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호

지상중계

선원 출신 기업인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 연세대 특강

“열등감이 성공의 원동력… 지구 넘어 우주로 꿈 키워라”

  • | 정리·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8-10-28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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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월 18일 인천 송도 연세대 국제캠퍼스에서는 김재철(83) 동원그룹 회장의 특강이 열렸다. 1935년 4월 전남 강진에서 11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난 김 회장은 어린 시절부터 숙명처럼 주어진 가난을 극복하고자 노력했다. 원양선 무급 선원으로 출발해 세계 굴지의 기업을 이끄는 사업가가 된 그는 자신의 성공 비결로 ‘열등감’을 꼽았다. 이날 그의 특강은 학생들에게 김 회장의 삶을 생생히 소개하고자 한 김용학 연세대 총장(사회학 박사)의 요청에 따라 이뤄졌다. 

    • 지난해부터 연세대의 전인교육 프로그램 ‘라이프 아카데미’를 후원하고 있는 김 회장은 이날 학생들 앞에서 ‘열등감의 효용’을 주제로 강연했다. 이어 김용학 총장과 대담하고, 학생들과 질의응답 시간도 가졌다. 400석의 좌석을 모두 채우고도 모자라 학생 수십 명이 계단에 앉아 들을 만큼 성황리에 진행된 이날 특강을 지상중계한다. 

    • <편집자 주>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1부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 특강

    여러분 반갑습니다. (좀 전에 저를 소개해주신 교수님이) 제가 외항선 선장을 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어떻게 선장같이 보입니까(웃음). 제가 대학을 졸업한 지 올해로 만 60년이 됐습니다. 그래서 김용학 총장님께서 여러분 앞에 와서 특강을 해달라고 청하실 때 제가 학생들 보기에는 ‘늙은 꼰대’로 보일 것 같다고 사양했더니 총장님 말씀이, 총장님이 사회학을 공부해서 사회를 잘 보신대요(웃음). 점잖은 총장님의 유머러스한 말씀을 거절할 수 없어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여러분한테 잘 보이려고 이렇게 핑크색 넥타이도 맸는데 목소리만은 바꿀 수가 없잖아요. 늙은 목소리가 나오더라도 이해하고 들어주십시오. 

    오늘 제목은 ‘열등감의 효용’입니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자기가 남보다 못하다든지 부족하다든지 이렇게 생각하고, 그러한 열등감을 보충하려고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오히려 그게 강점이 돼 크게 성공한다는 취지의 이야기입니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일본의 마쓰시타 고노스케라는 분이 있습니다. 한 20년 전 세상을 떠났습니다만, 이분이 아주 가난한 집안에서 허약한 체질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니고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취직해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이후 크게 성공해서 일본의 대표적인 사업가가 됐고, 지금은 ‘경영의 신’이라고 불릴 정도로 일본에서 추앙받는 분입니다. 이 분이 창업한 회사가 ‘파나소닉’으로 이름을 바꿔 지금도 운영되고 있는데, 매출이 우리 돈으로 연간 70조가 됩니다.

    ‘경영의 신’ 마쓰시타 고노스케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이분이 그렇게 성공한 다음에 누가 ‘어떻게 성공하셨느냐’고 물었더니 ‘나는 하느님으로부터 큰 선물 세 가지를 받았다’고 답했다 합니다. ‘무슨 선물입니까’하고 물으니 ‘나는 가난하게 태어나 어려서부터 이곳저곳 취직해 돈을 벌었다. 그러면서 사회를 알고 돈의 소중함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다음에는 ‘몸이 허약하기 때문에 계속 건강에 유의하고 또 남의 힘을 빌려 쓰는 것을 열심히 연구했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남의 이야기를 항상 귀담아듣고 남의 지식을 열심히 받아들였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세 가지가 자기의 성공 요인이라고 했습니다. 전형적으로 열등감의 효용을 발휘한 분이죠. 

