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헌법상 국회의원은 개개인이 독립된 헌법기관 지위를 부여받는다. 2018년 10월 현재 299인의 국회의원에게는 4급 상당 보좌관 2인, 5급 상당 비서관 2인, 6·7·8·9급 상당 비서 각 1인, 인턴 1인 등 총 9인의 보좌진이 제공된다. 이들은 국회의원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며 입법·의정 활동 도우미 구실을 한다. 국회의원이 ‘무대 위의 주연배우’라면 보좌진은 ‘무대 뒤의 연출자’다. 정치를 불신하는 국민의 곱지 않은 시선 속에서 ‘별정직’ 공무원으로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는 신분 불안을 감내하며 국회 의정 활동의 숨은 조연 구실을 하는 국회 보좌진의 애환을 취재했다.
국정감사가 시작된 10월 10일 여의도 국회가 관련자들로 붐비고 있다(위). 20대 국회의원들이 착용하는 국회 배지. [뉴시스, 국회사진기자단]
가장 먼저 찾은 김영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던 김진성 비서관(5급)을 만났다. “의원이 (해양수산부) 장관이라 국정감사 준비 부담이 덜하지 않나”라는 질문에 “부담이 덜한 것은 사실이지만, 장관이면서 동시에 국회의원의 임무도 수행해야 하기에 국정감사 준비에 소홀할 수는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김영춘 의원은 현재 행정안전위원회 소속이다.
김진성 비서관이 국회와 연을 맺은 것은 대학생이던 2006년부터다. 국회 인턴으로 김영춘 의원실에 근무한 것을 계기로 2008년 한 차례 더 인턴 생활을 한 후 2012년 시작된 제19대 때부터 정식 보좌진으로 ‘국회밥’을 먹기 시작했다. 기자가 제16대 국회(2000년 5월~2004년 5월) 막바지, 국회 인턴으로 일하며 경험한 의원 보좌진의 열악한 근무 환경을 회상하며 “삶의 질이 어떠한가?”라고 묻자 “인권운동 단체 간사 ‘인권’이 열악하듯, 근로시간단축법을 제정한 국회 보좌진의 근로 여건도 열악하다”며 웃음 지었다. 주52시간 근무는 언감생심, ‘대목’인 대정부 질의 기간이나, 국정감사 때는 휴일 없는 야근이 무한정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휴일 없는 야근 인생
‘별정직’ 공무원인 국회 보좌진은 근로시간 단축의 사각지대에 있다. 명목상 출·퇴근 시간은 오전 9시, 오후 6시지만 이는 말 그대로 ‘명목’에 불과하다. 조찬회의 등 아침 일찍부터 분주히 움직이는 의원의 일정에 따라 출근 시간이 7시로 당겨질 수 있다. 퇴근 시간 또한 가늠할 수 없다. 김진성 비서관은 “공식적으로 의원실 업무가 종료되는 오후 6시부터 본격적인 일이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낮 시간 동안은 정부부처나 산하기관 직원, 각종 민원인, 기자들을 맞느라 업무에 집중할 수 없다. 저녁 때부터 비로소 자료를 검토하고 문제점을 발견하는 데 집중할 수 있다”고 했다. 이 때문에 통상 퇴근 시간은 오후 9~10시, 국정감사 기간에는 다음 날 새벽에 퇴근하는 것도 다반사라고 한다. 의원실마다 매월 100만 원 안팎의 교통비(택시비)가 책정되지만 그마저 넉넉지 않은 형편이다. 상대적으로 보수가 적은 인턴이나 하위직급 보좌진에게 우선 배정한 뒤 상급자는 자비로 충당한다고 했다.긴 근무시간뿐 아니라 수시로 쏟아지는 ‘공적’ 연락과 불규칙한 일정으로 사적인 삶을 살기 어려운 점도 보좌진이 겪어야 하는 공통 애로 사항이다. 취재 중 만난 한 보좌진은 “전화벨이 울리면 반사적으로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밤낮없이 의원, 공무원, 민원인, 기자 등의 공적 연락에 시달리다 보니 사적인 연락은 받지 못하거나 받기 싫어진다. 여자친구와 이 문제로 다퉜고 업무의 특수성을 설명했지만 이해를 얻지 못해 결국 헤어졌다”고 토로했다.
불규칙한 근무시간은 여성, 특히 일과 육아를 병행해야 하는 기혼여성에게 큰 고충이다. 국회 보좌진 중 여성 비율이 낮은 현실적 이유이기도 하다. 김현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박미래 비서관(5급)은 “양성 간에 제도적 차별은 없다. 하지만 기혼여성 특히 임신부는 국회에서 사실상 일할 수 없는 구조다. 대정부 질의나 국정감사 기간에 휴일도 없이 야근이 이어지는데, 임신부나 어린 자녀가 있는 워킹맘을 배려해줄 만한 여건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방위 멀티 플레이어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이 4월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17차 최고위원회의에서 재활용품 폐기물 수거 대란과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국회 보좌진 생활 4년차인 윤 비서는 격무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입법기관으로서 법과 제도를 바꿀 수 있는 국회 생활에 큰 보람을 느낀다고도 했다. 그가 보좌진으로 일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낀 건 환경부 고시(告示)를 개정했을 때라고 한다. 올봄 재활용업자들이 페트병 수거를 거부하면서 벌어진 이른바 ‘재활용품 대란’ 당시 하태경 의원실은 페트병 위에 본드를 바르고 상표를 붙여 잘 떨어지지 않게 하는 ‘수분리성 접착물 사용’을 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내용을 담아 환경부 고시를 개정하면서 재활용품 대란은 막을 내렸다. 윤 비서는 “입법 활동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작은 문제를 개선해 국민의 삶 전반을 바꿀 수 있는 일이라는 점에서 성취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도 국회에서 일하며 전문 보좌진으로서 좋은 정책을 통해 사회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꿈을 밝혔다.
