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공시가격 산정 기초자료 첫 공개
“같은 말만 나열…주택 소유주 납득 못 할 것”
조망 따라 시세 다른데, 공시가 같은 경우도
국토부 “조사원이 지난해 문제 찾아낸 것”
조사원 1인당 2만여 호 조사해야
“각 호 적정 시세·현실화율 공개하라”
4월 2일 서울 강남구 아파트 단지 전경. 4월 29일 국토교통부는 전국 약 1420만 호에 대한 가격을 공시했다. [뉴스1]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서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50대 김모 씨가 마포래미안푸르지오(마래푸) 아파트 가구별 공시가격을 검토한 뒤 한 말이다.
4월 29일 국토교통부(국토부)는 2021년 1월 1일 기준 공동주택(아파트·연립·다세대) 가격을 공시했다. 정부가 1년에 한 번씩 발표하는 이 가격은 종합부동산세·재산세 등 각종 세금 부과 기준이 된다. 건강보험료·국민연금 납부액 산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산정 방식이 불투명해 매년 불만이 쏟아진다는 점이다.
김씨가 지적한 마래푸 204동 1층 전용면적 59㎡ 아파트 올해 공시가격은 9억 원이다. 같은 단지 내 207동 2층(최하층) 59㎡ 아파트 공시가(8억9000만 원)보다 1000만 원 높다. 따라서 204동 최하층 소유자는 207동 2층 집주인보다 보유세를 더 많이 부담하게 됐다. 김씨는 “필로티가 있는 동 2층은 최하층이라도 1층보다 선호도가 높고 실거래가도 비싼 편”이라며 “204동 1층 공시가격이 207동 2층보다 왜 비싸게 책정됐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1년 만에 엇갈린 아파트 가격
‘부동산공시가격알리미’ 홈페이지에서 2021년 기준 공동주택 공시가격과 산정 기초자료를 확인할 수 있다. 5월 28일까지 해당 홈페이지를 통해 이의 제기를 신청할 수 있다. [부동산공시가격알리미 홈페이지 캡처]
정부는 그동안 부동산 공시가격을 어떻게 산정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힌 적이 없다. 이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자 올해 처음으로 전국 공동주택 약 1420만 호에 대한 자료를 작성했다. A4용지 1장 분량에 △공시가격 △주택특성자료 △가격참고자료 △산정의견 등을 기록하는 방식이다.
마래푸 204동 1층 ‘주택특성자료’에는 교육시설·공공편의시설 등에 대한 정보와 면적·세대수·향(向) 등이 적혀 있었다. ‘가격참고자료’ 항목에는 공시가격 산정에 반영한 최근 실거래가와 시세 정보 등이 있었다. 하지만 이 수치를 어떻게 활용해 공시가격을 산출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연이어 207동 2층 ‘공시가격 산정 기초자료’를 열람했다. ‘주택특성자료’ 내용이 앞서 살펴본 204동 1층의 것과 향을 빼고는 동일했다. 207동 2층은 서향, 204동 1층은 남서향이다. ‘가격참고자료’와 ‘산정의견’ 등의 내용에서는 구체적인 동호수를 제외하고는 한 글자도 다른 게 없었다. 두 자료를 구별할 수 있게 해주는 건 1000만 원 차이 나는 ‘공시가격’ 항목뿐이다.
공인중개사 김씨는 “이렇게 같은 말만 나열돼 있는 자료를 보고 집주인이 ‘왜 내가 다른 집보다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하는지’ 납득할 수 있겠나”라고 말하며 혀를 찼다. 김규정 한국투자증권 자산승계연구소장은 “국토부가 공개한 자료의 ‘주택특성자료’에 기록된 내용은 건축물대장만 확인해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정보”라며 “거의 모든 내용을 ‘복사 후 붙이기’ 방식으로 생산한 이 자료가 보유세 인상으로 분노하는 주택 소유주를 잠재우기엔 어려워 보인다”라고 꼬집었다.
‘공시가 문제 있다’ 의견 제출 5만 건 달해
이런 사례는 곳곳에서 확인된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11차아파트 전용면적 76㎡ 10층 아파트는 지난해 9층보다 공시가격이 낮았다. 그러나 올해는 둘 다 18억7200만 원으로 책정됐다. 인근에서 부동산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공인중개사 A씨는 “처음엔 ‘이 아파트 재건축이 확정돼 층에 따라 가치를 달리 매길 수 없으니 가격을 동일하게 맞췄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공시가격이 다른 층도 있더라”며 “나도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어리둥절해 했다. 또 다른 공인중개사 B씨는 “고객 선호를 고려하면 층이 높을수록 공시가격을 높게 책정하는 게 합리적으로 보인다. 작년에 10층 공시가가 9층 가격보다 낮았던 게 오히려 의아한 일”이라고 밝혔다.주택 실거래가에 큰 영향을 미치는 조망권이 공시가격 산정에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사례도 있다. 대전 유성구 반석마을아파트 502동 20층의 올해 공시가격은 5억5800만 원으로 같은 단지 504동 20층 가격과 같다. 두 아파트는 전용면적 132㎡로 크기가 같지만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풍경이 전혀 다르다. 504동에서는 반석천을 조망할 수 있는 반면, 502동에서는 볼 수 없다.