    또 여러분이 잘 아는 예가 있습니다. 일본 사업가로 큰 이름을 떨친 손정의 씨 말입니다. 그 양반은 일본에서 인간 대우를 못 받는 조선인 2세로 항상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한번은 일본 사람들이 ‘조선 사람 꺼지라’고 던진 돌에 맞아 지금도 남아 있을 만큼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 사람이 그때 ‘나는 일본에 남아서는 도저히 출세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갔죠. 거기서 돌아와 지금 아시는 바와 같이 세계적 기업가가 됐습니다. 역시 열등감의 효용을 크게 본 분이에요. 



    일본 예를 들었지만 한국에도 그런 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분이 (현대그룹 창업자) 정주영 씨죠. 여러분 정주영 씨가 이북에 소 1001마리를 몰고 간 사연을 아시나요. 그 양반 고향이 이북 통천입니다. 젊을 때 그곳에서 아버지가 소 팔아놓은 돈을 훔쳐 서울로 왔어요. 그리고 온갖 고생 끝에 크게 성공했죠. 그 양반이 우리 경제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여러분도 잘 아실 겁니다. 그런데 소를 훔쳐 온 죄의식 때문에 늘 ‘언젠가 갚아야지’ 하고 생각하다가 이북에 가게 됐을 때 1000마리에 한 마리를 더해, ‘이 한 마리는 돌아온 소다’ 해서 1001마리를 몰고 이북을 간 겁니다. 

    이분에게는 항상 따라다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어요. 시원찮은 사람을 보면 ‘빈대만도 못하다’는 얘기를 자주 했습니다. 사람을 빈대만도 못하다고 하면 참 약 오를 일인데 그런 말이 나온 사연은 이렇습니다. 

    그분이 젊은 시절 인천에서 부두노동자로 일할 때 밤이면 엄청나게 빈대에 물렸어요. 지금은 아마 빈대가 뭔지 모르는 분도 많을 텐데 1960년대까지만 해도 좋은 소독약이 없어서 많은 사람이 이, 벼룩, 빈대에 시달렸습니다. 저도 그런 사람 중 하나입니다(웃음). 그런데 정주영 씨도 낮에 힘들게 일하고 이제 밤에 자야 하는데, 번번이 빈대에 물려 도저히 잠을 못 자겠거든요. 그래서 그 양반이 꾀를 내서 침대 네 다리 밑에 대야를 갖다놓고 물을 가득 채우고 잤답니다. 그렇게 하룻밤은 잘 잤는데 이틀째가 되니 또 빈대가 물더래요. 그래서 이상하게 생각해 빈대가 어떻게 건너왔나 살펴보니까 글쎄 벽으로 기어 올라가서 천장까지 가 가지고는 사람이 있는 데 위에서 똑 떨어져 오더라는 겁니다(웃음). 

    그 양반이 감탄을 해가지고, ‘야, 빈대도 살겠다고, 자기 생존을 위해 저렇게 머리를 쓰는데, 우리 인간 중엔 그렇지 못한 인간이 많지 않나’ 했다는 겁니다. 그때부터 이분이 ‘해봤어?’ ‘빈대만도 못한 사람’ 이런 얘기를 하게 된 거죠.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 하는 사람, 대강대강 하는 사람은 ‘빈대만도 못하다’는 이야기를, 그분이 아주 자주 하곤 했습니다. 

