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호

기부는 의무다

  • 손봉호 | (사)나눔국민운동본부 대표, 고신대 석좌교수

    입력2015-11-20 13: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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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는 세계 최빈국에서 불과 70년 만에 13위 수준의 경제를 일궈냈다. 실로 자랑스러운 성취다. 그러나 경제 발전도 궁극적으로 국민의 행복을 위한 것인데, 가난한 사람들이 생활고로 자살한다면 그게 어떻게 자랑거리가 되겠는가. 빈부격차가 큰 것만 문제가 아니라 이웃의 고통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이 더 큰 문제다.

    우리 사회의 각박한 인간관계를 잘 반영하는 것이 뒤떨어진 기부 문화다. 영국의 ‘자선원조단(Charities Aid Foundation)’은 해마다 세계 각국의 기부 현황을 조사해서 발표하는데, 2010년 한국의 기부 순위는 세계 81위로 창피한 수준이었다. 2011년 조직된 ‘나눔국민운동본부’와 몇몇 언론사 및 단체들이 노력한 결과 2012년에는 기부 순위가 46위까지 올라갔지만 지난해에는 다시 60위로 떨어졌다.

    지난해 우리나라 기부 총액은 12조4900억 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0.87%를 차지했다. 미국(2.0%), 뉴질랜드(1.35%) 등의 선진국에 많이 뒤지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미얀마, 필리핀, 라오스 등 우리보다 가난한 나라들보다 기부를 적게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기부 수준이 전반적으로 낮을 뿐 아니라 기부 형태도 좋지 않다. 기업의 기부가 많고 개인의 기부는 상대적으로 적다. 전체 기부에서 개인 기부가 차지하는 비율이 65%인데, 미국은 75%에 이른다.

    약자를 돌볼 책임



    우리 기업인들은 기부를 별로 하지 않고, 이는 한국에서 기업인에 대한 사회적 존경이 낮은 이유의 하나로 꼽힌다. 미국의 부자 1위와 2위인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은 거액을 기부할 뿐 아니라 기부하는 의도도 존경스럽다. 버핏은 자신의 복지재단을 제쳐두고 게이츠 재단에 게이츠 부부가 기부한 것보다 많은 액수를 기부했다. 게이트 재단이 돈을 더 효과적으로 쓰기 때문이라 했다. 자신의 이름을 알리거나 생색을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수혜자의 이익에 기부의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순수하고 효과적인 기부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역시 부자 될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사실 한국 대기업은 미국 기업보다 사회의 덕을 더 많이 보고 성장했다. 경제 발전에 급급하던 정부의 특혜를 받아 사업을 시작하고 성장할 수 있었다. 그만큼 혜택을 받아서 성공했다면 그 은혜를 갚는 것이 당연할진대, 그런 혜택을 안 받고 성장한 미국 기업인보다 이익의 사회 환원에 인색한 것은 ‘배은망덕’이란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그들은 국가 경제 발전에 자신들이 공헌한 데 대해서 한국 사회가 제대로 평가해주지 않고 너무 부정적이라고 푸념한다. 그러나 기부와 윤리경영에 모범을 보인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박사가 지금껏 존경받는 것을 보면 우리 국민이 훌륭한 기업과 기업인을 존경하는 데 결코 인색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과거에는 사람의 운명이 대개 자연에 의해 결정됐다. 부자가 되거나 가난하게 되는 것은 대부분 자연 때문이었다. 그때는 사람이 자연을 전혀 제어할 수 없었으므로 자연의 혜택과 재난은 모두 숙명으로 받아들였고 따라서 불평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날 인류는 극도로 발달된 기술을 이용해 자연을 거의 마음대로 통제하게 됐다. 이에 따라 사람의 삶은 자연이 아니라 주로 다른 사람, 사회에 의해 결정되기에 이르렀다. 미국의 사회학자 조지 미드는 “나의 나 된 것은 사회 때문이다(I am what the society makes me)”라고 주장했다. 사회의 강자뿐만 아니라 약자도 사회적 산물이다. 그러므로 사회의 혜택으로 강자가 된 사람들은 사회 때문에 약자가 된 사람들을 돌볼 책임이 있다. 국가에 의한 공공복지나 기부는 시혜가 아니라 의무인 것도 그 때문이다.

    물론 기부로 복지를 비롯한 사회적 수요를 다 충당할 수는 없다. 어느 나라도 그렇게 하지 못하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복지 수요의 대부분은 국가가 공급해야 하고 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국민은 세금을 낸다.

    그러나 세금에 의한 공공복지에는 문제점도 많다. 복지 전달 과정에 비리와 낭비가 생기고 제도와 규정에 의한 구조인 탓에 다양한 수요가 모두 고려될 수 없다. 반드시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이 미비한 규정 때문에 받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결점을 보완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사회갈등을 완화하기 위해서라도 자발적 기부가 늘어나야 한다.

    유산 기부 바람

    세금을 잘 내는 것으로 의무를 다하는 것이며, 따라서 돈 많은 사람들이 기부하지 않는다 해서 비난받는 것은 억울하다고 할 수도 있다. 사실 탈세율이 26.8%나 될 정도로 부패한 우리나라에선 정직하게 납세만 해도 칭찬받을 자격이 있다. 하지만 법적인 의무 외에 도의적 의무란 것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사회의 혜택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마땅히 도의적 의무도 감당해야 한다.

    그런 의무가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것인데, 이미 고대 로마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와 상류층의 문화로 정착된 멋진 전통이다. 게이츠나 버핏이 거액을 기부한 것이나 6·25전쟁 때 미군 장성의 아들 142명이 참전해 35명이 전사하거나 부상한 것도 그런 전통에 입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기부에 인색한 우리나라 부자들, 본인이나 자녀의 병역기피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우리 정치인 또는 고급관료들과는 대조적이다. 아무리 상대주의가 판을 쳐도 어느 쪽이 더 고상한지는 불문가지다.

    기부는 의무다
    손봉호

    1938년 경북 포항 출생

    서울대 영문과 졸업,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대 석사(신학),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자유대학 박사(철학)

    밀알복지재단 이사장, 경실련 공동대표,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 상임공동대표

    한성대 이사장, 동덕여대 총장

    現 나눔국민운동본부 대표, 고신대 석좌교수, 서울대 명예교수


    다행히 요즘 우리 사회에도 기부가 조금씩 늘고 있다. 경제 사정이 그리 좋지 않은데도 최근 몇 년간 매년 15~20%씩 증가하고 있다. 특히 유산 기부에 대한 관심이 일고 있어 고무적이다. 1984년 조직된 ‘유산 남기지 않기 운동’에는 유산의 70%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약정한 회원이 1000명이 넘고, 지난해 창립한 ‘참행복나눔운동’에도 이미 사회지도층 인사 400여 명이 가입해서 유산의 일부를 기부하기로 약정했다. 얼마 전 이준용 전 대림산업 회장이 통일을 위해 전 재산에 해당하는 2000억 원을 기부함으로써 우리 사회, 특히 기업인들에게 큰 자극을 줬다. 이런 선행이 좀 더 확산되면 사회의 갈등이 줄어들고 자살률도 낮아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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