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호

설채현의 ‘반려견 마음 읽기’

그들을 위한 첫걸음

반려견 행복 위해 내 불편 감수하기

  • 입력2018-07-08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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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들어 강아지의 행동 문제에 관심을 갖는 반려인이 늘고 있다. 주위를 둘러봐도 반려견 대부분이 심각하든 아니든 한두 가지 행동 문제를 갖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반려견의 행동 문제를 교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게 하기 위한 TV 프로그램도 많아지는 추세다.
    반려견이 행복하려면 5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1.부적절한 영양 관리로부터의 자유 2.불쾌한 환경으로부터의 자유 3.신체적 고통으로부터의 자유 4.정신적 고통으로부터의 자유 5.자연스러운 본능을 발휘하며 살 자유 등이다. 

    신기하게도 반려견 문화는 이 5가지 조건의 순서대로 흘러간다. 반려견이라는 이름이 생기기 전, 개는 사람이 버린 음식물을 먹고 살았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영양적으로 조금 더 조화롭고 건강에 도움이 되는 사료를 개에게 주기 시작했다.(요즘은 사료에 대한 불신으로 직접 반려견용 식사를 만들어주는 분들도 있다.) 

    그다음 변화는 집밖에 묶여 살던 개가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들이 불쾌한 환경으로부터의 자유를 갖게 된 것이다. 그 후에는 보호자들이 비싼 병원비를 감수하고 개의 아픔과 신체적 고통을 치료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최근 몇 년간 개의 정신적 고통으로부터의 자유와 자연스러운 본능을 발휘하며 살 자유에 관심을 기울이는 분위기가 사회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나는 이 4, 5번 조건이 충족될 때, 즉 사람이 개의 행복에 진정으로 관심을 기울일 때 비로소 반려견 문화가 완성된다고 본다.

    진정한 반려동물

    개인적 의견으로는 아직 우리나라에 진정한 반려동물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반려견의 행동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보호자 중에도 상당수는 강아지보다 자신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강아지의 정신적 고통을 없애주고 자연스러운 본능에 맞게 살도록 해주려는 마음보다 자신의 불편함을 해소하고자 하는 쪽이 더 크다는 얘기다. 

    그래서 나는 분리불안을 가진 반려견을 데리고 병원을 찾는 분들께 꼭 이렇게 말한다. ‘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힘든 존재는 이웃의 민원 때문에 고통 받는 보호자님이 아니다. 보호자님이 없을 때 사람의 공황장애와 같은 극도의 불안과 공포를 느끼는 우리 반려견이다.’ 



    이를 인식하는 단계까지는 아직 나아가지 못했다 해도, 어떤 이유에서든 반려견의 문제행동에 관심을 갖는 보호자가 많아지는 건 좋은 일이다. 오늘은 그분들을 위한 조언을 해보려 한다. 반려견이 문제행동을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먼저 할 일은 동물병원에 가는 것이다. 

    내가 수의사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면 욕을 먹을 수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은 아프면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평소에는 참을 만한 외부 자극에도 화를 내는 경우가 다반사다. 반려견도 마찬가지다. 차이점이 있다면 사람은 ‘내가 지금 여기가 아파서 좀 예민했나봐’라는 말로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할 수 있지만 반려견은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예전에 공격적이고 예민한 반려견 문제로 고민하는 보호자를 상담한 일이 있다. 보호자로부터 반려견이 엉덩이 쪽을 만지면 유난히 과하게 반응한다는 얘기를 듣고 x-ray 검사를 받아보라고 조언했다. 그 결과 고관절 쪽에 이상이 발견됐다. 그 반려견은 다리를 절지도 않았다. 그동안 아픈 것을 참으면서 그로 인해 예민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해당 반려견은 이후 수술을 받았고 회복한 후 보호자들과 아무 문제없이 잘 살고 있다. 

    이런 정형외과적 문제 외에도 반려견이 질병이나 통증으로 문제행동을 하는 경우는 아주 많다. 예를 들어 신장 문제가 두통을 유발하는 경우가 있다. 사람은 두통이 있으면 아주 예민해진다. 강아지도 마찬가지다. 강아지가 이유 없이 예민하게 행동할 때 혈액검사 등으로 신장 이상을 확인하면 해당 문제를 치료하고, 자연스럽게 문제행동도 개선할 수 있다. 

    반려견이 많이 갖고 있는 호르몬성 질환 중 갑상선기능저하증도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serotonin) 대사에 영향을 끼쳐 불안 또는 공격성을 유발할 수 있다. 이 또한 겉으로는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아서,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아야 원인을 파악할 수 있다.

    병 때문에 예민했던 강아지

    얼마 전 강아지의 행동 문제로 멀리서 나를 찾아오신 분이 있다. 2년 전 유기견을 입양한 뒤 정말 사랑으로 키워온 분이었다. 문제는 이 반려견이 집에서는 아무 문제를 보이지 않는데 밖에만 나가면 문제행동을 한다는 점이었다. 보호자에 따르면 지난 2년 동안 한 번도 제대로 된 산책을 하지 못했을 정도다. 밖에 나가도 전혀 걸으려 하지 않고 보호자 뒤에 숨으려 하거나 안아달라고만 하면서 무척 불안해했기 때문이다. 하얀색 털에 약간 포동포동한 몸매를 한, 정말 예쁘게 생긴 ‘아롱이’는 진료실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몹시 불안해하고 보호자에게 의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다른 문제행동 반려견을 진료할 때처럼 보호자께 가장 먼저 혈액검사와 갑상선 호르몬 검사를 추천했고 아롱이는 갑상선기능저하증을 가진 것으로 진단됐다. 그에 대한 치료약을 먹은 지 닷새 만에 아롱이는 발랄하게 산책을 즐기기 시작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보호자는 그 모습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기도 했다. 