    말하자면 열등감을 오히려 강점으로 이용한 분이 많습니다. 우리가 학교 선생님이나 선배들 말씀을 듣다 보면 ‘사람마다 어떤 재능을 타고나니까 그걸 빨리 발견해서 그쪽으로 나가는 게 성공의 첩경이다’ 하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제가 지금까지 살면서 보면 예체능계를 제외하고는 정말 재능을 찾아 성공한 사람보다, 어떤 계기가 있어 그쪽에 몰입하거나 열등감을 해소하려고 열심히 한 그런 사람이 성공한 것이 많았습니다. 저도 그중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저는 시골에서 태어나 첫 직장이 배를 타는 참치잡이였습니다. 가난했으니 목숨 걸고 바다로 나간 거죠. 제가 수산대학 다니면서 여러 가지로 공부하고 조사해보니까 우리나라 주변 바다는 벌써 고기를 남획해 큰 자원이 없어요. 그래서 ‘제대로 하려면 외국으로 가야겠다’ 하는 생각에 우리나라에서 나가는 첫 원양선을 무리하게 탔습니다.(김 회장은 1958년 국립 부산수산대를 졸업했고 그해 부산항을 떠나 사모아로 출발하는 외항선을 탔다.-편집자 주)

    “한국 절대 헬조선 아니다”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배를 무리하게 탔다’는 건 태워주지 않겠다고 해서 제가 ‘무보수로 일하겠습니다’ 하고 탔다는 겁니다. 실제로 1년간은 무보수로 했습니다. 그렇게 일한 게 나중에 인정받아 빨리 선장을 하고 또 취직도 했습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그런 잠재적인 능력, 뭔가 하겠다고 마음먹고 몰입하면 매우 뛰어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까 말씀처럼 그렇게 배를 타고 다녔고, 그 뒤로도 원양업에 관계된 회사를 했기 때문에 세계를 두루 돌아다녔습니다. 여행한 거리로 따지면 지구를 200바퀴는 돌았을 거예요. 그러면서 우리 한국 사람이 참 우수하다는 것을, 저는 여러 체험을 통해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몇 년 전 세계 여러 대학 연구진이 공동으로 세계 유수 국가 국민의 지능지수(IQ)를 조사해 발표한 내용을 봤습니다. 그게 우리나라 월간지에도 보도됐는데, 우리나라 국민 평균 IQ가 세계에서 가장 높았습니다. 

    우리 국민 평균이 106이고, 일본은 우리보다 조금 못한 104고, 세계에서 머리 좋다고 소문나고 노벨상을 가장 많이 탄 유대인은 94밖에 안 됐습니다. 우리는 그만큼 머리가 아주 좋은 민족이에요. 그런데 세계에서 유독 우리나라만 분단국가이고, 민족이 화합을 못 하고 노벨상도 과학상이나 문학상 분야는 한 번도 못 탄 게 왜 그럴까요. 여러분이 한번 심층 연구하시고, 여러분 중에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분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금 사회의 여러 가지 동향을 보면 우리나라를 크게 잘못된 나라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심지어는 젊은이들 중에 ‘헬조선’이라고 비관하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그렇게 잘못된 나라가 아닙니다. 기성인들이 지난 몇십 년간의 업적을 지나치게 내세우니까 반발이 생겨서 그럴 수 있겠지만, 사실 지금 우리나라는 많은 사람이 와보고자 하는 신기한 나라입니다. 지금 세계 모든 나라 경제가 무역에 크게 의존하는데, 무역을 연간 1조 달러 이상 하는 나라는 세계에 아홉 개밖에 없습니다. 그중 우리를 제외한 여덟 나라는 한때 세계를 들었다 놓았다 한 강대국이에요. 우리만 약소국이었고, 그것도 분단국가인데 그것을 했습니다. 대단한 거죠. 

    또 우리나라에 자유가 없다고 하면서, 마치 우리가 지금도 군사정권 시대에 사는 것처럼 얘기하는 사람이 있는데, 미국 프리덤하우스가 매년 각국의 자유도를 조사해 발표한 것이 있습니다. 그걸 보면 우리는 항상 가장 좋은 A군에 속합니다. 또 빈부 격차가 대단히 심하다고 불만이 많은데 빈부 격차를 따지는 국제적인 지수가 있습니다. 아마 학생 여러분 다 아시겠지만, 지니계수라고 하죠. 지니계수를 보면 우리가 강대국인 미국이나 중국보다 훨씬 좋습니다. 

