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호

영조와 네 개의 죽음 外

  • 담당 · 최호열 기자

    입력2015-11-24 09: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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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가 말하는 “내 책은…”

    영조와 네 개의 죽음

    함규진 지음, 페이퍼로드, 384쪽, 1만5800원

    영조와 네 개의 죽음 外
    영조는 여러 면에서 흥미진진한 역사 인물이다. 조선 최장수, 최장 재위 군주라는 점에서부터 이른바 진경시대라 불리는 조선의 중흥기를 연 명군이었다는 평가, 그리고 ‘자식을 죽인 임금’이라는 사실 등등이 그렇다. ‘좁은 뒤주에 가두고 굶어 죽도록 방치’해 자식을 죽인 경우로 본다면 아마 세계사에도 유례가 없을 것이다.

    왜 그랬을까. 당장 인터뷰 섭외를 하고 싶지만 이미 수백 년 전에 세상을 떠난 사람이니 그럴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다른 사람들이 남긴 증언에 귀 기울이게 되는데, 이것이 극과 극을 오간다. ‘조선왕조실록’의 사관들과 정약용, 성대중 등이 남긴 글에 따르면 영조야말로 성군이라는 이름에 부족함이 없는 임금이었다. 늘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고, 검소하고 명철했다. 자신의 적들에게도 관용을 베풀었으나 민생 개혁을 위해서는 뚝심 있게 밀어붙이기도 했다. 영조가 아니었으면 정조도 없었을 것이고, 실학도 꽃을 피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며느리이자 사도세자의 짝이던 혜경궁 홍씨가 남긴 ‘한중록’을 보면, 영조는 폭군일 뿐 아니라 성격파탄자, 심지어 정신질환마저 의심된다. 자식에 대한 편애가 심해 화평옹주나 화완옹주는 임금 체통도 아랑곳없이 귀여워하면서, 사도세자나 화협옹주는 무관심한 정도가 아니라 집요하게 미워하고 괴롭혔다. 견디다 못한 사도세자는 아버지 그림자만 봐도 경기를 일으킬 정도였으며, 급기야 정신이 이상해지고 말았다. 이런 영조는 겉으로는 할아버지를 존경하고 찬양하는 듯한 정조가 아버지를 위한 묘지문에서 은근히 암시하는 영조이며, 최근 개봉돼 상당한 인기를 모은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영조이기도 하다.

    과연 어느 쪽이 진실인가.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으며, 무엇이 사실을 왜곡한 주장인가. 나는 다른 누구도 아닌 영조 본인의 시각에서 접근하고 싶었다. 그러다 보면 한쪽에서 ‘사실’이라고 믿은 것이 ‘오해’인 경우도, 한쪽에서 자신의 관점에 따라 해석한 영조의 행동이 실제로는 전혀 다른 의미를 띠는 경우도 드러나리라 봤다. 심지어 통설과 달리 ‘자식을 뒤주에 가둬 죽인 것이 아니었을’ 수도. 그래서 영조 본인의 글을 포함한 방대한 자료를 훑고, 앞서의 책에서 세종, 연산군, 광해군, 정조, 선조, 고종 등을 조명하고 분석한 경험을 살리며 추리와 상상을 조합해 ‘영조 스스로가 말하는 영조’를 구축했다.

    우리는 사람의 말을 냉정한 자료보다 선호하지만, 동시에 사람의 말이 꼭 신뢰할 만하지는 않음도 알고 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변명이나 자화자찬, 개인적 편견 등도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구축해 낸 영조의 말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그 자신의 말’을 경청하고 숙고함으로써, 우리는 그의 정치적이고 인간적인 처지, 그가 사로잡혀 있던 당대의 통념과 사상을 한결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와 그의 시대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고찰할 수 있다. 그것이 이 ‘영조 모놀로그’가 갖는 의미, 또는 가능성이라고 믿는다..