이 차이는 실거래가에 영향을 미친다. 2020년 10월 502동 22층 아파트(하천 조망 불가능)는 8억3000만 원에 거래됐다. 같은 해 11월 504동 17층 아파트(하천 조망 가능)는 7000만 원 많은 9억 원에 팔렸다. 대전 유성구에서 부동산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C씨는 “고객 선호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반석천을 바라볼 수 있는 504동 시세가 높게 형성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국토부가 두 동의 공시가격을 왜 동일하게 책정했는지에 대해 일반 국민은 알 방법이 없다.
관련 통계를 보면 최근 공시가격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3월 16일 국토부가 공동주택 공시가격 초안을 제시한 뒤 21일간 국토부에 접수된 의견 제출 건수는 모두 4만9601건이다. 2016년 같은 기간 의견 개진 건수가 191건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260배 늘었다. 지난해(3만7410건)에 비춰봐도 1만 건 이상 증가했다.
국토부는 공동주택 공시가격 산정 방식에 대해 “공동주택 공시가격 조사원이 매년 실거래가와 현장 상황 등을 고려해 적정 시세를 산출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국토부 부동산평가과 관계자는 “마래푸처럼 조사 연도에 따라 가격 역전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조사원이 현장에서 지난해와 달라진 주택 상황을 확인하거나 지난해 산출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되면 이를 수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사원 1인당 2만여 호 조사
전문가들은 조사원의 전문성에 대해 의구심을 드러낸다. 정수연 제주대 경제학과 교수(한국감정평가학회장)는 “조사원 역량에 따라 공시가격이 주먹구구식으로 산정될 우려가 있다”며 “산정자가 바뀔 때마다 기준이 달라진다면 공정한 산정 방식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또 정 교수는 “미국은 카운티마다 수십 명의 감정평가사가 매년 주택을 가가호호 방문해 여건을 살펴보고 감정가를 산출한다. 주민들 신뢰도가 높은 편이다”라고 덧붙였다.이에 대한 국토부 부동산평가과 관계자의 답변이다.
“우리나라도 토지 가격 책정 기준이 되는 표준지 공시가격 책정은 감정평가사가 맡고 있다. 땅마다 천차만별인 토질과 고도를 고려하는 등 전문성이 필요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반면 공동주택은 다르다. 이미 한국부동산원이 축적해 놓은 데이터가 방대하다. 이를 바탕으로 각 조사원에게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객관성을 담보하고 있다. 공시가격 조사를 모두 감정평가사가 담당하게 하려면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다.”
국내 공동주택 수에 비해 조사원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국토부가 발표한 ‘2020년 부동산 가격공시에 관한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공동주택 공시가격 산정에 참여한 조사원은 520명이다. 2020년 기준 전국 공동주택 호수가 1383만 호였던 것을 감안하면 한 사람당 2만6596호를 조사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 논란을 끝내려면 공시가격 산정 방식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개별 주택마다 해당 공시가격을 책정한 근거를 숫자로 밝히라는 것이다. 공시가격은 적정 시세에 현실화율을 곱한 값이다. 이때 적정시세는 정부가 해당 주택을 얼마로 판단했는지에 대한 수치다. 현실화율은 공시가격이 시세를 얼마나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한 비율을 말한다. 김성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 국장의 말이다.
“공시가격 책정은 조세형평성과 밀접히 관련돼 있다. 국토부가 산출식만 정확하게 공개하면, 공시가격을 한국부동산원 조사원이 정하든 감정평가사가 정하든 큰 문제가 안 된다. 학계나 민간에서 교차 검증할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국토부가 지금까지 폐쇄적인 방식으로 공시가격 산정을 독점해 온 상황부터 해결해야 한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한국납세자연합회 회장)는 “국토부가 약 1400만 호에 달하는 모든 공동주택 공시가격 산정 방식을 공개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면서도 “납세자는 자신이 내는 세금이 어떻게 산정됐는지 알 권리가 있으니, 적어도 공시가격 산정의 기초가 되는 각 주택의 적정 시세와 현실화율이라도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시가격에 대한 논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 들어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며 세금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또 지난해 국토부가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90%까지 높인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의 제기는 구체적일수록 좋다”
한편, 올해 발표한 공시가격은 아직 변경될 여지가 남아있다. 국토부가 5월 28일까지 이의 신청을 받는다. 이후 검토 과정을 거쳐 6월 25일 공동주택 가격을 최종 공시할 계획이다. 이의 제기 시 가장 중요한 건 구체적 이유를 밝히는 것이다. 국토부 부동산평가과 관계자 설명이다.“국토부에 접수된 의견을 보면 상당수가 ‘집 공시가격이 너무 높다’ ‘세금이 부담되니 좀 깎아달라’ 같은 내용이다. 이런 내용만 보고는 무엇이 잘못됐다는 건지 파악하기 어렵다. 집 근처에 있는 비슷한 조건의 주택가격과 자기 집 값을 비교하는 등 구체적 근거와 함께 이의를 제기하면, 그 내용을 바탕으로 공시가격이 제대로 매겨졌는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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