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출범 후 정책 11번 내놔
실수요자를 위한 정책은 없다
보유세 높이되 거래세 낮춰야
애먼 전세 가격 오를 수도
분양 후 6개월 안에 집 못 팔면 ‘징역형’
[뉴시스]
극도의 피로감이 쌓인 시장은 정부가 뒤늦게 내놓은 ‘9·21 공급 정책’으로 한풀 꺾이는 분위기이긴 하나 그 효과가 어디까지 미칠지는 미지수다. 9·13 부동산대책 발표 이후 서울 주택 시장은 숨고르기 장세에 들어갔다. 거래량이 뚝 떨어진 가운데 이미 오른 호가는 그대로 버티기에 들어갔다. 지속적인 규제의 칼날에 투자 심리가 크게 위축됐고, 올 연말까지 눈치 보기 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조정 국면이 오더라도 단기에 그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KB부동산에 따르면 10월 1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 가격은 전주보다 0.49% 올랐다. 지난 8월 급등하기 시작해 매주 사상 최고 상승률을 기록한 것에 비하면 이는 미미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2주택 이상 보유자에게 종합부동산세를 중과하고 신규 주택담보대출을 제한하는 등 고강도 규제책을 내놓자 평상시 수준으로만 소폭 상승한 것. 9·21 주택 공급 대책에 포함된 3기 신도시 건설 계획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집값 안정의 실질적인 키를 잡고 있는 ‘매물’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정부의 보유세 인상 방침에 따라 2019년부터 다주택자나 고가 주택 보유자는 종부세를 지금보다 적게는 2배, 많게는 4배까지 내게 되면서 강남을 비롯해 10억 이상 고가 아파트가 몰려 있는 지역에서 매물이 나올 것으로 관측됐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큰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는다. 오히려 고강도 규제 탓에 ‘매물 잠김’ 현상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집값 안정, 혹은 혼돈의 변곡점에 선 지금 부동산 전문가 10명에게 부동산 정책의 치명적 오류와 지금이라도 수정돼야 할 규제는 무엇인지를 들었다.
9·21 공급 정책은 ‘속 빈 강정’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에서 두 번째)은 9월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주택시장 안정대책’을 발표하며 “투기와 집값을 반드시 잡겠다는 의지로 대책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김 부총리, 최종구 금융위원장, 한승희 국세청장. [동아DB]
또 하나, 서울의 연간 적정 입주물량은 5만5000가구이지만 지난 5년간 입주 상황을 살펴보면 4만5000가구밖에 되지 않는다. 해마다 1만 가구가 부족했던 것. 고 원장은 “수치가 이렇게 명확히 말해주는데도 정부는 집 사려는 사람을 모두 투기 수요로 간주하고 이를 억누르려고만 했다”고 말했다. 고 원장은 정부의 공급 정책에 대해서는 “방향성은 맞으나 제대로 된 공급 로드맵이 없다”는 점을 우려했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을 보면 해마다 주택 부족분이 얼마인지를 공표하고, 언제까지 어디에 어떻게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런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 경제에서 가장 두려운 요소가 바로 불확실성이다. 그린벨트를 해제하네 마네는 차후의 얘기고 주택 보급 계획의 큰 줄기가 먼저 나와야 한다.”
재건축초과이익 환수제 등 재건축 규제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신규 공급 물량이 줄어들면서 이 또한 공급 부족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전매 제한 대상을 분양권으로 한정하되 재건축 아파트 거래는 규제를 풀어 시장에 매물로 내놓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안명숙 우리은행 부동산자문센터부장은 “재개발·재건축은 주민들이 원하면 속도감 있게 추진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 10년 전에 막아놓은 것들이 지금 몰리면서 가격 부담은 더 커졌다. 결국 물량이 꾸준히 나오도록 해줘야 하는데 시장이 묶이면 언젠가 한꺼번에 터지면서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너나 나나, 새 아파트 좋아해”
손재영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지금 시장에 참여하려는 사람들이 새 아파트를 좋아한다는 걸 정부가 인정해야 한다. 재건축 아파트 가격이 오르는 건 그걸 원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 아닌가. 공급이 제대로 이뤄져야 시장이 안정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정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도 물량 잠김 현상을 유발했다는 평을 받는다. 당초 정부는 민간 임대주택이 늘어나면 정부 돈을 들이지 않고도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한 ‘준공공임대주택’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등록된 임대주택은 연간 임대료 인상률이 5% 이내로 제한되고, 세입자의 계약갱신 청구권도 보장돼 전·월세 시장을 안정시킬 것이란 기대였다.
