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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의 괴물여지도] 전쟁을 막은 사슴 여인

“사슴 발을 가진 여인이 전쟁을 막았다”

  • 곽재식 소설가 gerecter@gmail.com

[곽재식의 괴물여지도] 전쟁을 막은 사슴 여인

  • 조선시대 평양 동북쪽 대성산에는 광법사라는 사찰이 있었다. 1727년 이 절을 보수, 확장하면서 절의 내력을 기록한 비석을 세웠다. 이때 문신 이시항이 지은 비문이 지금까지 남아 전해지는데, 그 가운데 기이한 내용이 있다. 당시 태유라는 승려가 이시항에게 들려줬다는 이야기로, 먼 옛날 대성산에 ‘녹족부인(鹿足夫人)’이라는 사람이 살았다는 것에서 시작된다.
일러스트레이션·이강훈/ 워크룸프레스 제공

일러스트레이션·이강훈/ 워크룸프레스 제공

녹족부인을 말뜻 그대로 옮기면 ‘사슴 발을 가진 부인’이라는 뜻이다. 다리가 사슴 모양이라고 하니 하반신이 염소 모습인 그리스신화 속 ‘판(Πᾶν)’이 떠오른다. 그러나 판이 남성으로 묘사되는 반면 녹족부인은 ‘부인’이라는 호칭에서 알 수 있듯 여성이다. 또 판이 춤과 음악을 즐기고 사람에게 쾌락을 선사하는 존재로 흔히 묘사되는 데 반해 녹족부인은 산속 깊은 곳에 숨어 사는 신성한 존재 쪽에 가깝다. 북아메리카 원주민 전설에도 깊은 숲에 살면서 남자를 홀리는 반(半)사람, 반(半)사슴 이야기가 있다. 이른바 ‘사슴 여자(deer woman)’다. 참고로 이 존재는 2005년 미국 TV시리즈 ‘마스터즈 오브 호러(Masters of Horror)’의 한 에피소드 소재로 등장한 적이 있다.

아홉 부처의 전설

얼굴은 사람, 발은 사슴 모양인 존재가 그려진 경남 하동 쌍계사 감로왕도 일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얼굴은 사람, 발은 사슴 모양인 존재가 그려진 경남 하동 쌍계사 감로왕도 일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광법사 비석에 기록된 이야기를 ‘광법사사적비명(廣法寺事蹟碑銘)’이라고 한다. 이시항은 여기에 녹족부인 이야기를 간략히 적었다. 이에 따르면 녹족부인은 한 번에 아홉 명의 자식을 낳았다. 이것이 기괴한 일이라 자식들을 상자에 담아 바다에 떠내려가도록 했다. 자식들은 바다를 떠돌다 중국으로 흘러 들어가 자랐고, 이후 중국이 우리나라를 공격할 때 군대를 따라 한반도에 들어온다. 그런데 중국 편에서 싸우던 그 아홉 자식은 뒤늦게 자신들이 녹족부인의 자식이고 우리나라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놀란다. 그리하여 싸움을 멈추고 불교 승려가 되기로 결심한다. 나중에 이들 아홉 모두 깨달음을 얻었는데, 그들이 승려 생활을 하며 깨달음을 얻은 장소가 바로 광법사 근처다. 태유는 대성산 주위 사람들이 이들을 구불(九佛), 곧 아홉 부처라고 부른다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깊은 산속에 사는 사슴 다리를 가진 여인과 그의 아홉 자식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알아볼 수는 없을까. 18세기 중엽, 조선 각읍에서 편찬한 읍지를 모아 엮은 책 ‘여지도서’에도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여지도서에 따르면 녹족부인이 살았던 곳은 평양 대성산이 아니라 평안남도 안주 지역이다. 이 여인은 고려 한 임금의 어머니로, 한 번에 열두 아들을 낳았다. 뒤에 중국 당나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 여기서 고려는 고구려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녹족부인이 낳은 자식들을 기괴하다고 여겨 상자에 담아 바다에 떠내려 보내고, 아이들은 중국 당나라에 닿아 거기서 자라나게 된다. 녹족부인이 왕의 어머니 신분이고, 자식을 열둘 낳았다는 점 등을 빼면 광법사사적비명에 실린 이야기와 거의 똑같다. 