    함규진 | 서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 |

    아수라장의 모더니티 _ 박해천 지음

    영조와 네 개의 죽음 外
    ‘콘크리트 유토피아’, ‘아파트 게임’ 등 중산층 문화에 초점을 맞춰 한국 사회를 분석한 전작에 이은 3부작 종결편. 1950년 6·25전쟁 때 T34형 탱크 등 전쟁 기계가 던져준 모더니티의 충격부터 포니 승용차, 대형 할인점, 개인용 컴퓨터, 그래픽 소프트웨어 등 새로운 감각의 변화를 요구하는 21세기 테크놀로지까지 우리 삶을 뿌리부터 바꿔놓은 인공물을 다뤘다. 또한 그에 맞서거나 그들을 수용, 포섭하며 성장한 중산층의 궤적을 분석했다. 디자인 연구가인 저자는 특히 특정한 주거 모델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이를 통해 감각의 논리를 갱신하고 욕망의 구조를 현실화한 세 집단에 주목했다. 그것은 1960년대의 ‘서북계-이층양옥-중상류층’, 1980년대의 ‘강남-아파트-중산층’, 1990년대의 ‘신도시-이마트-중산층’이다. 워크룸 프레스, 256쪽, 1만5000원

    신들의 연기, 담배 _ 에릭 번스 지음, 박중서 옮김

    영조와 네 개의 죽음 外
    담배는 한때 정신적으로, 의학적으로 가치 있는 그 무엇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건강에 무익은커녕 극심한 수준으로 유해하다는 낙인이 찍혀 있다. 이 책은 오랜 세월 인류와 동고동락해온 담배의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영향력을 오롯이 담고 있다. 담배를 신이 내린 선물로 추앙하며 제의와 질병 치료에 사용한 1500년 전 마야 문명부터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으로 유럽 대륙에 담배가 소개되는 과정, 여기서 벌어진 기상천외한 에피소드가 흥미롭다. 영국의 아메리카 식민지 건설을 성공시킨 주역으로 활약하던 담배가 미국의 독립전쟁을 일으킨 불씨가 된 사연, 담배가 국제무역 지불수단으로 이용된 배경 등 담배가 지나온 파란만장한 여정을 미국 현대사를 중심으로 풀어낸다. 책세상, 520쪽, 2만5000원

    이노베이터 메소드 _ 네이션퍼·제프다이어 지음, 송영학·장미자 옮김

    영조와 네 개의 죽음 外
    기존의 경영 방식은 상대적 확실성을 다루는 데는 좋지만, 불확실성이라는 특징을 지닌 문제 해결에는 큰 효과가 없었다. 이 책은 불확실성 시대에 사업에 성공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저자들은 다양한 기업과 성공적인 스타트업에 관한 연구를 기초로 이노베이터 메소드를 개발했다. 아이디어를 잘 다듬어 시장에 내놓기 위한 세밀한 프로세스라고 할 수 있다. 저자들은 언제 어떤 방법으로 이 툴을 당신의 사업에 적용하고 응용할지를 자세히 알려준다. 아마존, 구글, 애플, AT·T 등이 어떻게 혁신기업으로 우뚝 섰는지 구체적인 예를 통해 알려준다. 저자들은 이 책에 나오는 툴을 이용하면 불확실성이 높은 문제들을 창의적으로 해결하고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세종서적, 376쪽, 1만5000원

    저자가 말하는 “내 책은…”

    세상을 바꾸고 고전이 된 39

    김학순 지음, 효형출판, 327쪽, 1만5000원

    영조와 네 개의 죽음 外
    “코페르니쿠스 이후 우리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마르크스 이후 우리는 인간 주체가 역사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프로이트는 인간 주체에는 중심이 없다는 것을 밝혀주었다.” 프랑스 구조주의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가 혁명적인 근대 사상사를 명쾌하게 규정한 명언이다. 이 말은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칭송에 초점이 맞춰 있지만,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의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이 역사와 세상을 결정적으로 바꿨다는 것을 달리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천재로 불리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도 “프로이트에 비하면 나는 놀라운 물고기를 낚기 위해 매달린 작은 벌레에 불과하다”는 겸사(謙辭)를 남겼다. 그런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상대성 이론’이 상상을 뛰어넘어 인류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 줄 몰랐다. 그는 이 책으로 시간이 우주 어디에서나 똑같이 흐른다는 절대시간 개념을 깨뜨렸고, 원자폭탄을 만드는 데도 일조했다.

    한 권의 책이 때로는 한 사람의 인생이나 나라를 바꾸지만, 이처럼 인류의 역사와 세상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키는 엄청난 위력을 보이기도 한다. ‘세상을 바꾸고 고전이 된 39’는 세계의 패러다임을 격변시킨 책만 엄선해 독자에게 다가간다. 그 책의 의미나 학문적·사상적 비중을 해설하거나 소개하는 게 아니라 세계사나 사상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다양한 차원에서 톺아봤다.

