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호

북한 출신 한반도 전문가 김형덕·주승현 대담

주승현 교수 “핵무력의 승리라는 게 北 인식”

  •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18-10-28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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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반도기는 북한에서 ‘조국통일기’

    • ‘北·中 혈맹’ 주목해야

    • “비핵화는 최종적 승리의 과정”

    • 친미 국가 되지 못할 이유 없어

    • 자유는 인간의 기본 욕구

    • 평화, 번영의 시대 열릴 것

    김형덕(45) 한반도평화번영연구소 소장과 주승현(37) 인천대 초빙교수(통일통합연구원 상임연구위원)는 북한 출신 한반도 문제 전문가다. 북한 출신 지식인은 정체성을 남북 양쪽에 두고 있다. 경계인(境界人)적 측면도 있다. 주승현 교수가 쓴 ‘조난자들’은 북한 출신 한국인을 부유(浮游)하는 존재로 묘사한다. 

    책과 자료로 연구한 북한과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들여다본 북한은 다를 수밖에 없다. 북한 출신 전문가들은 남북관계와 대북정책에서 놓친 부분을 잡아낼 수 있다. 결이 다른 직관(直觀)도 제공할 수 있다. ‘신동아’가 북한 출신이면서 한반도 문제를 연구해온 두 전문가 대담을 진행한 까닭이다. 

    김형덕 소장은 1993년 북한을 이탈해 이듬해 9월 한국에 입국했다. 2001년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후 탈북민으로는 처음으로 국회의원 비서관을 지냈다. 대성그룹에서 일하다 2008~2010년 미국에서 연수했다. 2000년부터 한반도평화번영연구소를 운영해왔다. 

    주승현 교수는 북한군에 복무하던 21세 때 AK소총을 들고 군사분계선(MDL)을 넘었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연세대 대학원에서 분단 및 통일 문제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탈북민 입국이 본격화한 후 한국 대학·대학원을 거쳐 박사 학위를 받은 첫 사례다. 전주기전대 교수로 일했다. 

    - 북한 경제가 제재 와중에도 그 나름대로 성장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 회복세가 뚜렷하다. 



    김형덕 | 북한은 오래전부터 제재를 받아왔으며 제재는 지속·강화됐다. 제재에도 불구하고 성장한 것이다. 해외 파견 노동자가 송금한 외화와 자원 수출이 경제성장 요인이다. 지난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결의로 노동자 송출과 자원 수출이 막혔다. 더는 버틸 수 없는 한계점에 도달했을 수도 있으나 제재가 계속되더라도 그 나름대로 성장은 해나갈 것이다. 

    주승현 | 대북제재가 북한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오랫동안 제재를 받아와 내성이 생겼다는 것은 맞는 얘기지만, 지난해 9월 대북제재는 전례 없는 것이었다. 해상 차단과 원유 공급 축소는 차원이 다르다. 

    - 제재가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나오게 했다? 


    주승현 | 그렇다. 북한 주민의 대북제재에 대한 생각도 예전과 다르다. 과거엔 제국주의자의 고립·말살 책동이라고 여겼으나, 현재는 체제 중심으로 뭉쳐 버티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평양 처지에선 굉장히 곤혹스러운 상황이었다. 북한 체제가 영향을 받을 만큼의 제재가 이뤄진 것이다. 

    - 1990년대 북한 경제는 어땠나. 

    김형덕 | 체감한 것을 말하면 1980년대까지는 살 만한 나라였다. 1989년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을 치르고 난 후부터 삐걱거렸다. ‘고난의 행군’ 징후가 그때부터 나타난 것이다. 1990년대 초중반 자연재해가 일어났으며 평양이 소련·동유럽 체제 변동에 대응하지 못하면서 경제난이 심화했다. 

    - 2000년대는? 

    주승현 | 계획경제 외 다른 대안이 생겼다. 장마당이라고 불린 합법화된 시장이 대안 경제로 떠올랐다.

    “북한 주민들 ‘핵무력의 승리’로 이해했을 것”

    - 평양 시민이 북·미 정상회담 내용을 보도한 ‘노동신문’을 눈 벼리며 읽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수령’이 타도해야 할 ‘미제국주의자’와 함께 서 있는 장면을 보면서 시민들은 어떤 감정을 가졌을까. 

