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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판사’의 한끼 | 홍어

홍어를 문설주에 걸어둔 까닭

  • 정재민 전 판사, 작가

홍어를 문설주에 걸어둔 까닭

  • 재판은 상처로 시작해서 상처로 끝난다. 당사자들 상처에 비할 순 없지만 판사도 상처를 입는다. 그럴 때면 나는 혼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곤 한다. 정갈한 밥 한 끼, 뜨끈한 탕 한 그릇, 달달한 빵 한 조각을 천천히 먹고 있으면 울적함의 조각이 커피 속 각설탕처럼 스르륵 녹아버리고 위로를 받는다. 그러면서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고 해서 법정에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맞은 편 빈자리에 앉은 누군가에게 한다.
홍어를 문설주에 걸어둔 까닭
법원 근처에 한정식집이 하나 있다. 주인은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잘 웃는 중년 아주머니다. 한정식도 괜찮다. 그런데 내가 그 집에 갈 때마다 먹고 싶은 것은 따로 있다. 홍어애탕이다. 홍어애는 홍어 간을 말한다. 이 집에서 홍어애탕을 먹는 데는 몇 가지 어려움이 있다. 암모니아 냄새가 진동하기 때문에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 눈치가 보인다. 그래서 홍어애탕을 먹고 싶으면 손님이 드문 저녁에 가야 한다. 

저녁에 간다손 치더라도 만드는 데 손이 많이 가고 재료 구하기도 힘든 홍어애탕을 1인분만 주문하기는 미안하다. 동료들을 데리고 가면 괜찮을 텐데 홍어애탕을 같이 먹어줄 동료를 찾기 어렵다. 

할 수 없이, 오늘처럼, 정식 1인분을 시키면서 홍어애탕을 추가로 시킬 수밖에 없다. 그래봤자 2인분이니 여전히 사장님에게 미안하다. 그래서 평소 동료나 직원들을 데리고 점심을 자주 먹으러 가면서 사장님에게 눈도장을 찍어야 한다. 오늘은 식당 구석에 혼자 자리를 잡고 앉아 사장님 눈치를 보면서 혹시 홍어애탕을 먹을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사장님은 못마땅한 기색을 어색한 웃음 뒤에 숨기면서 “된다”고 했고, 나는 거듭 감사를 표하며 정식 1인분을 추가로 시켰다. 

홍어애탕이 나왔다. 뚝배기 위로 스멀스멀 피어오른 암모니아 냄새가 끓어 넘치는 물처럼 넘실거린다. 홍어는 가열할수록 맛이 독해지고 암모니아 냄새가 활성화된다. 혹시 다른 손님들이 인상을 쓰지 않을지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내 숟가락을 집어넣었다. 늪지대에 삽을 넣는 것처럼 걸쭉한 저항감이 느껴지면서 입꼬리가 올라간다. 국물을 한 숟가락씩 입에 넣을 때마다 가슴속에서 두서없이 설쳐대던 다른 욕망과 취향들이 착 가라앉아 차분해지는 느낌이 든다. 강력한 홍어 냄새와 위엄 앞에서 사사로운 감정은 숨죽일 수밖에 없다.




홍어 트라우마

홍어와 김치, 돼지고기, 탁주가 어우러진 한상 차림 [동아일보 강병기 기자]

홍어와 김치, 돼지고기, 탁주가 어우러진 한상 차림 [동아일보 강병기 기자]

홍어를 처음 먹은 건 내가 초등학생 때다. 아버지와 친구분들의 술을 겸한 식사자리였다. 아버지 친구 한 분이 장난기 머금은 표정으로 내게 “너도 한번 먹어볼래?” 하면서 홍어 한 조각을 나무젓가락으로 집어 내밀었다. 나는 아무런 경계심도 없이 그것을 날름 받아먹었다. 

컥. 고요한 호수에 벽돌을 던진 것처럼 안면 전체에 파장이 일어났다. 마치 난데없이 물에 빠져서 코로 물을 확 들이마신 것처럼 코끝이 찡해지면서 영혼이 ‘로그아웃’ 됐다. 문어가 다가와서 내 얼굴에 먹물을 확 끼얹은 듯한 기분도 들었다. 정신이 없어 어쩔 줄 몰라 하는 나를 보고 어른들이 와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놀이공원 바이킹도 못 탈 정도로 겁이 많았던 나는, 다시는 이런 음식 같지 않은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아버지 앞에서 다짐했다. 아버지는 홍어를 먹을 줄 알아야 어른이 된다고 했는데 그 말씀에 무안함이 더해졌다. 말하자면 홍어 트라우마가 생긴 것이었다. 