    만약 아롱이가 병원에서 이 질병에 대한 검사를 해보지 않고 교육 또는 훈련을 통해서만 문제행동을 고치려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나는 세계에서 능력이 가장 뛰어난 훈련사, 아니 나아가 반려견 훈련의 신이 왔어도 아롱이를 고치지 못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지금 EBS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프로그램에 동물의 행동 문제를 해결하는 행동전문가로 출연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 제작진 앞으로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연이 접수되는데 그 내용을 보다 보면 의학적 문제가 의심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물론 문제행동을 하는 반려견이 모두 질병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혹시라도 의학적 문제가 있다면 보호자가 행동치료를 위해 쏟는 돈과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설채현 수의사가 ‘그녀의 동물병원’에 있는 진료실에서 문제행동을 보이는 강아지를 진료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설채현 수의사가 ‘그녀의 동물병원’에 있는 진료실에서 문제행동을 보이는 강아지를 진료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그렇다면 보호자가 반려견의 문제행동을 보면서 이것이 질병이나 호르몬 이상 등 의학적 문제로 인한 것인지 아닌지 판단할 방법이 있을까. 완벽하지는 않지만 한 가지 기준이 될 만한 것은 있다. 문제행동이 나타난 양상이다. 반려견의 행동이 어느 날 갑자기 바뀌었다면 의학적 문제를 강력히 의심해야 한다. 특히 이사나 가족 구성원의 변화 등 환경 변화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반려견의 행동이 바뀌었다면 더욱 강아지가 아픈 것은 아닌지 확인해봐야 한다. 문제행동이 특정한 자극이 없을 때도 나타난다면, 그래서 보호자가 생각하기에 아무런 이유가 없이 문제행동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면 이 또한 의학적 문제를 의심할 상황이다. 

    그러나 반려견이 문제행동을 하는데 병원 검사 결과 의학적 문제가 발견되지 않을 수 있다. 이때는 ‘관리’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반려견 선진국들은 보호자에게 관리(Management), 교육(Modification), 약물 투여(Medication) 즉 3M을 강조한다. 나는 5년 전 3M 중 마지막에 해당하는 약물에 대해 배우러 미국의 행동전문 수의사 교수들을 찾아갔다. 그런데 교수님들은 늘 3M 중 첫 번째 M인 관리를 강조했다. 처음에는 김이 빠지는 느낌이었지만 지금은 나도 교수님들과 생각이 같다. 

    반려견의 문제행동을 교육이나 약물 투여 없이 관리로 해결할 수 있다면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가장 효율적이다. 또 교육과 약물 투여를 잘해도 평소 관리를 꾸준히 하지 않으면 문제행동은 해결되지 않는 것이 많다. 

    예를 들어보자. 미국 연수 시절 한 교수님과 같이 행동상담을 했을 때의 일이다. 문제행동을 보이는 반려견은 아주 큰 셰퍼드였는데, 집 마당 앞으로 사람이 지나다닐 때마다 미친 듯이 뛰어가 짖고 창문을 부술 듯 흥분한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뒤 교수님이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은 “그럼 집 창에 강아지 눈높이까지 불투명 시트지를 붙이세요” 였다. 물론 그다음에 적절한 교육 방법도 안내했지만, 그에 앞서 관리를 강조한 셈이다. 반려견이 다른 사람을 보고 짖지 않도록 교육, 훈련하는 것보다 훨씬 쉽고 시간과 돈도 절약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훈련보다 중요한 관리

    나를 찾아오는 반려견 가운데 상당수는 보호자에게 공격적인 태도를 보인다. 특히 자신이 가장 친밀하게 느끼는 보호자의 방에 있을 때 다른 가족에 대한 공격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강아지가 아예 그 방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안전문, 이른바 ‘baby gate’ 하나만 있으면 그 방 출입을 막을 수 있고, 그럼 반려견이 강한 공격성을 보일 일 자체가 없어진다. 이렇게 문제를 해결한 뒤 꾸준한 교육을 통해 나중에는 안전문을 설치하지 않아도 공격성을 보이지 않도록 하는 게 좋다. 

    내가 만난 한 반려견 보호자는 강아지가 소파 위에 올라가면 특히 공격성을 보이자 아예 소파를 치워버리기도 했다. 내 가족인 반려견을 위해 스스로의 불편을 조금은 감수하는 것, 이런 것이 바로 관리다. 

    반려견은 우리보다 날카로운 이빨을 갖고 있고, 우리보다 절제력이 없다. 그러나 우리의 가장 큰 무기인 ‘머리’를 써서 ‘관리’하면 반려견이 보이는 웬만한 행동 문제는 생각보다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물론 그 바탕에는 반려견이 신체적·정신적 고통에서 해방되고 자신의 자연스러운 본능을 발휘하며 살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보호자의 사랑과 배려가 있어야 한다.


    설채현
    ● 1985년생
    ● 건국대 수의대 졸업
    ● 미국 UC데이비스, 미네소타대 동물행동치료 연수
    ● 미국 KPA(Karen Pryor Academy) 공인 트레이너
    ● 現 ‘그녀의 동물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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