    그러면 무역을 그렇게 많이 하죠, 또 이제 자유도 있죠, 또 평등도 하죠. 제2차 세계대전 후에 독립한 나라가 100개국이 넘는데 그중엔 우리가 가장 부가 고르게 분배됐다고 세계가 인정한 나라입니다. 우리가 마치 뭐가 아주 잘못된 것처럼 생각하는데, 우리나라 결코 그렇게 잘못된 나라 아닙니다. 여러분이 그런 점은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거예요.

    “가슴에 불만을 품되 스스로 개척할 길 찾아야”

    이제 젊은 세대들이 어떤 개인적인 열등감은 가질 수 있어도 국가적으로 그렇게 열등감 가질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젊어서 외국을 돌아다닐 때는 패스포트를 내밀면 ‘꼬레아가 어디에 있는 나라냐’ ‘뭐 하는 나라냐’ 하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들어보지 못한 나라에서 왔다고 저 뒤로 가라고, 조금 있다 하자고 해서 다른 입국자가 다 들어간 다음에 다시 질문을 받는 수모를 수없이 당했습니다. 그게 그렇게 오래되지도 않은, 불과 50년 전이에요.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 한국 젊은이들은 어디에 가든 가슴 펴고 다닐 수 있지 않습니까. 한국 여권이 국제 암시장에서 가장 비쌉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와 무비자로 왔다갔다 할 수 있는 나라 수가 많아서입니다. 그래서 여행하면 여권을 조심하라는 얘기도 하죠. 그만큼 된 나라니까 여러분이 그런 점은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젊은이들이 불만을 갖는 건 있음직합니다. 또 그것이 젊은이의 특권이니까 불만을 갖지 말라는 얘기는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불평만 하는 것은 지혜로운 게 아닌 것 같아요. 지금까지 살면서 계속 그저 불평을 얘기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걸 못 봤습니다. 남 험담하고 남의 약점 이야기하고 남을 해롭게 하는 사람이 행복하게 일생을 마치는 것도 못 봤습니다. 여러분 부디 불만을 갖되 그것을 입으로 불평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스스로 해결할 것인지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인생은 자기가 사는 것이지 누구도 대신 살아주지 않습니다. 스스로 책임지고 개척하는 것, 그것이 인생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현대는 소통의 시대입니다. 소통은 상대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요즘 네트워크를 강조하는데 그와 관련해 ‘메트칼프의 법칙(Metcalfe’s Law)’이라는 게 있습니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네트워크의 가치는 참여자 수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법칙입니다. 네트워크 참여자가 늘어날수록 전체 네트워크의 가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개인의 역량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하면 네트워크를 잘 형성할 수 있을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을지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걸 결정하는 것은 본인의 인성입니다. 그런 취지에서 ‘라이프 아카데미’에서 인성 함양을 굉장히 강조하는 겁니다. 오늘날은 연결의 시대, 연대의 시대입니다. 네트워크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 하는 것도 잘 참작하시기 바랍니다. 

    성공한 인생을 살려면 능력 못잖게 인성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일본에 지금 살아 있는 유명한 경영자로, 큰 존경을 받는 이나모리 가즈오(교세라 창업자 겸 명예회장)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은 성공 법칙이 사고방식과 노력, 열성의 곱셈이라고 말했죠. 여기서 노력과 열성은 개인의 역량입니다. 하지만 사고방식은 인성입니다. 이 세 가지 요소 가운데 하나만 0이어도 전체 값이 0입니다. 하나가 마이너스이면 전체가 마이너스가 됩니다. 실제로 능력을 많이 갖고 있지만 사회 전체에는 마이너스 요소가 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가즈오 씨도 회사가 성과를 내려면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열성이 없으면 안 되고, 열성이 있어도 사고를 빼딱하게 가지면 안 된다고 생각해 이 법칙을 만든 겁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이 자리에 참석한 학생들이) 대개 1학년생이라고 들었습니다. 이제 1학년 2학기인데, 지옥 같은 고등학교 수험 준비 시간을 지내고 1학기 동안 좀 실컷 놀아보기도 하셨겠죠. 이제 2학기를 인생 설계하는 기간으로 생각해, 인생을 한번 잘 설계해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아까 배를 탔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여러분한테 또 하나 자랑 같은 이야기를 할 게 있습니다. 우리나라 초·중·고교 국어 교과서에 학자나 교수님, 작가가 아닌 사람, 사업가의 글이 다 실린 걸 아십니까. 제 글이 초·중·고 국어 교과서에 있었습니다. 여러분 아버지 세대는 거의 배웠을 겁니다. 

