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혼 커플 중 결혼기간 14년 이하 57%
- ‘실용적 조건’ 3~4가지 집중 체크 후 맞선
- ‘속궁합’ 맞춰보기? 이것저것 ‘확인’할 게 많아서…
- 재산 감추고 연봉 줄여…‘뒷주머니 대마왕’들
기업체 대표로 ‘골드싱글’ 생활을 즐기던 40대 후반 윤영식(가명) 씨도 결혼을 앞두고 있다. 부모의 반대에도 구애 끝에 반려자로 점찍은 여성은 7세 연하로 10대 초반의 딸을 키우고 있다. 윤씨는 ‘적당한 짝으로 인생 경험이 풍부한 여성을 만나도 괜찮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이 여성을 만났다.
결혼을 망설인 건 오히려 여성 쪽이었다. 재혼인 데다 아이도 있는 자신과 달리 초혼인 윤씨가 부담스러웠던 것. 하지만 윤씨는 뚝심으로 밀어붙였다. 3개월째 연애 중인 윤씨는 “만나자마자 얘기가 잘 통했고 아주 매력적인 사람이다. ‘조건’은 문제가 안 됐다. 놓치면 다시 좋은 사람을 만나기 힘들 것 같았다. 지금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5쌍 중 1쌍 재혼 커플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이혼건수는 11만5510건으로 2011년 이후 계속 증가세다. 이혼 커플 중 혼인 지속기간이 14년 이하인 경우가 56.6%를 차지한다. 같은 기간 평균 초혼 연령이 남자 32.4세, 여자 29.8세인 점을 감안하면 30~40대의 이혼이 절반을 훨씬 넘는다는 얘기. 이혼이 늘면서 재혼도 증가해 지난해 전체 혼인 건수 중 재혼 비율이 21.5%를 기록했다. 부부 5쌍에 1쌍꼴로 남녀 모두 재혼이거나 한쪽이 재혼인 셈이다.
결혼정보업체 ‘듀오’의 지난해 재혼 회원 비율은 전체 회원의 15%로 5년 전보다 3%포인트 증가했다. 10년차 커플매니저 심미숙 씨는 “지난해 재혼한 회원 1000명 중 30대가 48.9%로 1년 전보다 4.5% 늘었다”며 “수명이 늘어 30세에 결혼해도 최소 50년 이상 긴 세월을 배우자와 함께 살아야 하니, 젊은 층은 불행한 결혼생활을 지속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일찌감치 갈라서서 새로운 행복을 찾겠다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요즘 젊은 ‘돌싱’(‘돌아온 싱글’, 이혼 후 다시 독신이 된 사람)들은 쉬쉬하던 과거와 달리 적극적으로 결혼정보업체 문을 두드리고, 호텔에서 결혼식을 치르며, 대놓고 신혼여행을 다녀온다. 부부 사이에 사소한 문제가 생겨도 당사자보다 더 적극적으로 이혼을 권하는 ‘헬리콥터 맘’이 많다보니 이혼한 자식을 둔 부모들의 생각도 점차 바뀌고 있다. “아픔을 겪은 사람끼리 새 출발하는 자리를 축하해달라”며 스스럼없이 청첩을 돌리는 일도 흔하다.