    주제는 크게 여섯 가지 범주로 나뉜다. ‘자유와 인권의 횃불을 들다’ ‘정치철학과 국제질서를 세우다’ ‘생각의 혁명을 일으키다’ ‘경제학의 주춧돌을 놓다’ ‘신의 자리에 인간이 서다’ ‘유토피아를 꿈꾸며 디스토피아를 그리다’가 그것이다.

    자유와 인권의 횃불을 든 책 가운데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프랑스혁명의 교과서가 됐고, 토머스 페인의 ‘상식’은 미국 독립운동의 횃불이 됐다. 해리엇 비처 스토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 미국 노예해방의 휘발유였다면, 매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여성의 권리옹호’와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은 페미니즘 운동의 바이블이었다. 획기적인 이론이나 진실을 발견하고 담아내 생각의 혁명을 일으킨 책으로는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과 더불어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등이 꼽힌다. 인간을 신의 자리에 서게 만든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은 세상의 만물을 창조한 신의 권능을 하루아침에 땅에 떨어지게 만든 도발적인 저작이다.

    일반 독자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앨프리드 세이어 머핸의 ‘해양력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은 세계 권력의 판도를 바꾼 책이다.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는 유럽의 르네상스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은 살벌한 생존경쟁보다 협력과 연대에 기초한 상호부조가 인류의 문명을 이끌어온 힘이라는 점을 부각했다.

    김학순 | 전 경향신문 논설실장, 고려대 초빙교수 |

    나치의 병사들 _ 죙케 나이첼·하랄트 벨처 지음, 김태희 옮김

    영조와 네 개의 죽음 外
    영국군과 미군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포로였던 독일 병사들의 대화 내용을 도청한 기록물을 통해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병사들이 어떻게 ‘악’에 물들어가는지를 보여준다. 일반 인터뷰나 보고서에서는 접할 수 없는 적나라한 내용들, 이를테면 직접 저지르거나 경험한 온갖 살인과 폭력, 파괴 등 무용담이 그대로 담겼다. 이들은 유대인 600만 명을 학살한 사람들이다. 흔히 나치의 인종주의가 참사의 주범으로 꼽혀왔다. 그러나 저자는 인종주의가 전부는 아니었다고 강조한다. 오히려 전쟁이라는 상황 자체에 주목한다. 전시가 아니라면 결코 극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인종주의와 군사적 가치에 대한 숭배, 과도한 남성성이 당연함을 넘어 권장할 만한 가치가 되어갔음을 밝힌다. 홀로코스트 연구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민음사, 580쪽, 3만2000원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_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영조와 네 개의 죽음 外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작품. 직접 참전했거나 전쟁을 목격한 여성 200여 명의 이야기를 모았다. 그들은 숭고한 이상, 승리나 패배, 작전, 영웅 따위를 말하지 않는다. 그저 전쟁이라는 가혹한 운명 앞에 선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뿐이다. 이들은 전장에서도 여전히 철없는 소녀였고, 예뻐 보이고 싶은 아가씨였고, 자식 생각에 애간장이 타들어가는 엄마였다. 이들의 얘기를 따라가다 보면 죽음이 일상적인 전쟁터 한가운데서 따뜻한 피가 흐르고 맥박이 뛰는 사람들을 만나고 인생을 접하게 된다. 또한 평범하고 순박한 우리의 여동생과 언니 또는 누나와 엄마의 전쟁 앞에서 산산조각 나버린 일상과 꿈, 사랑을 만날 수 있다. 요란한 구호나 거창한 웅변 하나 없이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고 누구를 위한 전쟁인지 돌아보게 한다. 문학동네, 560쪽, 1만6000원

    상군서 _ 신동준 지음

    영조와 네 개의 죽음 外
    전국시대 중엽, 법가사상가 상앙은 강력한 제도와 법령을 바탕으로 변방의 진나라를 최강의 나라로 만들어냈다. 그의 사상이 담긴 ‘상군서’는 제자백가서 가운데 부국강병 시스템만을 역설한 유일한 고전이다. 열국이 하루가 멀다 하고 전쟁을 벌인 전국시대는 오직 강한 무력을 지닌 나라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상앙은 ‘농전’을 바탕으로 한 변법을 도입해 가난한 농민의 이탈을 막고 관직과 작위를 줘 전쟁에 필요한 군사력과 생산력을 증대했다. 조조와 유비도 상앙이 주창한 농전의 이치를 도입해 강력한 법치를 세우고자 했을 만큼 ‘상군서’는 제왕 리더십의 바이블 또는 부국강병 방략의 성전으로 간주되었다. 이 책은 ‘상군서’를 통해 21세기 경제전쟁 위기를 돌파하고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 있는 부국강병 시스템을 제시한다. 위즈덤하우스, 356쪽, 1만6000원