    제가 바다에 나가서 보니 ‘야, 우리가 살길은 바로 바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외국 사람을 만나면 단 10분도 얘기가 안 돼요. 그 양반들하고 참치 잡는 얘기 할 수도 없고, 우리 가난한 얘기도 할 수 없고. 화제가 없는 거죠. ‘내가 중학교 때부터 영어 공부를 해서 대학교까지 마쳤는데 외국 사람들하고 단 10분도 얘기할 거리가 없단 말이냐’ 싶어 부끄러웠습니다. 그때부터 책을 읽기로 결심하고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때는 가난한 시절이라 새 책을 살 수는 없었고, 일본 뒷골목에 가면 고서적을 폐지보다 약간 비싸게 파는 데가 있었습니다. 그런 책은 무게로 팔더라고요. 거기 가서 보이는 대로 괜찮은 책을 상자에 넣어 몇 상자 중량을 달아 샀습니다. 그걸 가지고 배에 오르면 몇 달은 충분히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도 일종의 열등감의 효용이라고 할 수 있죠. 

    그렇게 책을 많이 읽다 보니 ‘야, 나도 이러면 글을 쓸 수 있겠는데’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바다의 무한한 가능성, 우리가 바다에서 참치를 잡아 수출하면 크게 성공할 수 있다는 등의 내용으로 글을 써봤습니다.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 수출 분야는 오징어, 김, 가발 정도가 고작이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참치가 엄청 수출 효과가 있겠더라고요. 그런 내용을 글로 써서 신문사 잡지사에 보냈더니 희소가치가 있었던지 실어주더라고요. 그러고 몇 년 지났을 때 당시 문교부(현 교육부)에서 교과서에 실을 바다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 써달라고 해요. 그게 출발점이 돼서 초등학교 4학년 국어교과서, 중학교 2학년 국어교과서, 그리고 실업계 고등학교 2학년 국어교과서에 각각 제가 쓴 글이 실렸습니다. 저는 어디서 글을 배워본 적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글 쓰는 데 자신 있던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속이 가난하냐, 왜 머리가 비어 있냐’ 생각하고 열심히 읽다 보니 그런 결과가 있었습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은 다 우리나라에서 1% 이내에 드는 우수한 인재들이니 어떤 것에든 몰입하면 큰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가진 재능을 썩히지 말고 본인을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 한번 크게 쓸, 그런 인생 설계를 이번 1학년 2학기 때 해보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고 여러분 괴로운 것, 부족한 것, 열등감이 있거든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대 졸업식에서 한 얘기를 생각하십시오. 인터넷에서 전체를 다 볼 수 있으니 길게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마지막에 ‘Stay Hungry, Stay Foolish’라고 한 게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그 양반의 생각을 압축해놓은 겁니다. ‘Stay Hungry’는 ‘헝그리 정신’을 가지라는 얘기고, ‘Stay Foolish’는 너무 잇속 밝히지 말고 좀 어리석은 듯 살라, 달리 말하면 남들하고 잘 어울리라는 얘기입니다. 그런 걸 생각하면 여러분 마음속에 있는 열등감이나 현실적으로 다소 부족한 점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 

    스티브 잡스는 여러분 아시는 대로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대학을 중퇴했습니다. 그런 분도 세계를 바꾼 아이폰을 만들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엄청난 가능성이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여러분이 그런 꿈을 가지면 정말 큰일을 할 수 있을 겁니다.