    김형덕 | 북한 주민의 사고는 두 갈래로 나눠 살펴봐야 한다. 밖에서, 집에서 얘기하는 게 다르다. 북한 당국은 ‘미제는 원수’라고 가르치지만 미국이 강대국이라는 점을 주민들이 다 안다. 미국 대통령과 대등하게 마주 섰다는 것은 정권 처지에서도 아주 좋은 선전거리다. 

    주승현 |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한국 사람이 느낀 것과 북한 사람이 느낀 것은 다를 수밖에 없다. 북한 사람들은 ‘핵무력의 승리’로 이해했을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전의 지도자들과 다르다’고도 느꼈을 것이다. 

    - 비핵화를 언급한 것에 실망하진 않았을까. 

    김형덕 |
    이제껏 핵을 폐기하겠다고 말한 적은 없다 ‘조선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을 썼을 뿐이다. 

    주승현 | 미국이 핵전쟁으로 북한을 없애려 하기에 핵을 개발했다는 게 평양의 논리다. 핵무력을 완성한 덕분에 미국이 협상에 나온 것이라고 북한 주민들은 인식한다. 비핵화는 핵무력 완성을 통한 최종적 승리의 과정이 되는 것이다. 북한 사람들은 “핵무기가 완전히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북한은 공식적으로 내놓는 언어와 비공식적으로 흘리는 언어가 다르다. 비핵화를 하더라도 데이터든, 기술자든 핵능력은 그대로 보유한다고 주민들은 믿을 것이다. 

    - 북·미 협상은 단기전일까, 장기전일까. 

    김형덕 | 내년 후반기엔 윤곽이 나올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장기전이다. 북한이 버텨낼 내구성을 가졌다면 협상이 오래갈 것이다.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를 수용하지 않으면 제재를 강화하면서 군사 훈련을 상시적으로 재개할 것이다. 북한이 버티기엔 벅차지 않을까 싶다. 북한은 규범화, 법제화하지 않았을 뿐 시장경제다. 시장을 악화시키는 정책을 구사하면 경제가 버텨내기 어렵다. 

    주승현 |
    나는 김형덕 소장과 생각이 다르다. 평양은 협상을 긍정적 분위기로 이끌어가면서 시간을 끌 것이다. 비핵화 과정에서 얻을 게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이 뒤에서 북한을 후견하는 상황이다.

    북한과 중국은 血盟인가

    9월 5일 주승현 인천대 초빙교수(왼쪽)와 김형덕 한반도평화번영연구소 소장이 대담했다. [박해윤 기자]

    9월 5일 주승현 인천대 초빙교수(왼쪽)와 김형덕 한반도평화번영연구소 소장이 대담했다. [박해윤 기자]

    - 북한이 전통적으로 중국을 불신한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김일성-마오쩌둥(毛澤東) 시대의 혈맹이 복원됐다는 분석도 있다. 북한에도 중국인 비하 표현이 있나. 

    김형덕 | 되놈, 똥되놈. 

    - 북·중 관계는 현재 어떻다고 생각하나 

    김형덕 | 북한과 중국 사이엔 전통적 관계가 존재하나 평양과 베이징은 현재 체제 자체가 다르다. 중국은 개인이 토지를 소유할 수 없는 것을 제외하면 한국과 다를 바 없다. 중국이 북한을 끌어안는다? 북한과 중국은 너무나 다르다. ‘북한을 굉장히 짜증 나는 나라’로 여기는 중국인이 많다. 중국 기업인들이 그렇게 말한다. 딱 하나 북한이 미국과 연합하는 것은 중국이 받아들이기 어렵다. 미국을 압록강에서 만나고 싶지 않은 게 베이징의 심리다. 국가 전략 차원에서 북한이 필요하긴 한데 피곤한 이웃인 것이다. 북한 또한 미국을 상대할 때 배후로서 중국이 필요하나 베이징에 의존하면 존재감을 잃는다. 중·소 분쟁 때 평양이 베이징과 모스크바 사이를 오간 것은 현재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주승현 |
    나는 김형덕 소장과 견해가 다르다. 북·중이 ‘혈맹’이라는 점에 주목하지 않으면 상황을 오판할 수 있다. 북한과 중국은 전통적 혈맹이면서 현재 전략적 이익을 공유한다. 김정은이 올해 7월 정전협정 65주년에 맞춰 평안남도 회창군 중국 인민지원군 열사릉원을 방문해 “이 땅의 산천초목에는 중국 동지들의 붉은 피가 스며 있다”고 했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때 도와주지 않았으며, 대북제재에 동참하는 등 북한이 중국에 서운한 게 있으나 혈맹이라는 북·중관계의 본질을 잊어선 안 된다. 