    번역자가 말하는 “내 책은…”

    옹정황제(전 12권)

    얼웨허 지음, 홍순도 옮김, 더봄, 각권 300쪽 내외, 각권 1만2000원

    영조와 네 개의 죽음 外
    중국은 21세기 들어 미국과 더불어 이른바 G2로 불린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동아시아의 병자(病者)로 불린 사실을 상기하면 대단한 변신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이 청나라 초중기에 이미 세계 최강의 국가였다는 사실을 알면 중국의 대변신은 상전벽해라고 하기 어렵다. 오히려 오랫동안 헤매다 제자리를 찾았다고 하는 편이 옳다.

    청 제국을 세계 최강의 국가로 견인한 주역은 누가 뭐라고 해도 강희황제다. 그러나 반석에 올려놓은 주인공은 아버지가 못다 이룬 각종 현안을 해결한 다음 더욱 막강해진 국가를 아들 건륭에게 물려준 옹정황제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옹정황제가 한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중국의 유명 역사소설가 얼웨허(二月河)의 ‘황제삼부곡’ 중 ‘강희대제’에 이은 두 번째 작품인 ‘옹정황제’를 번역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떻게 하든 그를 한국의 독자에게 널리 알려 그의 진면목에 대한 이해를 돕고 싶었다. 다시 말하자면 G2 국가 중국의 탄생이 가능하게 된 저력과 배경을 알리고 싶었다.

    실제로 이 책은 이런 욕구를 120% 충족시키는 것 같다. 아버지가 채 이루지 못한 과업을 이뤄내고 대제국을 반석에 올려놓는 과정을 사서에 입각해 제대로 복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는 아버지 때 거의 거덜이 난 국고를 튼튼하게 채워 넣었다. 그 액수가 강희황제 때의 무려 10배 이상이었다고 한다. 그는 붕당정치를 분쇄해 황권도 강화했다. 나아가 중국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확보하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13년 동안의 재위 기간 중 부정부패를 뿌리뽑기 위해 아버지보다 더 열심히, 부단하게 노력했다. 실제로도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 그가 냉혹한 얼굴을 가진 독재자라는 뜻의 ‘냉면왕(冷面王)’이라는 별명의 군주로 기억되는 이유는 다 여기에 있다. 부패와의 전쟁에 적극 나서고 있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롤 모델로 삼은 것 역시 바로 이 때문이다.

    그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대제국의 황제였다.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술을 거의 하지 않았다. 진수성찬보다는 소박한 박식(薄食)을 즐겼다. 주위에 여자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지나치지는 않았다. 황제치고는 상당한 절제의 미학을 보여준 군자라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국가가 반석에 올라서지 않았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할 일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그의 일대기라고 할 수 있다. 소설 형식이니 당연히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무려 12권에 이르는 대하소설인데도 술술 익힌다. 그렇다고 과장되거나 왜곡되지는 않은 듯하다. 이는 사서에 입각해 정확하게 쓰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작가의 성격으로 볼 때 당연한 것이 아닐까 보인다. 한마디로 이 책은 재미에 더해 역사적 지식을 보고 배울 수 있는 교과서의 성격이 강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역자로서 일독을 권할 수밖에 없다.

    홍순도 | 아시아투데이 베이징 특파원 |

    나는 자유주의자이다 _ 김덕홍 지음

    영조와 네 개의 죽음 外
    1997년 황장엽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의 망명을 실질적으로 추진하고 진행한 김덕홍 노동당 중앙위 자료연구실 부실장이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소상인 아버지를 둔 출신 성분 탓에 김일성종합대학에 가지 못할 뻔한 그가 군 복무를 거쳐 김일성대를 나와 당 중앙위 간부로 발탁되기까지의 이야기, 당 간부로서 접하게 된 김일성·김정일 정권의 치부와 에피소드, 망명 과정과 이후 남쪽에 와서 겪은 일을 담았다. 비공개 일화가 특히 흥미롭다. 박헌영 처단이 사실은 스탈린의 비밀 지령에 의한 것이라는 김일성의 회고, 1984년 북한이 남한에 수재 지원 물자를 보내느라 전쟁예비물자로 비축했던 식량, 의약품, 시멘트 등을 거의 털어내는 바람에 학생에게 교복도 정상적으로 배급하지 못하게 됐다는 얘기 등이다. 집사재, 399쪽, 1만4000원