결혼정보업체 ‘대명위드원’ 홍유진 전무는 “이혼이나 재혼 사실을 숨기거나 불편해하는 경우를 별로 못 봤다. 심지어 삼혼, 사혼을 위해 우리 회사를 찾는 30~40대도 느는 추세”라고 말했다. 결혼정보업체들이 재혼과 삼혼 회원을 따로 구분해야 할 만큼 재·이혼 커플이 늘었다. 재혼 부부의 75%가량이 다시 이혼한다는 통계도 있다. 자녀 양육을 둘러싼 전 배우자와의 지속적인 교류, 재혼으로 생긴 이복 혹은 이부(異父) 형제자매 간 마찰로 인한 부부갈등, 이혼의 상처 등이 얽혀 재혼 가정의 평화가 유지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재혼 미팅’에 참여한 결혼정보업체 회원들. 사진제공 · 듀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지난해 혼인 건수는 전년보다 5.4% 감소해 혼인율은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 증가가 주요인이다. 하지만 같은 기간 이혼은 오히려 소폭 증가했다. 돌싱이 늘고 재혼 시장 규모가 커지자 관련 업계는 빠른 행보로 변화에 적응하고 있다. 재혼을 특화한 결혼정보업체가 생겨나면서 기존의 재혼 전문 업체는 물론 초혼에 비중을 두던 업체들까지 재혼에 포커스를 맞춰 조직 개편을 하는 등 재혼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한부모가정지도사, 심리상담사 등의 자격증을 가진 사람을 재혼전문 커플매니저로 배치하기도 한다. 재혼에 제약이 될 수 있는 자녀 문제, 이혼에 이른 속사정 등을 심층 상담을 통해 면밀하게 파악해 재혼 성사율을 높이기 위해서다. 인터넷과 모바일에는 돌싱을 겨냥한 사이트와 카페가 속속 등장한다. 인위적인 만남을 원하지 않는 돌싱을 위해 자연스럽게 인연을 맺을 기회를 제공한다. 이혼한 젊은 층은 돌싱 전문 소셜데이팅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짝을 찾기도 한다.
지난해 이혼한 30대 중반 이준호(가명) 씨는 결혼생활 1년을 넘기지 못했다. 연애 시절엔 미처 몰랐던 아내의 의존적, 집착적 성격이 함께 살면서 엄청난 부담감과 책임감, 갑갑함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결국 성격 차이로 아내와 헤어진 이씨는 이혼 4개월 만에 결혼정보업체 문을 두드렸다. 주위에선 “너무 이르지 않냐”고 걱정했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이혼과 재혼이 흠이 아닌 이상 계속 혼자 살 게 아니라면 빨리 새 배우자를 만나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새로 시작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이혼을 하면 남자는 외로움을 느끼는 반면 여자는 해방감과 자유를 느낀다. 그래서인지 여자보다 남자가 재혼을 서두르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초혼에 비해 재혼 커플은 교제 기간이 짧다. 빠르면 사귄 지 6~7개월 안에 결혼하고 길어야 1년 정도면 결혼을 결정한다.”(커플매니저 심미숙 씨)
결혼정보업체가 마련한 재혼 회원 미팅 파티. 사진제공 · 듀오
“○氏는 피해주세요”
이씨처럼 30~40대에 재혼을 원하는 사람들은 초혼보다 더 결혼정보업체에 기대는 경향이 있다. 결혼에 실패한 경험 때문에 다시 배우자를 고르는 데 신중하기 때문이다. 상대의 이혼 사유, 전 배우자와 사이의 자녀 양육 문제, 경제적 안정 여부 등 사전에 파악해야 할 정보가 초혼보다 많다. 당사자끼리 처음 만난 자리에서 입에 올리기 어려운 이처럼 민감한 사정을 업체를 통해 쉽게 파악할 수 있고 등기부등본, 가족관계등록부, 재산세납입증명서 등의 서류를 통한 사실 확인도 가능하다.
재혼 전문가들은 요즘 30~40대 재혼 희망자들이 “까다롭지만 현명하고 실용적이면서 쿨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결혼정보업체에서 맞선 상대를 고를 때 초혼 회원은 최소 10가지 조건을 따진다면 재혼 회원은 3~4가지만 집중적으로 체크한다. 학벌, 집안, 키, 나이, 직장 등 외형적이고 부수적인 조건보다 재혼에 걸림돌이 될 만한 이혼 사유, 자녀 유무와 양육자, 위자료 정산과 양육비, 경제적 안정 등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조건에 집중한다. 상대의 외모보다는 성격과 가치관이 자신과 잘 맞는지를 중요시하고 친구나 동반자 같은 짝을 원한다. 특히 민감해하는 것은 자녀 문제다.
