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박 거물’ 최경환 복귀에 공동전선?
- 脫朴 의원들 “K-Y, 죽지 않으려면 뭉쳐야”
- 단기 ‘공천 공동대응’, 장기 ‘차기 당권·대권’ 빅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내년 4월 총선, 나아가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청와대와 친(親)박근혜계의 날카로운 공격을 받으며 동병상련을 앓는다. 유승민 의원 측에서 보기에, 박근혜 대통령은 유 의원은 물론 그의 측근들까지 용납 않겠다는 메시지를 거듭 보낸다. 당내 친박계 핵심 인사들은 순차적으로 ‘김무성 대안론’ ‘김무성 불가론’을 제기한다.
박 대통령은 “진실한 사람이 선택받도록 해달라”고 했다. 6월 25일 말한 ‘배신의 정치 심판’ 2탄 격이다. 두 발언 다 문맥으로 보면 정치권 전체가 대상이지만, 행간으로 보면 유 의원과 그의 측근들이 표적이다. 여권에선 유승민계가 다수 포진한 대구·경북 물갈이론도 번진다.
친박계에선 김무성 대표를 비토하는 듯한 이야기도 잊을 만하면 나온다. 핵심인 홍문종 의원은 “외치(外治) 하는 대통령과 내치(內治) 하는 총리를 두는 것이…”라며 개헌론을 꺼냈다. ‘반기문 대통령-친박 총리 조합’설에 대해 “그런 그림의 전제하에 우리가 이원집정부제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옳고 그름을 떠나 가능성 있는 이야기”라고 했다.
여권 내에선 청와대와 친박계가 총선 5개월을 남겨두고 모종의 작업에 돌입한 것 같다는 말이 나온다. 한 여권 인사는 “전 대통령 특보 윤상현 의원의 ‘김무성 대타’ 찾기와 ‘유승민계 와해’가 동시에 벌어지는 것처럼 비친다”고 말했다.
친박계였다가 지금은 박 대통령과 멀어진 전 의원 A씨는 “유승민은 대통령이 직접 공격하고, 김무성은 친박계가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대리전을 치르는 양상이다. 두 사람을 내치는 데 ‘박심(朴心, 박 대통령 의중)’이 작용하느냐는 논란이 있는데, 박심이 실렸음은 유치원생도 다 알지 않느냐”고 했다.
그러나 김무성과 유승민, 두 사람은 박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일을 피한다. 되도록 말을 아낀다. 두 사람이 현 정국 및 총선 공천과 관련해 어떤 말을 하는지 들어봤다. 두 사람은 특정 언론과 대면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는다. 전화 통화로 대화를 시도했다.
“국민의 권한”
김 대표는 11월 14일 저녁 전화 통화에서 “얘기하지 않겠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다만 청와대의 뜻보다는 국민의 뜻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 홍문종 의원의 이원집정부제는 결국 김 대표가 지난해 10월 상하이에서 언급한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와 같은 것 아닌가요?
“그렇죠.”
▼ ‘반기문 대통령-친박 총리론’이 ‘김무성 견제’ 차원이라고 봅니까.
“나는 모르겠어요. 말하지 않겠어요.”
▼ 유승민 의원 등을 겨냥한 ‘TK 물갈이론’에 대해선 어떤 생각인지요.
“지금도 대통령의 의중을 못 읽고 있는데…사실 물갈이는 국민만이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국민의 권한인 거죠. 다른 데는 권한이 없어요.”
여기서 ‘다른 데’는 아마 청와대를 지칭하는 말일 것이다. 즉, ‘청와대는 공천 물갈이를 할 권한이 없다’는 의미다.
“저야 모르죠, 대통령 마음을”
같은 날 통화가 된 유승민 의원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11월 7일 타계한 유 의원의 부친 유수호 전 의원 빈소엔 여야 현역 국회의원 113명이 다녀갔다. 새누리당 의원 159명 가운데 102명이 조문했다. 유 의원은 상중(喪中)임에도 전화 통화에 응했다.
▼ TK 물갈이가 박 대통령의 속마음이라고 봅니까.
“저는 전혀 할 말이 없어요. 아직 상중인데 정치 얘기를 하는 건 옳지 않고, 당분간은 말을 안 하려 해요.”
▼ ‘공천이 부당하게 되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했는데요.
“그 말을 한 뒤에 공천 문제에 대해선 일절 말을 하지 않아요. 지금은 공천 룰이 정해진 것도 아니잖습니까. 각자가 떠들기만 하는 상황이라 어떻게 되는지 지켜봐야겠죠(유 의원은 원내대표직 사퇴 파동 때 자신의 편에 선 대구 지역 초선 의원 7명 등이 공천에서 불이익을 받으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말을 한 바 있다).”
