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호

창간기획 | 뉴 밀레니엄 18년의 기억

IMF 외환위기 이후의 시장경제

이러다 경제주권 또 잃는다

  • 입력2018-10-28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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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 대참사로 시작한 2000년대

    • IMF 후 정치가 경제정책 좌우

    • 성장동력 잃자 일자리 급감

    • 실물·IT 강한 한국, 4차 혁명에 유리

    • 제2의 경제 발전 위해 시장 논리 따라야

    1997년 12월 23일 외환은행 본점에 걸려 있는 환율동향판. [동아DB]

    1997년 12월 23일 외환은행 본점에 걸려 있는 환율동향판. [동아DB]

    2000년대 들어 한국 자본주의는 생사를 가르는 시련을 겪었다. 경제주권을 빼앗긴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1960년대 이후 한국 경제는 황무지에서 경이로운 고속 성장으로 경제 발전의 새로운 표본을 만들었다. 그러나 한국 경제의 신화는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맞아 어이없이 무너졌다. 한국 경제는 1500억 달러가 넘는 외채를 상환할 능력을 잃어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경제의 대참사

    IMF는 구제금융 조건으로 금리 인상, 부실 기업 정리, 금융시장 개방 등의 개혁 조치를 요구했다. IMF의 요구는 외환위기 극복에 앞서 경제 붕괴를 촉진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10%대이던 은행 금리가 별안간 30%대로 치솟았다. 그러잖아도 부채가 많은 기업들이 무더기로 쓰러졌다. 여러 부실 기업이 살생부(殺生簿)에 올라 산업 현장이 대혼란에 빠졌다. 그 결과 30대 대기업집단 중 16곳과 26개 주요 은행 중 16곳이 무너지는 참사가 일어났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은 집단 붕괴의 수렁에 빠졌다. 10가구 중 4가구는 실직이나 부도를 경험했다. 

    한국 경제는 195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아 겨우 부도를 막았다. 내부적으로 168조 원의 공적자금을 조성해 구조조정에 썼다. 국민은 외채를 내 손으로 갚겠다며 ‘금 모으기 운동’을 벌였다. 3년 8개월의 고난 끝에 한국은 IMF로부터 차입한 자금을 조기에 상환하고 경제주권을 되찾았다. 

    그러나 주권 상실의 피해는 끝나지 않았다. 1997년 12월 IMF 구제금융체제에 들어간 후부터 주가는 계속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듬해 5월, 종합주가지수가 300선까지 떨어졌다. 그러자 정부의 자본자유화 조치에 따라 외국 자본이 들어와 주요 기업의 지분 50% 이상을 헐값에 사들이는 기업사냥을 벌였다. 외국 자본의 압박하에 기업들이 강력한 구조조정 정책을 펴자 주가가 치솟아 종합주가지수가 2007년 1800선을 넘었다. 외국 자본이 차익을 독차지했다. 국부의 대규모 유출을 허용했다. 

    1997년 IMF 외환위기의 근본 원인은 정경유착에 의한 압축 성장이었다. 대기업들이 정치권력과 유착해 사업 인허가와 금융 및 조세 특혜를 받는 건 흔한 풍경이었다. 그리하여 대기업들은 수출산업을 일으켜 경제의 고속성장을 이끌었다. 정치권력이 원하는 바였다. 문제는 은행 차입금으로 다양한 계열사를 거느리게 된 대기업들의 문어발식 확장이었다. 이에 따라 재무구조가 취약한 대기업들이 주요 산업을 독과점했다. 권력형 비리와 부패도 잇따랐다. 자연히 경제의 국제경쟁력이 떨어졌다.



    경제정책, 정치·이념에 지배받아

    1997년 12월 3일 임창열 당시 경제부총리(가운데)가 IMF와 구제금융 협상이 타결됐음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은 이경식 당시 한국은행 총재, 오른쪽은 미셸 캉드시 IMF 총재. [동아DB]

    1997년 12월 3일 임창열 당시 경제부총리(가운데)가 IMF와 구제금융 협상이 타결됐음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은 이경식 당시 한국은행 총재, 오른쪽은 미셸 캉드시 IMF 총재. [동아DB]

    1996년 김영삼 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서두르고 가입 조건인 금융 개방을 허용했다. 금융기관들이 단기외채를 마구잡이식으로 차입해 기업에 장기 자금으로 대출했다. 경제가 외국 자본이 상환을 요청하면 언제든지 국가 부도가 날 수 있는 부실한 구조로 급격히 바뀌었다. 30대 대기업집단의 부채 비율은 400%에 달했다. 급기야 태국, 필리핀 등에서 외국자본이 빠져나오며 아시아 외환위기가 발생하자 한국도 즉시 부도 위기에 휩싸였다. 