역시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실에서 일하는 방현호 비서(9급)는 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국회 인턴을 시작으로 9급 비서, 박근혜 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 청년인턴 등을 거쳐 다시 국회로 왔다. 그는 국회 보좌진 업무의 장점으로 “인턴부터 4급까지 직급이 나뉘어 있으나 업무 영역에는 제한이 없는 것”을 들었다. “직급이 높지 않아도 스스로 정부 제출 자료를 조사하고, 허점을 파고들어 문제를 찾아내 법과 제도를 바꾸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가 국회 생활 중 가장 큰 자부심을 느낀 건 2014년 5월, 시럽 형태의 어린이 의약품에 사용되는 인공색소 타르 색소 사용을 금한 ‘약사법 일부개정법률안’ 제정에 참여한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보람
밤 9시, 환히 불을 밝힌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실에는 모든 보좌진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한동엽 비서관(5급)과 유성현 비서(6급)는 “연중 제일 바쁜 기간에 찾아왔다”면서도 기자를 반겨줬다. 반면 두 사람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각각 1982년생, 1983년생인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다. ‘궤멸’ 위기에 빠진 보수정당 의원실에 몸담고 있는 젊은 보좌진이고, 한때 자유한국당 부설 여의도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한 경험을 공유한다.대학 졸업 후 민간 기업에서 일한 한 비서관은 여의도연구원 청년미래포럼 활동을 통해 여의도와 인연을 맺었다. 한동엽 비서관은 여당 소속 의원실에서 일할 때보다 야당 소속인 지금 좀 더 재미와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여당 시절에는 정부에 날을 세우기 힘들었지만, 야당이 된 지금은 정부를 제대로 비판·견제할 수 있어 좋다는 취지에서다.
“매일 이어지는 야근으로 세 살배기 딸을 못 보는 게 마음 아프지만 국정감사 기간에는 영상통화로 안부를 확인한다”는 유성현 비서는 기자의 질문에 답하면서도 연신 정부 보고서를 뒤적였다. 그는 “국정감사에는 정해진 답이 없다. 정부 제출 자료를 정밀하게 검토하고 문제점을 찾아내는 게 관건이다. 이를 바탕으로 잘못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국무위원 앞에서 고성을 지르며 질책하던 시대는 지났다”고 밝혔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인 추경호 의원실의 이번 국정감사 주안점은 ‘소득주도성장’을 추진하는 현 정부의 경제 실정(失政)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추경호 의원은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에서 잔뼈가 굵은 경제관료 출신으로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기획재정부 제1차관, 국무조정실장을 거쳐 제20대 국회에 합류했다.
한 비서관은 “외부에서 ‘수구·적폐’로 보는 보수 정당을 내부, 맨 아래서부터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에 보수정당 보좌진으로 일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주기적인 정권 교체는 반드시 필요하다”며 “9년 만에 야당이 된 자유한국당이 심기일전하면 다시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희망을 밝혔다. 이어지는 한 비서관의 얘기다.
“옛 한나라당도 야당 10년을 거치면서 정부·여당의 잘못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재집권 기반을 마련했잖아요.”
김태현 비서관(5급)은 김경진 민주평화당 의원실에서 일한다. 제19대 국회 후반기에 의원회관에 둥지를 튼 그는 이제 국회 생활 5년차다. 법학도로서 사법시험을 준비하기도 했던 김 비서관은 입법기관에 몸담으로써 본래 전공을 살리고 있다. 그동안 세 군데 의원실에서 일하면서 국회 국방위원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쳤고 지금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일한다. 김경진 의원실이 최근 역점을 두고 있는 건 구글, 애플 등 국내에 진출한 글로벌 콘텐츠 기업(CP)의 조세 회피 등을 방지하는 ‘글로벌 CP 법안’ 입법이다. 이 법안에는 한국 내 고정사업장이 없다는 이유로 법인세 등을 회피하는 글로벌 CP를 규제해 국내 기업들과 형평성을 도모하는 내용이 담겼다. “제가 찾은 아이템으로 대(對)정부 질의서가 만들어지고 나아가 법률 제·개정이 이뤄져 제도가 개선되는 일에서 쾌감을 느낀다”는 김태현 비서관은 “국정감사 기간에는 토·일요일도 반납하고 매일 야근하는 것이 힘들기는 하지만,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 받는 만큼 열심히 일해야 하는 것이 맞다”며, 전반적인 국회 보좌진의 보수와 복리후생에 불만은 없다고 덧붙였다.
