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호

[사바나] 나도 ‘빅쇼트’ 주인공? 공매도 의무교육 들어보니…

“세 번을 돌려봐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 오홍석 기자

    lumiere@donga.com

    입력2021-05-10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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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빅쇼트 주인공’ 꿈꾸며 강의 듣는 20대

    • 23분 44초 영상, 용어 어렵고 테스트도 없어

    • 수강생들 “‘주린이’ 배려 않는 지극히 딱딱한 강의”

    • “23분 강의로 공매도 위험성 알린다는 건 무리”

    • 개미투자자 대표 “당국 책임 회피 위한 전시행정”

    • 전문가 “투자 기회 확대된 만큼 위험성 경고 강화해야”

    밀레니얼 플레이풀 플랫폼 ‘사바나’는 ‘회를 꾸는 ’의 줄임말입니다.

    5월 3일 재개된 공매도 투자를 희망하는 개인투자자는 금융투자교육원이 제공하는 강의를 수료해야 한다. [금융투자교육원 강의 캡처]

    5월 3일 재개된 공매도 투자를 희망하는 개인투자자는 금융투자교육원이 제공하는 강의를 수료해야 한다. [금융투자교육원 강의 캡처]

    “지금부터 공매도가 무엇인지 어떤 위험성을 가지는지 알아보겠습니다.”

    5월 3일 주식 시장에서 공매도 거래가 재개됐다. 1년 2개월 만이다. 바뀐 점은 개인도 공매도 투자를 하게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단 조건이 붙었다. 코스피200·코스닥150 주가지수 구성 종목에 한해 공매도 투자가 가능하다. 그리고 금융투자교육원이 제공하는 ‘개인공매도 사전 의무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자는 대학 시절에 2008년 금융위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 ‘빅쇼트(Big Short)’를 보고 공매도 투자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대다수 사람들이 부동산값 거품에 따른 상승장에 취해 파티를 벌일 때 공매도 투자를 해서 일확천금에 성공한다. 영화가 끝난 뒤 인터넷에서 ‘공매도’를 검색해봤지만 한국에서는 개인투자자는 공매도를 할 수 없다는 내용을 보고 적잖이 실망한 기억이 있다.

    개인에게 공매도가 허용됐다는 소식을 듣고 ‘한번해볼까’ 하는 생각에 4월 29일 금융투자교육원 홈페이지에 들어가 교육을 수강했다. 온라인 수업이라 신청 즉시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차분한 목소리의 화면 속 아나운서는 강의 내내 막힘없이 쉬지 않고 설명했다.



    “한편 소유하지 아니한 증권의 매도이지만 결제불이행 우려가 없는 거래는 공매도에서 제외하고 있습니다. 권리행사로 취득한 증권을 신주상장일 2거래일로부터 매도하거나, 대여한 증권을 매도하는 경우에도 동일합니다.”

    시작한지 3분도 안 돼 강의를 멈췄다. 한 문장에 모르는 단어가 서너 개씩 튀어나왔다. 모르는 내용을 검색해 여러 번 강의를 돌려봐야 비로소 내용을 이해 할 수 있었다.

    23분 44초에 공매도의 모든 것 담는다?

    공매도는 특정 종목의 하락을 예상하고 기관으로부터 주식을 빌려 투자하는 투자기법이다. 예를 들어 한 투자자가 ‘A주식이 지금 100만원인데 과대평가됐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해당 주식을 갖고 있는 한국예탁원이나 증권사에 이자를 내고 주식을 빌린 뒤 이를 판매한다. 이후 주식의 가격이 떨어지면 빌린 가격에 주식을 다시 사들여 차익을 챙긴다. 이렇듯 가지고 있지 않은 주식을 내다 팔아 차익을 챙기기에 ‘공(空)매도’라 불린다.

    공매도가 어려운 이유는 우량주 종목이 아닌 불량주 종목을 골라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공매도 권위자인 이관휘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공매도 투자에 대해 “한 주만 잘못사도 패가망신한다”고 말한다. 그만큼 고난도 투자라는 의미다. 그는 “기업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보는 적극적으로 홍보하지만 불리한 정보는 숨기려 든다”며 “공매도는 기업이 감추려는 정보를 찾아내 투자해야하기에 일반 투자보다 난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이게 다가 아니다. 공매도는 일반적인 주식 투자와 달리 투자로 거둘 수 있는 수익은 한정된 반면 손실은 무한대가 될 수 있다. 100만 원 어치 주식이 0원이 되면 투자자는 100만 원 수익을 거둔다. 최대 수익은 매수 당시의 주가다. 반면 주식가격이 오르면 오른 만큼에 대한 차익을 투자자가 상환해야한다. 100만 원 어치 주식이 1000만 원이 되면 투자자는 900만 원을 상환해야 하는 것이다.

    공매도 사전교육은 금융투자교육원 홈페이지에서 수강할 수 있다. 2021년 12월 31일까지는 3000원인 수강료를 면제해준다. 간단한 회원가입을 하면 수강이 가능하다. 강의 구성은 8강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분량은 정확히 23분 44초다. 논란이 됐던 미국의 ‘게임스탑(GameStop)’ 주가 폭등 사건(을 다룬 애니메이션으로 영상은 시작한다.