여지도서에서 녹족부인의 자식들이 한반도를 침략하는 군대에 합류하는 점도 그렇다. 다만 이번에는 묘사가 훨씬 상세하다. 열두 명의 아들은 당나라 장수가 됐으며, 각각 3000명의 병사를 거느렸다. 고구려와 당나라는 치열하게 전쟁을 벌인 역사를 갖고 있다. 녹족부인 이야기가 구체적인 역사를 배경으로 한층 정교하게 발전한 셈이다. 

열두 아들이 안주 지역 어느 벌판에 도착했을 때 녹족부인은 아들들이 이끌고 있는 도합 3만6000의 당나라 군사 앞에 나아간다. 튼튼한 누각에 앉아 그곳으로 아들들을 불러들였다고 한다. 거기서 자식들에게 자기 젖을 맛보게 하고, 열두 켤레의 버선을 내려준다. 그러자 열두 아들은 녹족부인이 자신들의 생모임을 깨닫고, 어머니 나라를 공격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항복한 뒤 거기 성을 쌓고 지냈다고 한다. 그 지역을 지금도 삼천벌(三千野) 또는 열두 삼천벌이라고 부른다는 게 여지도서가 전하는 이야기다. 자식들이 버선을 받은 뒤 녹족부인이 자기 어머니임을 알았다는 대목을 보면 자식들 발 모양도 사슴을 닮았고 어머니가 바로 그 모양에 어울리는 버선을 준 게 아닌가 싶다. 




녹족부인 전설이 실려 있는 여지도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녹족부인 전설이 실려 있는 여지도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녹족부인 이야기는 이후에도 계속 전해졌다. 후대에 기록된 자료를 보면 배경이 을지문덕과 살수대첩 시대로 바뀐 이야기가 돌기도 했고, 1919년 일본어로 나온 설화집 ‘전설의 조선(伝説の朝鮮)’에도 관련된 이야기가 실렸다. 여기서는 녹족부인이 아들들에게 버선을 신어 항상 발 모양을 숨기라고 했는데 막내가 버선을 벗어버리자 화가 나서 아이들을 대동강에 버린 것으로 돼 있다. 1940년 박영만이 편찬한 ‘조선전래동화집’에도 동화 형태로 녹족부인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전설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19세기 학자 송병선이 쓴 기행문 ‘서유기(西遊記)’를 보면 이 의문을 풀 단초가 보인다. 송병선은 황해도 재령 장수산에 있는 녹족정(鹿足亭)이라는 정자를 소개하며 ‘녹족선(鹿足仙)이 놀던 장소라는 전설이 있어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신비로운 존재를 일컫는 이름이 다소 다르지만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눈에 띄는 것은 녹족선, 즉 녹족부인의 어머니가 암사슴이라는 부분이다. ‘서유기’에 따르면 이 암사슴은 이암대사(利巖大師)라는 승려를 열렬히 사모하다가 임신을 해 딸을 낳았다. 녹족부인은 사람 아버지와 사슴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뜻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장수산’ 항목을 보면 이암대사는 장수산 석동12곡 근처 암자에서 수도했다. 그 근처에는 녹족정(鹿足井)이라는 우물이 있고, 우물 앞 돌바닥에는 아직 사슴 발자국 모양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한다.

녹녀부인과 1000명의 아들

‘잡보장경’에는 사슴과 수도자 사이에서 태어난 ‘녹녀부인’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돼 있다. [불교기록문화유산]

‘잡보장경’에는 사슴과 수도자 사이에서 태어난 ‘녹녀부인’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돼 있다. [불교기록문화유산]

이렇게 여러 사료에 남은 녹족부인 이야기를 모으면 비로소 녹족부인 전설의 기원이 보인다. 멀고 먼 인도 갠지스강 유역 도시, 바라나시(Varanasi)다. ‘팔만대장경’에 수록된 ‘잡보장경’에는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옛날 인도 바라나시 근처 어느 산에 수도자가 있었다. 그런데 암사슴 한 마리가 그 주위를 맴돌며 수도자가 남긴 것들을 핥아 먹다 수도자의 정기를 받아 임신했고 여자아이를 낳았다고 한다. 잡보장경에는 이 아이 이름이 ‘녹녀부인(鹿女夫人)’이라고 기록돼 있다. 말 그대로 ‘사슴의 딸’이다. 

