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호

평양정상회담 대차대조표

“바보들아, NLL은 평화가 아니라 안보야!”

“서해평화수역은 北 통일대전 침공로 열어준 격”

  • 입력2018-10-21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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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LL·서북5도는 攻·防에서 비수(匕首)면서 요충(要衝)

    • “北, 군축 협상 통해 서북5도 군사력 제거하려들 것”

    • ‘제2의 체임벌린’이 될 것인가

    2002년 제2연평해전 때 전사한 황도현 중사 이름을 딴 ‘황도현함’(왼쪽).

    2002년 제2연평해전 때 전사한 황도현 중사 이름을 딴 ‘황도현함’(왼쪽).

    문재인 대통령은 10월 12일 “북한이 판문점(회담)부터 이번 (평양)정상회담까지 일관되게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인정하면서 NLL을 중심으로 평화수역을 설정하고 공동어로구역을 만들기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분쟁 수역이던 NLL을 명실상부하게 평화의 수역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한 대전환”이라고도 했다.

    “분쟁 수역 아닌 피로 지킨 바다”

    같은 날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함동참모본부가 문 대통령 발언과 충돌하는 사실을 공개해 논란이 일었다. 합참이 국방위원들에게 전한 북한군 동향 자료에 “7월부터 북한이 NLL을 무시하고 서해 경비계선(NLL 이남)에서의 유효성을 강조하는 활동을 강화했다”는 내용이 담긴 것이다. 

    청와대는 문재인-김정은 정상회담 결과물인 9월 평양 공동선언을 “전쟁의 시대를 끝내고 한반도에 새로운 평화와 번영의 미래를 열기 위한 실천적 방안”이라고 평가했다. 평양회담 부속 ‘군사분야 합의서’에는 긴장 완화를 위한 구체적 지침이 담겨 있다. 군사 합의서는 6개조 22개 항목으로 구성됐다. 

    군사합의서 내용 중 ‘서부전선 20km, 동부전선 40km까지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한 것’과 ‘서해평화수역을 설정하기로 한 것’이 특히 주목받았다. 비행금지구역과 평화수역을 두고 비핵화 과정이 가시적 절차를 밟지 않은 상황에서 국군의 방어 능력을 약화하는 합의를 맺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화려한 미사여구에 가려진 실체를 들여다보면 오히려 평화를 위태롭게 할 치명적 결함이 숨어 있다”(천영우 전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 “군사합의가 이행되면 착한 사람도 나쁜 맘을 먹게 될 것”(신원식 전 합참 차장) 등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잖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 언급대로 북한이 NLL을 실제로 인정하긴 한 걸까. NLL은 송영무 전 국방장관이 “적 목구멍의 비수”라고 말했듯 공격과 방어 모두에서 중요한 군사적 요충(要衝)이다. 북한이 NLL 무력화를 일관되게 추진한 것도 그래서다. 안보 당국 전직 고위인사는 “북한이 NLL을 인정했다는 발언은 순진하거나 어리석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진실’은 경계선 미합의, ‘사실’은 실효 지배

    태극기가 표시된 서해 섬은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직전까지 국군과 유엔군이 점령한 지역이다.

    태극기가 표시된 서해 섬은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직전까지 국군과 유엔군이 점령한 지역이다.

    “‘군사 분야 합의서’에 남과 북은 서해 NLL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설정한다는 내용이 들어간 것을 두고 ‘인정했다’고 말한 것으로 보인다. NLL이라는 표현이 있을 뿐 해상 경계선으로 인정한 게 아니다. ‘남북 간 해상분계선은 NLL’이란 구체적 내용이 합의에 포함돼야 인정한 것이다. 북한이 NLL을 인정했다면 설정하기로 한 수역도 NLL을 중심으로 같은 면적이나 거리가 돼야 한다. 남북이 합의한 적대행위 중단 구역은 백령도 기준으로 북쪽으로는 50km, 남쪽으로는 85km다. 스스로 무장을 해제하면서 북한이 원하는 대로 NLL을 사실상 무력화해버린 셈이다.” 

    그는 “NLL은 문 대통령 표현처럼 ‘분쟁의 수역’이 아니라 ‘피로 지킨 바다’”라고 덧붙였다. NLL은 도대체 어떤 선인가. 

