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드로의 십자가형’
인간의 본성에 대해선 동양과 서양에서 오랫동안 토론해왔습니다. 동양의 경우 맹자는 성선설(性善說)을 내놓았고, 순자는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했습니다. 서양의 경우에는 장 자크 루소가 성선설에 가까운 이론을 제시했다면, 토머스 홉스는 성악설에 가까운 이론을 제기했습니다. 한편 존 로크는 인간은 태어날 때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백지설(白紙說)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글을 시작하며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오늘 제가 소개할 화가가 바로 이 인간의 본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하는 문제적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1571~1610)입니다.
빛의 마술사
카라바조가 남긴 작품은 극적으로 강렬하지만, 더욱 극적인 것은 그의 삶 자체입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태어난 그는 젊은 나이에 큰 명성을 얻었지만, 평생 폭행을 일삼았고 살인을 저지르기도 한 사람입니다.
카라바조는 르네상스와 매너리즘을 뒤이은 초기 바로크 회화의 대표 화가입니다. 그는 ‘빛의 마술사’라고 불렸습니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밝음과 어두움의 대비를 효과적으로 활용해 작품의 긴장도를 극적으로 높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빛의 화가라면 먼저 네덜란드의 하르먼손 판 레인 렘브란트를 떠올리는데, 렘브란트는 카라바조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렘브란트뿐 아니라 벨라스케스, 루벤스, 라 투르 역시 카라바조의 작품으로부터 작지 않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카라바조는 많은 걸작을 남겼습니다. 그가 그린 종교화는 결정적 순간을 포착한 역동적 구성으로 유명합니다. 이탈리아의 로마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성당의 체라시 예배당에 있는 ‘성 베드로의 십자가형(The Crucifixion of St. Peter, 1601)’은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널리 알려졌듯이 초대 교황은 그리스도의 첫 번째 제자인 성 베드로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 로마로 건너간 베드로의 최후는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와 같은 형벌을 받을 자격이 없다면서 머리가 아래로 향하는 십자가형을 요구해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카라바조는 베드로의 순교 장면을 특유의 역동적 구성과 명암 대비 효과를 바탕으로 화폭에 담았습니다. 카라바조가 작품에 담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리는 베드로의 고뇌에 가득 찬 눈빛과 표정을 보며 저는 마음이 무겁고 괴로웠습니다.
베드로는 지금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세 번이나 그리스도를 부정한 자신을 마지막으로 참회하는 것일까요. 그가 그린 베드로와 형을 집행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너무나 리얼해서 이 그림을 보고 있는 사람도 베드로와 함께 십자가형의 고통을 감당해야 할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게 합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Quo Vadis Domine?)” “네가 나의 형제들을 버리기에 다시 한 번 십자가에 못 박히러 로마로 간다.” 이 대화는 로마 감옥에서 탈옥한 베드로가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주고받은 이야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리는 고통을 기꺼이 감당할 수 있었던 베드로는 믿음과 신앙의 승리자였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순교한 자리에는 성 베드로 대성당이 세워졌는데, 이 대성당 광장에 가면 한쪽엔 천국의 열쇠를 든 베드로의 모습을, 다른 한쪽엔 칼을 든 바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자연주의적 화풍
카라바조가 처음부터 종교화에 몰두한 것은 아닙니다. 초기에 그는 ‘병든 바쿠스’를 비롯해 뛰어난 인물화와 풍속화를 남겼습니다. 능숙한 필치로 인물들의 생생한 표정을 담은 카라바조의 솜씨는 많은 이의 관심을 불러 모았고, 그의 이런 재능은 당시 권력과 재력을 갖춘 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후견인이 되도록 했습니다.
이탈리아와 전 유럽에서 카라바조의 명성이 높아진 것은 일련의 종교화를 그린 후였습니다. 카라바조 이전 르네상스 시대에 종교화의 표준을 제시한 이는 라파엘로 산치오입니다. 여러 성모상과 ‘그리스도의 변용’ 같은 작품에서 볼 수 있듯, 라파엘로는 기독교의 성스러움을 표현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였습니다.
종교화가 갖춰야 할 미덕은 일반 시민이 작품을 보고 성스러움을 느끼게 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앙심을 더욱 굳게 할 수 있는 종교적 공감은 성화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이겠지요.
라파엘로나 카라바조가 살았을 당시 성당에 걸린 그림들은 오늘날의 텔레비전과 영화 같은 기능을 대신했습니다. 그림에 담긴 이미지는 관람하는 이에게 선명하고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그 인상은 종교적 경건함과 신앙심을 강화했습니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되, 인간을 넘어선 신의 모습을 담은 성화를 보면서 당시 많은 이가 자신의 종교적 믿음을 더욱 굳게 한 것으로 보입니다.