    이어 학습내용에는 네 가지를 제시한다. 1. 공매도의 의의와 기능 2. 공매도의 거래구조 3. 공매도 거래 구조 4. 대주거래.

    강의는 아나운서가 공매도 거래에 대한 설명과 관련 규제, 시행령, 법률 용어를 설명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압축적으로 정보 전달에 중점을 둔 탓에 구체적 예시는 공매도의 위험성에 대해 설명할 때 빼고는 등장하지 않았다. 아나운서는 공매도의 위험성에 대해 3강 1분 50초에서 3분 50초까지 2분 동안 설명했다. 솜방망이 처벌로 개미 투자자들의 분노를 산 ‘무차입 공매도’ 처벌은 심도 있게 다뤄졌다. 무차입 공매도는 주식을 빌리지 않고 주식을 미리 내다파는 행위로 현행법상 금지돼있다.

    그 외에 강의 내내 ‘소비대차계약’ ‘공매도 호가 제출 제한’ 같은 단어가 별도의 설명 없이 등장했다. 강의 이후 교육 내용을 잘 숙지했는지 확인하는 테스트는 없었다. 컴퓨터로 강의를 듣는 동안에는 영상 화면을 최소화 해놓고 다른 일도 할 수 있었다. 강의를 들었지만 ‘갸우뚱’했다. 부족한 지식을 탓하며 다른 수강생들에게 강의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공매도 위험성 충분히 알려야…”

    교육을 마치면 금융투자교육원이 수여하는 수료증. [오홍석 기자]

    교육을 마치면 금융투자교육원이 수여하는 수료증. [오홍석 기자]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김모(26) 씨는 “주린이(주식+어린이. 주식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들을 위한 자료라면 왜 만들었는지 솔직히 모르겠다. 가장 큰 단점은 재미가 없다는 점”이라며 “법률과 규제에 대해 일방적으로 강의하고 (수강생의) 이해하기를 바라는 건 무리”라고 말했다. 이어 “시장조성자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은 세 번을 돌려보고도 이해가 가지 않아 별도로 검색을 통해 익혔다”고 했다.

    시장조성자는 투자자가 매수를 원할 경우 호가에 맞춰 주식을 제공하는 공급자를 의미한다. 주로 한국거래소와 계약한 금융사가 이 역할을 맡는다. 금융사가 투자자의 수요에 맞출 주식이 없을 경우 금융사는 주식을 다른데서 빌려온다. 없는 주식을 주문에 맞춰 빌려 내다 팔기에 이 또한 공매도 거래의 일종이다.

    마찬가지로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서모(26) 씨는 학생 시절부터 주식을 공부하고 직접 투자하는 ‘4년차 개미’. 그의 평가는 이렇다.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설명했으면 좀 더 도움이 됐을 것이다. 공매도는 원금을 훨씬 넘어서는 피해를 입지 않나. 개인공매도를 규제했던 이유는 공매도 투자가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라 들었는데, 이에 대한 설명이 많이 부족하다 느꼈다. 흔한 교육내용 점검 테스트도 없어 (강의를 들었지만) 나도 내가 제대로 배웠는지 모르겠다.”

    대체로 40대 이상 투자자들은 안정적인 투자를 선호하는 반면 상대적으로 20대 투자자들은 고수익 적극 투자 성향을 보이기 때문에 공매도 투자에 적극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전문가들의 평가도 비슷했다. 이관휘 교수는 “‘불친절한 강의’라는 평을 다른 수강생들에게 들었다”며 “짧은 영상으로 투자들에게 공매도의 위험성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또한 “개인이 원해 공매도 투자 기회가 확대됐으니 그만큼 공매도의 위험성에 대한 홍보도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인투자자를 대표하는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회장은 강의에 대해 “직접 강의를 봤는데, 이 강의는 규제 당국의 책임회피를 위한 전시행정이고, (공매도 재개로) 개인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으면 비난의 화살이 쏠릴까 두려워 면피용으로 만든 강의로 본다”고 평가하면서 “애초에 전문가가 아니면 쉽게 익히기 어려운 공매도에 대한 정보를 30분 남짓한 수업을 통해 교육한다는 건 무리”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개인투자자 보호를 위해서는 금융당국이 교육을 넘어선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이관휘 교수는 저가 주식이 주가 조작을 통한 공매도 작전 세력의 주요 목표물이 된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주가를 조작해 이익을 보는 범죄자들에게 국가가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면 그 피해는 개인 투자자들이 짊어지게 된다”며 “금융당국이 정말 개인 투자자들을 위한 ‘평평한 운동장’을 만들려고 한다면 시장 질서를 바로잡는 게 최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송두한 전 NH금융연구소장은 소장은 “현재 한시적으로 350개 종목에 제한하는 것은 홍콩식 모델에 가깝다”며 “현재의 한시적인 조치를 법제화해 상시적 바꾸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공매도 #금융투자교육원 #주식 #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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