    NLL의 기원(起源)으로 시곗바늘을 돌려보자. 

    NLL 지도

    NLL 지도

    1950년 6·25전쟁 개전 초기부터 해군력에서 유엔군이 북한군을 압도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을 맺을 때까지 유엔군은 서북5도부터 북한 신의주 앞바다까지를 완전히 장악했다<지도 참조>. 1951년 1·4후퇴 이후 특수부대가 유엔군이 장악한 서해, 동해의 섬에서 주둔하면서 대원을 내륙에 침투시켰다. 

    1952년 5월 12일 마크 클라크 미국 육군 대장이 유엔군 사령관에 취임했다. 매슈 리지웨이 사령관 시절인 1951년 7월 1일 시작된 정전협정 협상이 진행될 때다. NLL의 시원(始原)은 1952년 9월 27일 설정된 ‘한국방위수역’이다. 한국방위수역은 ‘클라크 라인’으로 불린다. 유엔군은 제해권을 바탕으로 바다에서 북한군과 중국 인민지원군을 압박했다. 

    미국은 클라크 라인을 국제법적으로 인정받고자 유엔(UN)에 승인을 요청했으나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 이전까지 유엔은 미국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엔군은 정전협정 15조에 ‘어떠한 종류의 봉쇄도 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넣음으로써 클라크 라인 철폐를 약속했으며 그해 8월 27일 한국방위수역을 해제했다. 

    정전협정 체결 당시까지 백령도를 포함한 서북5도는 물론이고 청천강 앞바다의 대화도, 대동강 앞바다 초도 등 서해의 섬들과 원산 앞바다의 여도 등 동해의 섬들에 국군과 유엔군이 주둔했다. 

    유엔군과 공산군은 섬에 대한 영유권을 6·25전쟁 이전 상황으로 되돌리기로 합의했다. 38선 이남의 섬은 한국이, 이북의 섬은 북한이 영유하게 된 것이다.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서북5도)는 이렇게 한국 영토가 됐다. 정전협정은 육지와 섬에 대해서는 영유권을 분명히 했으나 바다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다. 

    정전협정 체결 시까지 서북5도와 38선 이북 서해의 섬들에는 북한 출신 병력이 중심인 유엔군 및 한국군 특수부대가 주둔했다. 부대원들은 1·4후퇴 이후 북한군·중공군 집결지, 군사시설, 보급창고, 교량 등 포격 대상 정보를 수집했다. 이들이 획득한 정보는 미군 6006부대 통신 장비를 이용해 미군 5공군사령부와 강릉비행장 작전상황실에 통보돼 각 전선에서 목표물을 폭격하는 데 활용됐다.

    北 ‘조선 서해 해상 군사분계선’ 선포

    이승만 정부는 정전협정 협상에서 국군 대표를 철수시키는 등 휴전에 반대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국군 단독으로 휴전선을 돌파해 북한 공산 정권을 타도하고 두만강-압록강 선까지 실지(失地)를 회복하겠다”고 선언했다. 유엔군 처지에서는 한국군의 단독 군사행동이 골칫거리가 된 것이다. 

    1953년 8월 27일 클라크 라인이 해제된 후 3일 만인 8월 30일 클라크 사령관은 지금의 동해와 서해에 NLL을 긋고는 “유엔군 관할하의 부대는 이 선을 넘어갈 수 없다”고 선언했다. 국군의 돌발적 군사 행동을 막으려 한 것이다. 

    요컨대 NLL은 남북 양측 간 일어날 수 있는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유엔군 함정 및 항공기 초계 활동의 북방 한계를 규정한 선이다. 유엔군의 ‘작전 금지선’이었을 뿐 합의가 이뤄진 경계는 아니다. 해군력이 열세이던 북한으로서는 오히려 다행스럽게 여겼으며 한동안 통상적 해상경계선으로 사실상 인정했다. 