카라바조의 작품은 라파엘로의 작품과 여러 가지로 대비됩니다. 라파엘로의 그림이 기독교가 갖는 자애로움과 경건함, 그리고 이를 아우르는 숭고함을 느끼게 한다면, 카라바조의 그림은 우리 인간이 일상적으로 느끼는 놀라움, 두려움, 고통스러움을 있는 그대로 담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카라바조가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를 지나치게 세속화했다고 비판하는 반면, 다른 이들은 카라바조가 자연주의적 화풍을 도입함으로써 기독교에 대한 친밀감을 높였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카라바조의 작품에 등장하는 이들은 하늘에 있는 성인이라기보다 땅에 있는 존재입니다. ‘성 베드로의 십자가형’을 그린 해에 그린 ‘엠마오의 저녁식사(The Supper at Emmaus, 1601)’는 이러한 특징이 잘 드러난 작품입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임을 당하고 곧바로 부활한 후, 두 제자는 엠마오의 한 여인숙에서 저녁식사를 하는 도중, 동행해온 이가 바로 그리스도임을 알게 됩니다.
폭력으로 얼룩진 삶
루가복음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서양 회화에서 비교적 자주 다룬 주제입니다. 영국 런던의 내셔널갤러리에 있는 카라바조의 ‘엠마오의 저녁식사’와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박물관에 있는 렘브란트의 ‘엠마오의 저녁식사’가 특히 유명합니다. 그런데 이 두 작품의 분위기는 사뭇 다릅니다. 렘브란트의 작품이 종교적 경건함으로 가득 차 있다면, 카라바조의 작품은 제자들이 그리스도를 알아보는 장면을 마치 현대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극적으로 묘사합니다.
한 제자는 깜작 놀라 손을 벌리고, 다른 제자는 의자에서 몸을 막 일으켜 세우려 합니다. 이들의 차림새는 보잘것없고, 표정과 행동은 놀라움으로 가득합니다. 한가운데 앉은 그리스도는 성스럽다기보다는 볼살이 통통히 오른 젊은이의 모습입니다. 제자들처럼 그리스도 역시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차림새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옆에는 궁금한 표정을 짓는 여인숙 주인이 서 있습니다.
이렇듯 카라바조가 그린 이들의 모습은 지극히 평범합니다. 그의 작품은 강렬한 명암과 극적인 구성을 통해 우리 시선을 고정시키지만, 이 시선 안에 들어오는 인물들의 얼굴은, 그리스도든 베드로든, 평범한 이들의 모습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카라바조는 앞서 소개한 ‘엠마오의 저녁식사’를 그린 5년 후 다시 동일한 주제를 다룬 작품을 남겼습니다. 이 작품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모습에는 성스러움이 깃들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체 구성이 일상의 풍경으로 담으려는 기존 작품과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습니다.
‘엠마오의 저녁식사’
카라바조의 작품을 보면 한 사람의 존재로서 그에 대해 생각해보곤 합니다. 그는 왜 보는 이들에게 떨림을 주는 종교화를 그리면서도 자신의 삶은 그렇게 거칠고 폭력적으로 살았을까요. 서른아홉의 생애 동안 카라바조는 싸움과 폭행 등 무수한 폭력을 행사했고, 그로 인해 일곱 차례 감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생애의 마지막 시기에는 살인으로 인해 도망을 다녔고, 그 와중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카라바조에 대한 제 감정은 양가적입니다. 먼저 화가로서의 카라바조는 높게 평가합니다. 그의 그림은 참으로 역동적이고 매혹적입니다. 현실적 인물들의 희로애락을 있는 그대로 자기 작품에 담음으로써 천상의 종교를 지상의 종교로 끌어내리는 듯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그의 천재성은 서양 회화에서 가히 최고의 수준에 도달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 인간으로서의 카라바조는 딱하기 그지없습니다. 역사를 뒤흔들 만한 천재성을 선물 받았음에도 자신의 욕망을 조절하는 능력은 부재했던 불쌍한 사람이 바로 그였습니다. 남긴 행적으로 보면 그는 분노조절장애를 겪은 사람이었고, 도저히 용납해선 안 될 살인이라는 행위까지도 서슴지 않은 반윤리적 사람이었습니다.
카라바조의 삶을 생각할 때 제게 떠오르는 심리학 용어는 ‘그림자(shadow)’입니다. 이 용어는 정신분석학자인 칼 구스타프 융이 주장한 것인데, 그림자는 무의식의 열등한 인격이며 자아의 어두운 면을 뜻합니다. 이 그림자의 성격은 폭력적이고 비이성적입니다. 인간에게 누구나 있는 그림자는 위험한 것이지만, 그림자의 실체를 직시하고 심연으로부터 나오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음으로써 자아와 통합하면 이 그림자는 긍정적인 에너지, 다시 말해 삶의 새로운 가치로 승화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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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서 카라바조는 결국 이 그림자에게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작품들은 결코 작지 않은 감동을 안겨준다는 점에서 카라바조는 참으로 모순적인 화가였습니다. 회화의 역사에서 화가의 인성이나 삶과 화가가 남긴 작품이 늘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작품은 그 자체로 감상하고 평가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카라바조의 경우는 인간과 예술 간의 거리가 너무 멀어 제게는 선뜻 호감을 품기 어려운 수수께끼와도 같은 화가로 남아 있습니다.
예술이 먼저일까요, 아니면 사람이 먼저일까요. 제 생각은 ‘사람이 먼저’에 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