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장기 동시에 여러 환자에게 이식 성공
- 외국인 식습관 분석하며 맞춤 의료환경 구축
고려대 안암병원 장기이식센터는 외국인 맞춤형 장기이식 의료 시스템을 개발했다. 사진제공·고려대 안암병원
자칫 귀한 장기를 허무하게 잃을 수도 있는 상황. 김동식 고려대 안암병원 장기이식센터장은 A병원으로 달려가 간과 신장의 상태를 확인했다. 허혈시간과 수술시간을 잘만 조절하면 고려대 안암병원 환자들에게 이식할 수 있을 듯했다.
김 센터장은 모험을 감행했다. 우선 장기 기증을 분배하는 질병관리본부 산하 장기이식관리센터에 간과 신장 이식에 대한 확인부터 받았다. 한순간 안암병원 장기이식센터는 긴장감에 휩싸였다. 신장과 심장뿐 아니라 간과 나머지 신장까지 이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장기 4개 환자 4명에 동시 이식
의료진은 침착하게 대응했다. 마취과와 수술실이 수술 채비를 갖췄다. 수술 결과 환자 4명이 장기를 받는 데 성공했다. B형간염, 간암, 정맥류 출혈, 복수 등 합병증을 앓던 58세 남성이 간을 이식받았고, 심부전으로 투병하던 62세 여성이 심장을 얻었다. 오랜 투석으로 고생하며 장기이식만을 기다리던 57세와 39세 여성 두 명도 건강한 신장을 갖게 됐다.
이 사건은 의료계에서 유례없는 일로 꼽힌다. 한 장기를 적출해 이식수술을 하는 것도 힘든 일인데 장기 4개를 한 병원에서 동시에 환자 4명에게 이식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김동식 장기이식센터장은 “장기이식수술의 성공률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기기증 문화가 정착해야 장기이식이 유일한 희망인 이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호영 기자
흔히 장기이식수술을 ‘신의 수술’이라고 말한다. 수술이 어렵고 고된 데다 수술 조건이 워낙 까다로워 신의 영역에 속한다는 의미다. 기본적으로 중증도가 높은 서로 다른 질환의 환자가 한 병원에서 치료받아야 하고, 동시에 여러 장기를 이식해야 하기 때문에 숙련된 의료진과 수준급의 의료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실제로 장기이식센터 의료진은 수술 실력이 뛰어날 뿐 아니라 다양한 수술 경험을 가졌다. 올해 6월 2일 장기이식센터는 간이식 100례를 달성했다. 2009년 센터를 개소한 지 6년 만에 이뤄낸 놀라운 성과다. 오래전부터 장기이식센터와 마취과, 수술실이 손발을 맞춰온 점도 주효했다. 협진 시스템이 위대한 탄생에 결정적인 구실을 한 셈이다.
외국인 장기이식 집중
안암병원 장기이식센터는 일찍이 외국인 장기이식에 집중했다. 투석이 활성화되지 않은 몽골 등 제3세계 국가엔 만성신부전으로 아픔을 호소하는 환자가 많다. 이들에게 유일한 대안은 신장이식뿐이다. 하지만 공여자가 많지 않은 데다 혈액형이 맞지 않아 장기이식수술이 진행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장기기증 문화 확산 앞장
외국인 환자들의 차선책은 한국행이다. 새 생명을 얻기 위해 자신의 모든 재산을 팔아 한국으로 오는 것이다. 문제는 외국인 환자에게 특화된 진료환경과 행정 시스템을 구축한 병원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안암병원 장기이식센터는 2009년부터 외국인 대상으로 간, 신장, 췌장, 심장 등 장기이식수술을 실시했다. 외국인 맞춤형 의료환경도 구축했다. 외국인 환자와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24시간 통역 시스템을 갖추고, 개별 국가의 의료 상황을 분석한 것이다. 음식, 생활습관 등 문화적인 차이도 고려했다.
이런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일까. 장기이식센터는 개소 4년 만에 외국인 생존자 통계(2013년 기준)에서 신장이식 1위와 간이식 2위를 기록했다.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의료진의 진정성과 숨은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다.
장기이식센터는 최근 장기기증 문화 확산에 공을 들인다. 올해 5월 4일부터 6일까지 고려대 학생들과 함께 장기기증서약 캠페인을 실시, 104명으로부터 서약서를 받았다.
김 센터장은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의료 선진국에 비해 장기기증서약 비율이 낮은 편”이라며 “장기이식은 꺼져가는 생명의 불씨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자 인간 사랑 실천의 결정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