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호

혐한과 반일은 이란성쌍둥이?

日 극우단체 ‘재특회’ 파헤친 히구치 나오토 교수

  • 강지남 기자 | layra@donga.com

    입력2015-11-20 10: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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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반일’ 인식에서 혐한 현상 불거져”
    • “재특회 회원은 ‘평범한’ 자민당 지지자”
    • “재일 코리안을 오욕의 역사와 함께 말살하려는 ‘욕망’ 있다”
    • “일본 고립시킬수록 일본 배외주의 가속화할 것”
    혐한과 반일은 이란성쌍둥이?

    김형우 기자

    한국에 ‘일베’가 있다면 일본에는 ‘재특회’(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모임)가 있다. 일베의 공격 대상이 진보, 북한, 여성 등으로 다양(?)하다면, 재특회는 ‘재일 코리안’에게 집중포화를 가한다. 일베와 재특회 둘 다 인터넷이 주요 활동무대란 점은 같지만, 재특회는 일베와 달리 거리 시위, 일명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를 활발하게 벌인다는 차이가 있다. 일본 저널리스트 야스다 고이치 씨가 쓴 ‘거리로 나온 넷우익’에서 한 대목 발췌하면 이렇다.

    “조선인을 죽여라!” 한 여성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죽여라!” 그 뒤를 따르는 제창이다. 시위대는 100명이 넘는다. “조선인 매춘부를 내쫓아라!” “한국인은 너희 나라로 꺼져라!” “구더기 새끼!” 듣기 괴로운 욕설이 대열에서 터져 나왔다. 조선인의 멸칭(蔑稱)인 “총코!”를 거듭 외치며 주먹을 흔드는 사람도 있었다.

    왜 혐한(嫌恨)일까. 지구촌 곳곳에서 한류(韓流)가 대세인 터라 이웃 나라에서 터진 혐한 현상이 한국인으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일본의 지식인들은 현대 일본인이 가진 불만과 불안에서 혐한 신드롬의 원인을 찾는다. 재특회 간부들을 밀착 취재한 야스다 씨는 위의 책에 이렇게 적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사회로부터 거절당하는 아픔을 알고 있다. 주위 사람들에게 이해받거나 공감을 얻지 못한다. 그래서 타자에 대한 적개심을 그로테스크한 운동에 집중시킬 수밖에 없다. (…) 사회에 분노하는 사람, 불평등에 분노하는 사람, 열등감에 괴로워하는 사람, 동지를 원하는 사람, 도피처를 원하는 사람, 돌아갈 장소가 없는 사람. 그런 사람들을 재특회는 유인하듯이 불러들인다.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구원한’ 측면마저 있지 않을까.

    “너희 나라로 꺼져라”



    혐한과 반일은 이란성쌍둥이?
    그런데 지난해 2월 이러한 ‘불만설’을 정면 반박한 학술서가 나왔다. ‘일본형 배외주의-재특회·외국인 참정권·동아시아 지정학’이 그것으로, 이 책은 한국과 일본에서 한층 심화된 논의를 촉발하고 있다. 최근 ‘폭주하는 일본의 극우주의-재특회, 왜 재일 코리안을 배척하는가’(미래를소유한사람들 펴냄)라는 제목의 한국어판으로도 출간됐다.

    이 책의 저자는 히구치 나오토(46) 도쿠시마대 준교수. 그는 재특회 등 34명의 배외주의 운동가와 정치인 인터뷰, 현지 조사, 우파 언론의 언설(言說) 분석 등을 통해 일본 배외주의의 토양이 다름 아닌 ‘과거사’에 있음을 밝혀냈다. 그는 “재특회를 낳은 것은 장기 불황이나 사회불안 증대라는 현대의 문제가 아니다. 재일 코리안을 오욕의 역사와 함께 말살하려는 욕망이 바탕에 있다”고 역설한다.

    11월 3일 서울대 일본연구소에서 히구치 교수를 만났다. 그는 닷새가량 서울에 머물면서 서울대, 고려대 등에서 열린 일본 배외주의 관련 심포지엄을 에 참여해 강연을 몇 차례 했다. 인터뷰 통역은 신기영 오차노미즈여대 준교수가 맡았다. 그는 “신 교수와는 여러 연구를 함께 진행한 사이로 그에게서 국제정치학에 대해 배웠고, 그와 평소 나눈 대화에서 재특회 연구에 관한 많은 힌트를 얻었다”며 “그의 공헌이 내 책의 1할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 올 한 해 한국에서 강연 요청이 쇄도했다고 들었습니다. 한국 연구자들의 주요 관심사는 무엇이던가요.