    IMF 위기를 벗어난 이후 한국 경제는 또 다른 암초를 만났다. 바로 정치와 이념의 덫이다. 정치인들은 경제정책을 집권이나 정권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다. 선거 때만 되면 모든 정당과 후보는 여야를 막론하고 득표를 위해 인기 영합 공약을 남발했다. 치열한 싸움 끝에 선거가 끝나면 경제정책은 정치 논리의 지배를 받았다. 이때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이념이었다. 보수 정권은 성장, 진보 정권은 분배라는 이분법이 경제정책의 성격을 좌우했다. 

    경제정책의 양분 현상은 IMF 위기 이후 두드러졌다.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은 복지를 중시해 분배정책을 강화했다.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은 낙수효과를 추구해 성장정책에 집중했다. 문재인 정권은 작은 정부가 선이라는 것은 고정관념이라고 전제하고 국가 예산으로 일자리를 만들고 소득을 지원하는 분배정책을 펴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념에 따라 정책기조가 바뀌고 시장 기능이 위축돼 경제가 방향감각을 잃고 있다.

    고용난과 사회불안

    2017년 2월 23일 서울시내 한 대학에서 학위수여식을 마친 한 졸업생이 취업정보센터 게시판을 보고 있다. [동아DB]

    2017년 2월 23일 서울시내 한 대학에서 학위수여식을 마친 한 졸업생이 취업정보센터 게시판을 보고 있다. [동아DB]

    IMF 위기 이후 한국 경제는 산업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지속적으로 성장동력을 창출하는 체제를 만드는 데 실패했다. 정부는 IMF 요구에 따라 신자유주의 논리에 의한 경제의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그 결과, 대기업 중심으로 산업구조가 양극화됐다. 

    정부는 IMF 위기로 황폐해진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정보통신산업을 적극 육성했다. 정보통신산업은 빠른 속도로 발전해 IMF 위기 극복에 기여했다. 하지만 무분별한 정부 지원과 기업들의 난립 탓에 거품이 잔뜩 꼈다. 정작 정보통신산업의 거품이 꺼지자 한국 경제는 다시 성장동력을 잃었다. 조선, 해운, 전자, 철강 등 대기업들이 이끄는 주요 산업이 부실화했다. 중소기업은 빈사 상태에 빠졌다. 경제가 성장동력을 잃어 일자리가 급격히 줄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경제 불안이 사회를 파괴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실업률이 4.0%에 달해 고용위기다. 가계부채는 1500조 원을 넘어 연쇄 부도 위험이 높다. 빈부 격차도 5분위 배율(상위 20%의 소득을 하위 20%의 소득으로 나눈 것)이 5.2를 넘어 심각한 상황이다. 특히 청년과 노령자의 고통이 크다. 청년실업률이 10%를 넘는다. 따라서 청년들이 결혼을 하지 못한다. 자연히 저출산과 고령화가 심화한다. 

    청년들이 희망을 잃자 수저계급론이 널리 퍼지고 있다. 부모의 재산과 신분에 따라 자녀의 운명이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등으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부모가 빈곤한 흙수저 계층은 10대에는 입시, 20대에는 취업, 30대에는 결혼과 주거에서 모두 패자가 돼 삶이 절망에 빠진다. 앞만 보고 일하던 노령자들은 대규모로 실직하거나 은퇴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노후준비를 못 해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복지가 미흡해 생계까지 불안하다.

    규제와 시장 독과점, 4차 혁명에 취약

    IMF 위기 이후 한국 경제는 잠재성장률이 빠른 속도로 떨어졌다. IMF 위기 이전 8%를 넘던 잠재성장률이 최근 3% 이하다. 이런 상태에서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의 빠른 추격에 발목이 잡혔다. 경제의 경쟁력이 떨어져 최근 세계시장에서 사면초가를 맞았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세계 각국은 통화 공급을 늘려 위기를 극복하고 수출 경쟁력을 높이는 팽창정책을 경쟁적으로 폈다. 이에 따라 자국 경제를 우선하는 배타적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됐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미국은 아예 세계경제를 무역전쟁터로 만들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경제를 위해 중국에 무역전쟁을 선포하고 중국은 물론 대미 무역 흑자를 기록하는 나라들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인 보복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중국이 이에 정면으로 맞서고 유럽연합(EU), 일본 등도 공세적인 자국 경제 보호에 나서고 있다. 그러자 세계 각국은 다른 나라 경제에 피해를 주고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는 근린궁핍화 경쟁에 돌입했다. 한국 경제는 무역전쟁의 포로로 잡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이 와중에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산업 발전 패러다임이 등장했다. 4차 산업혁명은 2016년 1월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포럼에서 최대 화두로 떠오르면서 유명해졌다. 기존 산업혁명은 기계가 인간의 손을 대체하는 혁명이었다. 반면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 발명으로 기계가 인간의 두뇌를 대체하는 혁명이다. 