내부자의 진심
제20대 국회 개원을 하루 앞둔 2016년 5월 29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초선의원들이 세월호특조위 관계자 등과 함께 어선 2척에 나눠 타고 전남 진도 동거차도앞 침몰 현장으로 향하고 있다(왼쪽). 5월 9일 전남 목포 산항만에서 세월호 직립 예행 연습을 하고 있다. [뉴시스]
“국회에 들어오면서 스스로에게 한 다짐이 ‘막상 안에 들어오니 밖에서 보는 것과 너무 다르다’는 핑계를 대지 않는 것이었는데, 국회에서 일하면서 이 다짐이 무너졌습니다. 각자의 의견을 듣고 중간 지점을 찾아 타협해나가는 것이 정치임을 깨달았죠.”
하동욱 비서의 얘기다. 그는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세월호선체조사위원회가 구성돼 사건 진상 규명에 한발 다가설 수 있게 된 일에 보람을 느낀다면서 아쉬운 점도 덧붙였다. “선체조사위원회가 보다 중립적이고 전문적인 제3의 전문가 집단으로 구성됐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바람이 여전히 있다”는 것이다. 그는 국회에서 일하며 공무원을 바라보는 시각도 바뀌었다고 털어놓았다. “밖에서 세월호 사건을 볼 때는 해양수산부나 해양경찰청 소속 직원들을 ‘악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같이 일해보니 그들의 전문성, 헌신성을 이해하게 됐다”는 게 하동욱 비서 얘기다. 그는 “직업 공무원의 전문성은 존중받아야 한다. 다만 관료 조직의 특성상 자기 전문 분야에 함몰돼 거시적 시각에서 부처 운영이나 국정(國政)을 바라보는 시각이 부족한 한계가 있다. 그걸 국민의 대표인 대통령이나 국회에서 지적하고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밤 11시, 의원회관 복도의 조명이 꺼졌다. 문이 굳게 닫힌 501호 심상정 정의당 의원실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게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류경재 보좌관(4급)이 홀로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이틀 앞으로 다가온 국정감사 준비로 여념이 없던 그의 모니터에는 정부기관 예산 자료가 띄워져 있었다. 정의당 당직자 출신인 류 보좌관은 국회 생활 5년차다. 그는 소수 정당 의원실 소속 보좌진이 겪는 어려움을 들려줬다. “거대 정당이라면 팀을 이뤄 할 일을 우리는 일당백으로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정의당 소속 의원은 김종대, 심상정, 윤소하, 이정미, 추혜선 등 6명에 불과하다. 지난 7월 노회찬 의원 사망으로 의석수가 하나 줄었다. 13석의 민주평화당과 공동 구성했던 원내교섭단체 지위도 정족수 부족으로 상실해 정의당의 원내 입지는 더 좁아진 형편이다. 류 보좌관은 “국회 원내 활동이 교섭단체 중심으로 진행되는 현실에서 정의당이 법안 제·개정을 주도하기란 사실상 쉽지 않다. 대신 국정감사나 대정부 질의를 통해 비리를 밝혀내고 제도를 개선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가 언급한 심상정 의원실의 대표적 성과는 지난해 은행권 채용비리 의혹을 밝혀낸 것이다. 이후 금융감독원 압수수색, 은행 및 공공기관 채용 전반에 걸친 전수조사 등이 이어졌다. 바로 이런 일들이 있어 국회 보좌진은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세상을 조금이나마 나은 방향으로 바꾸는 일에 보람을 느낀다”고 입을 모은다.
“사명감 갖고 일한다”
10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이 질의하고 있다. [뉴시스]
매년 연례행사로 치러지는 국정감사의 제도적 문제점을 개선하고 싶다는 바람도 있다. 현행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원칙상 국회 정기회와 국정감사는 다른 기간에 실시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본회의 의결로 정기회 기간 중에 감사를 실시할 수 있다”는 조항에 의거, 관행적으로 정기회 기간 국정감사를 실시한다. 그 과정에서 국정감사에 밀려 국회 본연의 임무인 법률안·예산안 심사 및 의결이 졸속으로 진행되는 행태가 매년 되풀이되고 있다. 유성현 비서는 “매년 9월 소집되는 정기회 기간 중 3주를 국정감사에 쓰니 일정에 쫓겨 법안·예산안 심사는 날림으로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라고 쓴소리를 했다. 그 외에도 취재 중 만난 보좌진 상당수가 현안에 따라 언제든지 정부 관계자를 대상으로 상설 국감을 실시해야 한다는 등의 의견을 제시했다.
취재 중 만난 보좌진이 입을 모아 한 얘기는 또 있다. 정치 불신을 넘어 혐오 수준에 다다른 현실이 안타깝지만, 자신들의 노력으로 한국 사회가 느리게나마 나은 모습으로 바뀌고 있음을 확신한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국민이 정치를 무조건적으로 혐오하기보다는 주권자로서 관심을 기울이며 ‘애정 어린 질책’을 해줄 것을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