    “일본 정치의 우경화, 그러한 정치 토양을 바탕으로 유명해진 재특회, 그리고 이 둘의 전체적 배경으로서의 과거사 문제에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 재특회 현황은 어떻습니까.

    “거액 배상 판결 이후에도 헤이트 스피치 등 재특회 이벤트는 그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다만 참가자 수는 현저하게 줄었어요. 재특회 활동을 막으려는 반대운동이 10배 이상 증가해 재특회가 움직일 수 없게 된 거지요. 반핵운동가들, 한류를 좋아하는 청년들, 그리고 일부 보수파가 반(反)재특회 활동에 참여합니다.”

    재특회는 2007년 설립돼 2013년 10월 회원 수가 1만3000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도쿠시마현 교직원조합 난입사건, 교토 조선학교 주변에서의 헤이트 스피치 시위 등에 대해 거액의 배상 판결이 나면서 영향력이 크게 위축됐다. 히구치 교수는 “회원 수가 더는 늘지 않고 있고, 일본 우익 세력도 재특회와 거리를 두려 한다”고 전했다.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 지지에는 내셔널리즘이 크게 작용하는군.”

    사회학자로서 주로 일본으로 이주한 이민자들을 연구해온 히구치 교수는 2009년 네덜란드에서 만난 지도교수가 한 이 말을 계기로 일본 배외주의로 연구 방향을 틀었다. 1999~2012년 도쿄도지사를 지낸 이시하라는 일본 정계에서 ‘원조 극우’로 통하는 인물.

    “서구 사회에서 극우 지지와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은 반(反)이민 감정입니다. 이민자가 일자리를 빼앗아 가니까요. 따라서 서구 연구자들에게 내셔널리즘이 돌출된 일본의 분석 결과가 신기하게 보일 수밖에요. 그들은 1세기 이상 일본에서 살아온 재일 코리안이 왜 지금에 와서 배척 대상이 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히구치 교수는 ‘재특회 탐구’를 위해 34명의 배외주의 운동 관계자를 인터뷰했다(그중 재특회 소속이 25명). 그런데 그들은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사람도, 저학력자도, 이민자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하층계급도 아니었다. 대부분은 대학 교육을 받은 정규직 화이트칼라였다(표 참조). 상당수는 “일본에 이렇게 외국인이 많은 것을 재특회를 통해 처음 알았다”고도 했다. 어려서부터 재일 코리안에 대한 편견을 교육받으며 자란 사람은 단 한 명뿐. 이들 34명의 ‘공통분모’는 의외의 항목에서 나왔다.

    ▼ 23명이 자민당 지지자더군요.

    “이들 중 정치에 강한 관심을 가진 사람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들 반드시 선거에 참여하는 성실한 유권자였어요. 자민당 지지자가 다수인데,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재특회 활동을 계기로 자민당 지지로 돌아섰습니다. ‘민주당에 투표한 과거의 나를 때려주고 싶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맥 빠질 정도로 일반적인 보수 지지층일 뿐이죠.”

    혐한과 반일은 이란성쌍둥이?
    고학력 정규직 화이트칼라

    ▼ 그들이 재특회 활동에 참여한 계기는 뭔가요.

    “외국인 문제가 계기가 된 사람은 의외로 적었습니다. 그보다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한국 선수들의 거친 플레이나,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 한일전에서 마운드에 태극기 꽂는 것을 본 게 계기가 됐다는 사람이 많았어요. 하지만 이보다 더 많은 경우가, 과거사가 계기가 됐다는 대답이었습니다. 중국, 한국, 북한 등과 얽힌 역사 문제로 근린국(近隣國)에 대한 적의가 생기고, 그 화살이 재일 코리안에게 향한 것이지요.”

    보수 지지층이 인터넷에서 재특회 동영상을 보고 거기에 자극받아 재특회 논리를 더욱 증폭시켜 받아들이는 ‘패턴’은 그의 연구를 통해 재차 확인된다. 다음은 그의 책에 실린 50대 남성 재특회 회원 O씨의 말이다.