7월 8일 김무성 대표가 유승민 원내대표의 거취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 박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 ‘진실한 사람 선택’을 잇달아 언급한 배경이 뭘까요.
“저야 모르죠. 대통령 마음을…. (박 대통령과) 얘기해본 지 하도 오래돼서 진짜 대구·경북 현역의원들 물갈이를 생각하는 건지, 무슨 방법으로 하겠다는 건지, 옛날 식으로 컷오프나 전략공천을 하겠다는 건지 저야 모르죠. 요금 ‘TK 물갈이’라며 시끄럽기는 한데….”
▼ 대구는 이미 2012년 19대 총선 때 현역의원 12명 중 7명이 바뀌지 않았습니까.
“이미 많이 했죠. 어떻게 보면 현 대통령이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주도한 거죠. (공천심사위원회가) 비대위원장의 동의 없이 했겠습니까. 지금 대통령의 정확한 마음은 저도 모르겠어요.”
김 대표와 유 의원의 발언은 청와대와 친박계의 협공 강도를 살펴보고 정확한 배경을 짚어본 뒤 저지선을 치겠다는 복안으로 읽힌다. 다만 두 사람은 그리 멀지 않은 시점에 공천을 놓고 친박계와 일전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하는 듯했다.
전운이 고조되는 시점은 언제일까. 아마 친박계 거물인 최경환 경제부총리(국회의원)가 새해 예산안을 법정처리 시한(12월 2일) 안에 통과시킨 뒤 국회로 복귀하는 무렵일 것이다. 정가에 나도는 ‘김무성 12월 위기설’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김무성 12월 위기설은 ‘김 대표가 공천이 본격화하는 12월쯤 대표직에서 물러날지 모른다’는 설이다.
사실, 최경환의 귀환은 예사로 볼 일이 아니다. 현재 친박계에서 가장 중량감 있는 인사로는 단연 최경환이 꼽힌다. 최경환은 친박계의 구심점이 될 수 있다. 전면전을 앞두고 친박계가 ‘로마 군대’처럼 대오를 정렬하는 것이다. 그가 국회에서 공천 문제를 챙기기 시작하면 새로운 양상이 전개될 것이다. 특히 그는 대구·경북 출신이므로 TK 현역의원 심판론이 급진전될 수 있다. 또한 김무성 대항마 찾기가 본격화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윤상현과 홍문종이 모닥불로 군불을 지폈다면 최경환은 온 산을 화염에 휩싸이게 할지 모른다.
‘작용이 반작용을 부른다’는 건 물리학의 기본 원칙이다. 권력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친박이 뭉치면 김무성과 유승민도 뭉쳐야 할 필요성을 더 강하게 느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두 사람은 비(非)박근혜계의 구심점이 되려 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비박계가 모래알처럼 흩어져 무장해제 당하는 건 시간문제이기 때문이다. 비박계가 와해되면 김무성과 유승민도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요즘 여권 일각에선 “최경환의 귀환에 맞물려 ‘신(新) K-Y 연대’가 뜬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김무성 유승민 두 사람이 다시 손을 잡는다는 의미다. 김무성과 유승민의 이름 이니셜인 ‘K-Y’는 김 대표가 자기 수첩에 썼다가 언론 카메라에 찍혀 유명세를 탔다.
비박계 영남벨트 구축?
K-Y 라인은 올해 2~8월 새누리당 대표와 원내대표로서 비박계 투톱을 형성했다. 아마 두 사람은 이 시절을 그리워할 것이다. 당시 두 사람은 손발이 잘 맞았고, 행복해 보였으며,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듯했다. 그러나 새옹지마, 호사다마 아닌 세상사가 없다. 박 대통령의 ‘배신의 정치’ 발언으로 유 의원은 원내대표에서 물러나고 만다. 김 대표는 유 의원을 지켜주려 무던히 애를 썼지만 역부족이었다.
유 의원이 퇴진한 후 김 대표는 대구 국회의원 모임에 참석해 “유승민의 사퇴를 내가 막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했다. 유수호 전 의원 상가에서도 “유 의원이 (공천에서) 어려울 일이 전혀 없다. 유 의원은 우리 새누리당의 아주 중요한 자산”이라며 두 사람 간의 변치 않는 신뢰를 표현했다.
신 K-Y 연대가 형성돼 청와대와 친박계에 맞서 공동전선을 형성한다면 김무성과 유승민 양쪽 모두에게 큰 힘이 될지 모른다. 김 대표와 함께 유 의원도 차기 대권주자군에 올라 있다. 유승민계 현역의원은 대구·경북뿐 아니라 부산·경남(조해진·김세연 등), 수도권(이종훈·민현주 등)에도 포진했다. 부산·경남 의원 중 상당수는 김 대표를 따른다. 전략을 짜기에 따라, 박 대통령의 텃밭인 영남에 오히려 ‘비박계 영남벨트’를 구축할 수도 있다.