계속 잡보장경을 보자. 녹녀부인은 바라나시 왕의 눈에 띄어 두 번째 부인이 된다. 재령에서 유행한 녹족부인 이야기에 나오는 고매한 도 닦는 사람과 사슴 사이 자식 얘기와 일치한다. 또 안주 녹족부인 이야기에 나오는 녹족부인이 임금의 아내였다는 이야기와도 통한다. 

녹녀부인 자식들이 다른 나라로 가서 자라고 장성한 뒤 모국을 공격하러 왔다가 녹녀부인이 생모임을 알고 전쟁을 멈춘다는 줄거리도 사실상 동일하다. 다만 잡보장경 기록에는 녹녀부인 자식 수가 무려 1000명이고, 녹녀부인이 높은 누각 위에서 동시에 1000명의 아들에게 젖을 내뿜어 자신이 어머니임을 증명했다고 돼 있다. 잡보장경은 석가모니 어머니인 마야부인이 전생에 곧 녹녀부인이었다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잡보장경의 기록을 미루어 짐작하면 조선 후기, 평안도와 황해도에서 널리 퍼진 녹족부인 민담은 불교와 함께 전해진 인도 전설이 한반도에서 변화하며 재탄생한 것으로 보인다. 역시 인도에서 불교를 받아들인 일본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조은애 숭실대 교수의 논문 ‘일본 민간전승과 ‘녹녀부인’ 설화’에 따르면 일본 고묘황후(光明皇后)가 승려와 사슴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라는 전설이 기록돼 있다. 일본 설화 중에는 일본의 독특한 버선인 다비(足袋) 모양과 녹녀부인을 연결 짓는 내용도 있다고 한다. 다비는 발을 두 갈래로 가르는 모양으로, 다비를 신으면 발이 마치 사슴 발처럼 보인다.

18세기 생명을 얻은 옛이야기

이렇게 정리하고 보면 새로운 수수께끼가 생긴다. 녹족부인 이야기가 한반도에서는 왜 18세기 들어, 그것도 중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기록되기 시작한 걸까. 이 땅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삼국시대 때다. ‘잡보장경’ 같은 불교 계통 인도 전설이 수입된 것 역시 그 무렵일 것이다. 조선 초기 출간된 ‘석보상절’에는 한 번에 500명의 아들을 낳은 사슴의 딸, ‘녹모부인(鹿母夫人)’ 이야기가 한글로 기록돼 있기도 하다. 그러니 이 설화를 한국인이 접할 기회는 충분히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왜 1000년 세월 동안이나 잠자고 있다 18세기에 새롭게 생명을 얻은 것일까. 

이곳저곳에 적당히 퍼져 있던 유사 이야기 중에 평양 장수산 근처에서 유행한 전설이 광법사사적비에 기록된 게 계기가 됐을까. 아니면 병자호란 이후 중국과의 전쟁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이 이야기가 인기를 얻었을까. 혹은 17~18세기 통신사가 일본을 자주 다녀오면서 현지에 퍼져 있던 녹녀부인 설화를 전해 녹족부인 이야기가 그 자극을 받아 유행하게 됐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녹족부인에 비견될 만한 실존 인물이 18세기 조선에 나타났던 것일까. 

현재로서는 정확한 답을 알기 어렵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녹족부인 이야기가 북한 지역에 뿌리를 두고 있어 우리는 그동안 이 내용을 충분히 연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녹족부인 전설을 본격적으로 다룬 한국 연구자 논문이 등장하는 건 2000년대 이후부터다. 우리가 남북 분단을 극복했다면, 최소한 문화 교류와 개방의 시대를 이룩했다면, 깊은 산속에 숨어 있던 녹족부인의 정체에 대한 수수께끼를 이미 풀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곽재식 | 1982년 부산 출생. 대학에서 양자공학, 대학원에서 화학과 기술정책을 공부했다. 2006년 단편소설 ‘토끼의 아리아’로 작가 생활을 시작했으며 소설집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 교양서 ‘로봇 공화국에서 살아남는 법’ ‘한국 괴물 백과’ 등을 펴냈다.



신동아 2020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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