    우리 세대는 ‘조선인’이라고 부르는 것만으로도 야단을 맞았지. 따라서 억누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시대였거든. 터부였어요. (…) 당당히 발언하고, 항의하고. ‘조선인’이라고 말해도 되는구나. 그렇지. 프랑스인을 프랑스인이라고 해도 되는데, 조선인을 조선인이라고 해서 안 될 건 없지.

    “한국은 곧 反日”

    히구치 교수는 배외주의 운동이 발생하는 구조적 배경을 주류 우익의 관심 변화에서 찾는다. 그가 일본의 대표적 우파 논단 ‘정론(正論)’과 ‘제군(諸君)!’에 지난 30년간 실린 기사의 제목을 분석한 결과(이들 잡지는 아베 신조 총리가 즐겨 투고하는 매체라고 한다), 2000년대 이후 중국과 북한에 대한 언급이 크게 늘었다. 그는 “우익 잡지가 21세기 들어 근린국가에 대해 나쁜 소리를 하며 돈을 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역사, 군사·방위에 대한 언급도 크게 증가했다.

    ‘반일’도 1980년대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다가 2000년대 들어 중요 키워드로 부상했다. 한국은 중국, 북한보다 등장 빈도가 낮지만, 한국이 나오면 꼭 반일이 따라붙었다. 그는 “이러한 우익 언설에 영향 받아 한국이 곧 반일로 인식되고, 그 여파로 혐한 현상이 나타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현대 일본인들은 오욕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집단적 심리가 강하다고 봅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마음에 좀 걸린다’ ‘돌이켜보고 싶지 않다’며 숨기려 해왔다가, 재특회가 등장하자 아예 대놓고 ‘왜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하느냐’고 공격적으로 나오는 듯합니다. 보고 싶지 않은 역사를 재일 코리안이 보여주니까, 아예 재일 코리안을 배제하자는 것이죠.”

    ▼ 책에서 재특회 간부들이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일본이 그렇게까지 나쁜 일을 하진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한국인으로서 놀랐습니다.

    “그러한 인식이 인터넷 전체에 일반적으로 퍼져 있어요. 야후재팬 등 포털사이트 댓글을 보면 90%가량이 배외주의적 내용이지요. 일본 인터넷은 우익이 지배한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 일본 네티즌에 따르면 일본은 위안부를 강제 동원한 적이 없다?

    “일본인에게 네티즌은 그리운 단어예요(웃음). 1990년대에는 긍정적 의미로 사용됐지만, 지금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거든요. 위안부에 대해 가장 많이 쓰이는 인터넷 단어는 ‘매춘부’입니다. 인터넷에서는 일본군이 위안부에게 급료도 주고 콘돔도 사용하는 등 잘 대우해줬다고들 생각합니다. 한편 인터넷 밖에서는 매춘부라고까지 여기진 않아도 일본 정부 입장이 맞다고, 즉 ‘과거 불행한 일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문제는 이미 해결됐다’고들 생각합니다.”

    혐한과 반일은 이란성쌍둥이?


    혐한과 반일은 이란성쌍둥이?

    지난 8월 도쿄 시내에서 열린, 재일 코리안을 겨냥한 헤이트 스피치 현장. 재특회의 영향력은 크게 줄었지만 혐한 기류는 여전하다. 송홍근 기자

    미완의 1990년대

    재특회는 재일 코리안이 특별영주 자격, 생활보호 우대, 통명(通名, 일본식 이름을 사용하는 것)으로 여러 이름을 사용하는 것 등의 특권을 누린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히구치 교수는 “재일 특권은 없다”며 “재특회의 인식은 역사적 맥락을 무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일 코리안은 일본 이름 없이 살아갈 수 없으므로 통명할 수밖에 없었고, 다른 계층보다 압도적으로 빈곤하기에 생활보호를 받는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 재일 코리안을 어떻게 정의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까.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습니다. 재일 코리안은 내부 격차나 괴리가 큰 집단이에요. 3, 4세는 언어나 사회경제적인 측면에서 일본 사회에 많이 동화했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일본 국적을 취득하지 않는 이들이 상당하다는 특수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면에서 재일 코리안에 대한 공격은 실제 존재하는 ‘사람’보다는 일본 사회가 재일 코리안에 대해 가진 ‘이미지’에 대한 것으로 읽힙니다. 이런 농담이 있어요. 한국을 비판하는 형에게 동생이 ‘형, 그건 말이 안 돼’라고 말해요. 그러자 형이 동생에게 말해요. ‘너 자이니치(在日)지?”’ 일본인에게 재일 코리안은 ‘반일’을 상징하는 표상으로 여겨지는 거죠.”

