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차례 위기 극복
이에 현대기아차는 특단의 혁신을 단행한다. 과거에는 도요타 등 일본 회사를 벤치마킹했지만, 독일 폴크스바겐그룹의 성공 스토리로 과감하게 눈을 돌렸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어려움을 겪은 폴크스바겐그룹은 브랜드 간 플랫폼 공유를 통한 원가절감, 적극적인 신흥 시장 공략 및 현지형 모델 출시, 디자인 혁신, 역발상의 내연기관 투자 확대 등을 단행한다. 그 후 수년이 흐른 2000년대 중반부터 그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현대기아차는 폴크스바겐이 겪은 어려움과 비슷한 점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들의 성공전략을 철저히 분석했다. 이에 따라 현대차와 기아차 간 플랫폼 공유로 원가를 적극적으로 줄여갔고, 폴크스바겐그룹의 아우디 디자인 책임자이던 피터 슈라이어 부사장을 영입하는 등 디자인 혁신을 꾀했다.
또한 경쟁이 치열한 선진 시장보다는 기회가 좀 더 많은 신흥 시장 개척에 박차를 가했다. 현대차는 ‘미국형과 곡선 디자인’, 기아차는 ‘유럽형과 직선 디자인’이라는 정체성도 확립했다. 직분사 엔진에 대한 공격적인 개발투자도 단행했다. 이 엔진은 2008년 신모델부터 본격 적용됐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눈부시게 성장한 오늘날의 현대기아차는 이 시절 혁신의 결과물이다.
두 번째 위기는 2008년 미국의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인한 경기 급랭에서 비롯했다. 그러나 이 위기는 오히려 기회가 된다. 현대기아차는 2000년대 중반부터 이미 신흥 시장 비중을 높여온 덕분에 미국 시장 의존율이 낮았고, 원화는 급격히 약세로 반전됐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 자동차 업체들은 엔고와 높은 미국 시장 의존율 탓에 고전했다.
이처럼 두 차례의 위기를 기회로 삼으며 현대기아차는 2013년까지 엄청난 속도로 성장, 글로벌 점유율 5위로 올라섰다. 2008~13년 연간 판매와 매출은 각각 74%, 32.3% 증가했고 글로벌 점유율은 6.4%에서 8.8%로 올랐다.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274%, 1198% 증가했다. 전 세계 자동차업계는 현대기아차를 벤치마킹의 대상으로 여겼다.
그러나 5, 6년간의 괄목할 성장세는 2013년 이후 정체기를 맞는다. 이유는 크게 3가지다.
쾌속 성장 후 정체
첫째, 경쟁사들의 시장 환경이 좋아졌다. 엔화 강세, 대지진, 태국 홍수, 미국에서의 대량 리콜 등으로 어려움을 겪던 일본 업체들은 엔저, 구조 개혁, 브랜드 이미지 개선, 주력 시장인 미국 시장의 수요 증가 등으로 호기를 맞았다. 미국 업체들은 국유화와 매각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상품성 개선과 자국 시장의 호조로 경쟁력을 회복했다. 중국 업체들도 내수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다. 중국에서 현대기아차 점유율은 지난해 9.13%에서 올 9월 7.81%(누적 기준)로 하락했다.
둘째, 유가 하락으로 전 세계적으로 인기 차종에 변화가 생겼다. SUV와 픽업트럭의 판매가 급증했다. 특히 미국에서는 이런 현상이 두드러져 SUV 및 픽업트럭 비중이 2013년 39%에서 2014년과 2015년(10월 누적)엔 각각 49%, 52%로 올라갔다. 반면 중형 이하 세단 승용차의 비중은 같은 기간 39%에서 35%, 34%로 하락했다. 이 때문에 대형 SUV와 픽업트럭 라인업이 약한 현대기아차는 불리해졌다. 현대기아차의 미국 점유율은 이 기간에 8.1%에서 7.9%, 8%로 소폭 하락했다.
셋째, 국가 간 ‘환율 전쟁’과 경제 불확실성이 심화하면서 현대기아차에 효자 노릇을 하던 일부 신흥 시장 상황이 비우호적으로 변했다. 러시아, 브라질, 아프리카, 중동, 호주 등 자원 개발국의 경기는 부진하고 유로화, 러시아 루블화, 브라질 헤알화 등의 환율은 크게 약세로 전환된 것이다.
최근 자동차 산업은 커다란 변화의 물결을 맞고 있다. 아마 과거 50년보다 향후 10년이 훨씬 크고 빠르게 변할 것이다. 물론 이런 변화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민은 비단 국내 자동차 산업의 문제만은 아니다. 변화의 물결은 크게 환경, 안전, 소비자 인식 변화에서 비롯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