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우 기자
늦가을 오후, 경기도교육청 앞뜰은 작은 수목원처럼 고요하고 화려했다. 붉은색, 노란색으로 머리를 물들인 나무들의 자태가 곱다. 이 평화로운 자연 속에서 ‘이념 논쟁’을 하려니 왠지 어색했다. 그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찬성론에 대해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통박했다.
▼ 11월 2일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는 왜 했나.
“그날이 행정고시(告示) 이전 국민 여론을 수렴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교육감으로서 학생과 학부모, 교사 의견을 몸으로 전달할 필요가 있었다. 이청연 인천시교육감도 내 뜻에 동조해 동참했다. 같은 시각 세종시에선 최교진 세종시교육감과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의장인 장휘국 광주시교육감이 교육부 청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학생들에게 독약 먹이는 짓”
▼ 교육감으로서 부적절한 처신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도내 여론은 어떤가.
“도내에선 그런 얘기를 듣지 못했다. 민선 교육감으로서 주민의 의견을 대변하는 방법 중 하나로 1인 시위를 한 것이라 부적절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임명직이라면 다르겠지만.”
▼ 학부모, 교사 여론을 반영한 것이라고 했는데, 통계자료가 있나.
“도내 역사교사가 2300명쯤 되는데, 최근 여론조사 결과 91.58%가 국정화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가 직접 교사 대표들을 만나 토론도 해봤다. 학부모들과도 세 차례 만나 의견을 들었는데 반대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 이 교육감은 왜 국정화에 반대하나.
“지난해 6월 지방선거 유세 때 내가 이미 이 문제를 언급했다. 2013년 문제가 된 교학사 교과서가 다시 나오거나 국정화를 추진한다면 학생들에게 독약을 먹이는 짓이니 무조건 막아야 한다고.”
그는 “내용의 문제를 떠나 정부가 역사교과서를 주관해 만든다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부연했다.
“우리에겐 국정화의 뼈아픈 교훈이 있다. 1974년 유신 시대 때 유신을 미화할 목적에서 국정화를 단행했다. 이번도 마찬가지다. 정치적 목적으로 역사의 진실을 왜곡하는 행위다.”
▼ 정부와 찬성론자들은 검정제도로는 문제점을 도저히 바로잡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황교안 총리가 역사교과서를 하나라도 제대로 들여다봤는지 의문이다. 제대로 봤다면 그런 거짓말 못한다. 현행 중학교 9종, 고등학교 8종 역사교과서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
▼ 아무런 문제가 없다?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을 편다. 교육부의 교과서 집필 지침이 매우 세세하다. 주제만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방향까지 제시한다. 예컨대 주체사상에 대해 이렇게저렇게 비판해달라고 요구한다. 그 기준을 무시하고 쓰면 검정을 통과할 수 없다. 교육부가 검정교과서를 비판하는 건 말이 안 된다.”
▼ 집필자가 상당한 자율성을 갖고 쓸 수 있어서 통제가 안 된다고 한다.
“실례를 들겠다. 고등학교 8종 교과서에 수록된 주체사상 관련 내용을 보면 거의 똑같다. 독재를 가능하게 하고 인민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이용됐다는 식의 표현이 대부분이다. 아널드 토인비의 말처럼 역사는 확정된 게 아니다. 해석하기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 역사교과서는 교육부가 제시한 기준 내에서 해석까지 거의 같다.”
▼ 교육부가 역사교과서에 문제가 많다고 말하는 건 자가당착이란 건가.
“납득되지 않는 일이다. 자기네가 지침 만들어 거기에 맞춰 쓰게 하고 검정까지 해놓고선 이제 와서 잘못됐다고 하니….”
▼ 책임을 집필자들에게 돌린다는 얘긴가.
“그것도 아니다. 무조건 나쁘다고 한다. 지난 9월 교육부가 내려보낸 공문을 보면, ‘다양한 방식으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사의 교과 목표 중 하나로 ‘한국사와 관련된 자료를 분석하고 비판하는 종합적인 탐구활동을 통해 역사적 사고를 키운다’라는 항목도 있다. 그래놓고 한 달 만에 뒤집는 얘기를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