    “바다를 넘어 우주로”

    앞으로 인생을 계획할 때 이것도 한번 고려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매우 우수한데 땅이 좁고 자원도 없고 인구가 과밀해요. 그러니 시기 질투 모함이 많습니다. 우리 모든 젊은이가 살기에는 우리나라가 너무 좁아요. 세계로 나간다고 생각하십시오. 어떻게 보면 지구도 여러분의 꿈을 다 수용하기엔 작을 수 있습니다. 

    제가 세계지도를 거꾸로 하고 우리나라를 보는 걸 여기저기 많이 소개했습니다. 여러분, 보세요. 세계지도를 일반적으로 놓고 보면 우리나라가 유라시아에 매달려 있는 그야말로 볼품없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뒤집어놓고 보면 일본을 방파제로 삼고 중국 대륙이 북서풍을 가려주는 큰 언덕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 한반도가 태평양으로 나가는 봉화대처럼 돼 있잖아요. 이렇게 발상의 전환이 가능합니다. 우리가 지구를 볼 때 당연히 북쪽이 위고 남쪽이 아래라고 하는데, 밤하늘에 무수히 떠 있는 별을 보세요. 어디가 위고 어디가 아래입니까. 더군다나 우리 지구는 그중에서도 ‘star’ 축에도 못 드는 하나의 ‘planet’에 불과합니다. 북쪽, 남쪽, 극동, 극서라는 개념은 해양을 먼저 제패한 유럽인이 자기들을 중심으로 만든 개념입니다. 자기들이 북쪽에 있으니 북쪽을 위로 삼고, 자기들이 중심이니 우리는 동쪽에서도 극히 동쪽인 ‘극동’에 있다, 이런 식의 표현을 했는데 우리가 언제까지 거기에 매여 있을 수는 없습니다. 지구 차원에서, 또 우주 차원에서 생각하면서 큰 꿈을 2학기 동안에 그려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부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 – 김용학 연세대 총장 대담 (발췌 소개)

    “신입사원 뽑을 때 가장 강조하는 건 인성”

    김용학 연세대 총장(왼쪽)과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이 9월 18일 인천 송도 연세대 국제캠퍼스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박해윤 기자]

    김용학 연세대 총장(왼쪽)과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이 9월 18일 인천 송도 연세대 국제캠퍼스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박해윤 기자]

    김용학 | 회장님을 이 자리에 모시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제가 사회학자라 사회를 잘 본다는 말씀까지 드렸죠(웃음). 회장님은 연세대에 거금을 후원해 ‘연세라이프아카데미’를 운영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또 자양라이프아카데미를 설립해 운영하고 계시기도 합니다. 이렇게 인성교육을 지원하는 이유가 뭔가요. 

    김재철 | 네, 저는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외국을 많이 돌아다녀보고 해서 외국과 비교한 바가 많습니다. 우리 국민이 우수하고 이만큼 잘살게 됐는데 왜 우리나라는 이렇게 시끄럽고 분단국가인가. 그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최종적으로 나오는 얘기가 결국 ‘우리가 인성교육이 안 돼 있다, 교육이 문제다’ 하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소수의 학생이라도 데리고 한번 인성교육을 해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우수한 대학에서 이런 걸 실시하면 전국에 확산되지 않겠나 생각했는데 다행히 총장님께서 취지에 가장 먼저 찬동해주셔서 연세대에 라이프아카데미를 만들게 됐습니다. 지금은 더 많은 대학에 확산돼 있습니다. 실제 해보면서 ‘아, 이건 가치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학생들이 달라지는 모습을 보며 뿌듯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용학 | 지금부터 학생들이 회장님께 드리고자 준비한 질문을 제가 대신해 드리겠습니다. 요즘 학생들은 1학년 때부터 취업 고민을 많이 하는데, 회장님이 지금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어떻게 대응하고 준비했을까요. 