“재혼을 원하는 요즘 30~40대는 상대에게 자식이 있느냐 없느냐를 과거보다 더 따지는 경향이 있다. 전업주부가 많던 예전에는 재혼하면 여자가 양쪽 아이를 기르는 걸 당연하게 여겼지만, 지금은 맞벌이 여성이 많고 양육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아이가 몇 명인지, 나이는 몇 살인지를 세세하게 따진다. 재혼 후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형편인지도 중요하게 고려한다.”(홍유진 전무)
30~40대는 결혼정보업체 재혼 회원으로 가입할 때 전 배우자에게서 입은 마음의 상처 때문에 특정 성씨를 피해달라고 당부하거나, 선호하는 직업군보다 피하고 싶은 직업군에 방점을 찍는 등 초혼 회원에게서 보기 어려운 특징을 드러내기도 한다. 과거보다는 열린 사고방식을 가졌지만 ‘두 번의 실패’는 피하고 싶은 마음에 까다롭게 따지는 경향이 있다.
30대 중반 이혼녀 정혜진(가명) 씨는 결혼정보업체에 전 배우자와의 사이에 자녀가 없는 이혼남을 소개해달라고 했다. 자녀가 없는 정씨는 재혼해서 아이를 낳고 싶어 했고, 배다른 자녀가 생기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정씨와 재혼한 지금의 남편은 40대 중반으로 전처가 낳은 아이 하나를 키우고 있었다. 정씨는 “첫 만남에서 남편은 자신이 여러 가지로 나보다 부족하다며 충분한 기회를 갖고 다른 사람도 만나보라고 했다”며 “생각이 성숙하고 신사다운 면모에 마음이 움직여 결혼을 결심했다”고 털어놨다.
‘속궁합’ 맞춰보는 까닭
재혼을 앞둔 자식만큼이나 쿨하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부모도 적지 않다. 공직자 출신의 70대 중반 김형석(가명) 씨는 첫 결혼에 실패하고 자녀도 없이 40대 중반이 된 아들이 재혼을 결심하자 “너하고 맞는 상대를 만나야 한다. 이혼 경험이 있어 서로 사정과 처지를 헤아릴 줄 아는 며느릿감이 좋겠다”고 조언했다.
재혼 붐이 일면서 ‘통장 상견례’ ‘혼전계약서’ 같은 말도 자주 듣게 된다. 이에 대해 일선 커플매니저들은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다만 이혼하면서 위자료나 양육권, 양육비와 관련해 전 배우자에게 심하게 ‘덴’ 경험이 있는 사람은 혼전계약서를 요구하기도 한다. 결혼정보업체가 혼전계약서 작성에 개입하지는 않는다. 맞선 성공 후 교제 기간에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일이다.
요즘 30~40대 재혼 희망자들은 ‘뒷주머니 대마왕’이라 불릴 만큼 경제적 실리를 추구한다. 이전 결혼생활에서 경제의 중요성을 체감했기에 자신의 재력을 감추고 맞선에 나서는가 하면, 결혼 후에도 대부분 딴 주머니를 찬다.
“경제력이 있는 재혼 회원은 맞선 볼 때 대개 재산이나 연봉을 100% 오픈하지 않는다. 아파트 두 채가 있으면 한 채만 있다고 하고, 나머지는 다른 사람 명의로 돌려놓는다. 연봉이 얼마냐고 물어도 적당히 줄여서 말한다. 상대가 재산을 보고 결혼하는 것도 싫고, 이혼 때 재산분할 때문에 속을 끓인 터라 또 그런 상황이 벌어질 것에 대비하는 것이다.”(홍유진 전무)
맞선 상대가 마음에 들 경우 결혼에 앞서 ‘속궁합 맞춰보기’를 시도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특징. 부부관계를 겪어본 만큼 성에 대해 비교적 개방적인 데다, 스트레스로 인한 무정자증 남성이 적지 않고, 섹스리스 부부가 흔해 성 관련 트러블 때문에 이혼하는 사례가 많은 것도 요인이다. 그저 즐기려는 의도도 없진 않으나 재혼 전에 ‘확인’하고 싶은 생각도 크다.