    4차 산업혁명은 각국의 경제 운명과 판도를 바꿀 전망이다. 4차 산업혁명에 먼저 성공하는 나라가 경제주도권을 갖고 세계경제를 선도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에 실패하는 나라의 경제는 경쟁 능력을 잃고 쓰러질 수밖에 없다. 한국은 4차 산업혁명 여건이 취약하다. 정부의 과도한 규제는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산업혁명을 원천적으로 막는다. 시장의 독과점 체제와 낙후된 기업 지배구조는 벤처의 창업과 투자를 저해한다. 입시와 학력 위주의 교육은 무능력 고학력자를 양산한다. 스위스연방은행(UBS)의 평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4차 산업혁명 준비 수준이 세계 25위밖에 안 된다.

    중소·벤처가 4차 산업혁명 주도해야

    [동아DB]

    [동아DB]

    4차 산업 발전이 본격화하면 일자리 개념과 경제체제가 달라진다. 인공지능을 가진 기계는 사람이 하는 것에 비해 정확성, 생산성, 전문성, 경제성 등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다. 공장 노동자와 단순 사무직은 물론 의사, 변호사, 교수 같은 전문직도 기계에 일자리를 빼앗길 판이다. 

    한국의 경우 IMF 위기 이후 대기업들이 국제경쟁력을 높이고 이익을 내기 위해 생산시설의 자동화를 서둘러 고용 창출 능력이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4차 산업혁명의 파도가 밀어닥쳤다. 이 탓에 고용문제 해결이 한국 경제의 중대 과제로 떠올랐다. 4차 산업혁명이 빚어내는 변화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인간의 삶이 기계의 지배를 받을 거라는 우려가 크다. 2016년 3월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에서 인간이 기계에 4대 1로 패했다.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충격의 전조다. 새로운 경제체제하에서 삶의 질과 가치가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은 독립변수가 아니다. 기존 산업과 융합해서 일어난다. 한국경제는 실물산업과 정보통신이 함께 발전했다. 따라서 인공지능 개발에 앞서고 융합산업을 고도화하면 4차 산업혁명에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이 발전해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근로 형태를 바꾸면 고용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화적 혼란과 변화는 한국 사회가 효과적으로 극복해야 할 불가피한 과제다.

    정치 영향 걷어내고 창의력 자극해야

    2020년을 눈앞에 둔 한국 자본주의는 중대 기로에 서 있다. 경제주권을 확고히 지키고 일자리를 만드는 시장경제 체제를 갖추지 않으면 도태한다. 특히 미래 산업 발전에 뒤져 국제경쟁력을 잃으면 무역전쟁의 패자로 전락한다. 

    한국 경제는 우선 정치와 이념의 덫을 벗어나야 한다. 경제는 시장 논리에 따라 성장과 분배가 균형을 이뤄 선순환해야 건전하게 발전한다. 과거 한국의 주요 산업은 발전 과정에서 정치적 영향을 많이 받았다. 정부의 인허가와 지원 없이는 창업과 투자가 어려웠다. 자연히 산업 발전이 이념의 지배를 받고 창의력과 경쟁력이 떨어졌다. 

    문재인 정부의 역할이 크다. 한국 경제의 근본적인 문제는 산업 발전이 부실해 경제경쟁력을 잃은 데 있다. 따라서 부실 산업을 시장 논리에 따라 정리하고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는 산업정책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특히 규제를 개혁하고 기업 환경을 개선해 기업들이 자유롭게 일어나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기업들이 일자리를 만들고 소득을 창출하게 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고 복지를 강화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은 한국 자본주의의 희망이다. 4차 산업혁명에 성공하면 한국 경제는 무역전쟁의 위기를 뚫고 다시 도약할 기회를 갖는다. 4차 산업혁명이 단순히 첨단기술을 개발해 산업구조를 바꾸고 경제의 효율성만 높이는 데 그쳐선 안 된다. 사람 중심의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야 해서다. 

    정부는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해소해 공정한 시장경제 질서를 확립하고 창의력을 갖춘 중소·벤처기업을 육성해야 한다. 이를 발판 삼아 4차 산업혁명의 성공률을 높이고 일자리를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새로운 산업 수요에 맞게 교육제도를 개혁하고 직업 훈련을 강화해 인력 전문성을 높여야 함은 물론이다. 임금과 분배제도를 바꾸고 근로시간을 줄여 생활 구조와 문화를 행복 추구형으로 만드는 것도 필수 과제다. 

    한국 경제는 과거를 뒤로하고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때다. 한시바삐 모든 경제주체가 다시 일어나 과거의 저력을 발휘해 제2의 경제 발전 표본을 만들어야 한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이필상
    ● 1947년 출생
    ●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학 석·박사
    ●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
    ● 고려대 제16대 총장,
    유한재단 제7대 이사장
    ● 現 서울대 경제학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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