    김재철 | 저는 지금 학생들에게 굉장히 선택지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때는 어떻게든 ‘서바이벌’ 해야 하니, 가난을 면하려면 뭘 해야 할까 하는 정도가 고민의 전부였습니다. 지금은 얼마나 선택지가 많습니까. 제가 원래 농업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지금 같으면 남미 아르헨티나 같은 곳에 한 1000만 평, 1억 평쯤 땅을 빌려서 농사를 지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또 지구의 무한한 자원은 바다에 있습니다. 여러분 바다가 지구 면적의 71%를 점하는 건 상식으로 알고 계시죠. 또 가장 깊은 해협에는 지구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산을 담가도 2300m가 남습니다. 바다가 그렇게 깊습니다. 그 안에 어마어마한 자원이 있어요. 그런 자원을 개발하는 일을 한번 해볼까 싶기도 합니다. 또 요즘 정보기술(IT)이다 인공지능(AI)이다 하는데, 최고로 우수한 사람들을 모아 구글 못잖은 그런 기업도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하고 싶은 게 많지만 이제 늙어서 할 수 없지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웃음). 

    김용학 | 동원그룹에서 신입사원을 뽑을 때는 어떤 요소를 가장 중점적으로 보시나요. 

    김재철 | 저희 회사가 공채를 하면 경쟁률이 100대 1, 150대 1 그렇습니다. 그런데 최종 면접은 대개 뽑고자 하는 인원의 1.5배나 2배를 놓고 합니다. 그때 보는 것은 실력이 아니에요. 그렇게 선발돼 오면 실력은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이제 무엇을 보느냐, 인성을 보지요. 우리나라에서는 지금도 ‘지덕체’라는 말을 쓰는데 일본에서는 요즘에 ‘덕지체’라고 해요. 더 나아가 ‘덕체지’라고도 합니다. 옛날에 가장 앞에 있던 지식이 지금은 맨 뒤로 가고 있어요. 면접에서도 이 사람이 얼마나 지식을 가졌는지보다는, 남과 어떻게 더불어 살고 더불어 발전할 수 있는지를 중점으로 봅니다. 

    김용학 | 20대부터 선장을 하셨죠. 그때 선원들은 거칠고 우락부락한 사람들이었을 텐데 새파란 젊은 선장이 아버지뻘 되는 거친 선원들을 어떻게 다뤘을까. 학생들이 그 리더십의 비결을 궁금해합니다. 

    김재철 | 제가 스물여섯에 처음 선장을 했습니다. 대단히 어린 나이죠. 그때 우리 배 갑판장, 그러니까 일반 선원 중에 가장 선임은 저희 아버지와 나이가 똑같았어요. 나머지 선원 중에도 제 또래는 한두 명에 불과했고 대부분은 다 나이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선장 권위는 그때가 지금보다 훨씬 높았던 것 같아요. 그 시절엔 GPS가 없어서 배의 위치를 측정하려면 하늘에 있는 별이나 해를 놓고 수평선과 각도를 쟀습니다. 좀 배운 사람이 아니면 못 하는 일이죠. 또 배에서 사용하는 모든 자료가 영어로 돼 있어요. 그래서 배를 오래 탄 사람이라도 선장이 없으면 항해를 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뱃일을 말단부터 배웠기 때문에 고기도 좀 잘 잡았습니다. 그때는 제 배를 타면 돈을 잘 번다는 소문이 나서 서로 제 배를 타려고 줄을 대는 일까지 벌어졌기 때문에 비교적 통솔이 잘됐습니다(웃음). 

    김용학 | 회장님은 평소 성공 비결로 ‘약속 지키기’ ‘원칙 지키기’를 꼽습니다. 그러나 가끔은 원칙을 좀 어기더라도 유연하게 대처하는 게 도움이 될 때가 있지 않습니까. 

