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호

창간기획 | 뉴 밀레니엄 18년의 기억

오피니언리더 50人이 말하는 새천년

죽어도 산 盧, 살아도 죽은 朴 경제권력은 삼성, 주52시간에 ‘깜놀’

  • 입력2018-10-28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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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장 큰 사건 朴 전 대통령 탄핵·구속”

    • “영향력 1위는 盧 전 대통령”

    • “재계 평정 삼성, 가장 영향력 큰 조직 돼”

    • “세계금융위기, 국제금융 바꾼 대사건”

    • “영향 컸던 정책, 세종시·주52시간 근무제”

    • “세월호는 이견 없는 최악의 참사”

    • “이명박, 인물·정책 공히 존재감 없어”

    ‘신동아’는 창간 87주년을 맞아 한국의 오피니언리더 50인에게 2000~2018년 한국의 주요 사건과 인물, 조직, 정책에 대해 물었다. 각 문항의 주제는 후세에 가장 큰 파장을 미칠 정치·경제·사회 분야 사건, 가장 오랫동안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조직,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사회경제 정책으로 구성됐다. 설문은 객관식으로 짜였다. 단, 문항에 따라 복수응답이나 무응답을 택한 응답자도 있었다. 설문에 응한 각 분야 오피니언리더 50인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편집자 주>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 김소영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장 /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前 보건사회연구원장) / 김윤태 고려대 공공사회학부 교수(前 한국사회여론연구소장) /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前 한국경제학회장) /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 김창환 미국 캔자스대 사회학과 교수 / 박부권 동국대 교육학과 명예교수 / 박상준 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 서민 단국대 의대 기생충학교실 교수 /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 송호근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석좌교수(前 서울대 석좌교수) / 신기욱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교수·아시아태평양연구소장 /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 신평 변호사(前 한국헌법학회장) / 안상훈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안재욱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前 경희대 부총장) / 연강흠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前 한국재무학회장) / 원용진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문화연대 공동대표) /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前 한국금융연구원장) /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 /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 / 이민규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한국언론학회장) / 이인실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前 통계청장, 차기 한국경제학회장) / 이정동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 이진우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석좌교수(前 계명대 총장) /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 장강명 소설가(前 동아일보 기자) /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 /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 정소연 법률사무소 보다 변호사·SF 작가 / 정여울 문학평론가 /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 조장옥 서강대 경제학부 명예교수(前 한국경제학회장) /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국가관리연구원장 / 주철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前 서울문화재단 대표) /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최종렬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 /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가나다 순)

    역사는 ‘오래된 현재’다. 오늘의 시선에서 취사선택한 과거가 역사라는 명찰을 달고 우리 앞에 놓인다. 지난 일 중 무엇에 더 큰 비중을 두는지가 오늘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그러므로 “역사 이야기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세계에 관한 문제가 달라진다.”(김기봉, ‘내일을 위한 역사학 강의’ 중). 더 나은 미래를 여는 열쇠도 역사다. “과거는 신도 바꿀 수 없는 필연이지만, 미래는 우리가 꿈을 갖고 설계할 수 있는 증강현실”(같은 책)이기 때문이다. 과거를 물어야 미래의 얼개가 드러난다. 

    프로페셔널(professional) 수준의 역사학까지는 아니어도, 지나간 새천년을 되돌아보려는 ‘신동아’의 기획은 그래서 탄생했다. 옛일을 부러 끄집어내서라도 한 뼘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태겠다는 취지다. 오피니언리더들이 기꺼이 설문에 응한 까닭도 이와 같았을 터. 50인의 생각은 때로 놀라울 만큼 같았고, 때로는 동시대인이 맞나 싶을 만큼 어긋났다.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신동아’가 2000~2018년 ‘한국에서 일어난 정치 분야 사건 중, 후세의 정치사(史)에 미칠 파장이 가장 큰 사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더니 오피니언리더 42명(80.7%)은 ‘최순실 게이트,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및 구속수감’이라 답했다. 이를 제외하고 비교적 유의미한 응답을 이끌어낸 문항은 ‘남북 정상회담’(7명, 13.4%)뿐이었다.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2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1명)가 그 뒤를 이었다. 다른 사건들의 존재감이 약했다기보다는 국정농단 사건이 역사에 준 충격의 강도가 그만큼 높았다는 뜻. 



    2017년 3월 10일 이정미 당시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읽은 탄핵선고문은 미래의 역사책에서 특별한 위상을 차지할 전망이다. 