재혼 커플의 결혼식, 신혼여행과 관련한 업종도 특수를 누린다. 재혼 결혼식 전문 웨딩컨설팅업체, 재혼부부를 겨냥한 허니문 상품을 출시한 여행업체도 있다. 30~40대 재혼 희망자는 두 부류가 있다. 결혼식을 생략하는 경우와 제대로 격식을 갖춰 예식을 올리는 경우다. 전자는 금전적 문제가 있거나 형식적인 절차가 싫어 혼인신고만 하는 경우이고, 후자는 제2의 인생을 보란 듯 당당하게 시작하겠다는 이들이다.
작게, 야외로, 특별히, 천천히
최근의 30~40대 재혼 결혼식 트렌드는 ‘작게, 야외로, 특별히, 천천히’로 요약할 수 있다. 하객 수를 초혼 때보다 크게 줄여 20~30명에서 최대 100명 이하로 하되, 식장은 호텔 소규모 연회장을 빌려 결혼식장처럼 꾸민 다음 품위 있고 격식 있게 치르기를 원하는 사람이 많다. ‘작은 결혼식’ 바람을 타고 정원 딸린 단독주택을 아담한 예식장으로 개조한 곳에서 가족과 가까운 친지, 절친한 친구 몇몇만 초대해 야외결혼식을 올리는 커플도 많다. 주례와 사회자 없이 예비 신랑·신부가 직접 식을 주도하면서 혼인서약을 하거나 부모에게 전하는 편지를 낭독하기도 한다. 다음은 웨딩컨설팅업체 와이즈웨딩 손혜경 대표의 설명.
“30~40대 재혼 커플은 대개 초혼 커플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 이들은 예식과 신혼여행을 격식을 갖춰 하되 거품을 빼고 실리적으로 접근한다. 값비싼 예단을 생략하고 간소한 커플링을 예물로 대신한다. 초혼과 달리 부모의 간섭이 없어 식장을 잡든 드레스를 고르든 모든 결정을 당사자들이 하기 때문이다. 자녀들을 결혼식 화동이나 들러리로 세우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7세 전후 아이는 화동, 그보다 나이가 많으면 엄마, 아빠와 같은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혀 들러리를 서게 한다. 재혼을 결심한 순간 아이들에게 사실 그대로 알리는 젊은 부모가 많아 아이들도 결혼식 참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하나투어는 지난 8월 초 재혼 부부를 위한 ‘풀문(Full Moon, 미니 웨딩+허니문)’ 패키지 상품 10여 개를 출시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혼인 건수가 줄어들면서 허니문 시장도 위축된 데 비해 재혼 허니문 시장은 최근 몇 년 사이 빠르게 성장했다”며 “그래서 재혼 허니문 시장의 잠재력을 보고 이들을 겨냥한 상품을 출시했는데, 의외로 초혼 커플 이용자도 많다”고 전했다.
재혼 커플을 대상으로 하는 풀문은 기존 허니문 상품에 비해 프라이버시를 최대한 보장하고 고급화에 초점을 맞췄다. 패키지 여행이지만 인원을 세 커플 이하로 하고, 단독 커플 여행도 가능하다. 항공기 비즈니스클래스 탑승, 리무진 픽업, 전문 가이드 동행, 둘만의 결혼식과 웨딩 촬영, 요트 세일링, 글램핑 체험, 와이너리 방문 등이 포함된다. 자녀를 동반할 경우 베이비시터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의 차별화 옵션도 눈에 띈다. 양가 부모를 동반한 가족여행을 허니문으로 대신하는 경우도 있다.
홍유진 전무는 젊은 재혼 희망자에게 다음과 같은 당부를 전해달라고 했다.
“요즘은 경제력, 스펙, 집안이 좋은 사람도 재혼, 삼혼을 많이 한다. 그중에는 이성을 만날 기회가 적은 전문직, 혼자 작업에 몰두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 등 똑똑하긴 해도 관계 맺기에 서툴다보니 결혼생활에 실패하는 이가 적지 않다. 따라서 자신의 스타일을 좀 바꾸거나 자신의 성격과 잘 맞는 상대를 선택해야 다시 결혼에 실패할 확률을 줄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