    박정희 장군, 나를 꼭 죽여야겠소 _ 김학민·이창훈 지음

    영조와 네 개의 죽음 外
    한국 현대사 미스터리 중 하나가 소위 ‘황태성 사건’이다. 5·16군사정변 직후 남한의 군사정권과 남북 협력과 통일 문제를 타진하기 위해 북한 밀사로 내려왔지만 중앙정보부에 의해 간첩으로 몰려 비밀재판 끝에 총살당한 ‘인간’ 황태성의 삶을 총체적으로 돌아봤다. 관련자들의 증언, 재판 기록, 언론 기사 등을 토대로 황태성이 남한에 내려온 후 쿠데타 세력과 접촉하는 과정, 그리고 이후의 연행, 재판, 처형 등을 찬찬히 되짚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일제강점기 항일투쟁과 1946년 ‘죽음을 피해’ 북으로 올라간 그가 15년 후 다시 ‘죽음을 무릅쓰고’ 남으로 내려오기로 결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세세하게 살폈다. 나아가 그의 죽음이 1960~70년대 남북관계에 끼친 영향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분석했다. 푸른역사, 412쪽, 2만 원

    메이지의 문화 _ 이로카와 다이키치 지음, 박진우 옮김

    영조와 네 개의 죽음 外
    메이지시대(1868~1912)는 오늘날 일본의 모양새를 결정한 시기였다. 흔히 ‘메이지유신’ 하면 서구식 근대화와 문명개화, 부국강병 정책을 떠올리지만 저자는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메이지 문화’의 근대적인 요소를 민주주의, 자아의식과 개인주의, 자본주의, 내셔널리즘이라는 네 가지 키워드로 파악한다. 이 시대에 자유민권운동이 좌절되고 민중 생활의 리듬이 뿌리뽑히면서 민주주의와 개인주의는 억압되고, 자본주의와 내셔널리즘이 왜곡되면서 천황제 이데올로기와 ‘국체(國體)’ 관념이 근대 일본을 지배하게 되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기존 메이지시대 이미지에 가려진 일본 근대의 참모습을 드러내고 밑바닥 세계에서 근대를 향해 꿈틀대는 에너지를 밝혀낸 점이다. 삼천리, 352쪽, 2만5000원

    편집자가 말하는 “내 책은…”

    대한민국 국가미래전략 2016

    KAIST 미래전략대학원 지음, 이콘, 680쪽, 2만5000원

    영조와 네 개의 죽음 外
    연말이 되면 수많은 미래예측서와 트렌드서가 출간된다. 그만큼 미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뜨겁다는 방증일 것이다. 그런데 책 대부분은 비즈니스나 일상생활에 초점을 맞춘다. 어떤 사업이 미래의 시장을 움직일 것인지, 우리의 삶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해 말하는 책이 대다수다.

    하지만 전략과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는 미래 예측은 공허할 뿐이다. 사람들이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이유는 변화에 적응하고 이득을 얻고자 함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전략이 필요하다. 이 책은 개인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염두에 두고, 여러 분야에 대해 ‘전략’과 ‘정책’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분명 특별함이 있다.

    이 책을 펴낸 KAIST 미래전략대학원은 국내 최초의 미래학 연구, 교육기관이다. 과학적인 미래학 연구를 바탕으로 국가 발전과 인류 행복에 기여하는 미래 전략 수립을 미션으로 삼고 있다. 심화하는 전 지구적 미래 위기와 시대 변화에 선도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 대한민국 국가미래전략 수립을 가장 중요한 연례과제로 설정하고 2015년부터 매년 국가미래전략서를 발간 중이다.

    이번 2016년 판에서는 지금 대한민국이 꼭 해결해야 할 6대 과제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이 문제인식을 바탕으로 5개 분야, 31개 세부 분야에 대한 전략을 소개했다.

    저성장 시대 : 저성장 경제가 펼쳐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기존의 성장주의 전략은 저성장에 맞는 전략·정책으로 변화하고 있다.

    삶의 질 중심 라이프스타일 : 국민의 사고방식이 GDP 성장 만능주의에서 행복도 함께 생각하는 방식으로 변한다.

    국가 거버넌스의 다원화 : 행정부 중심의 기존 의사결정 구조에서 입법부, 사법부와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구조로 변한다.

    고령화 : 인구 및 경제인구 감소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으며, 이에 적응하는 전략·정책으로 변화한다.