    히구치 교수는 “재특회를 도려낸다고 해도 문제는 반드시 다른 형태로 분출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재특회의 영향력이 약해진 요즘이라지만, 혐한 신드롬이 여전한 일본 사회가 이를 증명한다.

    ▼ 일본 현지에서 느끼는 혐한 기류는 어떤가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체감하기로는, 재특회 논리에 동조하는 학생은 10%에 불과해요. 하지만 혐한 기류는 사회 전반에서 여전히 굉장히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소셜 네트워크를 보면 예전에는 전혀 관심 없던 이들도 혐한 정서를 드러내기 시작했어요. ‘나 한국 여행 간다’고 하면 ‘그런 무서운 나라를 왜 가?’ 하는 식이지요. 제가 알고 지내는 재일 코리안 연구자가 있는데, 최근 누군가가 그의 집 우편함에 혐한 관련 주간지 기사를 복사해 넣어놨다고 하더군요. 양국 정권이 바뀌지 않는 한 이런 분위기는 당분간 지속될 것 같습니다.”

    ▼ ‘역사 문제 해결이야말로 배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된다’고 썼습니다.

    “동아시아 역사 문제가 배외주의가 자라는 토양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1990년대에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어요. 고노 담화, 무라야마 담화가 나오고 외국인에게도 지방 공무원 채용 문호를 개방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이런 시도는 어중간하게 끝났습니다. 그 대가로 오늘날에 배외주의와 역사 수정주의가 등장한 것이죠.”

    ▼ 역사 문제 해결 없이 동북아 평화는 없다?

    “동아시아 정치에서 불안정한 요소는 3가지예요. 중국 내부 갈등, 한반도 분단, 그리고 일본 과거사 문제. 다른 건 몰라도 역사 문제는 일본 스스로 통제, 해결할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아베 정권은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싶지 않은 것 같습니다. 8월 아베 담화나 최근 안전보장 관련 법 개정 등은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불안정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굉장히 나쁜 방향이 아닐 수 없어요.”

    ▼ 11월 2일 한일 양국이 3년 6개월 만에 정상회담을 했는데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아베 총리가 ‘의견을 좁혀갈 수 있다’고 했지만, 자민당 내부 반대에 부딪힐 겁니다. 아베 총리에게 당내 반발을 극복할 리더십, 그리고 의사가 있을지가 이 문제의 관건일 것 같아요. 그런데 비록 확률은 낮아도 지금은 중요한 기회입니다. 아베 총리는 자민당 내부에서 극우에 가까운 우익이죠. 다른 사람이 총리이고 그가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아베가 나서서 반대할 겁니다. 따라서 역설적으로 아베가 총리일 때 해결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최근 서울 한성대입구역 근처에는 한중 작가들이 만든 한국인과 중국인 위안부 소녀상이 나란히 세워졌다. 서울에 와서 이 뉴스를 접한 히구치 교수는 “피해자로서 한중 연대는 당연한 것이겠지만, 인도네시아나 필리핀 등이 포함된 아시아 전체의 연대가 아니라 ‘한중’ 연대라는 점에서 일본은 이를 ‘반일 네트워크’로 받아들여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 같다”고 우려했다.

    “일본을 고립시킬수록 일본의 배외주의는 가속화할 것입니다. 제가 국제정치학자는 아니지만, 매우 민감한 사안은 제쳐놓고 쉬운 문제부터 합의해나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어요.”

    양자관계 아닌 삼자관계

    왜 일본은 지금에 와서 뜬금없이 재일 코리안을 배척하는가. 이 의문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더니 해묵은 과거사 문제가 드러났다. 역사가 과거에만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 여전히 영향을 미치는 ‘현재의 문제’임을 히구치 교수의 연구가 보여주는 셈이다. 그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내가 조심스럽게 던진 공을 한국에서 받아주시는 분이 있다면 그보다 기쁜 일은 없다’고 썼다.

    “재일 코리안은 ‘일본 정부-재일 코리안’이라는 양자관계가 아니라, ‘일본 정부-재일 코리안-한국 정부’라는 삼자관계로 봐야 합니다. 왜냐면 한국 정부의 재외국민, 재일동포 정책이 일본 정부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에요. 따라서 앞으로 한국 정부가 재일 코리안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정책을 펴왔는지 한국 측의 연구가 이어지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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