    “피청구인의 법 위배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할 것이다. 이에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한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그로부터 11일 뒤인 3월 21일, 박 전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했다. 열흘 뒤, 검찰이 박 전 대통령을 구속했다. 5월 23일에는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정식 공판이 시작됐다. 이듬해 4월 6일, 법원은 박 전 대통령에게 국정농단 혐의로 징역 24년과 벌금 180억 원을 선고했다. 8월 24일 항소심에서 법원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징역 25년·벌금 200억 원을 선고해 되레 처벌 강도를 높였다. 

    ‘신동아’ 설문에 응한 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박 전 대통령 탄핵·구속은) 정치 엘리트들이 정치적 권위를 완벽하게 상실한 중요 계기가 돼 훗날에 미칠 영향이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도 설문에 답하며 “대통령 탄핵과 구속으로 기존 제도와 질서에 큰 변화를 초래했기 때문에 후세에 큰 파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정희 신화 vs 노무현 신화”

    ‘2000~2018년 한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신동아’ 질문에 오피니언리더 32명(64%)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고 답했다. 오피니언리더 10명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20%)을 택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각각 3표씩 얻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택한 오피니언리더는 각각 1명이었다. 같은 현대그룹 출신인 이명박 전 대통령과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단 한 표도 얻지 못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09년 5월 23일 명을 달리했다. 설문 대상 시기인 18년 중 절반 동안 세상에 부재했던 것. 하지만 그는 살아 있는 정치·경제 리더를 모두 제치고 압도적 표차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에 선정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과 구속으로 ‘살아도 죽은’ 꼴이 됐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죽어도 산’ 위상을 지녔음을 입증한 셈이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한국 사회에서 ‘뜨거운 감자’다. ‘노무현 시대’는 열정과 냉소가 반복해 오갔다. 그는 만 56세에 국민경선제와 후보단일화 등 드라마틱한 과정을 거쳐 대통령직에 올랐다. 딱 1년 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발의됐다. 헌재 기각 판결로 노 전 대통령은 기사회생했고,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총선에서 대승했다. 정작 2007년 대선에서 여당은 사상 최다표 차이로 패했다. 대선 직후 실시된 2008년 총선에서도 구(舊)여권인 통합민주당은 81석을 얻는 데 그쳤다. 대선·총선 공히 노무현 시대에 대한 평가의 의미가 짙었다. 

    이듬해 5월. 검찰 조사 대상에 오른 노 전 대통령은 고향인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애도의 정서가 확산했다. 이후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해 노 전 대통령 최측근 인사들이 각종 선거를 통해 화려하게 부활했다. 2013년에는 노 전 대통령을 모티프로 한 영화 ‘변호인’이 개봉돼 1137만 관객을 동원했다. 2018년 현재 노무현재단은 여권에서 결속력과 영향력 공히 가장 강력한 그룹으로 자리매김했다. 

    ‘신동아’ 조사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로 노 전 대통령을 택한 오피니언리더는 진보와 보수를 총망라했다. 노무현 정부에 대해 여러 차례 비판적인 칼럼을 쓴 학자들도 이름을 올렸다. 호불호를 떠나 영향력의 크기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뜻을 내비친 것. 

    ‘신동아’ 설문에 응했지만 익명을 원한 수도권 사립대의 한 교수는 “2000년대 이전에 ‘죽어도 산’ 인물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노 전 대통령이 비슷한 방식으로 진보 쪽에서 위상을 확립했다”면서 “보수 쪽 박정희 신화와 진보 쪽 노무현 신화의 경쟁을 빼놓고선 2000년 이후 한국 정치를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권좌 오른 삼성, 정치권·검찰도 제쳐

    ‘신동아’가 ‘2000~2018년 한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조직·집단은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더니 오피니언리더 21명(40.3%)이 ‘삼성그룹’이라고 답했다. 검찰(9명, 17.3%), 민주노총(7명, 13.4%), 더불어민주당(5명, 9.6%), 자유한국당(4명, 7.7%)이 그 뒤를 이었다. 헌법재판소와 참여연대를 택한 오피니언리더는 각각 3명이었다. 전경련을 택한 오피니언리더는 한 사람도 없었다. 

    오피니언리더들은 삼성이 2000년대 한국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매우 높게 봤다. 앞서 영향력 있는 인물을 묻는 문항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받은 표는 문재인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받은 표의 합계보다 많았다. 

