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금 모으기 경험”
“경제위기 대비엔 금이 최고”
“원화가치 하락 중”
# 서울 종로구에서 귀금속업체를 운영하는 B씨는 “최근 골드바 1㎏을 구입하려는 소비자의 상담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올 들어 금을 사려는 사람이 많이 줄고 있었는데, 국내 경기가 좋지 않은 데다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면서 다시 골드바 문의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B씨의 입가에 웃음이 돌았다. 그는 “10월 4일 1㎏ 골드바를 부가세 포함해 4900만 원 정도에 판매했다”고 했다.
올해 달러가 강세를 보이자 금값이 가파르게 하락했다. 때마침 경제위기설이 돌고 있다. 그러자 금을 저가에 매수할 타이밍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대표적 안전자산이라는 명성이 무색하리만큼 힘을 못 쓰던 국제 금값이 이제 바닥을 친 게 아니냐”는 전망도 속속 나온다. 금 투자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감이 높아지는 것으로 보인다. 금 투자 전망이 어떤지, 금 투자 방법으로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봤다.
10월 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2월물 금값은 전일 대비 온스당 4달러(0.33%) 상승한 1201.20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연초(1313.70달러) 대비 8.5%, 지난 1월 25일 연중 최고점(1362.40달러) 대비 11.8% 내렸다. 2011년 9월 9일 기록한 10년 최고치 1899.0달러 대비 무려 36.7% 하락했다. 국제 금값은 8월 16일 1176.20달러로 연중 최저점을 기록한 뒤 1200달러 안팎을 오르내리는 흐름이다.
신흥국 경제 불안
지갑에 쏙 들어가는 미니 골드바. [원대연 동아일보 기자]
국제금융시장에서 금과 은의 가치는 같은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달러의 가치와 반대로 움직인다. 금과 은이 달러 가치 하락에 대비한 ‘대안 투자처’나 ‘보완재’로 인식되고 있어서다. 최근 달러화 가치 상승이 금값 하락을 부른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날로 격화되는 미·중 무역 분쟁으로 원자재 가격이 일제히 하락한 것도 금값 하락을 이끌었다. 오온수 KB증권 연구원은 “올해 미국이 금리를 지속적으로 인상했고 경기까지 좋다 보니 달러 강세가 이어지고 있다”면서 “미·중 무역 갈등 속에 신흥 시장마저 불안한 상태를 보여 달러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제 금값의 지속적 하락에 최근 저가 매수세가 유입됐다. 이에 따라 금값이 다시 오를 조짐을 보인다. 10월 7일 마켓워치에 따르면, 광산업체 ‘골드마이닝’의 제프 라이트 부사장은 “최근 각국 중앙은행의 금 매입이 지난 3년 중 가장 활발했다”며 “금값이 바닥을 쳤거나 바닥에 거의 다가간 것으로 믿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금위원회(WGC)는 “올해 1~6월 각국 중앙은행이 지난해 같은 기간의 178.6t보다 8% 늘어난 193.3t의 금을 사들였으며 이는 지난 2015년 상반기 이후 가장 많은 매입량”이라고 밝혔다.
“아직도 싸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금값은 세계 주요 금광 개발 기업의 손익분기 수준까지 하락한 상태인 만큼 금값이 바닥을 쳤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글로벌 주요 금광 개발 기업의 실적을 통해 산출한 이들 기업의 1분기 금 생산 손익 분기는 온스당 1230달러 내외로, 이를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현재 금 가격은 실물 본질가치 이하까지 하락한 것이어서 반등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최근 금 관련 기업들인 ‘랜드골드 리소스’와 ‘배릭 골드’의 183억 달러 규모 합병이 이뤄진 것도 금값이 바닥을 쳤다는 근거로 거론되고 있다.나아가 달러 강세가 진정될 경우 금값이 반등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더해 신흥국들의 위기가 고조된다면 안전자산인 금값은 더 크게 상승할 수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올 연말에 금값이 온스당 1300달러대를 회복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한다.