    - 9월 남북 정상회담 때 평양 시민들이 태극기 없이 인공기와 한반도기만 흔든 것을 두고 뒷말이 있다. 

    김형덕 | 평양에 갔으면 북한을 존중하는 게 맞다. 서울에 오면 한국 방식을 존중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현실적으로 두 국가이므로 이것이 옳다, 저것이 옳다는 의미가 없다. 합의점을 점진적으로 찾아가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주승현 |
    쟁점화가 별로 안 되고 넘어갔는데 주목할 만한 대목이 있다. 한반도기에 대한 개념이 한국과 북한이 다르다. 북한에선 그 깃발이 ‘조국통일기’다. 이 같은 의미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 큰 논쟁 없이 넘어간 것이다. 한국에선 한반도를 그려 넣은 이미지지만 북한에서는 평양이 생각하는 통일과 관련한 메시지를 담은 깃발이다. 

    - 북한은 노동당 주도 통일전략을 폐기한 적이 없다. 

    김형덕 |
    체제 경쟁은 이젠 의미 없는 얘기다. 자유와 자기 선택권을 누리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 욕구다. 한국은 보편주의 사회의 기본 욕구를 보장한다. 북한은 전체주의다. 누가 북한 사회를 동경하겠나. 접촉이 늘면 보편적인 것이 비(非)보편적인 것을 대체한다.

    전략적 결단인가, 전술적 술수인가

    - 현재의 대화 국면을 주도하는 것을 누굴까. 

    주승현 | 운전석에 앉은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이나 실질적으로 많은 것을 얻어낸 것은 김정은 위원장이다. 

    - 북한이 핵을 포기할까. 전략적 결단(핵 포기 후 경제 발전 추구), 전술적 술수(핵보유국 지위에서 미국과 핵 군축 협상)라는 엇갈린 분석이 다툰다. 

    김형덕 | 북한이 핵을 포기하기 위해 핵을 개발했다고 본다. 핵을 계속 보유하면 대북제재가 유지된다. 한미 군사훈련도 상시적으로 재개된다. 그렇게 되면 북한이 원하는 경제 재건이 어려워진다. 평양이 가진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않는 조건으로 핵을 버릴 수 있게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북한과 미국이 정상국가 관계를 맺으면 평양이 핵을 가질 이유가 없다. 다만, 비굴한 방식으로 핵을 버리라고 요구하면 북한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주승현 | 올해 초 대화 국면이 시작될 때는 북한이 전략적 전환에 나선 것이라고 봤다. 비핵화 의지도 있었다고 본다. 미국과 협상이 잘 이뤄지면 전략적 전환으로 귀결되겠으나 협상이 장기전으로 이어지면 전술적 시도로 바뀔 수 있다고 본다. 가장 큰 변수는 중국이다. 북한과 중국의 이익이 일치하는 형국이다. 

    - 북·미 협상의 결과물로서 주한미군 철수를 우려하는 이들도 있다. 중국 또한 주한미군 철수를 원한다. 

    김형덕 | 100억 가진 사람과 1억 가진 사람의 자신감은 달라야 한다. 100억 가진 사람이 5000만 원 가진 것처럼 행동해서야 되겠나. 

    주승현 |
    핵을 제외하면 군사력은 한국이 압도적이다. 평양은 핵을 갖고 있거나 경제 발전을 이뤄내면 서울을 압도할 수 있다고 여기나 한국의 실제를 오해하거나 부정하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동반돼야 경쟁력을 갖출 수 있으며 체제가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북한이 그렇게 되려면 최소 30년 넘게 걸린다. 

    - 노동당 주도 통일은 평양이 가진 망상일지라도 대비는 해야 하지 않나. 

    주승현 | 그렇다. 대비해야 한다. 