    지금이야 ‘독보적 선두 삼성’이 상식처럼 받아들여지지만 2000년까지 삼성그룹은 재계 서열 2위였다. 재계 서열은 공정거래위원회가 해마다 대규모기업집단 지정을 위해 발표하는 자산총액 기준 순위에 의거한다. 현대그룹은 관련 순위를 매기기 시작한 1987년부터 2000년까지 14년간 왕좌를 놓치지 않았다. 그러다 정주영 회장 사후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 등 자동차 관련사가 계열분리로 빠져나가 2위로 내려앉았고,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2001년부터 올해까지 18년째 이 자리를 지킨 기업이 삼성이다. 뉴 밀레니엄과 동시에 재계를 평정한 셈. 올해 5월 1일 공정위 발표에 따르면 삼성그룹의 자산총액은 399조5000억 원이다. 이는 2위 현대차그룹(222조7000억 원), 3위 SK그룹(189조5000억 원)의 자산총액 합계와 맞먹는 수치다. 삼성전자는 올 상반기에 매출 397억8500만 달러를 기록해 미국 인텔(325억8500만 달러)을 제치고 세계 반도체업계 1위를 수성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처음으로 인텔을 끌어내리고 글로벌 왕좌에 올랐다. 

    하지만 ‘삼성 공화국’이라는 비판도 일각에 있다. 삼성X파일 사건은 비판의 강도를 높인 단적인 사례다. 1997년 당시 국가안전기획부는 삼성이 검사들에게 자금을 제공한 내역을 불법 도청으로 녹취했다. 이 내용이 2005년 언론에 보도되며 큰 파장을 낳았다. 올해 7월 23일 영면(永眠)한 노회찬 전 의원은 같은 해에 해당 검사들의 실명을 공개하기도 했다. 최순실 게이트로 촉발된 국정농단에 연루돼 총수가 구속된 것도 삼성으로서는 뼈아픈 과거다. ‘반도체 세계 1위 기업’과 ‘정경유착의 그늘’이 삼성의 두 얼굴인 것. 

    삼성의 공(功)과 과(過)를 균형 갖춰 평가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신동아’ 설문에 응한 신기욱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영권 문제 등으로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수감되는 등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삼성은 현재 글로벌 ‘톱20’에 속한 기업이다. 이 정도 수준의 기업을 한국이 갖게 된 것은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라고 밝혔다. 

    민주노총이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을 제치고 영향력 큰 조직 3위에 오른 점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민주노총을 택한 오피니언리더 중에는 시장주의 성향이 짙은 경제학자가 비교적 많았다. 응답자 중 한 명은 “민주노총은 대기업 노조”라는 점을 답변 이유로 꼽기도 했다. 덧붙여 정여울 문학평론가는 “특정 조직이 사회를 이끌기보다는, 역량 있는 지성들의 느슨하지만 강력한 커뮤니티가 필요하다”는 의미로 이 문항에 한해 무응답을 택했다.

    ‘신동아’가 ‘2000~2018년 한국에서 일어난 경제 분야 사건 중, 후세의 경제사(史)에 미칠 파장이 가장 큰 사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더니 오피니언리더 30명(61.2%)은 ‘세계금융위기’라고 답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수감’(10명, 20.4%)도 두 자릿수 득표를 했다. 오피니언리더들은 ‘삼성 총수’의 구속보다 세계금융위기가 한국 경제사에 미친 파장이 더 컸다고 봤다. 

    세계금융위기는 2008년 9월 15일 미국 4대 투자은행이던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면서 촉발됐다. 파산의 원인은 서브프라임모기지 부실과 파생상품 손실이었다. 뉴욕 다우지수는 4% 넘게 주저앉았다. 9·11사태 이후 최대 낙폭. 이후 유럽 증시가 폭락했고, 코스피도 6% 넘게 추락했다. 미국 당국은 1조 달러대에 달하는 구제금융을 투입했다. 세금으로 자유시장경제의 최전선인 월가를 살린 꼴이었다. 세계금융위기 와중에 당선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집권 후 강도 높은 금융규제를 밀어붙였다. 2011년 ‘월가를 점령하라’ 피켓 시위는 세계금융위기의 반작용으로 일어났다. 

    오피니언리더들은 세계금융위기가 자본주의 체제에 근본적 변화를 초래한 대사건이었다고 규정했다. 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미국이 신자유주의적 금융구조에 대한 규제를 고민했고, 이를 계기로 세계 정치경제에 대한 리더십 구조에 변화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신자유주의가 무너지고, 양극화의 반작용으로 민중민주주의 정치가 등장해 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이 타당성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다른 문항들은 상대적으로 미시적 사건이다. 국내 금융·산업의 주요 예시 정도로 쓰일 수 있다”면서 “반면 세계금융위기는 한국 경제뿐 아니라 국제금융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도리어 문항의 몇 가지 국내 이슈는 세계금융위기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그나마) 세계금융위기 당시 한국 경제는 다른 나라에 비해 비교적 리스크에 대응하는 능력이 강했다”고 설명했다.