하지만 임대주택으로 등록하면 종합부동산세 합산 배제, 양도세 중과 배제와 장기보유특별공제가 적용되고, 취득세, 재산세가 50~100% 감면되는 등 혜택이 많아지자 너도나도 임대주택 등록을 하면서 시장에서는 매물이 사라져버렸다.
박상언 유엔알컨설팅 대표는 “임대사업등록 대상을 공시가 기준 6억 원 이하로 정해 실제 가격 10억 원이 넘는 고가 주택도 임대주택으로 등록할 수 있어 시장에서 매물이 들어가버렸다. 임대사업의 효과를 제대로 살리려면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 부과를 좀 더 늦췄어야 한다. 부동산 조정지역에서는 올해 4월까지 팔아야 중과세를 피할 수 있었는데 그 기간이 너무 짧았다”고 지적했다.
고준석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장도 “문제는 수급이다. 9·13 대책으로 집값의 큰불은 꺼질지 모르나 잔불은 계속 남아 있다. 서울 지역 공급이 제대로 이뤄져야만 집값이 안정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과도한 거래세도 부동산 시장의 공급을 교란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보유세는 높이더라도 거래세(취득세+양도소득세)는 낮춰 ‘퇴로’를 열어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부는 지난 9·13 대책을 통해 종합부동산세 과표 구간에 3억~6억 원 구간을 신설하고, 조정지역 2주택 이상 보유자에 대해서는 최고 세율 3.2%를 부과하기로 했다. 하지만 거래세 조정 기미는 아직까지 보이지 않고 있다.
집 팔게 하려면 양도세 낮춰야
위례신도시 아파트 단지 전경. [동아DB]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전문위원도 “양도세 중과를 한시적으로 풀어주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다주택자 중에는 주택을 처분하고 싶어도 양도세가 무서워 버티는 사람이 많다. 다만 양도세 중과를 풀어주거나 인하할 경우에는 시장에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도한 대출 규제가 실수요자의 발목을 잡는다는 비판도 피하기 힘들다. 대표적으로 담보인정비율(LTV)을 들 수 있다. 정부는 지난해 8·2 대책을 통해 서울 전역을 포함한 투기과열지구에서는 모든 주택에 집값의 40%까지만 대출이 가능하도록 규제를 크게 강화했다. 물론 실수요자에 한해서는 연소득, 주택 가격 등을 고려해 50%까지 대출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후 9·13 대책에서는 무주택자라도 실거주 목적이 아니면 규제지역 내 공시가격 9억 원 초과 주택에 대해서는 대출을 금지했다.
하지만 이는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 기회를 막는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지역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상황에서 월급만 모아 집값의 60%를 준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창무 한양대 교수는 “정부는 돈 있는 사람들이 더 이상 주택을 구입하지 못하도록 대출을 규제하지만, 정작 그 영향은 돈 없는 사람들에게 강하게 미친다. 어차피 돈 있는 사람들은 빚 없이도 집을 산다. 우리나라 주택 보유자 중 채무가 없는 사람이 절반 이상이다”고 말했다. 결국 대출이 필요한 사람이 대출을 받지 못함으로써 얻는 피해가 크다는 얘기다.