    김재철 | 제가 사업을 일찍 시작했는데요, 사람들이 보기에 정말 정직하게 일한다 싶으니 자꾸 해보라고 해서 그렇게 된 겁니다.(김 회장은 만 34세 때인 1969년 4월, 자본금 1000만 원으로 동원산업주식회사를 세웠다. 편집자 주) 그때 제가 사시(社是)로 삼은 게 ‘성실한 기업 활동으로 사회정의의 실현’이었습니다. 직원들에게도 늘 ‘원칙은 철저히, 작은 것도 소중히, 새로운 것은 과감히’라는 세 가지를 강조합니다. 저는 손득을 따질 때 좀 장기적으로 봅니다. 어떤 일을 적당히 넘기느라 정직을 잃으면, 당시엔 수월한 줄 알아도 결국은 득이 안 됩니다. 제가 1991년 자식한테 주식을 넘기면서 우리나라 역사상 증여세를 가장 많이 냈다고 해서 여러 신문에 크게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김 회장은 그해 장남에게 동원산업 주식 55만 주를 증여하면서 증여세 62억3800만 원을 국세청에 자진 신고했다. 편집자 주) 그것도 몇 년간 돈 내느라 엄청 힘들었지만 (장기적으로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처음부터 정직과 성실을 강조했고 그 원칙을 지켜왔습니다. 

    김용학 | 기업을 경영하다 보면 위기도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떤 위기가 가장 어려웠습니까. 또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김재철 | 생각지 않은 국제 환경의 변화가 위기가 될 때가 있습니다. 가령 우리가 어느 나라를 기지로 쓰고 있는데 거기 갑자기 쿠데타가 발생해 배를 붙잡아놓고 못 나가게 하는 것 같은 경우죠. 그런 위기를 수없이 당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바다 생활을 하면서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거든요. 앞서 제가 인간 능력이 무한하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죽음에 직면하면 정말 그걸 느끼게 됩니다. 참 대단한 게 산더미 같은 파도가 나를 덮쳐 ‘아, 이제 죽는구나’ 싶은 순간이면 희한하게도 그 짧은 몇 초 사이에 과거의 모든 일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갑니다. 또 ‘여기서 살아남으면 반드시 바르게 살아야지’ 하는 생각도 해요. 겨우 몇 초 사이에 그 많은 일을 가능하게 하는 인간 능력은 참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위기를 겪을 때마다 ‘내가 그때 바다에서 죽었으면 다 끝나는 거였는데 이만큼 살지 않았나. 겁날 게 뭐가 있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전에 우리나라 한 대통령께도 그런 진언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바다에서 큰 파도를 만나 죽느냐 사느냐, 배가 침몰하느냐 아니냐 할 때 선원들은 파도를 보지 않습니다. 선장의 얼굴을 봅니다’라고요. 선장 얼굴에 확신이 있으면 선원들이 그 명령을 따릅니다. 하지만 선장이 겁을 먹은 걸로 보이면 오더가 제대로 이행이 안 돼요. 저는 배 생활을 그렇게 했기 때문에 배짱이라고 할까요, 그런 게 좀 있는 편입니다. 

    김용학 |
    요즘 학생들은 저 학교 다닐 때보다 영어를 잘하고 아는 것이 많습니다. 회장님이 선택지도 많다고 하셨는데, 그럼에도 자신감이 없어요. 이 학생들한테 한 말씀 해주십시오. 

    김재철 | 저는 학생들이 역사 인식을 갖고 생각하면 용기가 나리라고 생각합니다. 역사 인식이라는 게 뭐냐, ‘과거에 대한 기억력, 현재에 대한 판단력, 그리고 미래를 위한 상상력을 기초로 한 주관적이고 구체적인 인식’입니다. 역사 인식을 가지면 여러분은 결코 비관할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고생 말입니다. 나무를 보세요. 사철이 있는 지역 나무가 단단하지, 남쪽 따뜻한 데서만 자라는 나무는 작은 바람에도 다 부러집니다. 그런 걸 생각하고 정신을 단련하면 나는 여러분에게 아주 밝은 미래가 있으리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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