    북한의 태도가 달라진 것은 1970년대부터다. “서해5도는 유엔군이 영유권을 가졌으나 일대 바다는 북한 영해와 경제수역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당시 세계는 영해를 3해리로 할지, 12해리로 할지 논쟁을 벌였다. 국제사회는 1982년 해양법 조약을 통해 영해의 폭을 최대 12해리로 할 것으로 합의했으며 영해 외측 200해리의 배타적경제수역(EEZ)도 신설했다. 현행 국제법상 기준으로 보면 NLL과 관련해 북한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정전협정 협상 때는 유엔군은 3해리, 공산군은 12해리를 주장했으나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북한 옹진반도를 기준으로 12해리를 그으면 NLL 이남으로 경계가 내려오므로 북한의 바다가 넓어진다. 

    북한은 연평해전(1999년 6월) 직후인 1999년 9월 2일 NLL에 맞서 경비계선을 설정했다. 서북5도를 포함한 ‘조선 서해 해상 군사분계선’을 선포한 것이다. 2000년에는 한국 선박에 대해 서북5도로 출입하는 폭 1마일의 수로 2개만 열어주는 형태의 통항 질서를 일방적으로 공포했다. 북한은 2007년 경비계선 이북을 NLL에 가깝게 축소했다. 

    요컨대 NLL의 실재적 진실은 해상경계선은 미합의 상태라는 것, 실재적 사실은 한국이 NLL 이남을 실효적으로 지배한다는 것이다.

    “비핵화 과정은 한국에 도전이자 모험”

    문재인 대통령이 9월 19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군사합의서 서명식을 마친 후 북측 인사들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이 9월 19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군사합의서 서명식을 마친 후 북측 인사들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소청도, 연평도 사이의 NLL 이남 바다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영해 12해리에 따르면 국제 해양법을 거스르는 측면이 있으나 남북은 정전 상태인데다 국가 간 관계가 아니므로 국제 해양법을 따르기엔 무리가 있다. 유엔해양법 협약이 군사적 필요에 의한 예외적 설정을 인정하는데다 대한민국 헌법의 영토 조항도 고려해야 한다.
     
    정리하면, 평화협정을 체결하면서 서해의 해상 경계선을 명문화하기 이전까지는 NLL은 지켜내야 할 해상 경계선이다. 평화수역이나 공동어로수역은 발상 자체에 문제가 있으며 관련 협상에서 NLL에 대해 평양이 가진 생각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무력화 시도에 휩쓸릴 수밖에 없다. 

    북한이 일관되게 NLL 무력화를 추진해온 것은 군사·안보적 요충이기 때문이다. 백령도는 북한 처지에서 ‘옆구리를 겨눈 비수’다. 한국 안보에도 서북5도가 갖는 가치는 엄청나다. 백령도 연평도 병력이 북한군 일부를 묶어둠으로써 수도권에 집중될 북한 군사력을 나눌 수 있다. 

    한 예비역 장성은 “‘바보들아, NLL은 평화 문제가 아니라 안보 문제야’라고 말해주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북한이 향후 황해도 해안의 북한군과 서북5도의 국군을 대상으로 군축을 제안할 가능성이 높다”고 그는 덧붙였다. NLL 일대의 한국 군사력을 근원적으로 제거하려들 것이라는 얘기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핵무력 병진노선을 선포(2013년 3월 31일)한 직후 북한군에 ‘통일대전’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통일대전은 핵무기를 이용해 미군의 증원을 막고 재래 전력을 활용해 한국을 강점하는 게 골자다. 특수부대의 서해안 상륙과 함께 문산, 광덕산 축선을 동시에 공격하는 것이다. 

    북한의 변화를 선의로 믿고 ‘우리민족끼리’ 교류와 협력의 폭을 넓히면서도 북한이 평화협정→미군철수→통일대전→북한 주도 통일이라는 망상(妄想)을 버리지 않았을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홍성민 안보정책네트웍스 대표는 “군사 분야 합의는 통일대전의 침공로를 열어준 격”이라고 말했다. 

    비핵화 과정은 한국에도 도전이자 모험이다. 미국이 자국을 겨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포기하게 하고 핵무기 일부를 인정하는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 구해우 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은 “평양이 연쇄 정상회담을 통해 실질적인 핵국가, 전략국가의 지위를 확보해나가고 있다”고 봤다. 

    네빌 체임벌린(영국 총리)이 아돌프 히틀러(독일 총통)와 맺은 종이 한 장의 협정문으로 평화를 확신했으나 영국이 전쟁의 참화를 겪은 전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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