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원 증축·첨단 장비 도입으로 도약
- 철저 대비로 메르스 사태 완벽 대응
의료 불모지 구로에 들어선 고려대 구로병원은 서울 서남부 대표 병원으로서 명성을 쌓았다. 사진제공·고려대 구로병원
독일에서 날아든 낭보는 구로동 주민을 감격시켰다. 구로동에서 60년간 살아온 이대성 씨는 “1980년 초반만 해도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고통을 호소하는 주민과 구로공단 노동자가 한두 명이 아니었다”며 “고려대 구로병원이 들어선다는 소식에 지역 주민이 만세를 불렀다”고 회상했다.
이런 이유로 의료계는 고려대 구로병원의 개원을 두고 ‘의료 불모지 구로동에 꽃이 폈다’고 말한다. 흥미로운 점은 지역사회에 봉사하기 위해 세운 구로병원이 오늘날 대한민국 의료계를 이끈다는 사실이다.
‘환자 중심 진료’ 표방
실제로 구로병원은 서울 서남부 대표 병원으로서 명성을 쌓았다. 수상 이력이 이를 증명한다. 구로병원은 2010년 대한민국 보건산업대상을 수상한 데 이어 2011년 보건복지부 의료기관 인증 ‘생명의학연구윤리 FERCAP’ 국제인증을 받았다. 2012년에는 ‘대학병원 부문 가장 신뢰하는 브랜드 대상’을, 올해 10월엔 ‘대한민국 나눔국민대상’을 받았다.
국가로부터 연구 및 교육 능력도 인정받았다. 2013년 자매병원인 안암병원과 더불어 보건복지부 지정 연구중심병원으로 선정된 것이다. 지난해에는 국내 처음으로 보건복지부 지정 서울지역 외상 전문의 집중육성병원으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뤘다.
구로병원이 성장 고속도로에 올라탄 건 2008년. 그해 1600억 원을 투자해 신관을 건축하고 본관을 리모델링하며 팔색조 변신을 꾀했다. 그 결과 개원 당시 300병상에 불과했던 소형 병원이 33년 만에 1057병상을 갖춘 대형 병원으로 변모했다.
규모가 커진 만큼 병원을 찾는 발걸음도 늘었다. 현재 구로병원을 찾는 1일 환자 수는 약 3500명, 연간 환자 수는 95만 명(외래 기준)에 이른다.
규모만 커진 게 아니다. 구로병원은 암 전용 140여 병상을 확보하고, 중증외상 중환자실을 확충했다. 이는 병원이 외형적인 발전만을 추구하지 않고 환자의 편의성을 높이려 고심했음을 시사한다.
병원의 진가는 비상사태 때 발휘된다. 철저한 대응으로 구로병원에선 단 한 명의 메르스 환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사진제공·고려대 구로병원
백신 분야는 백신 국산화에 선도적 구실을 한다. 백신의 면역원성 증강전략을 개발하는 한편 주요 환자의 질병 부담 평가를 시행한다. 백신 국산화로 연간 260억 달러에 달하는 국제시장에 진입하는 것이 목표다.
재생의학 분야에서는 골결손 재생, 인대 재생, 요도 및 방광 재건 연구 등이 이뤄진다. 재생의학 의료기기를 개발해 2조 원대 미국 시장에 이어 10조 원대 세계 시장을 석권한다는 계획이다.
항암 치료제 분야에서는 세계 최초로 압티마 전달체를 이용한 표적 항암치료제 개발을 목표로 연구 중이다. 이것이 성공하면 기존 항암제와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각종 암을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구로병원은 4대 중점 연구역량 강화를 통해 수입 의료기기 의존도 심화, 신·변종 전염병 창궐 등 보건의료 현안을 해결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아울러 급진적인 인구 고령화, 주요 사망질환에 대한 미해결 과제도 하나씩 해결하겠다는 방침이다.
질환별로 특성화 센터를 구축한 것도 돋보인다. 구로병원 심혈관센터의 경우 전문의료팀이 24시간 상주한다. 심혈관센터는 심혈관조영술 6만여 건, 스텐트 및 성형술 2만5000여 건, 부정맥 시술 3000여 건 등 풍부한 임상 경험을 자랑한다. 매년 해외 병원 관계자들이 이 병원 심혈관센터를 찾는 이유다. 전 세계 심장전문의의 교육 메카로 자리 잡은 셈이다.
이런 눈부신 성장의 원동력은 뭘까.
첫째는 ‘환자 중심 진료’다. 구로병원은 올해 4월 소아 환자 전용 응급실을 열었다. 이곳은 소아청소년과 의료진이 24시간 상주하는 것은 물론 5개의 소아 전용 베드까지 갖췄다. 무엇보다 소아 환자만 진료하기 때문에 진료 및 검사 응급처치를 비롯한 각종 치료를 한자리에서 진행할 수 있다. 환자 대기시간이 줄어들고 만족도가 높아졌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2015년 1월 개소한 뇌신경센터 역시 뇌신경질환 환자의 집중치료를 위해 마련됐다. 특이한 점은 뇌신경센터가 뇌신경계 질환에 대해 통합진료를 진행한다는 것이다. 신경과, 영상의학과, 재활의학과, 마취통증의학과, 핵의학과 등 여러 분야 의료진이 협진을 통해 최적의 치료법을 찾는다.
유방암센터 서재홍 교수(오른쪽 두 번째)가 표적항암치료제를 연구하는 광경. 사진제공·고려대 구로병원
또 다른 원동력은 ‘사회적 책임’이다. 올해 6월 메르스 사태가 발생했을 때 구로병원은 메르스 발병 초기부터 메르스 대책위원회를 조직, 철두철미한 대비책을 세우고 효율적인 대응활동을 펼쳤다. 특히 음압시설, 헤파필터, 이중 안전문 등을 갖춘 음압격리병상과 응급실을 격리외래진료실과 철저하게 구분했다. 이런 각고의 노력 덕분에 지역 내에서 메르스 환자가 단 한 명도 발생하지 않고, 치료 중인 일반 환자와 내원객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었다.
‘직원들이 행복한 병원 문화’도 구로병원의 성장을 이끈다. 병원 집행부는 올해 4월 진료지원부서 대상으로 오픈톡(간담회)을 개최해 병원 구성원의 목소리를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런 병원 문화 때문인지 구로병원의 직원 결속력은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다.
개원한 지 33년. 구로병원은 또 다른 청사진을 그린다. 암병원과 중증외상교육센터를 중심으로 대한민국 대표 병원의 입지를 굳히는 계획이다. 수익보다 환자 중심의 진료를 펼치겠다는 뜻이다. 구로병원의 화려한 비상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