일부에선 K-Y 라인의 복원을 시도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난다. 김무성계로 분류되는 이혜훈 전 의원은 얼마 전 유 의원을 만났다. 김 대표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잠정 합의한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관철하는 데 유 의원이 힘을 보태달라는 취지였다.
두 사람 주변의 일부 측근은 공천 룰 공동 대응은 물론이고 그 너머의 전략적 제휴를 구상한다. 예를 들어 몇몇 강경파는 ‘김 대표가 대권, 유 의원이 당권을 나눠 맡아 친박계와 정면승부를 벌인다’는 구상을 내놓는다. 김 대표의 임기는 내년 7월까지. 새누리당은 전당대회를 열어 새 대표를 뽑아야 한다. 이때 유 의원이 당 대표 경선에 출사표를 내 당권에 도전하고, 김 대표 측이 유 의원의 당선을 적극 돕는 시나리오다. 이렇게 우군인 유 의원이 당 대표가 되면 김 대표는 훨씬 유리하게 대권가도에 오를 수 있다. 새 당 대표는 2017년 8월로 예상되는 대선후보 경선을 관리한다. 즉, 유 의원이 김무성 세력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된 뒤 김 대표가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되는 것이 K-Y 라인의 윈-윈 전략이다. K-Y 연대의 ‘빅 텐트’에는 이재오·정병국·정두언 의원을 중심으로 다수의 친이명박계 출신 인사가 합류할 수 있다.
“차기 대표로 유승민 민다”
전직 국회의원 B씨는 “김 대표와 유 의원은 힘을 합칠 수밖에 없다. 대통령과 친박계가 두 사람을 죽이려는데 둘이 뭉쳐야 살 수 있을 것 아니냐”고 했다. 어차피 박 대통령과 K-Y 라인은 함께 가지 못할 지경이 됐으니 정면승부를 걸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김 대표와 유 의원은 조심스럽다. 김 대표는 신 K-Y 연대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국민을 상대로 해야지, 누구와 연대하고 할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국민이 뭘 원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유 의원과 전략적 제휴를 맺으면 김 대표가 취약한 대구·경북에도 대권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묻자 김 대표는 “나는 아직 대선에 출마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고 비켜갔다. 김 대표는 “내가 강조하는 대로 상향식 공천이 되면 누구도 장난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유 의원은 “(김 대표와의 공동 대응에 대해) 김 대표와 상의한 적이 한 번도 없다”면서 “다만 김 대표와 나는 정책노선에선 차이점이 많아도 김 대표가 구상하는 공천 룰은 지지하는 편”이라고 밝혔다.
이어 유 의원은 “김 대표는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공천제)를 얘기했지만 국민공천이든 국민과 당원을 섞는 방식이든, 상향식으로 가야 한다는 취지엔 공감한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와 유 의원은 연대에 대해 당장은 때가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그러나 인위적 물갈이를 원천봉쇄하는 ‘상향식 공천’을 교집합으로 한목소리를 낼 여지를 남겨둔 셈이다.
김 대표의 측근인 송승호 건국대 초빙교수는 “유 의원과 공동 대응한다는 말 자체가 대통령과 정면으로 붙어보자는 얘기가 되는데, 여당 대표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대통령과 여당 대표는 운명적, 숙명적 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유 의원 역시 “나는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누구보다도 바란 사람이고, 지금도 그렇다”고 강조하는 처지다.
연대처럼 안 보이는 연대?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두 사람이 총선 이후 본격적으로 힘을 합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대선후보 경선에 도전하는 김 대표로선 대구·경북의 지지를 확보해야 하는데, 유 의원을 지렛대로 활용하는 것이 최상이다. 대구·경북의 친박 진영이 김 대표를 철저하게 견제하려 들 것이므로 김 대표에게 유 의원의 전략적 가치는 대단히 크다. 유 의원으로선 내년 총선을 돌파해 4선이 된다 하더라도, 지금의 형세로는 자기 고향에서도 소수 내지는 외톨이가 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장하기 위해서라도 유력 대권주자인 김 대표의 위상을 활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한 여권 인사는 “김무성과 유승민은 공천 실리를 따지면 뭉쳐야 하고, 박근혜 대통령과 척을 져선 안 된다는 대의명분을 고려하면 뭉치지 않아야 한다. 결국 ‘따로 또 같이’ 방식으로 가지 않겠나. 공천과 관련해, 결정적일 땐 한목소리를 내거나 공동 대응을 하고 아닐 땐 각자로 돌아갈 것 같다. 유연하고 느슨하게 연대처럼 안 보이는 연대를 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