이에 따라 금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한다. 시중의 한 금거래소 관계자는 “최근 금값 시세가 저점을 찍은 뒤 변동 폭이 크지 않아 골드바를 통한 실물 금 투자뿐만 아니라 선물을 준비하는 분들의 상담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14년 개설된 국내 유일의 국가 공인 금현물 시장인 한국거래소 금시장에선 올 들어 하루 평균 20.3㎏, 약 9억1000만 원 수준의 금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22.9㎏, 10억5200만 원)에 비해 다소 줄어들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금 투자를 권하는 목소리도 커진다. 남경화 신한은행 PWM(Private Wealth Management) 여의도센터 PB팀장은 “며칠 사이 금값이 조금 오르긴 했지만, 2016년부터 봤을 때는 아직도 금값이 싼 편이다. 단기적으로나 장기적으로도 금 투자는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골드바엔 세금과 수수료 붙어”
이제 금 투자, 이른바 금테크 방법을 알아보자. 다른 투자에도 적용되긴 하지만, 금테크에서도 기본 원칙은 ‘쌀 때 사서 비쌀 때 판다’는 것이다. 금값이 바닥을 다지는 상황인 만큼 지금이 금 투자의 저가 매수 타이밍이라 볼 수 있다.금테크서 가장 많이 이용하는 방법은 현물(실물) 구매다. 순금반지, 순금팔찌, 순금목걸이, 골드바 같은 금 제품을 저렴할 때 사서 오를 때까지 계속 보유하는 것이다. 현물을 산 뒤에 오를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만큼 현물 구매는 장기 투자에 적합하다. 장롱 속에 보관 중인 금 현물은 언제든 현금화할 수 있다. 매매 차익에 대해 세금을 낼 필요도 없다. 그러나 이런 실물 투자에는 도난 위험이 뒤따른다. 또한 매매의 기동성이 떨어진다. 남 팀장은 “이런 이유로 자산가들의 문의가 많다. 전체 자산의 10%를 금 실물로 보유하는 것을 권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투자를 위한 금제품으론 ‘골드바’가 각광을 받는다. 골드바는 순도 99.99% 상품으로 1㎏, 100g, 37.5g, 10g 단위로 나온다. 일반 금거래소, 한국거래소 금시장, 은행, 증권사에서 살 수 있다.
그러나 골드바엔 부가가치세 10%와 제작비용 등 기타 수수료 5% 정도가 붙기 때문에 금값이 20% 이상 올라야 어느 정도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골드바 가격은 판매하는 곳마다 다르다. 따라서 중량이 같더라도 당일 시세를 서로 비교해야 한다. 순도와 중량 검증도 필요하다. 시중 귀금속업체에서 옥석을 가려내기 어렵다면 한국거래소 금시장이나 은행 같은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구입하는 게 좋다. 골드바 구매처 중에선 한국거래소 금시장이 수수료(0.3%)가 가장 낮고 세금 면제 혜택이 있어 유리하다.
‘금통장 개설’이 대안
서울시내 모 백화점 금 판매점. [김재명 동아일보 기자]
금과 관련된 파생상품이나 기업에 투자하는 ‘금펀드’도 있다. 주로 금광 사업 등에 투자해 수익금을 배분하는 방식이다. 상품만 잘 선택한다면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또한 금 실물자산 가격에 연동된 파생상품에 투자하는 커머더티형 상품과 금 관련 해외 기업의 주식에 투자하는 해외주식형 상품도 있다. 해외주식형은 금 관련 기업의 주식에 투자하기 때문에 금값 흐름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물론 금값이 오르면 기업 주가가 상승해 펀드의 성과도 좋아질 가능성이 더 커진다.
금펀드는 올해 들어 가파른 금값 하락으로 인해 낮은 수익률을 보였다. 펀드평가사 KG제로인이 8월 조사한 운용 순자산 10억 원 이상 금펀드(ETF·상장지수펀드 포함) 11개 상품의 연초 이후 수익률은 평균 –8.78%로 집계됐다. 금값이 떨어질수록 좋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도록 자산이 설계된 한국투자KINDEX골드선물인버스2X특별자산ETF와 삼성KODEX골드선물인버스특별자산ETF만 수익률이 플러스고 나머지는 모두 마이너스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는 금값 상승을 예상해볼 수 있다. 금값이 오를수록 좋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레버리지 상품에 가입하면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금펀드는 금통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수료가 높고 수익에 대해 세금이 붙는다.
전문가들은 “개인은 금테크를 주요 투자 수단으로 삼기보단 분산 투자 차원에서 접근하는 게 낫다”고 조언한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금값은 국제 정세나 달러 가치 같은 여러 요소에 따라 결정된다. 개인이 이를 예측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다른 금융권 전문가는 “한국인들은 IMF 시기에 ‘금 모으기’를 한 경험을 갖고 있다. 원화가치가 급락하는 경제위기에 대비하는 데엔 금이나 달러가 최고”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