. 1958년 당시 소련과 벌인 우주 개발 경쟁 때문에 만들어진 NASA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1961년 5월 “1960년대가 끝나기 전까지 미국인을 달에 보내겠다”고 선언하면서 더욱 바빠졌다. 인간을 달에 보내려면 해결해야 할 과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우주 식량이었다. 

    미군과 NASA는 양철통을 대신할 먹을거리 포장재로 플라스틱에 주목한다. 플라스틱은 양철통과 달리 부피가 작고 가벼웠다. 하지만 결정적인 단점이 있었다. 열에 약했다. 섭씨 110~120도의 고온에서 일정 시간(4분) 이상 살균해야 하는 제작 공정을 염두에 두면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하지만 미군과 NASA의 간절함은 이런 단점을 극복하게 했다. 1960년대에 플라스틱 합성수지 필름이나 알루미늄을 여러 층으로 접착해 주머니 형태로 만든 ‘레토르트 파우치’를 개발한 것이다. 레토르트는 애초 고온 고압으로 병조림이나 통조림을 살균하는 통을 의미했다. 이 레토르트에서도 데울 수 있는 주머니가 바로 레토르트 파우치(주머니)다. 

    레토르트 파우치는 앞서 언급했듯이 폴리에스테르(외부 코팅), 나일론, 알루미늄 포일, 폴리프로필렌(식품 접촉) 등의 플라스틱 필름과 알루미늄을 여러 층으로 쌓은 포장재다. 이런 포장재로 만든 레토르트 파우치는 가볍고 부피가 작은 플라스틱 포장재의 장점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열에도 강해 통조림용 통을 대신하기 안성맞춤 포장재다. 

    레토르트 파우치가 입에 안 붙는 독자라면 마트나 편의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3분 카레’나 ‘3분 짜장’ 같은 먹을거리의 포장재를 떠올리면 된다. 레토르트 식품은 통조림처럼 살균 밀봉 식품이기 때문에 오래 보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칫하면 손을 다칠 수 있는 통조림과 달리 개봉도 쉽다. 

    더구나 조리된 음식을 레토르트 파우치 안에 그대로 담았다가 데워서 먹을 수가 있어서 전투 식량이나 우주 식량 소비자의 다양한 욕구도 만족시킬 수 있다. 군대가 혹할 만한 또 다른 장점도 있다. 통조림보다 포장비가 저렴한 것이다. 또 제조 과정에서 소비하는 에너지의 양도 통조림과 비교하면 4분의 1 수준이다.

    레토르트 식품은 안전한가

    이렇게 군대와 NASA가 공동으로 개발한 레토르트 파우치는 곧바로 일상생활에 들어왔다. 지난 수십 년간 다양한 형태의 레토르트 식품이 개발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의 레이저 기술에 기원을 두고 있는 전자레인지의 개발과 보급도 레토르트 식품 성장에 도움이 되었다. 레토르트 식품이 간편 조리 식품의 대세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최초의 레토르트 식품은 무엇일까. 앞에서 힌트를 줬다. 요즘 ‘착한 기업’의 대명사로 꼽히는 오뚜기다. 오뚜기는 1981년 전자레인지에 데워 바로 먹을 수 있는 ‘오뚜기 3분 카레’를 출시했다. 한국 최초의 레토르트 식품이다. 오뚜기 3분 카레는 첫해에만 약 400만 개가 팔렸다. 

    그렇다면 정말 레토르트 식품은 열에 안전할까. 레토르트 식품을 끓는 물이나 전자레인지로 데울 때 플라스틱(환경호르몬)이 미량이라도 녹지는 않을까. 일단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그런 일은 없다”고 단언한다. 식약처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공동으로 만든 자료(‘레토르트 식품 포장’)는 이렇게 설명한다. 