    불평등 : 사회 곳곳에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고착화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사회의 역동성이 줄어들고 있다.

    직업의 변화 : 자동화로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고 있고, 일자리 감소 추세 속에 실업이 증가하고 있으며, 고용불안이 심화한다.

    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 이광형 원장은 함께 미래를 고민한 석학들에게 줄곧 ‘선비정신’을 강조했다. 정파나 개인의 이해관계를 떠나 오로지 국민과 나라를 생각하는 선비야말로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하며, 우리가 바로 선비가 돼야 한다는 말이다. 전년도 책을 바탕으로 지난 1년간 지속적으로 토론회를 개최하며 총 1800여 명의 토론 참여자와 100여 명의 관련 분야 전문가가 함께 만든 이번 책은 선비들의 올해 결과물이다. 이들의 결과물은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더 많은 토론과 연구가 보태져 다음에는 더 나은 결과물을 선보일 것이다.

    고은아 | 문학동네 기획실 차장 |

    작은 상처가 더 아프다 _ 최명기 지음

    영조와 네 개의 죽음 外
    엄청난 트라우마보다 더 사람을 괴롭히는 건 일상에서 받는 ‘작은 상처’다. 상대의 가벼운 농담 한마디, 별것 아닌 행동 하나가 가슴을 찢어놓는다. 이런 작은 상처는 제때 치유하지 않으면 쌓이고 쌓여 깊은 상처가 된다. 남보다 사소한 일에 마음을 잘 다치고, 그 다친 마음에 새겨진 작은 상처들이 빨리 치유되지 않는 심리를 진단하고, 이를 바탕으로 ‘좋은 사람’에서 ‘존중받는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한 단계별 심리 처방을 담았다. 저자는 먼저 왜 유독 내가 상처를 받는지, 왜 나는 당하기만 하는지 파악할 것을 주문한다. 그리고 상대가 내게 상처를 주는 심리, 상대가 어떤 성격이고 어떤 행동 패턴을 가지고 있는지를 분석한 후 작은 상처 따위는 받지 않거나, 받더라도 금세 치유할 마음의 힘을 키워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알키, 268쪽, 1만3800원

    신을 찾아서 _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

    영조와 네 개의 죽음 外
    과학자이자 사회운동가, 저널리스트로 뼛속까지 무신론자인 저자가 자신이 만난 ‘신’과 진리를 규명하고자 한 끈질긴 탐색의 기록이자,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회고록. 책의 발단은 일기였다. 2001년 유방암에 걸린 저자는 죽음을 준비하면서, 오랫동안 봉투 안에 담아두었던 10대 시절의 일기를 꺼낸다. 거기에는 기억 저편에 봉인한 한 ‘사건’이 담겨 있다. 책과 토론을 좋아했지만 ‘아동 학대’에 가까울 만큼 자신을 몰아세웠던 현실주의자 부모, 그로 인해 마음을 닫고 ‘유아론’으로 자신을 지켜야 했던 소녀 시절, 잦은 이사와 전학으로 인한 외로움, 사춘기에 겪은 해리(解離) 현상과 일종의 ‘신비체험’, 그로 인한 정신적 붕괴, 부모의 자살 시도, 과학자에서 사회운동가로의 변신 등 일생에 걸친 탐색의 여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부키, 320쪽, 1만4800원

    상상병 환자들 _ 브라이언 딜런 지음, 이문희 옮김

    영조와 네 개의 죽음 外
    현대인은 항상 어딘가 아프다. 편두통, 관절 통증, 소화불량, 과민성대장증후군 등. 그러나 흔히 ‘스트레스성’이라는 수식이 붙는 각종 질병의 원인은 명확하지 않다. 그 증세도 다양해서 분명하게 진단 내리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때로는 꾀병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런 증후를 ‘마음의 병’이나 ‘건강염려증’이라고 하기도 한다. 이런 것의 기원이 바로 ‘심기증’이다. 제임스 보즈웰, 샬럿 브론테, 찰스 다윈,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앨리스 제임스, 다니엘 파울 슈레버, 마르셀 프루스트, 글렌 굴드, 앤디 워홀. 이들은 모두 심기증을 앓았다. 그리고 심기증은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그들의 성취에 특별한 영향을 미쳤다. 심기증을 겪은 9인의 정신이 육체와 더불어, 그리고 육체에 맞서서 어떻게 작동했는지 탐구했다. 작가정신, 380쪽,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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