“‘전세 귀족’ 구분해야 한다”
서울 지역 부동산중개업소에는 ‘9·13부동산대책’의 여파로 매수, 매도 문의가 자취를 감췄다. [동아DB]
이에 대해 고종완 원장은 “정부의 방향은 옳지 않다”고 비판한다. 서민 주거 복지 향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고 원장은 “오히려 고가 주택에 전세로 사는 ‘전세 귀족’을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주거비가 가장 저렴한 형태가 전세인데, 이 점을 악용하는 사람이 많다. 10억, 20억에 전세 사는 사람에겐 주택 구매로 유도하고, 집 살 돈이 없는 사람에겐 전세대출 금리를 더 낮춰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쏟아지는 규제에 집값 향방을 가늠하기 어렵게 되면서 전세 가격 상승도 예상된다. 관망 내지 숨 고르기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전세 연장을 선택하는 이가 많아지고 있는 것. 서울시 전세가격지수는 눈에 띄게 상승하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 9월 서울의 전세 거래 비중이 74%로 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가운데 강북(82.8%)과 강서(81.75%), 은평(81.5%) 등은 전세 거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특히 연말에는 신학기 학군 수요가 겹쳐 전세가가 더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양지영 R&C연구소 소장은 “자녀 교육을 우선으로 하는 중산층 부모들은 거주지 관련 선택지가 매우 제한적이다. 각종 규제로 이들의 구매력이 차단되자 전세 수요가 늘고 전세 가격은 점점 오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6개월 안에 집 못 팔면 징역형?
정부가 2주택 이상 보유 가구에 규제지역 내 주택 신규 구입을 위한 주택담보대출을 금지한다고 발표한 9월 13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은행에서 고객이 대출 상담을 하고 있다. [뉴시스]
지방 집값이 떨어지면서 완공된 후에도 팔리지 않는 ‘악성 미분양’ 물량은 점점 더 쌓여가고 있다. 지난해 8월 9716호 수준이던 수도권 미분양 물량은 올해 8월 8534호로 감소했지만, 지방은 같은 기간 4만3414호에서 5만3836호로 더 늘어났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이번에 밝힌 공급 계획에서는 수요를 분산하는 정책을 써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울 거주자를 수도권으로 이주시키는 ‘당근 정책’도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2009년 2월, 정부는 부동산 침체기를 맞아 수도권 미분양이 쌓이자 그해 연말까지 미분양 주택을 구입하는 사람에 한해 취득세 50% 감면, 양도세 5년간 감면 정책을 내놨다. 그 결과 미분양이 상당 부분 해소됐다.
권 교수는 “종부세를 강화할 게 아니라 서울에 사는 사람들을 경기 의정부, 동탄 등으로 유도할 필요가 있다. 세금을 전액 감면해주면 이사 갈 사람들이 분명 생긴다. 물론 교통 인프라를 확장해 출퇴근에 따른 불편은 해소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강남을 비롯한 과열지구에선 일반 분양이 아닌 전량 임대주택으로 가고, 수요가 많이 몰리지 않는 지역은 분양가를 낮춰 미분양 규모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10월 11일 국토부가 발표한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개정안에 따르면 투기과열지구, 청약과열지구 및 수도권, 광역시에서는 추첨 대상 주택의 75%를 무주택자에게 우선 배정한 뒤 후순위로 25%의 남은 물량을 1주택자에게 배정키로 했다. 이에 따라 1주택자도 추첨제 청약에 참여할 수 있게 됐지만, 입주 가능일(사업주체가 통보)로부터 6개월 내에 기존 주택을 처분해야 한다. 약속대로 기존 집을 팔지 않으면 공급 계약이 취소되는 것은 물론 500만 원 이하 과태료나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을 받게 된다.
이 내용이 발표되자 일반인 사이에서는 “집을 처분하지 못했다고 해서 최고 징역 3년형을 부과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인터넷 카페 등 온라인에서는 ‘징역 3년형’ 부과를 놓고 논란이 뜨겁다.
반면 국토부는 “전매 제한 규정을 위반할 때도 주택법에 따라 징역이나 벌금형을 부과한다. 통상적인 방법으로 집을 팔려고 내놨는데 매입하려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면 처분권자(지자체장)가 과태료 처분을 할 것이고 벌금이나 징역은 고의적으로 팔지 않는 등 극단적인 사례에 한할 것”이라고 말했다. 입법 예고 기간은 10월 12일부터 11월 21일까지 40일간으로, 관계기관 협의와 법제처 심사 등을 거쳐 11월 말 시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