    ‘레토르트 파우치에 쓰이는 폴리프로필렌, 폴리에스테르 같은 플라스틱 필름은 열에 강하게 가공한 것이어서 120℃ 이상의 고온 살균 과정에서 녹아서 음식물에 섞여 들어갈 우려가 없다. 또 들어 있는 음식물 온도도 대부분 100℃, 일부 기름이 들어간 것도 110℃가 한계여서 고온 처리하는 동안 (플라스틱이) 녹아 음식물에 섞여 들어갈 우려는 없다.’ 

    최초의 통조림이 나폴레옹 전쟁에서 시작되었듯이 한국의 통조림도 전쟁과 떼려야 뗄 수가 없다. 일본은 1892년 전남 완도에서 처음으로 전복 통조림을 제조하고부터 러일전쟁, 중일전쟁, 제2차 세계대전 때까지 한국의 수산물을 통조림으로 싹쓸이했다. 광복 후에도 6·25전쟁, 베트남전쟁 등이 통조림 산업의 발전에 한몫했다. 

    그러다 1982년 동원산업이 참치 통조림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출시했다. 1983년에는 롯데, 제일제당이 각각 스팸을 본떠 햄 통조림을 내놓았다. 1987년에는 제일제당이 아예 호멜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스팸을 생산 판매하기 시작했다. 참치와 햄이 주도하는 통조림 전성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 것이다.

    통조림 vs 레토르트 식품 최후의 승자는?

    앤디 워홀이 실크스크린으로 찍어낸 ‘캠벨 수프 통조림’ 작품. [박해윤 기자]

    앤디 워홀이 실크스크린으로 찍어낸 ‘캠벨 수프 통조림’ 작품. [박해윤 기자]

    오뚜기 3분 카레로 시작한 레토르트 식품의 반격도 거세다. 맞벌이 가족, 1인 가족, ‘혼밥’ 문화 등의 시대 변화와 맞물려 간편식 수요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원조 장기 보존 식품이던 통조림 수요가 주춤하는 사이에 레토르트 식품이 그 자리를 야금야금 공략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애초 캔에만 담았던 참치, 스팸 등을 레토르트 파우치에 담는 변화도 시작되었다. 따져 보면 특별한 변화도 아니다. 가다랑어(80%)나 황다랑어(20%)를 잡자마자 냉동해 공장으로 옮긴 다음 통째로 쪄서 발라낸 살코기를 캔 대신 레토르트 파우치에 담고서 고온 살균하면 되니까. 

    다만 1903년 미국에서 처음 참치 통조림을 만들고 나서 한 세기 이상 지속한 참치 통조림의 생산 관행을 깨는 일은 쉽지 않다. 또 레토르트 파우치의 공격에 통조림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양철통을 가벼운 알루미늄 통으로 바꾸고, 쉽게 딸 수 있는 장치 등이 보강되었다. 애초 레토르트 식품의 영역처럼 여겨졌던 완전 조리 식품을 담은 통조림도 늘고 있다. 

    나부터도 양쪽 다 즐기는 중이다. 군대에서 전투 식량 욕을 그렇게 해놓고선 몇 년 전부터 그럴듯한 레토르트 식품을 몇 번 접하고 나서 팬이 되었다. 최근에는 완전히 조리된 매콤한 닭볶음탕이나 안동찜닭 통조림에 밥을 비벼 먹는 맛도 쏠쏠하다. 둘 다 웬만한 식당 음식보다 낫다. 

    이러다가는 애초 전투 식량으로 시작한 통조림과 레토르트 식품이 보통 사람의 식탁을 점령하는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그나저나 통조림과 레토르트 식품 가운데 최후의 승자는 어느 쪽이 될까. 내심 기대하는 일은 통조림의 양철통이나 알루미늄 통 혹은 레토르트 파우치를 대신할 새로운 포장 용기의 등장이다. 어이쿠, 그러려면 또 전쟁이 일어나야 하나? 

    그나저나 이렇게 통조림이나 레토르트 식품이 근사해진 상황에서 군대의 전투 식량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지금은 맛도 영양도 나아졌을까? 현역 또는 예비역 국군 장병의 후기를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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