나에게는 가뜩이나 안 좋은 추억이 있었다. 유치원 때 이웃집 애와 처음으로 싸움을 했는데 그 애가 주먹으로 내 코를 정면으로 때려 쌍코피가 났다. 홍어를 처음 먹었을 때 콧등이 탁 쏘이면서 그때 주먹으로 맞은 기억이 떠올랐다. 그 뒤로 간혹 식사자리에서 홍어가 밥상에 올라오면, 어릴 적 닭에게 쪼임을 당해 닭고기를 못 먹는다는 사람들처럼, 나는 홍어를 먹지 못했다. 묵은지에 돼지고기만 싸 먹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두 번째로 홍어를 먹은 것은 강원도에서 법무관을 하던 때다. 테니스를 함께 치면서 알게 된 읍내 사람들과 ‘홍탁’, 그러니까 홍어 삼합에 탁주를 마시는 자리가 마련됐다. 홍어를 먹을 줄 아느냐는 질문이 오갔다. 취기 때문인지 몰라도 나는 별다른 대답 없이 비장한 마음으로 홍어를 집어먹었다. 홍어를 먹을 줄 알아야 어른이 된다는 아버지 말씀을 의식하던 터라, 읍내 어른들 앞에서 애처럼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어릴 때 무서워서 못 타던 바이킹을 대학생이 된 뒤 부러 타는 것 같은 심정이기도 했다.


곰삭는 삶

어라, 그런데 취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의외로 먹을 만했다. 톡 쏘는 맛으로 얼굴이 얼얼해지고 곰삭은 육질이 썩은 생선 좀비 덩어리를 씹는 것처럼 꺼림칙하기는 했지만, 조금 버티고 있으니 불편한 느낌이 가라앉고 온몸이 열리면서 홍어와 소통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히 가학적, 자학적인데도 반복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비로소 어른이 된 것일까. 홍어가 맛있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홍어를 돼지고기와 함께 김이나 묵은지에 싸 먹었지만 점점 한 꺼풀씩 다른 것을 벗겨내고 홍어만 먹게 됐다. 탁주를 마신 뒤끝의 퍽퍽한 느낌을 홍어의 톡 쏘는 맛이 굴뚝청소부처럼 뻥하고 뚫어줬다. 콧구멍도 뚫렸다. 

홍어는 혀로만 맛을 보는 음식이 아니었다. 홍어 조각을 입속에 넣을 때마다 힘차게 달리는 기관차를 삼킨 것처럼 검붉은 연기가 피어올라 콧구멍, 눈동자, 귓구멍으로 뿜어져 나오는 기분이 들었다. 강력한 파장이 얼굴로, 온 몸으로 전해져 왔다. 

그 뒤로 좋은 홍어가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눈이 번쩍 뜨이고 입맛을 다시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마신 탁주의 양이 늘어날수록 홍어 맛이 깊어진다. 홍어와 함께 내 몸도, 내 정신도, 내 삶도 곰삭고 있음을 느낀다. 나와 함께 나이 먹어가는 친구나 동료들도 마찬가지다. 나나 주변 사람들이 차츰 불필요한 말을 흘리며 질척거리게 되고, 논리와 감정이 뒤섞이고, 외모도 후줄근해지고 있지만, 홍어처럼 그게 싫지만은 않다.


홍어의 유래

조선 후기 실학사상의 대가 정약용의 둘째 형인 정약전은 1801년 흑산도로 유배를 가서 16년간 머무르다가 세상을 떴다. 그는 수산물과 바닷새를 기록한 책 ‘자산어보(玆山魚譜)’를 남겼는데 거기에 흑산도 명물 홍어에 대한 기록이 있다. “암놈은 먹이 때문에 죽고 숫놈은 간음 때문에 죽는다.” 낚싯 바늘로 암놈을 낚으면 암놈과 교미를 하고 있던 숫놈까지 붙어 올라온다는 얘기다. 

고려 말에는 흑산도 사람들이 왜구를 피해 영산강을 거슬러 나주 영산포까지 갔다. 그사이 흑산도에서 가져온 홍어가 썩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이 의외로 맛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먹는 홍어의 유래다. 지금도 흑산도에서는 삭히지 않은 홍어를 많이 먹는다고 들었다. 흑산도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는데, 이 글을 쓰고 있자니 하루빨리 흑산도에 가서 삭히지 않은 홍어도 먹어보고 싶어진다. 

톡 쏘는 맛이 가장 강한 부위는 수입 홍어는 코 부위인 ‘코쭝배기’인 반면, 흑산도 홍어는 아가미라고 한다. 홍어의 암모니아 성분은 소화를 도와주고 식중독을 예방해 약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넓적한 네모꼴 몸체에 가시가 돋쳤지만 비늘이 없어 유별나게 생긴 데다가 허연 진약이 묻어 있는 흑갈색의 등허리를 비롯해서 이목구비는 시늉만 했다 할 정도로 오종종하게 박혀 있어 언제나 보기에 혐오감을 자아냈다.” 

김주영 소설 ‘홍어’에 나오는 홍어 묘사다. 소설 ‘홍어’의 주인공은 어머니와 어린 아들, 그리고 아버지가 밖에서 낳아 온 소녀다. 이 세 사람이 한집에 산다. 소년의 아버지 별명이 홍어다. 얼굴 생김새가 네모진 데다 목덜미에 백반증 피부병이 있기 때문이지만, 거시기가 두 개인 홍어가 바람둥이를 의미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소설 속에서 동네 여자와 바람난 아버지는 집을 나간 지 오래다. 어머니는 해마다 늦여름이나 초가을에 홍어를 사다가 겨우내 문설주에 걸어놓고 남편을 기다린다. 

