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시신 인수 거부
市가 대신 장례
“자유롭게 추모하시라”
“고독한 삶, 고독한 죽음”
서울시립승화원에 설치된 무연고 사망자 정모 씨와 김모 씨의 분향소. 서울시와 시민단체가 장례를 돕고 있다. [나눔과 나눔]
서울시는 5월부터 장례의전업체로 ‘우리의전’을 선정해 무연고 사망자들의 장례를 치르고 있다. 광역단체 중에서 처음이다. 그전까지 비영리민간단체인 ‘나눔과 나눔’이 이들의 장례를 지원해왔다. 지금도 이 단체는 장례 일정을 공지한다. 누군가는 이 무연고 사망자들의 죽음을 문상하기 때문이다.
무연고 고인 2명 합동 영결
무연고 사망자의 유골이 담긴 플라스틱 함. [나눔과 나눔]
영결식 내내 가족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조문객은 자원봉사자들과 고인과는 일면식도 없는 필자뿐이었다. 한 자원봉사자는 “‘무연고’라는 말과 달리, 무연고 사망자의 80%는 연락이 되는 가족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무연고 사망자가 되는 것은 가족이 시신 인수를 거부한 채 지방자치단체에 위임하기 때문이다. 가족 간의 원한 때문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돈 때문이다. 평균 1380만 원에 이르는 장례비(한국소비자보호원)를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이날 먼 길을 떠난 두 고인도 같은 이유로 가족이 시신 인수를 포기해 무연고 사망자가 됐다.
무연고사망자는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3~2017년 무연고 사망자 수는 1280명, 1389명, 1679명, 1832명, 2010명으로 증가했다. 나아가, 무연고 사망자 중 65세 미만 중장년층도 적지 않다. 지난해 무연고 사망자 2010명 중 64세 이하는 1175명에 달했다. 50세 이하도 370명이었다.
“실직, 질병, 가족 해체, 그 끝은…”
한 무연고 사망자의 지방(紙榜)을 태우고 있다. [나눔과 나눔]
다른 한 관계자도 “30~50대에 경제적으로 크게 실패해 가산을 탕진한 사람 중 상당수가 재기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이들이 질병까지 얻은 뒤 가족과도 차츰 멀어졌다. 결국 무연고 사망자에 이르게 된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무연고 사망자에 이르는 첫 단계가 1인 가구가 되는 것인데, 요즘 1인 가구가 늘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가구 중 28.6%, 560만 가구가 1인 가구였다. 전년 대비 0.7% 늘어난 수치다. 한국장례문화진흥원 보고서에 따르면, 2035년엔 1인 가구가 763만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KB금융경영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1인 가구 중에서 삶에 만족한다는 가구는 69.5%인데, 50대 1인 남성 가구 중에서 삶에 만족한다는 가구는 51.4%로 뚝 떨어진다. 중장년-노년 남자 중에서 무연고 사망자가 많다.
박진옥 ‘나눔과 나눔’ 사무국장은 2015년부터 무연고 사망자 장례를 도왔다. 박 국장은 “1인 가구의 사회적 고립이 ‘고독생’으로, 결국 ‘고독사’로 이어진다. 1인 가구가 사회적으로 고립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 고립되지 않을 방법은 무엇인가?
“비슷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고독사 위험군에 있는 사람들의 관심사를 파악해 이들을 연결해주는 것이다.”
- 어떤 이유든 무연고 상태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불행한 일인 것 같다.
“우리는 과거와 같은 공동체로 돌아가긴 힘들다. 과거엔 가족의 가치가 절대적으로 중시됐지만 요즘은 많이 희석되고 있다. 현대사회에 맞는 새로운 공동체 모델이 필요하다. 그 핵심은 인간성 회복으로 귀결된다. 한편으론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재력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사람 그 자체로 보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
연고가 있는 사망자를 무연고 사망자로 만드는 현행법도 문제라는 목소리가 있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장례는 사망자의 가족만이 치를 수 있다. 가족 내에서도 배우자, 자녀, 부모 순으로 의사 결정 우선순위를 갖는다. 이에 따라 사망자와 사실혼 관계에 있는 사람이나 가까운 친구라 하더라도 사망자의 가족이 시신 인도를 거부하면 장례를 치르지 못한다. 이런 사망자는 무연고 사망자로 처리된다.
“유언 못 지킨 연인”
A씨는 5월 말 갑작스러운 병환으로 사망했다. 평소 왕래가 있던 A씨의 이모와 이웃이 A씨의 장례를 치르려고 했다. 그러나 오래전 A씨와 연락을 끊은 A씨의 어머니가 구청에 위임해 장례를 치를 수 없었고 A씨는 무연고 사망자로 처리됐다. 2월 초 자살한 B씨는 유언장에서 “결혼을 약속한 연인을 보호자로 지정할 테니 화장해 뿌려달라”고 썼다. B씨의 연인은 이 유언을 이행하려고 했으나 결국 B씨의 법정 가족이 아니었기에 이행하지 못했고 장례를 치를 수 없었다.※ 이 기사는 필자가 ‘동아 논술·작문·기사쓰기 아카데미 2기’ 과정을 이수하면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