    “세종시, 지역균형발전 상징”

    ‘신동아’가 ‘2000~2018년 시행된 주요 사회경제 정책 중 한국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문항에 오피니언리더 14명(26.9%)은 ‘세종시 특별법 공포·시행’을 택했다. 문재인 정부 때 시행된 ‘주52시간 근무제 도입’(11명, 21.1%)과 ‘최저임금 29% 인상’(10명, 19.2%)은 크지 않은 격차로 뒤를 이었다. 

    전공 분야에 따라 정책에 대한 판단이 비교적 뚜렷하게 갈린 점도 눈길을 끈다. 세종시 특별법을 택한 오피니언리더는 정치학과 행정학, 경제학, 사회학, 언론학, 공학 전공자 등 분야를 망라했다. 최저임금 29% 인상을 택한 오피니언리더 중에는 상대적으로 경제학자가 많았다. 경제학의 눈으론 최저임금 29% 인상이 근 20년을 통틀어 파장이 가장 큰 정책이라고 본 것. 주52시간 근무제에 투표한 경제학자는 ‘상대적 소수’였고, 대신 인문사회학 분야 인사가 많았다. 

    김윤태 고려대 공공사회학부 교수는 “세종시 특별법은 정치적 의미가 큰 법안이기도 하지만,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지역균형발전의 상징성을 보여준 사례”라면서 “그 후 혁신도시 등 여러 관련 법안이 부수적으로 제정됐다는 점에서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물론 경제적 효과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서울에 기업과 대학이 집중돼 있는 문제를 풀어야 하고, 또 국세·지방세 비율·지자체 재정자립도 등 정부의 재정운영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주52시간 근무제에 대해서는 시각이 엇갈렸다. 정여울 문학평론가는 “한국 사회의 궁극적 선진화를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정책 변화”라고 답변의 의미를 설명했다. 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발전국가적 전통에 기인한 시민 삶의 행태를 바꿀 것”이라면서 긍정적 측면을 내다봤다. 반면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산업과 수출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것”이라며 부작용을 우려했다. 

    한편 설문에 응한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비정규직 문제, 양성평등 이슈가 항목에 포함됐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전해왔다. 김윤태 교수도 “선택지에는 없지만 비정규직 도입 관련 법안과 중소기업 고유 업종 폐지 등이 2000년 이후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줬다”고 보충 의견을 보내왔다. 

    ‘2000~2018년 한국에서 일어난 사회 분야 사건 중, 후세의 사회사(史)에 미칠 파장이 가장 큰 사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문항에는 오피니언리더 사이에 큰 이견이 없었다. 오피니언리더 39명(78%)은 2016년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를 택했다. 응답자의 지형은 진보와 보수, 각 전공분야를 망라했다. 한국현대사가 구축해온 정치·사회체제의 특징을 세월호 참사가 가장 나쁜 형태로 세상에 내보였다는 의미다. 

    최근 법원은 참사 발생 4년여 만에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0부(부장판사 이상현)는 7월 19일 안산 단원고 고(故) 전찬호 군의 아버지 전명선 4·16 세월호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 등 355명이 대한민국과 청해진해운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 국가도 청해진해운과 공동으로 배상금 지급 책임을 져야 한다고 선고했다.

    박한 평가 받은 이명박 시대

    ‘신동아’ 설문조사에서 ‘이명박 시대’의 존재감은 극히 미약했다. 오피니언리더들은 인물·정책 등 모든 영역에서 이명박 정부를 박하게 평가했다. 우선 이 전 대통령 자신이 영향력 있는 인물을 묻는 문항에서 한 표도 획득하지 못했다. 이 전 대통령의 구속수감이 후세의 정치사에 미칠 파장이 가장 큰 사건이라고 답한 오피니언리더 역시 한 사람도 없었다. 

    ‘4대강 정비 사업’ ‘자율형 사립고 도입’ 등 이명박 정부의 주요 정책은 관련 문항에서 단 한 표도 얻지 못했다. 탄핵으로 조기 마감한 박근혜 정부도 ‘기초연금 도입’과 ‘정년 60세 연장법 도입’으로 오피니언리더들로부터 각각 9표, 1표씩을 얻었다. 오피니언리더들이 그만큼 이명박 정부를 박하게 평가하고 있다는 뜻이다. 

    주요 사건 중에서는 이명박 정부 때 발생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와 ‘용산참사’가 표를 얻었다. 하지만 이는 이명박 정부의 부정적 유산으로 남아 있다. 법정에 선 이 전 대통령의 고립무원을 이번 설문조사가 웅변하는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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