바람난 남편을 기다리는 여인의 마음을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녀에게 감정이입이 된 것은 홍어 덕분이다. 그녀의 마음이 곰삭은 홍어처럼 썩어 문드러질 것만 같고, 그녀가 느끼는 고통이 홍어가 주는 맛처럼 아프고 얼얼할 것만 같다. 그럼에도 그런 남편을 차마 버리지 못하는 애증이 교차된 마음을 문설주에 홍어를 걸어놓는 상징적 행위로 기막히게 표현하고 있다. 

소설의 마지막에는 홍어처럼 톡 쏘는 반전이 있다. 기다리던 남편이 마침내 돌아온 눈이 많이 내린 어느 날, 부인은 큰 절을 하며 남편을 맞이하고 모처럼 밤을 함께 보내지만 다음 날 새벽 이번에는 부인이 남편을 버리고 집을 나간다. 신발을 거꾸로 신음으로써 눈 쌓인 마당 위에 집으로 들어오는 사람의 발자국만 남긴 채 말이다.


마음속 홍어 네 마리

전남 나주시 영산포구에서 홍어를 말리는 모습. [동아일보]

전남 나주시 영산포구에서 홍어를 말리는 모습. [동아일보]

나는 남편이 부인을 상대로 이혼 소송을 낸 사건을 재판한 적이 있다. 두 사람 사이에 공부를 아주 잘하고 학생회장도 하는 아들이 있었다. 그 아들이 명문대에 들어간 첫해에 길거리 건달에게 맞아 다리 아래로 추락해 죽어버렸다. 부인은 교외에 널찍한 땅을 사서 집을 짓고 거기에 아들 무덤을 만들었다. 그 옆에 구멍도 두 개 팠다. 나중에 부부가 들어갈 무덤이었다.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싶어서 이야기를 듣는 동안 홍어를 먹은 것처럼 코끝이 찡해졌다. 

남편도 아들을 잃고 깊은 상심에 빠진 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남편은 차츰 기운을 차렸고, 이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싶어 했다. 그런데 매일 아침 눈을 떠 힘찬 하루를 보내려고 출근길을 나설 때마다 무덤이 보이는 것이다. 남편은 부인에게 아들 무덤을 이장하고 부부의 미래 무덤도 메우자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부인은 남편이 아들을 내팽개 쳤다고 받아들였다. 더 나아가 남편이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고 있으며, 그 여자와의 사이에 아이가 생겼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부부싸움이 지속됐고 결국 별거하기에 이르렀다. 

법적인 관점에서는 딱히 어느 한쪽이 잘못했다고 말하기 어려운 사건이었다. 죽은 아들을 잊지 못하는 부인이 집 마당에 무덤까지 마련해놓은 것이 사회 통념상 과하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을 두고 혼인관계 파탄에 법적 책임이 있다고까지 말하기는 어렵다. 반면 남편 심정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어느 쪽이 이혼소송을 제기하더라도 기각될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다. 어쩌면 두 사람 모두 이제는 마음에서 자식을 떠나보내려고 마지막으로 다투고, 또 소송까지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부인이 마당에 만들어놓은 자식 무덤은 소설 ‘홍어’에서 어머니가 문설주에 걸어놓은 홍어인 셈이다. 생각할 때마다 내면의 고통을 자극하지만 그윽한 그리움을 거둘 수 없는 존재 말이다. 

돌아보면 내 내면의 문지방에도 시기마다 다른 홍어가 걸려 있었다. 나를 판사의 길로 떠밀어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감사하기도 한 돌아가신 어머니가 홍어 한 마리. 달콤한 첫 연애감정을 주고 쓰디쓴 첫 이별의 고통을 준 첫사랑이 홍어 두 마리. 판사 경력이 쌓일수록 당사자들과 깊이 소통하고, 품위와 절제 있는 말을 구사하고, 마지막에는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지혜로운 판단을 내리고 싶은 욕심이 커지면서도, 실제는 그에 미치지 못해서 부끄러운, 판사라는 직분이 홍어 세 마리. 객관적으로 대단한 글은 아닐지라도 내 마음 상태를 군더더기 없이 표현하는 문장을 쓰고 싶지만 그에 닿지 못해 안타까운, 작가라는 명패가 홍어 네 마리. 그 홍어들이 내 콧등을 톡 쏘아 코를 납작하게 만든다. 묘하게도 그럴수록 또다시 달려들게 만든다.


홍어를 문설주에 걸어둔 까닭


정재민 | 혼밥을 즐기던 전직 판사이자 현 행정부 공무원. ‘사는 듯 사는 삶’에 관심 많은 작가. 쓴 책으로는 에세이 ‘지금부터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소설 ‘보헤미안랩소디’(제10회 세계문학상 대상작) 등이 있다.




신동아 2019년 5월호

정재민 전 판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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