    김형덕 |
    불가능한 얘기다. 사회주의 체제로 생산력을 괄목할 만하게 증대시킨 전례가 없다. 경제 번영은 경쟁적 자본주의가 낳는다. 생산력이 증가하면 전체주의가 배격될 수밖에 없다.

    통일로 가는 길

    - 통일은 어떤 과정을 거쳐 이뤄내야 할까. 

    김형덕 | 30년가량 다른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 한국이 가진 우위와 북한이 가진 장점을 잘 결합해야 한다. 경제나 체제가 비슷한 구조가 된 다음 자연스럽게 통합하는 게 좋다.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면 이런 과정을 거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단, 조건이 있다. 한국이 핵 없는 북한을 위협해선 안 된다. 민주주의 체제를 요구하는 변화가 북한에서 일어난다면 비상시국으로 받아들여 대응해야겠으나 앞장서 평양 체제를 흔들어선 안 된다. 현실적으로 볼 때 북한 개방은 한국 경제에 절호의 기회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남북 경협 과정에서 북한 사람들을 열등한 존재로 봐선 안 된다는 점이다. 유용한 전략적 파트너로 인식하고 존중하자. 한국 기준을 북한에 들이대면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다. 1000달러를 주면서 존중하지 않을 바엔 100달러를 주면서 존중하는 게 낫다. 

    주승현 | 김형덕 소장 견해에 동의한다. 

    - 한국 정권이 보수로 바뀌거나 미국 정치 지형이 변화하면 국면이 전환될 수도 있다. 

    김형덕 |
    과거 같은 갈등 국면으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주승현 |
    한국에서 정권이 바뀌면 대북정책이 송두리째 바뀌었으나 앞으로는 다를 것이다. 보수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앞선 합의를 인정한 상태에서 대북정책을 수립하리라고 본다. 보수 정권이 내놓는 통일정책에서도 북한 붕괴를 전제로 한 급진적 내용이 상당 부분 사라질 것이다. 통일은 시기적으로 더욱 멀어졌으나 통일에 대한 관심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판문점 선언의 키워드는 평화→번영→통일 순서다. 평화와 통일 사이에 ‘번영’이라는 낱말이 들어간 건 뜻하는 바가 크다. 트럼프도 번영을 자주 언급한다. 통일은 남북이 공동 번영한 이후의 일이다. 통일은 ‘국가적’ ‘민족적’이라는 낱말이 붙는 당위의 영역이었으나 앞으로는 개인이 중요해진다. 주판알을 튕겨 통일비용을 계산하며 손해를 따지는 게 아니라 개인이 번영하려면 통일을 지향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김형덕 | 평화, 번영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2000년부터 한반도평화번영연구소를 운영해온 까닭이다.

    베트남 모델은 가능한가

    - 북한이 한국·미국과 경제적으로 밀접하게 엮여 친미비중(親美非中) ‘베트남 모델’로 나아갈 수도 있을까. 

    김형덕 | 안 될 이유가 없다. 그렇다고 굳이 베트남 모델이니 하면서 평양에 들이밀어선 안 된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결국은 ‘북한 모델’이다. 친미로 갈지, 친중으로 갈지는 국제 정세 변화에 따라 갈릴 것이다. 북한이 소련과 중국 사이를 오간 전례가 있다. 어느 쪽이 이익이냐에 따라 행보를 결정할 것이다. 

    주승현 |
    북한이 친미가 되거나 반중이 된다는 것은 너무 나간 얘기다. 북·미관계 정상화를 친미로 확대 해석할 수는 없다. 중국은 과거 북한에 대해 어떤 욕심이 있었다. 속국으로 만들려는 생각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 두 패널에게 북녘은 태를 묻은 곳이다. 통일은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김형덕 | 스무 살에 북한을 떠났으니 북녘에도 내 정체성이 있으나 사람은 사는 곳이 고향이다. 한국에서 아이를 낳고 뿌리를 내렸다. 그러니 내 고향은 이곳이다. 북한에서 태어난 사람이 한국에서 평화로움과 행복함을 느끼면 그것은 이 사회가 나를 거부감 없이 수용한 것이다. 그것이 작은 통일 아닌가. 나는 남과 북의 사람들이 서로를 거부하지 않고 수용하는 게 통일이라고 본다. 

    주승현 | 내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게 통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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